'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실천인 이유
마침내 일본 <표현의 부자유전> 성사시킨 '시민연대'의 힘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한국에서 '수요 시위' 1000회를 기념해 건립됐다. 이후 한국에는 80개 이상의 소녀상이 세워졌고, 미국과 독일 등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직접적인 당사자국인 일본에는 소녀상이 하나도 없다. 일본에서 소녀상을 볼 수 있는 곳은 주로 <표현의 부자유>라는 전시회다. 이 미술전은 정치적 이유 등으로 거부된 작품을 전시하는 장이다.
사실 일본에서는 그동안 소녀상을 둘러싸고 전시 성폭력 피해자가 '소녀'라는 표상에 한정되어 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우파와 정부 또한 소녀상을 '위안부상'이라고 부르며 <표현의 부자유> 전시회가 열릴 때마다 전방위적으로 방해해 왔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소녀상 전시회'는 다시 기획되고 지역을 순회하며 열리는 과정이 지속돼 왔다. 심지어 법적 판단을 구하기도 하고, 전시를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와 변호사들이 참여했다. 무엇이 이를 가능하게 한 걸까?
방해와 위협으로 거듭 좌절된 일본 소녀상 전시
일본에서 '소녀상'은 매우 강한 혐오의 대상이다. '말뚝을 박고', '얼굴에 종이봉지를 씌우고', '차는' 등 우파 지지자들의 직접적인 파괴 행위가 계속돼 왔다. 또 공격적으로 '폭파'를 언급하거나 '정액을 끼얹겠다'고 발언한 국회의원과 저명한 소설가도 있었다. 이런 행위에는 '위안부' 문제가 국제화되는 것과 피해자의 이미지가 '소녀'로 여겨지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는 어떤 경위로 시작됐을까? 계기는 201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12명을 만나 촬영해온 나고야시 거주 사진작가 안세홍은 도쿄 니콘살롱에서 <겹겹-중국에 남겨진 조선인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 사진전 개최를 추진했다. 1년 전 확정된 전시회 상황이 급변한 것은 개최 한 달 전이었다. 사진전을 소개한 아사히신문의 기사가 우파의 눈에 띄었고, 항의가 거세졌다. 당시 안세홍은 법원에 가처분 절차를 밟아 장소 사용 결정까지 받아냈으나 결국 개최 사흘 전 전시회는 취소됐다.
이로부터 두 달 뒤에도 비슷한 일이 발생했다. 도쿄도미술관에서 'JAALA미술가회의(Japan Asia Africa Latin-American Artist Association)'가 주최하는 <제18회 JAALA 국제교류전>에 소녀상 미니어처와 작가 박윤빈의 유화 '위안부!'가 전시되었다. 그런데 전시회 4일째, 미술관 측이 무단으로 작품을 철거했다. 하지만 이 일은 안세홍 전시 때와는 달리 언론에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일련의 사건을 접한 미디어 아티스트 오에노키 준은 전시가 거부된 작품을 미술관 벽에 프로젝션으로 투사해 보여주는 것으로 전시회 파행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항의 운동으로 2014년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실행위원회'가 출범하고, 2015년 도쿄의 갤러리 후루토에서 열린 첫 전시회에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되었다. 실행위원회를 이끈 오카모토 유카 씨에 따르면 섬유강화플라스틱(FRP) 재질로 만든 동상이라면 일본에서 전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판단, 소녀상 작가 김서경-김운성 부부에게 소녀상을 의뢰했다. 전시를 흔쾌히 수락한 작가들은 예산이 부족한 전시회 측의 사정을 듣고 직접 자비를 들여 소녀상의 수송을 도왔다. 일본에 반입하기 위해 크기가 큰 조각상은 3등분으로 분할되었고 그것을 현장에서 다시 조립하고 색을 칠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드디어 전시되었다. 작가들은 전시 후 일본을 떠나기 전 "이 소녀상은 일본에 있어야 한다"면서 소녀상 뒷면에 "일본에 남긴다"고 서명했다. 이로써 마침내 일본에 소녀상이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이 소녀상은 도쿄도 내 어느 극단의 오두막에서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무료로 대여되고 있다. 연극 상연이나 영화 촬영 시 대여된 적도 있다.
'사라져야 했던' 소녀상을 드러내기 위해
이 소녀상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19년 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이하 아이트리 2019)에서 선보인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 전시이다. 나고야시 아이치현에서 3년마다 열리는 아이트리는 월 관람객 수가 25만 명을 상회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유명 국제 예술제이다. 이 예술제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에 소녀상이 출품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우파의 협박, 일부 정치인들의 반발 등 논란이 일었고, 결국 개최 3일 만에 전시가 중단되고 말았다. 다음 달에는 일본 문화청이 예술제에 보조금 약 7,800만 엔을 전액 교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이후 감액 지급). 예술제에 참가했던 예술가들은 표현의 자유를 겁박하는 이런 행태에 대해 작품 봉인 및 전시 거부, 성명서 발표 등을 통해 연대하며 고발했다.
그 후 보조금 지급을 둘러싸고 시와 현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다카스 클리닉의 다카스 카츠야 원장, 햐쿠타 나오키, 다케다 쓰네야스, 아리모토 카오리 등 우파 지식인들과 함께 오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에 대한 소환 서명운동[1]을 전개했다. 그러나 2021년 선거관리위원회 조사에서 모인 서명 중 83.2%에 위조 등의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그런데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에서 '사라져야 했던' 이 소녀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를 두고 '또 다른 출발'이라 해야겠다. '아이트리 2019'에서 소녀상을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요청에 따라 일본 각지에서 독립적인 전시회를 기획하는 주최 단체가 생겨났고, 도쿄를 시작으로 관련 기관들이 협력하는 형태로 연대해 각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모든 개최 예정지에 우익의 항의 시위와 압력, 방해가 있었지만 시민들의 투쟁에 힘입어 도쿄와 나고야, 오사카 등에서 전시할 권리를 획득해 갔다.
▶ 연기된 도쿄 전시회
첫 소녀상 전시회 지역은 도쿄였다. 2021년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 신주쿠의 갤러리 세션하우스 가든에서 기획된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는 사전 공지 및 관람 신청을 개시했지만 우파의 방해와 가두 선전이 계속되자 결국 갤러리 대표가 이웃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해 '대관 불가' 입장으로 돌아섰다. 많은 시민들의 격려를 받으며 급히 다른 장소를 물색했지만 모두 거절당해 개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 휴관 끝 중단된 나고야 전시회
'아이트리 2019 사건' 이후 만들어진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를 잇는 아이치의 모임'은 2021년 1월 나고야시 시민갤러리 사카에에서 <우리의 표현의 부자유전 그후>를 개최하려 했다. 역시 방해가 예상되었기에 시설 관리자와 경찰과도 협의하는 등 신중하게 준비했다. 하지만 7월 6일부터 11일까지 개최가 발표되자 가두시위, 관계자에 대한 직접적인 협박이 계속됐다. 게다가 8일에는 갤러리로 수상한 우편물이 도착해 스태프와 변호사까지 퇴거 명령을 받았다. 경찰 입회 하에 우편물을 개봉하자 폭죽 같은 것이 터졌다. 협의를 시도했으나 시설과 행정이 응하지 않고 휴관을 연장해 결국 주최 측은 전시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 허가 취소된 오사카 간사이전
나고야전의 작품을 이어받은 오사카 실행위원회는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엘오사카(오사카부립노동센터)에서 <표현의 부자유전 간사이>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6월 25일 행사장 쪽에서 '안전 확보'를 이유로 시설 사용 허가를 취소했다. 실행위원회는 처분 철회를 요구하며 오사카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7월 9일 사용 불허 취소 결정을 받아냈다. 이후 고등법원, 대법원에서도 항소가 기각돼 공공시설 전시회를 막을 명분은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 드디어 개최된 도쿄전
오사카 재판 결과를 바탕으로 공공시설에서 개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얻은 실행위원회는 전시회 한 달 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해 최종 462명에게 341만 2,900엔을 후원받았다. 그리고 마침내 2022년 4월 2일부터 5일까지 쿠니타치시민예술소홀에서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 2022>를 개최했다.
전시회를 방위하라! 치열했던 도쿄전 안팎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 2022(이하 도쿄전)> 전시회에 실제 스태프로 참여한 나는 내부자로서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도쿄전에서 가장 치밀하게 준비한 미션 중 하나는 전시회를 지키는 일, 곧 '방위'였다. 먼저 매일 약 40명, 총 240명의 자원봉사자와 70명의 변호사가 참여하여 교대 근무 등의 치밀한 경비 배치 계획을 세우고, 법적 조치도 확인했다. 또 경찰과도 협의했다.
역시나! 전시회 개최 중에 40여 개 우익 단체가 몰려와 가두선전을 하며 "존재하지도 않았던 종군위안부를 조작하고 동상을 상징처럼 만들어 그것을 예술이라며 하며 전시하는 너희는 바보냐, 이봐!"라고 스피커로 떠들어댔다. 우익들은 가두선전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소녀상 전시를 방해했다. 전시회를 무단 촬영 한다든지, 행사장 앞에서 항의문을 낭독한 뒤 실행위원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아예 티켓을 구매해 갤러리에 입장하는 우익도 있었다. 또 전시회를 찾은 우익을 촬영해 유튜브와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평소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혐오 발언)'에 대항해 활동하던 방위 담당자는 이들 '요주의 인물'을 식별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등 주의 깊게 감시했다. 현장 밖에서도 각 지역 '카운터 운동[2]'과 연계해 '○○가 부자유전에 간다고 인터넷에 글이 올라왔다'는 소식이 들리면 이들의 움직임을 계속 추적했다.
혐오 발언과 함께 우익의 시위가 격해지면 그에 대항하는 카운터 운동도 격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도쿄 부자유전에서는 그런 모습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간사이전에서는 마네킹 플래시몹 퍼포먼스도 조용한 카운터로 진행됐다. 도쿄전 방위 자원봉사자들도 혐오 발언을 동반한 우익의 가두선전이나 도발에 일절 대응하지 않는 태도를 취했다. 그보다 실행위원들이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 2022>에서 중요하게 여긴 것은 개최지인 쿠니타치시 지역의 시민활동 네트워크와 연계하는 일이었다. 실행위원들은 자신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부자유전에 협력할 쿠니타치 시민을 찾아 '예술전 개최를 실현하는 모임'을 발족했다. 이를 통해 경찰과 시설, 실행위원과 쿠니타치 시민의 연대로 안전하게 전시회를 개최할 '방위 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한편 공안경찰도 경계의 대상이었다. 초기부터 협의해온 이들이 전시회 진행자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우리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것이다. 전시 첫날 스태프를 가장한 경찰관이 갤러리 내에 무단으로 진입해 직원들이 그를 저지하는 일이 빚어졌는데,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둘째날 오전에는 전 스태프에게 '공안, 경찰이 쿠니타치시청 명찰을 달고 있다'는 정보가 공유되었고 '경찰은 우리 편이 아니니 조심하라'는 주의가 전 스태프에게 전달되었다. 게다가 시설 측이 설치한 방범 카메라 18대 중에 경찰 카메라가 3대 포함되어 있다는 민원이 제기됐다. 변호사를 대동하고 교육위원회와 경찰에 확인한 결과 정황이 상당했다. 경찰이 가져가겠다고 한 카메라 3대의 영상 데이터는 예술소홀과 시교육위원회 입회 하에 지우기로 했다.
'부자유전'의 다른 이름은 시민 자원봉사자들의 연대와 선의, 열정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자원봉사자로 모였을까? 방위 담당의 핵심 멤버와 변호사는 실행위원회, 경험자, 전문가이므로 경찰과의 사전 절차 등 준비는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졌다. 그 외에는 기본적으로 실행위원회의 인맥을 통해 믿을 만한 사람의 소개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준비 과정을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했기에 직업이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전시장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갔다. 나중에 보니 개최지의 시민운동가부터 학생, 재일코리안 등 다양했고, 노숙자와 고령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행사장 운영은 재미있게 표현하면 '엉망진창'이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지만 현지 재일코리안의 요리점에서 매일 배달해준 도시락은 맛있었다. 반드시 '한국 요리'일 필요는 없었지만, 이 도시락이 역시 이 전시회가 '평화의 소녀상'을 중심으로 한 미술전임을 실감하게 해 준 것이기도 했다.
도쿄 전시회를 비롯해 그동안 개최된 지역별 <표현의 부자유전> 모두 전국적인 조직이 아닌, 콜렉티브 방식의 운영이었다. 직업은 물론 이름조차 모르지만, 선의와 열정으로 함께 모여 함께 실천하고, 함께 해산하는 집합-이산 형태였다. 전시 장소 또한 누구의 소유물도 아닌 공용이었다. 따라서 협상이나 운영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끊임없이 논의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하는 실천의 의의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하는 일은 어떤 의의를 가질까? 이 실천의 첫 번째 의의는 홋카이도대학 현무암 교수가 『〈포스트 제국〉의 동아시아』(세이토샤, 2022)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소녀상은 국가 간 대립의 산물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전시성 폭력에 저항하는 시민적 연대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이 실천은 모두 운동 문화의 '친밀권(intimate sphere)'[3] 안에서 '무보수'이자 'DIY(Do it Yourself)', '집단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함께 모여 실천하고 해산하는 집합-이산의 과정에서 가해국 시민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파트너라는 응답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이 실천은 공공 영역의 확대로 이어졌다는 의의를 지닌다. 한동안 <표현의 부자유전>은 민간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러나 지금은 공공 시설에서 열리고 있다. 물론 우익이 찾아오기 때문에 경비에 대한 우려로 허가를 받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공공 공간 또는 공적 매체에서 '위안부' 문제를 쉽게 다룰 수 없는 일본의 현실에서 이 실천은 '위안부' 문제를 공공 영역으로 가져오게 한 중요한 투쟁이다. 또한 일본 시민운동 자체의 공공 영역으로의 확대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세 번째로 이 실천을 통해 '이동'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는 소녀상이 일본에 세워지지 못하는 현실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하지만 소녀상을 전시하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생각을 바꿨다. 오히려 일본 사회의 경우 특정 장소에 건립하는 것보다 전시회 개최를 통해 지역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에서의 전시회는 도쿄의 실행위원회가 전국 투어를 하는 식으로 개최되는 것이 아니다. 각지에서 개최될 때마다 지역별로 실행위원회가 조직되어 그 지역의 시민운동과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연대하는 방식으로 전시회가 조직된다. 이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시민들은 행정과 경찰, 우익의 편견과 혐오, 폭력 등에 맞서 나간다. 이처럼 일본에서 소녀상 전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연대의 친밀권이 공공권(公共圏)[4]을 쟁취해 나가고, 피해의 기억을 상징하는 소녀상이 이동하며 '기억의 장소'를 확대해 나가는 실천이 되고 있다.
편집자주
- ^ 소환 서명운동 : 당시 대표적으로 활동한 이들이 '<표현의 부자유/그 후전>을 잇는 아이치의 모임' 공동대표인 나카타니 유지 변호사와, 표현의 부자유전 도쿄실행위원회 공동대표 오카모토 유카 공동대표 등이다.
- ^ 카운터 운동 : '카운터스(counters) 운동'으로도 표현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에서 극렬해진 혐오와 인종차별에 맞서 반혐오, 반차별 운동을 전개한 자발적인 시민 운동이다. 일본 내 '혐오표현금지법' 제정을 이끈 주역이다.
- ^ 친밀권 : '당사자 간 연대’의 형태를 포함한 사랑과 지지의 공간을 의미한다.
- ^ 공공권 : 국가적 공공권, 공적 공공권, 시민적 공공권 등 학문적으로 여러 논의가 있으나 여기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항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특히 언론처럼 비국가적이고 비시장적인 영역으로서의 시민 사회에 자발적으로 형성된 강제나 배제 없는 대화의 공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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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쿠라하시 코헤이(倉橋耕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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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카대학 문학부 부교수이다. 사회학 박사로, 미디어 문화론, 젠더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역사수정주의와 서브컬처』(세이큐샤, 2018년), 공저로 『넷 우익이란 무엇인가』(세이큐샤, 2019년), 『〈한일 연대〉의 정치사회학』(세이토샤, 2023년), 『글로벌한 이야기의 시대와 역사 표상 『파친코』가 엮어내는 식민지주의의 기억』(세이큐샤, 2024년) 등이 있으며, 감역으로 『반일』(레오 친, 인문서원, 2021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