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신체를 전쟁터로 이용하지 말라!"

이리나 도브한(Iryna Dovhan) 서승현

  • 게시일2024.08.27
  • 최종수정일2024.11.01

우크라이나 전쟁 성폭력 피해자 지원하는
SEMA 글로벌 네트워크 이리나 도브한 인터뷰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그곳에는 언제나 성폭력 피해자들이 존재합니다. 여성의 몸이 또 하나의 전쟁터로 전락하고 마는 무력 분쟁의 현장에는 서로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웹진 <결>이 이번에 소개하는 글로벌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 단체 'SEMA'도 그런 곳입니다. 스와힐리어로 '공개적으로 밝히다(Speak up)'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이들은 수천 명 피해자들의 고통을 대변하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SEMA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이리나 도브한(Iryna Dovhan)을 러시아의 젠더문제를 연구해 온 서승현 교수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만났습니다.

 

 


🧶 서승현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 이리나 도브한 : 저는 SEMA 우크라이나의 대표이자 설립자인 이리나 도브한(Iryna Dovhan)입니다. 2014년 돈바스 전쟁 전까지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저는 거의 매일 검문소에 음식을 배달하며 우크라이나 군을 지원했습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 무장 세력에게 포로로 체포돼 고문과 학대를 겪다가 유럽 언론인들에 의해 구출됐습니다. 이후 저는 전시 성폭력 종식을 위한 피해자 및 생존자 네트워트 SEMA회원이 되었고, 군사 분쟁 지역에서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과 함께 2019년 SEMA 우크라이나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연결하고 돕기로 결단한 '버려진' 여성들 

🧶 서승현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피해 입은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에 참여하게 된 개인적인 동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 활동하면서 특히 어려웠던 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 이리나 도브한 : 저는 2014년 돈바스에서 러시아 용병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고, 고문과 폭력을 겪었습니다. 제가 당한 고문과 학대를 공개해 준 언론인 마우리시오 리마(Mauricio Lima)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저의 유일한 잘못은 우크라이나 군대에 식량을 배달한 것이었습니다. 2014년 당시 저는 점령군의 잔인함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천만다행으로 살아남은 뒤 조국이 저와 같은 국민을 위해 어떤 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사실과 대면해야 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우크라이나의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된 저는 아무 도움 없이 혼자서 감당하며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가까스로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게 된 저는 저와 같이 버려진 다른 여성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무퀘게 재단'(Mukwege Foundation)이 협력을 제안했을 때 우리는 결단했습니다. 그렇게 서로 연결하고 돕기 위해 'SEMA 우크라이나'가 탄생했습니다. 우리의 지원으로 피해자 모두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수준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고, 이는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특히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 가혹함을 마주하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새로운 희생자 한 명 한 명은 비극과 무너진 삶을 의미합니다. 

 

 


🧶 서승현 :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장기화되고 있지만 국제사회나 미디어에서는 정치·외교적인 이슈만이 부각돼 피해자들의 실제적인 피해 상황을 알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성폭력 문제를 포함해 전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여성 개개인이 경험하고 있는 피해 실태 전반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 이리나 도브한 :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11년간의 침략에 대해 밝히기 위해서는, 먼저 2014년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지역 일부가 점령되면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때부터 이미 러시아는 이 침략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 이 지역이 러시아 영토가 되는 것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성폭력을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당시 저항한 여성들도 꽤 많았습니다. 그들은 돈바스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시민들이었으며, 첫 번째 성폭력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체포돼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 지역이 여전히 점령 상태이기 때문에 체포된 여성 중 몇 명이 고문당하고 살해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아직 없습니다. 다만,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많은 증언이 나오고 있습니다. SEMA 우크라이나 회원들이 돈바스 점령지에서 최초로 성폭력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2020년 우크라이나 대검찰청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증언에 동의한 여성 11~12명의 증언을 수집했습니다. 이 증언은 공개되지 않았고 우크라이나 사회에서 이 주제가 제기된 적이 없습니다. 증언한 여성들은 분쟁 중 성폭력(CRSV. Conflict-related Sexual Violence) 생존자의 지위를 갖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고문을 당한 사람, 포로로 잡힌 사람, 재산을 잃은 사람, 부상을 당한 사람에게 지위를 부여해 왔지만 성폭력은 특수한 사례로 생각되어 항상 침묵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침공한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사회와 여성들에게 초래된 매우 비극적인 결과의 한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회는 러시아가 점령지 주민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전쟁 방법 중 하나로 '분쟁 중 성폭력'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우크라이나 여성 대다수가 점령 초기에 러시아 점령군에게 공개적으로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무지에 기반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점령은 물론,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땅에 온 것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이는 결국 여성들이 러시아 군에게 체포돼 감옥에 갇힌 채 성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 강조해야 할 점은 우크라이나 사회가, 특히 여성들이 러시아인들의 가혹한 성폭력 수준에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인간 생명의 가치, 신체의 불가침성과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러시아 점령군과 우크라이나 지역 주민의 사고방식의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컸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가정폭력 통계는 유럽의 평균적인 자료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여성은 항상 가족의 수호자로서 사회에서 존중받아왔습니다. 따라서 점령군의 잔인한 사고방식과 여성의 신체를 전리품으로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예상하지 못했고,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습니다. 제가 서술한 모든 것은 이 전쟁이 얼마나 규모가 크고 파괴적인지, 그리고 전쟁이 지속되는 하루하루가 우크라이나 여성들에게 어떤 심각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트라우마를 '외상 후 성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 서승현 : 현장에서 우크라이나 전시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심리적, 육체적 트라우마 등 실제적인 어려움들을 많이 보실 텐데, 현재 그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가장 심각한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 이리나 도브한 : 저희 단체가 독특한 이유는 온전히 전쟁과 관련된 성폭력을 겪은 여성들만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오랜 회복 기간을 경험한 여성 생존자들이 새로운 피해자들을 최선의 방법으로 돕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희는 트라우마를 극복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오늘도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SEMA 우크라이나의 활동 목표는 새로운 피해 여성이 트라우마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다른 그룹 회원들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합니다.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사회의 낙인(stigma)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달성할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강간에 따른 여러 상처를 즉시 해결하고 치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자매애를 바탕으로 한 지원과 트라우마를 극복한 다른 여성들의 사례를 통해 도움을 받습니다. 

피해를 입은 각 여성의 비극은 개별적이며, 이에 대한 보편적인 회복 방법은 없습니다. 매일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한 고된 작업이자 자신을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혼자 비극을 마주하는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필수적입니다. 주변에 자신을 지지해 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 말입니다. 이것이 SEMA 우크라이나의 중요한 업적입니다. 

그리고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 이야기되는 심각한 어려움은 무엇보다 '상실'입니다. 강간으로부터 아내를 지키려다 그녀가 보는 앞에서 점령자들의 총살로 남편을 잃어야 했던 가족의 상실, 포격으로 집을 잃은 삶의 기반의 상실 등입니다. 강간이라는 끔찍한 경험에서 살아남은 여성이 무너진 집, 모든 재산을 잃게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은 더더욱 비극입니다. 직접적인 상실 외에도 가족 구성원과 관계가 허물어지는 경우 등 어려움은 다양하게 발생합니다. 남편이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강간당하고 있는 아내를 지키지 않은 사례부터 강간을 목격한 자녀와 무너진 관계, 주변에서 어떻게 판단할 지에 대한 두려움, 강간 후 강간범에 의한 강도행위까지, 슬픈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 서승현 : 전쟁 중 성폭력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셨을 텐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례나 그분들과의 대화 또는 기억이 있을까요?

🧶 이리나 도브한 : 제가 맞닥뜨리거나 들었던 끔찍한 사례는 끝도 없이 많아요. 교사인 75세 여성은 러시아 군인한테 개머리판, 칼 등으로 심한 폭행을 당한 뒤 밤새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군인은 강간 사실을 말하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하고 그녀에게 유일하게 비싸고 가장 중요한 물건인 자전거를 훔쳐 타고 범죄 현장을 빠져나갔습니다.[1] 한 여성은 장기까지 손상되는 집단 강간을 당했고, 잔인하게 강간당한 후 C형 간염까지 감염된 70세 여성도 있었습니다. 또 러시아 정찰 부대의 한 지휘관은 17세 소녀에게 강제로 보드카를 마시게 한 후 강간했습니다. 아내를 강간하기 전에 남편의 복부를 총으로 쏴 부상을 입힌 사례 또한 너무나 슬픈 사례입니다. 러시아 군대는 어떤 도움도 제공하지 않았고, 부상당한 남편을 우크라이나 영토로 데려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강간을 당한 아내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남편과 이틀을 보내야 했습니다.[2] 

🧶 서승현 : SEMA 우크라이나는 여성들이 전쟁과 성폭력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떤 물질적,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있나요?

🧶 이리나 도브한 : SEMA 우크라이나는 피해 여성들을 위해 일부 의료 서비스와 장기적인 심리적 지원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후원 계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는 무퀘게 재단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가장 큰 기부금은 '미래를 위한 레오폴리스'(Leopolis for Future)와 '우나웨자 재단'(Unaweza Foundation)에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국제이주기구'(IOM.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와 협력해 새로운 피해자를 이곳 재활센터에 보내고 있습니다. 또 보조금으로 여성들에게 식료품을 살 수 있는 상품권과 위생용품 키트를 제공합니다. 심리적 도움을 제공하는 기관과도 협력해 모든 여성에게 무료로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프리부르에 있는 수녀원과도 협력하고 있는데, 재활을 돕기 위해 수녀들이 여성들을 수녀원으로 초대합니다. 피해 여성 중 몇몇은 이미 '글로벌 성폭력 생존자 기금'(GSF. Global Survivors Fund)에서 제공하는 임시 배상(interim reparation)을 받았습니다.

🧶 서승현 : 국제사회가 더 많은 공감과 관심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지원 기관과 현지 피해자들 간에, 혹은 피해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연대 활동에는 어떠한 것이 있나요?

🧶 이리나 도브한 : SEMA 우크라이나는 많은 글로벌 단체와 협력하고 있습니다. 회원들은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유럽 언론인들과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러 다큐멘터리에 증인으로 출연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무퀘게 재단의 지원 덕분에 다큐멘터리 영화 <흔적(Сліди)>이 제작되고 있는데, 현재 우리 단체의 한 회원이 촬영하고 있습니다. 성폭력의 결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는 이 영화에 담긴 진실이 국제사회의 무관심을 타파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저는 전시 성폭력 종식을 위한 피해자 및 생존자 글로벌 네트워크인 SEMA의 회원이기도 합니다. 이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나라(코소보, 케냐, 콩고민주공화국, 우간다, 콜롬비아 등)의 생존자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이 저에게 영감을 주고 SEMA 우크라이나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경험이 없었다면 SEMA 우크라이나는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입니다. SEMA 네트워크의 많은 회원들이 우크라이나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어 분쟁 관련 성폭력에 맞서 싸우도록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민족주의, 가부장제, 패권주의 그리고 연대의 간극

🧶 서승현 : 민족주의, 가부장제, 국가 간 패권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들을 배경으로 하는 전시 상황에서 항상 그렇듯이 폭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피해는 정당화되거나 간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 현재 피해 현장에서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 이리나 도브한 : 이 질문에 답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는 항상 평화로운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조국에 대한 사랑과 존중을 민족주의라고 부른다면 저도 민족주의자입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이면서 우크라이나를 사랑하는 SEMA 우크라이나의 모든 여성들 또한 민족주의자입니다. 저는 이와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를 접한 적이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가부장적인 국가가 아닙니다. 젠더 평등은 우리의 보편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일부 농촌 지역사회에는 실제로 낙인이 존재하기도 했었지만, 이 잔혹한 전쟁은 강간당한 여성에 대한 시골 지역사회의 태도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전쟁은 강간범이 적이라는 것을, 그들이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고 파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러시아인들은 성폭력을 파괴적인 무기로 사용해 우크라이나 여성의 신체를 전쟁터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시골 지역에서도 강간 피해자에 대해 낙인을 찍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역사회는 이들을 지지하고 공감하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또 국가 간 패권주의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는 것도 무척 어렵습니다. 이는 전쟁이 러시아의 일방적 침략이 아니라 단순히 두 당국 간의 외교적 관계에서 비롯된 것처럼 들리니까요. 하지만 실상은 다릅니다. 어리석고 잔인하며 무자비한 침략자인 러시아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파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십 개의 거주지역을 파괴하고 수천 명의 여성들과 아이들을 살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고 강간했습니다. 수백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서승현 :  우크라이나와 함께 전시 하 러시아 역시 내부적으로 여성들에 대한 '젠더폭력' 문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유지되어온 마초적인 남성에 대한 판타지, 가부장제적인 문화들이 전시 상황에서 폭력을 정당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사회 전반에 직접적인 전시 성폭력 피해를 포함해 또 다른 젠더폭력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여성 간 어떤 연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 이리나 도브한 : 이 질문에서 저를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단어는 연대입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살해하고 강간하도록 자신의 남편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러시아 여성과 제가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까요? 저는 2년 동안 러시아의 범죄를 기록하며 문서화하고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인터넷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의 범죄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55명의 SEMA 우크라이나의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중 누구도 화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비인간적인 존재들이 그들의 무기와 함께 우리 영토에서 사라지길 꿈꿉니다. 모든 러시아 여성들도 자국이 일으킨 전쟁의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날을 맞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들에 대한 공감의 여지는 없습니다. 저는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돕기 위해 힘을 아끼고 있습니다.

저는 전쟁이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의 차이를 더욱 명확히 드러냈다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는 가부장적인 러시아 사회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크라이나는 젠더 이슈와 관련해 큰 문제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 끔찍한 전쟁이 끝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합니다"

🧶 서승현 : 앞으로 전시 성폭력 피해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떤 문제가 가장 조속하게 해결되어야 할까요?

🧶 이리나 도브한 : 가장 큰 문제는 전쟁입니다. 이 끔찍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모든 국가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적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물러나기만 한다면 여성 폭력의 규모는 다시 전쟁 이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성폭력 문제는 '루스키 미르'(Русский мир)가 우크라이나에 가져올 새로운 규칙이 아니라 하나의 일탈로 끝날 것이기 때문입니다.[3]

🧶 서승현 :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한 연대의 목소리, 혹은 웹진 <결>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 이리나 도브한 : 저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모두가 평화로운 삶으로 돌아가기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우리나라에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침략자를 몰아내기 위해서요. 우리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각자가 경험한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신념을 위해서 말입니다. 평화와 행복을 위한 우리의 간절한 바람을 응원해 주세요.

 

 

 

각주

  1. ^ (편집자 주) [사진 3]의 현장이 바로 이 여성이 45년 동안 교사로 일했던 마을 학교이다. 지난 8월 경에 이리나와 SEMA 우크라이나 회원들은 모금 행사를 열어 이 여성에게 자전거를 선물했다고 한다.
  2. ^ (편집자 주) 이리나 도브한이 전한 피해 사례 중 지나치게 잔인한 내용은 웹진 <결> 편집 과정에서 재정리하였음을 밝힙니다.
  3. ^ 출처: 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6649644
글쓴이 이리나 도브한(Iryna Dovhan)

SEMA 우크라이나의 대표이자 설립자이자 전시 성폭력 종식을 위한 피해자 및 생존자 네트워트 SEMA회원이다. 2014년 돈바스 전쟁 당시 러시아에 포로로 잡혀 끌려갔다가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 영국 <선데이 타임즈>의 마크 프란체티(Mark Franchetti) 등 유럽 기자들과 언론의 노력으로 풀려난 후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한 여성들과 연합해 SEMA 우크라이나를 설립했다. 현재 러시아 군에 성폭력 피해를 입은 우크라이나 여성들을 지원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글쓴이 서승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서 러시아 젠더와 가족에 대해 공부하고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연세대에서 러시아 관련 과목을 강의하고 있으며, 학술연구교수로서 '민족주의시대 러시아 가족의 젠더 갈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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