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기림의 날 특집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하여 <2부>
(2)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하여_ 유일하고 대체불가능한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3)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하여_ 현재사(現在史)로서의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어야 할 뿐 아니라 기록물이 '세계적 중요성'이라는 기준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세계적 중요성'은 기록물이 가지는 '역사 서사'로, 다음과 같은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기록물이 가지는 시간성(Time), 장소(Place), 인간(개인)의 업적(People), 주제(Subject/Theme), 표본(Form and Style), 그리고 사회적·정신적·문화적 중요성(Social·Spiritual·Community Significance) 등 여섯 가지이다.
'시간성'의 조건은 인류 사회의 가치 변화 시기를 반영하는 것으로, 특별한 방법으로 그 시기를 반영하거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기록물이어야 한다. '장소' 조건은 일정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의 기록물이 세계사 또는 세계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 지역적 정보를 지닌 기록물이어야 한다. '인간의 업적'은 세계사 또는 세계 문화에 기여한 인물에 관련된 기록물이라는 조건을 충족해야 하고, '표본' 조건으로는 뛰어난 미적 양식을 보여주는 기록물이어야 한다. 이와 함께 이상의 조건을 충족한 기록물이 사회적·정신적·문화적으로 일정 기간 동안 세계의 특정 문화권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 기록물이어야 한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면서 기록물 자체가 진본이어야 하고, 희귀성을 지니면서, 세계에서 유일하며 대체불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록물이 소실되거나 훼손될 경우 인류의 기억과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한다고 판단되는 기록물이어야 등재 대상이 된다.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기록물의 범주가 결정된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왕조실록이나 훈민정음처럼 단일 국가의 자랑스런 역사적 기록물이 대상일 경우 단일한 하나의 기록물군이 대상이 되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같이 전쟁, 식민지 등 복합적인 요인이 중첩된 사건은 피해와 가해라는 입장에서 역사의 서사를 점유하려 하기 때문에 기록물의 범주가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는 단순히 정부 문건 등 문서 기록물만으로는 '완전한 역사'를 그려내지 못한다. 제국이나 권력자의 언어로 생산된 소위 '공문서'라고 불리는 문자적 사료 뿐 아니라, 피해자가 체현해 낸 '기억'이라는 비문자적 기록물이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200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 가이드라인을 개정해 문자와 비문자, 영상, 가상기록 등 디지털 자료까지 아울러 광범위한 기록 매체와 방법을 기록유산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범주를 넓혀 놓은 것도 세계의 사회적, 정치적 약자의 역사를 인류사회가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일본군'위안부' 역사가 가지는 '세계적 중요성'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일본군'위안부' 사건은 1931년 만주사변 전후부터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의 군인, 관료, 헌병 등이 직간접적으로 여성을 강제로 동원해 일본군 수용소 내부 또는 전장지 주변에 설치한 위안소에서 정신적, 신체적 노예 생활을 강요한 것으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엄청난 규모의 여성들이 회복하기 어려운 심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를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어진 사건으로만 인식했다면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에 머물렀을 것이다. 실제로 심각한 전시 중 강간과 성노예 문제임에도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그 진실이 널리 알려지고 논의되기 전까지 방치되어 왔다.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이 사건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이유는 국제사회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공개 증언과 함께 전시 성폭력 및 여성 인권에 대한 가치 변화, 여성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평화에 대한 인식 등 피해자와 세계 시민사회가 만들고 발전시킨 변화야말로 우리 인류사회의 궁극적인 지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1991년 한국의 피해자 김학순이 공개 증언을 한 이후 세계 여러 나라의 피해자들이 연이어 증언에 나섰고, 세계 시민은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해 시민운동을 전개해 갔다. 피해국 뿐 아니라 당사국인 일본 정부도 진상 규명 작업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증언을 통해 일본군에 의한 여성 강간이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파악했고, 인권 침해의 정도를 인정한 바 있다. 이 문제는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회의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서 중요한 주제였다. 궁극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전시 여성 폭력 문제는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에 반영되어 강간, 성노예, 강제 임신 및 강제 불임 수술 등을 처벌 가능한 전쟁 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는 데 기여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역사는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여성과 성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아시아의 오래된 문화를 흔들고, 나아가 여성 인권과 관련해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규범과 가치를 이끌어낸 역사가 되었다. 이는 곧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그 활동들을 기록한 기록물이 '세계적 중요도'라는 조건을 충족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성폭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에 공식석상에서는 터부시되거나,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가해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기록물을 은폐하거나 조직적으로 폐기할 위험성이 상존한다. 기록물이 소실되거나 훼손될 경우, 1990년대 이후 강화되어온 여성 인권 가치 등 인류의 기억과 유산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야 할 강력한 이유이다.
등재 위한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의 범위와 분류
한편으로 등재 신청 자료의 범주를 논의해 온 국제연대위원회는 현재까지 발굴되어 있는 모든 일본군'위안부' 기록을 신청 대상으로 하기로 했다. 이어 관련 자료를 보관하고 있는 각국의 국가기록원, 문서보관소, 박물관, 자료관 등 공공기관 소장 기록물 목록을 정리한 다음 다시 각국과 기관에 연락해 공동등재 의사를 확인하고, 허가를 구했다. 또 민간단체, 민간 설립 박물관 등에도 확인했고, 개인 소장 자료도 일일이 조사했다.
그 결과 영국의 왕립전쟁기념관이 공동등재를 받아들여 국제연대위원회와 함께 공동등재 기관이 되었다. 국제연대위원회 8개국과 미국, 호주, 영국의 문서보관소 등 총 20개소의 공공기관에서 등재 신청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민간 박물관 2개소와 개인 2명의 소장 자료도 등재 신청 허가를 받았다. 이렇게 하여 등재 신청한 기록물은 총 2,744건이었다.
국제연대위원회에서는 일본군'위안부'의 역사에 대한 정의를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난 시기부터 피해자들과 세계 시민의 인권 회복 운동까지로 명시했다. 이에 기반해 관련 기록물은 ① 일본군'위안부' 제도를 알 수 있는 공문서와 사문서, ② 피해자 생산 문서, ③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운동 기록 등 3가지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그 상세는 다음과 같다.
② 피해자 생산 문서는 1990년 이후 피해 증언, 목격자 증언, 치료 기록, 심리 치료를 위한 그림과 작품 등 피해자들이 생산한 문서와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기록물은 모두 1,449건이다.
③ 시민단체 운동 기록으로는 국제연대위원회에 포함되어 있는 14개 단체의 활동 기록 중 영향력이 컸던 대표적 운동을 중심으로 목록을 정리했다. 이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기록물은 총 732건이다.
2016년 국제연대위원회는 신청 자료 목록을 선별하기 위해 세계기록유산 및 기록학 전문가와 함께 제2차 회의를 개최했다. 이때 심도있게 논의한 부분은 피해자 증언의 '원본성'과 '진실성' 조건에 관한 문제였다. 즉, 한 피해자가 여러 번 증언한 경우 어떤 것을 원본으로 취급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피해자의 증언 안에서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경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서 말하는 '진실성' 조건을 어떻게 판단 혹은 심사할 것인가와 관련한 문제였다.
당시 참가했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서는 피해자가 같은 내용을 여러 번 증언하거나 조금씩 변화하면서 증언해도 그것은 하나하나가 별도의 기록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두 '원본'이라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 증언에서 역사적 사실과의 정합성은 역사 연구에서는 필요한 요건이지만, 세계기록유산에서는 피해자 '기억'을 담고 있는 기록 그 자체가 중요하기에 '진실성'을 가진 기록물로 보았다. 즉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증언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매체의 다양성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유일하고 대체불가능한 자료'라는 평가와 '정치화'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집행이사회가 국가 개입 강화 규정을 개정 가이드라인에 채택하기 전에는 국제연대위원회와 같이 여러 국가가 공동등재 신청을 할 경우 국가 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홈페이지에 직접 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었다. 유네스코 사무국에서 등재 신청서를 접수한 후 국제자문위원회((IAC. International Advisory Committee) 산하 심사소위원회(RSC. Register Subcommittee) 즉, 전문가 집단을 두어 접수된 신청서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조건에 부합하는지 심사하게 했다. IAC는 RSC의 결과를 참고해 심사한 다음 유네스코 사무총장에 등재 권고를 하고, 이를 사무총장이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2015년 5월, 국제연대위원회는 2,744건의 목록을 작성해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제목으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홈페이지에 등재 신청을 완료했다. 작성 과정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서에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규탄하는 내용을 기재해야 한다는 의견, 일본군'위안부'를 성노예로 표현해야 한다는 의견, 일본군'위안부' 피해 문제는 일종의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 혹은 대량 학살)'이고, 독일의 홀로코스트에 필적하는 사건이라는 의견 등이 제기됐다. 사업단은 전문가와 상의해 의견 중 일본 정부에 관한 내용은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어 신청서에 싣지 않기로 결정했고, 그 연장선상에서 '성노예'가 본질이지만 일본이 '정치화' 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성노예적 상태'라는 용어로 대치해 작성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과 미국의 모 단체가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동등재 형태로 만든 신청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을 접했다. 그리고 등재 심사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2017년 4월 17일 전문가 심사소위원회(RSC)에서 심사한 결과 '일본군'위안부'의 목소리' 기록물이 "유일하고 대체불가능한 기록물"로 평가했다고 알려왔다. 하지만 신청서 내에 일본군'위안부' 사건을 홀로코스트, 캄보디아 대량 학살과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전해왔다. 덧붙여 RSC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프로그램의 역할은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문서를 등록하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한 비교는 적절하지 않으니 해당 부분을 삭제하고 신청서를 다시 제출할 것을 권고했다. 이어 수정해 제출할 경우 IAC에 전달될 것이며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IAC가 2017년 9월 회의에서 수립한 조언에 따라 등록부에 등재할 새로운 항목에 대한 결정을 발표할 것"이라고 알려왔다.
국제연대위원회는 일본군'위안부'기록물이 등재된다면 굳이 신청서에 홀로코스트나 캄보디아 대량 학살과 비교해 기술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범죄성이 증명될 것이라 판단했다. 이에 따라 RSC가 권고한 대로 수정해 2017년 4월 23일 최종본을 제출했다.
당시 국제연대위원회는 이미 RSC가 일본군'위안부'기록물에 대해 "대체 불가능하고 독특하다"고 평가했기에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에 매우 희망적이었다. 한편으로 신청서를 제출한 일본 측 행보가 일본 정부의 적극적 관여 속에서 추진된 것임을 파악한 국제연대위원회는 일본 정부가 강력한 외교적 수단으로 유네스코 사무국을 겁박할 것을 예상해 최대한 원칙에 맞는 방법으로 유네스코 측의 의견을 수용하며 적극적으로 프로세스를 진행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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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영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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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영 (일본 오차노미즈여자대학 교수)
- 글쓴이 한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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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평화와역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역사 분쟁 및 역사 대화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일본군‘위안부’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사업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hanhi82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