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를 열다,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듣기의 모색

황미요조

  • 게시일2024.07.26
  • 최종수정일2024.08.13

<202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상영작 소개 2
귀를 열다, 더 잘 기억하기 위한 듣기의 모색

 

[사진 1]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포스터 ⓒ이사각

 

상영 기간 : 8월 21일(수) ~ 8월 27일(화)

상영작
🎬 가이산시와 그 자매들 | 중국 | 반중이 | 2007년
🎬 그리고 싶은 것 | 한국 | 권효 | 2012년
🎬 22 | 중국, 한국 | 궈커 | 2015년

🧶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은 ‘2024 기림의 날’을 기념하는 온라인 영화제를 개최한다. 2024년 8월 14일부터 8월 27일까지 퍼플레이 온라인 극장에서 함께할 수 있는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는 ‘입을 떼다’, ‘귀를 열다’ 두 개의 주제로 나누어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결을 포착해 담아낸 국내외 영화를 소개한다.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을 비롯해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작품도 여럿 포함돼 있다.
웹진 <결>은 영화제 관련 소식과 함께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 컨텐츠를 4회에 걸쳐 게재한다.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가능했던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 앞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하는가. <2024 기림의 날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에서 마련한 두 번째 섹션 ‘귀를 열다’의 상영작들은 생존자들이 남겨 놓은 수많은 지도와 흔적을 다시 방문하며 저마다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려낸 맥락의 풍경화, 혹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곤란함에 관한 고백들이다.

1990년대 최초의 일본군‘위안부’ 증언 이후 많은 다큐멘터리가 피해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접근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이 증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현하고 기록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집중한다. ‘귀를 열다’ 섹션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잘 보여주는 영화 세 편을 상영한다. 

 

 

1.<가이산시와 그 자매들>(2007)
기억으로 재구성하기, 재구성해서 더 오래 기억하기

[사진 2]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 가이산시와 그 자매들 ⓒ이사각

 

1992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의 전후 보상에 관한 국제 공청회’는 남한, 북한, 중국, 필리핀, 대만, 네덜란드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이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는 한편, 일본 국내외의 대책위원회들이 함께 모여 이 역사적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국제적 연대의 순간이었다. 

중국인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로, 반중이 감독의 <가이산시와 그 자매들>의 주인공인 허우둥어(侯冬娥) 역시 애초 국제 공청회에 참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건강 문제로 참가를 포기하게 된다. 중일전쟁이 전개되는 가운데 전선의 확장은 일본의 병참능력의 부족함을 증명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외딴 곳까지 파견된 부대의 경우에는 그 부족한 병참지원을 현지에서 조달해나갔다. ‘위안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넓은 전선 속에서 민간여성 납치와 성폭행은 ‘위안소’라는 제도를 핑계 삼아 구조화되었다. 

이러한 역사를 겪고 생존한 허우둥어를 만나서 기록으로 남기려고 했던 감독의 기획은 그의 죽음으로 좌절된다. 대신 반중이 감독은 약 10년 동안 산시성을 방문하며 허우둥어의 주변인을 만나 그의 삶을 재구성하려 한다. 역사는 남았으나 인터뷰 대상이 사라지고 만 자리에서 출발하는 이 영화는 같은 시기 피해 당사자였던 다른 중국인 일본군‘위안부’의 인터뷰, 당시 일본군 부대원의 회상, 그리고 허우둥어를 거치며 살아온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담아낸다. 

오랜 시간에 걸친 성실한 자료 수집과 인터뷰를 통해 감독은 관객에게 가이산시는 물론, 그와 비슷한 피해를 겪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인 피해자들이 겪은 일종의 트라우마 지도를 보여준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트라우마적 사건 이후 이 ‘피해자/생존자’들의 삶이 어느 정도로 피폐해졌는지를 국가 내, 국가 간 담론의 용인과 태만의 연대기를 통해 잘 보여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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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그리고 싶은 것> (2012)
재현의 대상과 주체 사이 지도 그리기

[사진 3]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 그리고 싶은 것 ⓒ이사각

 

<그리고 싶은 것>은 평화를 주제로 한·중·일 작가들이 공동 작업한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의 권윤덕 작가와 일본군‘위안부’ 생존자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영화는 권윤덕 작가가 심달연 할머니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드는 과정을 기록하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예술가의 창작기에 머물 수도 있었던 이 프로젝트는 일본 출판사의 수정 요구와 출판 불가 위기로 상황과 방향이 급변한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쇼와 일왕의 얼굴, 황군에 대한 묘사, ‘위안부’라는 소재 자체를 문제삼은 출판사의 수정 요구가 제기되는 초반에는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는 작가와 대립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그러다 영화는 중반부터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폭력을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젠더폭력으로 묘사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에 집중한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책이 반일 감정을 강화하는 도구가 되길 원치 않으며, 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며 표현의 어려움을 느낀다. 남성 동료 작가들은 권윤덕 작가의 방향과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위안부’ 이야기를 그리면서 어떻게 일본이 중심이 아닐 수 있냐”고 묻는다. 권윤덕 작가는 할머니와 자신의 관계를 ‘한국인’이 아닌 ‘여성’으로 전환하려 하지만 예상했던 것과 달리 표현의 어려움을 겪는다.

이러한 여러 층위의 갈등 속에서 영화의 촬영 방식도 바뀐다. 초반에는 권윤덕 작가를 중심에 두거나 얼굴, 손 부위에 집중하는 익스트림 클로즈업, 단독 바스트 샷 위주로 구성되었으나, 작가의 고민이 깊어지는 순간부터 카메라는 뒤로 물러서 작가가 말할 때 다른 이들이 의견을 청취하는 모습을 담는다. 작가의 말을 들으며 곤란해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띄는 동료 작가들을 길게 보여주고, 작가를 다른 사람들 속에 같은 프레임으로 넣어 거리를 넓힌다. 이러한 촬영 방식의 전환은 작가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싶은 것>은 전쟁 문제에 접근하면서 작가의 위치를 ‘여성’으로 놓을 때 발생하는 갈등 지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영화는 이러한 갈등이나 고민을 격화시키는 방식보다, 드러내지만 동시에 감추며 온건하게 보이는 방식을 택하는데, 이같은 영화의 접근법은 무엇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오히려 우리가 놓여 있는 사회적 타자나 소수자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인식의 한계 범위를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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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2015)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과 봉인된 시간

[사진 4]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 22 ⓒ이사각

 

2013년 궈커 감독은 <32>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발표했다. 40여 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1944년 일본군 부대에 연행되어 성노예로 살다가 기적적으로 탈출한 웨이 샤오란과 당시 임신해서 낳은 일본 혼혈 아들의 현재의 삶과 소회를 보여준다. 영화는 매일 크게 다를 것 없이 흘러가는 모자의 일상을 정적인 카메라 워크로 담고, 이어 웨이 샤오란만이 프레임의 중심에 등장하는 회상 장면으로 이어가면서 70년의 세월을 따라 노년에 다다랐을 뿐, 피해 생존자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일종의 동결, 유예된 시간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학적, 서사적 결정은 <32>에 이어 서둘러 제작한 <22>에서도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더 많은 지역을 찾아가 카메라로 담지만 중국에 거주하고 있던 이들 22명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삶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을 담은 쇼트에 이어, 어떤 사죄나 피해 회복의 가능성도 부정당한 채, 봉인된 듯한 7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선 이들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생존자의 주름 가득한 얼굴에서 관객들은 봉인되고 유예된 세월의 무게를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지만, 한편으로 그 유예된 세월과 역사는 아직 해원에 이르지 못했음도 깨닫게 된다.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 반복된 시간의 쓸쓸함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 상영되기도 했던 영화 <22>는 아직은 증언과 인터뷰에 기댈 수 있는 피해 생존자들의 마지막 기록이다. 궈커 감독은 관찰자의 시선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동결된 시간과 유예의 영원함을 관객에게 전한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등장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들은 이전 세대의 다큐멘터리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이들은 단순히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증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까지 담아내고 있다. 증언 이후의 과정, 예술적 재현, 국가적 혹은 국제적 인식의 변화를 탐구하며,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이 영화들을 보는 경험이 그 속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의 복잡성과 재현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하고, 증언 이후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과 고민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웹진 <결> 온라인 영화제 영화 보러 가기

글쓴이 황미요조

영화 연구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강사, 서울동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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