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 전시를 둘러보기 위해 5월의 따뜻한 햇살이 나무들을 비추는 아름다운 창원대학교를 방문했다. 작년 가을 준비가 한창일 때 방문하고 나서 두 번째임에도 그리워지는 장소다. 나는 남편인 도시오(俊雄)와 함께 ‘전후 책임을 묻는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에서 1992년 발족 준비부터 2013년 해산될 때까지 사무국을 담당했다. 이번에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 전시를 준비하신 선생님들과 대학원생들, 박물관 분들을 만나 뵙고 싶었다.
2018년 영화 〈허스토리〉(민규동 감독)를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영화에 그려진 것은 증오로 가득 찬 일본 사회 속에서 고립된 채 싸우는 원고단의 모습이었고, 동원 과정이나 피해 실태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고의로 혼동시켜 관부재판의 원고를 전원 ‘위안부’ 피해자로 묘사하고 있었다(관부재판의 원고는 10명으로, 그중 3명이 전 ‘위안부’, 7명이 근로정신대다). 전후 줄곧 이러한 혼동으로 고통받으며 30년 가까이 자신들이 입은 피해를 한일 양국에 호소해온 근로정신대 분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입 다물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의 지원자들과 원고 피해자들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함께 존엄을 회복해 가며 성장해 나간 이 운동의 핵심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에 실망했다. 아울러 ‘위안부’ 원고가 승소한 1심 시모노세키(下関) 판결의 경우, 원고단과 변호인단의 호소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 재판관들의 용기와 성의가 이 판결을 쓰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정신대 피해자들의 호소는 닿지 못했다. 이 기쁨의 실현과 실의의 낙차가 관부재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라고 명기하면서 이러한 관부재판의 특징과 의의를 왜곡해 알맹이를 쏙 빼 버린 이 영화가 한국의 다음 세대들에게 사실로 기억되는 것은 견딜 수 없었다. 때문에 더더욱 관부재판을 진지하게 다뤄준 이번 창원대학교 전시회가 기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김문숙 이사장님이 남기신 방대한 자료를 앞에 두고 전시 방향성에 대해 논의하는 내용을 들었던 만큼, 어떤 전시가 되어 있을지 몹시 기대되었다.
그리고 전시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이 심사숙고하고 논의한 흔적들이 곳곳의 짧은 코멘트에 드러나 있었다. 또한 원고 피해자들, 김문숙 이사장님, 우리가 등신대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었고, 어떠한 과장도 없다는 점에 감동받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강제노동 문제를 다루면서도 무겁지도 어둡지도 않았고, 그로 인해 무언가 느끼도록 강요하는 분위기도 없이, 조용히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공간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많은 노력과 정성을 들여 이 전시회를 실현해 주신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일제강점기 침략전쟁의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에 와서 재판을 벌인다. 우리는 그런 그들을 일본인이 돕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별로 깊이 생각할 여유도 없는 상태에서 지원운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잠재의식 속에는 우리가 아버지 세대의 범죄 피해자들을 만나 함께 투쟁함으로써 부모 세대의 가해 책임을 조금이나마 갚으려 하지 않았나 싶다. 김문숙 이사장님의 용기와 행동력 덕분에 그런 기적적인 만남이 가능했다.
관부재판을 지원하며 우리가 마음먹은 것은 원고인 피해자들을 일본 사회의 품 안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었다. 전후의 일본을 모른 채 50년가량 세월이 흐른 뒤 일본을 찾은 분들에게는 ‘일본’이 당연히 두렵게 느껴질 것이고, 그런 분들을 호텔에 묵게 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우리 집에 모시기로 했다. 동행인이었던 남편 도시오는 정성껏 식사를 준비했고, 나는 가능한 한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긴장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재판에서 함께 싸우며 희로애락을 같이 느끼는 시간 속에서 그들의 영혼이 해방되어 가는 궤적을 목도하며 그들을 향한 경애심이 깊어진 것 같다. 그것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다.
이번 창원 방문에서 일본군‘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마창진 시민모임 측으로부터 ‘어떤 운동을 하려 하느냐?’는 질문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1990년대 일본과 비교해 현재 일본은 사회 분위기가 보수적으로 변했고, 아베 정권을 계승한 현 정부와 일본 언론의 식민지 피해자들과 군에 의한 조직적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싸늘한 시선 속에서, ‘해결’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 질문은 아주 뼈아픈 것이었다.
영화 〈허스토리〉 제작자에게 항의문을 쓰고, 항의문만으로는 모를 테니 관부재판에 관한 책을 쓰라는 조언을 얻어 『관부재판』(도토리숲, 2021. 일본어판 『関釜裁判がめざしたもの』)을 한국과 일본에서 출판했으니, 그것으로 내 몫은 다했다고 여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새로운 ‘전전(戰前)’이라고도 불리는 현재, 세계 각지에 전쟁이 발발해 전쟁 피해자가 늘어나고 성폭력이 빈발하고 있다. 나라 위치를 바꿀 수도 없는 이웃인 일본과 한국 시민들은 정치적으로는 어렵더라도 시민 차원의 신뢰와 우호를 쌓으면서 평화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부재판 원고들의 일이나 그들과 함께 투쟁한 우리들을 잊지 않고, 잊히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그들이 준 선물이며 숙제다.
창원대학교에서 학생, 대학원생, 연구자, 시민운동가들로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받으면서 관부재판을 축으로 한일 시민교류가 더 활발해질 것을 기대했다. 또한 이번에 일본에서 관부재판이나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신진 연구자와의 동행을 통해 한일 연구자간 교류도 한층 깊어질 것을 예감했다.
한일 시민에 의한 기억과 기록 네트워크 확대에 앞으로도 참여하고 싶다.
- 글쓴이 하나후사 에미코(花房恵美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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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출생. 1992년부터 ‘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사무국을 담당했다. 1998년 시모노세키 판결 뒤 ‘위안부’ 문제 사죄배상법 입법화 운동을 병행했다. 2003년 관부재판 대법원 패소 이후 입법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제2차 아베 정권의 탄생으로 인해 단념하고, 이후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후쿠오카 네트워크’ 총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