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문숙(1927-2021)의 생애와 관부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가 개관했다. 이번 전시는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설립한 부산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2004-2023)이 폐관하면서, 경상도 지역 일본군‘위안부’ 문제 민간기록물 조사정리 연구사업과 함께 이루어졌다. 5톤 트럭 2대 분량의 방대한 소장 자료가 뜻깊은 전시로 탄생하기까지는 이 연구팀에 참여한 세 명의 대학원생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존재했다. ‘연구보조원’이나 ‘조교’라는 이름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삶과 연구자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대학원생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씨를 청년좌담에서 만나 보았다.
-좌담 일시: 2023년 5월 4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 이헌미, 황진경, 정나라
-대담: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정리: 퍼플레이컴퍼니
-사진: 오늘의 나
‘앞으로’를 바라보며
Q. 민경택 씨는 노동/청년/인권 관련 연구사업에 다수 참여해 오셨는데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원래 가지고 계셨는지요. 그리고 2월 전시 개관기념 학술대회에서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본 고대 한일관계의 태동”을 발표 주제로 잡은 데에는, 대한해협을 바라보고 있는 창원의 비평지리적 위치성도 한몫했을까요?
민경택
제 고향이 창원이기에 노동/청년/인권에 더 강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창원이 제조업 중심의 도시이다 보니 많은 사고 소식을 지역 뉴스로 접하게 됩니다. 지역 청년으로 살다 보면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데 성인이 되고 나면 친구들이 없어요. 모두 서울로 가버렸기 때문이죠. 그런데 수도권으로 가서 잘 지내는 게 아니라 대부분 힘들어해요.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려오라고 하면 거길 왜 다시 가냐고 합니다. 이를 통해 지역에 대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됐고, 이 부분에 대해 공부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대한해협을 중심으로 본 고대 한일관계의 태동”이란 주제를 잡은 것은, 고대에 관한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 다양한 해석이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과는 신석기 시대부터 교류의 흔적이 확인되고 지리적으로도 가깝죠. 관부재판이 전시의 주제였던 터라 고대에는 부산과 시모노세키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삼국사기에서 일본 관련 글이 등장하는 연대를 정리해보니 여름을 중심으로 교류했더라고요. 여름에는 쿠로시오 해류가 강해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는 해양 루트가 열렸거든요. 그래서 더 면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일본의 토기도 한반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고대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서 관부재판을 바라볼 땐 민족적인 관점보다는 연대가 부각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족적인 감정을 빼고 바라보기 위해 한국이나 일본이라는 개념보다는 그 사이에 놓여있는 대한해협을 봤습니다.
Q. 김효영 씨는 관심분야가 정체성/젠더/네트워크/지역이라고 하셨는데요. 지난 2월의 전시 개관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하신 논문(“김문숙과 부산 <여성의 전화>: 여성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부산 여성의 전화 상담”) 내용을 지역 여성 운동사 연구 필요성이라는 관점에서 나눠 주실 수 있으신지요.
김효영
논문을 쓰기 위해 김문숙 이사장님에 대해 알아보려 했지만 제대로 된 자료가 많지 않았어요. 인터넷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건 영화 〈허스토리〉 말고는 거의 전무했고, 이사장님과 관련된 연혁도 제각기였습니다. 논문에는 제대로 나와 있겠지 싶어 찾아봤지만 관련 논문이 없을뿐더러 지역 여성사에 관한 논문 자체가 굉장히 적었습니다. 이게 왜 기록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은 활동이 정말 많아요. 서울에서의 반성폭력 의제 관련 운동이 지역에서는 다른 형태로 일어났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지역 여성 운동사에 관한 연구를 보면서 지역마다 분절된 여성 운동사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Q. 장찬영 씨는 정체성/기억 및 트라우마, 재현의 정치에 관심이 있으시다고요. 발표논문 “영화 ‘허스토리’의 재현: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내러티브의 경합”의 문제의식을 나눠주실 수 있으신지요. 그리고 논문을 준비하시면서 〈전후책임을 묻는다‧관부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무국장 하나후사 도시오 님과 〈위안부 문제에 대처하는 후쿠오카 네트워크〉 총무 하나후사 에미코 님 인터뷰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떠셨는지 후일담을 듣고 싶습니다.
장찬영
영화를 보고 논문을 쓰면서 관부재판에 대해 알게 됐고, 그러면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당사자에게 물어보자는 생각으로 하나후사 부부의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두 분께서 속 시원하게 이야기해주셔서 많은 부분이 해결됐던 것 같습니다. 논문의 주된 내용은 영화가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담고 있는가에 대해 풀어내는 것이었습니다. 논문을 쓰고 발표까지 끝내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재현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성폭력 피해의 상징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은 피해자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인가.’ 소녀상은 할머니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한데, 할머니들은 이 소녀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 우리는 이 재현을 통해 무엇을 기억하고 또 어떤 담론을 만들어내고 싶은 것인가. 이러한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서 ‘왜 영화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 것일까’를 고민했습니다.
Q. 이번 좌담에 여러분을 모신 이유는 전시에 참여하셨다는 이력도 중요했지만, 대학원생이라는 위치도 큰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각자 대학원 진학의 계기와 하루 일과를 귀띔해주실 수 있을지요. 또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는 것의 고통과 기쁨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장찬영
뭐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성격이라 오늘도 좌담 끝난 후에 밥 먹고 운동하러 갈 것 같아요. 평균적인 일상을 말씀드리면, 최근에는 하루 종일 책 보고 논문을 쓰고 있어요. 공부를 계속하는 이유는 아는 만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그랬고 그것 이외에도 ‘왜’를 던지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을 찾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죠. 알아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공부를 통해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그것에 대해 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죠.
김효영
저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홈스쿨링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시위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시위하러 나가면 어른들밖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또래 친구를 만나보고 싶다. 대학에 가면 친구를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대학 진학을 마음먹었습니다. 그때 일본군‘위안부’ 청년 교류 국제 프로그램에서 찬영 씨를 만나게 됐고, 학교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찬영 씨가 자신이 다니던 창원대 국제관계학과를 추천해줬어요. 그렇게 창원대에 오게 됐는데 공부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살아왔던 경험을 국제관계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구나, 내가 갔던 나라가 이렇게 생겼구나’ 싶어서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습니다. 재미있다 보니 더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까지 오게 됐어요. 요즘에는 졸업논문을 쓰고 있고, 논문을 위한 인터뷰를 준비 중입니다.
민경택
경남학이라는 큰 틀에서 내 고향을 한번 공부해보자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하루 일과는, 보통 일어나면 씻고 학교 와서 도서관에 갑니다. 요즘에는 논문을 쓰다가 막히면 나가서 걷곤 하는데 하루에 3~4시간씩 산책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하루가 갑니다.
Q.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와 1세대 활동가분들이 세상을 떠나고 계십니다. 학문 후속 세대, 신진 연구자로서 앞으로 지역에서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연구와 활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요?
김효영
지금 지역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아직 계시기 때문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문숙 이사장님이 주도했던 지역 운동사에 직접 참여했던 활동가분들과 교류하며 운동사를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찬영
저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기억을 전달받은 사람들이고, 그 경험을 직접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달받은 기억만으로 그분들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기에, 기억을 토대로 하되 이분들에 대한 폭넓은 이해,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해요. 다양한 방식과 분야, 학제들 속에서 문제를 너무 거시적으로 또는 1차원적으로만 보지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바라보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관부재판처럼 시민연대를 통해 문제 해결이 이뤄질 수도 있는 만큼 다양한 방법과 시도를 통해 문제에 접근하는 연구와 활동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민경택
구술채록 작업을 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할머니들께서 좋아하셨던 노래, 음식, 혹은 그분들의 일상이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했던 건 지역 활동가들이죠. 그래서 그분들의 구술채록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시는 상황에서 활동가분들의 기억이나 활동이 그려낼 수 있는 할머니들의 삶의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궁금해요.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시민들 간의 소통, 이해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부재판이란 좋은 사례가 있듯이 그런 식의 활동이나 연구가 이뤄지면 해결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향후 연구하고 싶은 주제와 졸업 이후 진로 계획을 묻고 싶습니다.
김효영
옛날에는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확신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도 단언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계속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제가 계속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지역, 정체성, 젠더, 네트워크인데 그게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싶습니다.
장찬영
기억, 재현, 트라우마에 대해 더 깊게 연구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제가 많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상태로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게 맞나 고민됩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되고요. 공부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여러 가지로 고민이 돼서 추후 계획은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민경택
연구를 하게 된다면 주제는 비화가야로 확정할 것 같습니다. 졸업 이후 진로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학위논문을 쓰다 보니 졸업 이후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졸업 이후에 뭘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지금은 논문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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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김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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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석사 수료생. 지역, 정체성, 젠더, 네트워크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하게 사랑을 사유하고, 대화를 통해 형태를 갖춰가고 싶다.
- 글쓴이 민경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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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학교 사학과 석사 수료생(가야사). 경상도 지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관련 구술채록(민간기록물 조사·수집 사업),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 전시, 일본군‘위안부’ 연구와 지역성 연구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다.
- 글쓴이 장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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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석사 수료생. 주로 기억, 재현, 망각의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 연구조교이자, ‘시각의 정치: 생명, 차이, 기억’ 연구팀,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 - 경상도 지역’의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며 공부하고 있다.
-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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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ial Team of Webzine <Kye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