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 일본군‘위안부’ 풀뿌리 운동사의 흔적을 매만지며 〈2부〉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23.05.29
  • 최종수정일2023.06.12

지난 2월 15일,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문숙(1927-2021)의 생애와 관부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 〈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가 개관했다. 이번 전시는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설립한 부산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2004-2023)이 폐관하면서, 경상도 지역 일본군‘위안부’ 문제 민간기록물 조사정리 연구사업과 함께 이루어졌다. 5톤 트럭 2대 분량의 방대한 소장 자료가 뜻깊은 전시로 탄생하기까지는 이 연구팀에 참여한 세 명의 대학원생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존재했다. ‘연구보조원’이나 ‘조교’라는 이름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삶과 연구자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대학원생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씨를 청년좌담에서 만나 보았다. 

-좌담 일시: 2023년 5월 4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 이헌미, 황진경, 정나라
-대담: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정리: 퍼플레이컴퍼니
-사진: 오늘의 나

 

고(故) 김문숙을 만나다

Q. 여러분이 참여한 작업이 전시로 구현됐을 때의 소감은 어떠했나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남겨진 고민이 있으신가요?

장찬영

김문숙 이사장님의 책상을 재현하기 위해 효영 씨와 노력했던 게 떠올라요. 역사관에 ‘작은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있었는데, 이사장님께서 학생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두신 곳이었어요. 그 공간과 사무실에 있던 책까지 모두 박물관으로 가지고 왔는데도 전시 공간이 다 채워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상자를 계속 가져와 그 안의 책들로 공간을 꾸몄죠. 그러다 보니 전시관 한가운데에 상자가 산더미처럼 쌓였어요. 신동규 교수님이 그걸 보고 “이 많은 걸 너희 둘이서 다 한 거야?”라고 물어보셨는데 교수님도 책이 그만큼이나 필요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하셨던 것 같아요. 준비 과정에서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웃음) 이사장님의 신문 스크랩을 모아둔 상자를 보면서 개인으로서 정말 대단한 업적을 남기셨다는 걸 깨달았고요.

김문숙 이사장의 스크랩 전시(왼쪽)와 생전 사용했던 책상 및 책장을 재현한 모습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김효영

전시에 쓰인 영상도 저희가 대부분 작업했는데 전시 당일까지 “이 장면은 빼는 게 좋겠다, 넣는 게 좋겠다”라는 식으로 의견이 달랐어요. 그래서 오픈 10분 전에 급하게 장면을 빼고 틀었던 게 기억납니다. ‘나 때문에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에 떨리기도 했고, 국제관계학을 공부하면서는 절대 해볼 수 없는 경험을 했어요. (웃음)

민경택

자료 정리하면서 봉투가 하나 있기에 보니까 이사장님이 친구분에게 쓰신 편지였어요. ‘아, 애국하기 너무 힘들다. 지친다. 쉬고 싶다. 근데 결국은 해야 한다.’ 이러한 글을 친구분들과 주고받은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애국이란 단어가 신기하기도 했고, 이사장님의 약한 모습을 보니 인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장찬영

자료를 옮기고 전시가 완성되는 순간까지 매 순간이 에피소드였어요.

(왼쪽부터) 민경택, 김효영, 장찬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전시 영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Q. 창원에서 부산의 역사관까지 오가며 쉴 새 없이 일하면서도 모두 싫은 내색 없이 열심히 했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김효영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자료를 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작업을 시작하면 집중해서 잘 정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났습니다. 경택 씨가 아무런 불평불만 없이 모든 일에 참여했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 없이 하면 됩니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민경택

역사관에서 자료들을 정리하며 옮기는 과정에서 ‘이분은 뭘 위해 이렇게까지 하셨을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았어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 또한 그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연세가 아흔이 넘으신 후에도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었을까,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신 건가, 이렇게까지 집중하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해방 이후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던 분들을 어떻게 대했는가, 지역사회는 그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었는지 묻게 되었죠.

장찬영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 알고 싶다는 욕망이었습니다. 역사관에 처음 갔을 땐 관부재판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나 근로정신대 문제가 어떻게 연관되는지 몰랐죠. 그런데 이 작업을 하면서 김문숙 이사장님이 이 공간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묻고, 사진 하나조차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김효영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이사장님의 운동사의 일부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듯 이사장님은 호주제부터 시작해 모든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가지셨어요. 실제로 일본에서 성폭력 예방 수업을 듣고 강사 수료증을 받고, 국제연대대회에도 참여하셨죠. 여성 운동사를 직접 겪고 만들어나가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좌담 전경.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정나라, 황진경, 이헌미, 민경택, 김효영, 장찬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Q. 이 연구 사업에 여러 이유로 참여하게 되셨는데, 참여 전과 후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것을 느끼시나요? 

김효영

이전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나와는 관련 없는 문제로 여겼는데 이제는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정돈할 수 있게 됐어요. 이 문제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내가 도움이 될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이번 작업 이후 이 운동이 수많은 분들의 활동과 노력, 연대를 통해 이뤄졌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또 피해자분들이 계속해서 증명하는 과정을 통해 인정과 관심을 받게 된 걸 보며 이 문제가 나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를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민경택

이전에는 ‘위안부’ 운동이라 하면 수요집회, 나눔의 집 행사 등을 중심으로 생각했는데,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구술사를 들으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1세대 활동가분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남들과 다름없이 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던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 노력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 변화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성폭력 문제와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인식 변화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장찬영

첫 번째로는, 이야기되지 않은 기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커다란 주류담론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정말 많아요. 저 역시 관부재판을 알지 못했고 교육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예요. 일본군‘위안부’라는 문제 안에는 수백 가지의 이야기가 있고,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기억이기에 문제의 핵심 안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할머니라는 호칭이 국제적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고유 명사(Granma 또는 Halmoni)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역사관에서 가져온 자료에는 피해자분들의 사진도 있었는데, 그 사진들을 보면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많았어요. 웃고 계시거나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피해자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깨졌습니다. 힘든 경험을 하셨지만 이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그냥 ‘할머니’로 보이는 것이었겠구나, 그렇기에 우리가 이분들을 할머니로 부르는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걸 가장 잘 이해해주신 게 김문숙 이사장님과 한일 시민단체였고요. ‘위안부’ 문제의 해결방안이 무엇이냐 물으면 거창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국가 차원에서의 중재와 일본의 사죄도 물론 중요하지만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시민들끼리 연대하고, 할머니들을 제대로 바라보고 피해를 이해하는 것 또한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왼쪽부터) 김효영, 장찬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Q. 세 분은 논문을 준비 중인 대학원생이시죠. 지난 1년 동안 이 사업의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하면서 굉장히 바쁘셨을 것 같습니다. 문제의식이 벼려지는 건 좋지만 시간이 부족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 일이 현재 공부하고 계신 것과는 어떤 접점이 있나요? 

장찬영

기억과 기억의 재현, 이것이 가져오는 효과를 주제로 삼아 졸업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폭력, 트라우마가 왜 우리 민족의 기억 안에 존재하고, 이것이 한일관계나 ‘위안부’ 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그리고 ‘위안부’ 문제 안에서 우리가 가진 기억의 재현이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결과를 낳게 될 수 있는지 쓰고 있습니다.

김효영

 ‘위안부’ 문제를 공부하며 거대 담론과 실천 사이의 괴리를 목격할 수 있었고, 실천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주체들의 실천 의지가 나중에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것을 제 졸업논문에도 적용시켜 실천들의 연결고리, 접점, 접속의 지점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민경택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민경택

고대사를 전공으로 삼고 있어 이 프로젝트와 제 학위논문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습니다. 다만, 삼한 시대에 있었던 변진한에 24개 정도 되는 나라가 영남지역에 분포돼있었고, 지금의 시군 분포와 유사할 거라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가장 많은 곳이 경상도이고, 제 학문적 관심사가 지역이다 보니 피해자분들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역, 공간에 대한 궁금증도 있습니다. 피해자들의 삶 전체가 궁금하고, ‘위안부’로 끌려가기 전에는 어떤 유소년기를 보냈는지 알고 싶어요. 그것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분들이 살았던 지역의 산과 강, 농산물, 풍속, 민속, 축제 등도 유효한 정보가 됩니다. 그것들이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그분들의 삶이 어떤 사회적,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뤄졌는지 알고 싶습니다.

  • 전시관 내부7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8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9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0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1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2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3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7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8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9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0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1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2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 전시관 내부13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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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효영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석사 수료생. 지역, 정체성, 젠더, 네트워크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하게 사랑을 사유하고, 대화를 통해 형태를 갖춰가고 싶다. 

글쓴이 민경택

창원대학교 사학과 석사 수료생(가야사). 경상도 지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관련 구술채록(민간기록물 조사·수집 사업),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 전시, 일본군‘위안부’ 연구와 지역성 연구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다.

 

글쓴이 장찬영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석사 수료생. 주로 기억, 재현, 망각의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 연구조교이자, ‘시각의 정치: 생명, 차이, 기억’ 연구팀,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 - 경상도 지역’의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며 공부하고 있다.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ditorial Team of Webzine <Ky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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