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땀, 눈물: 일본군‘위안부’ 풀뿌리 운동사의 흔적을 매만지며 〈1부〉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23.05.22
  • 최종수정일2023.08.02

지난 2월 15일, 창원대학교박물관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문숙(1927-2021)의 생애와 관부재판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전시 〈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가 개관했다. 이번 전시는 김문숙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이사장이 설립한 부산의 ‘민족과 여성 역사관’(2004-2023)이 폐관하면서, 경상도 지역 일본군‘위안부’ 문제 민간기록물 조사정리 연구사업과 함께 이루어졌다. 5톤 트럭 2대 분량의 방대한 소장 자료가 뜻깊은 전시로 탄생하기까지는 이 연구팀에 참여한 세 명의 대학원생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존재했다. ‘연구보조원’이나 ‘조교’라는 이름으로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자신의 삶과 연구자 정체성을 고민하는 대한민국의 대학원생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씨를 청년좌담에서 만나 보았다. 

-좌담 일시: 2023년 5월 4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학술기획팀 이헌미, 황진경, 정나라
-대담: 김효영, 민경택, 장찬영
-정리: 퍼플레이컴퍼니
-사진: 오늘의 나

 

좌담 전경.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민경택, 김효영, 장찬영, 장나라, 황진경, 이헌미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그 시작에 대하여

Q. 안녕하세요.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민경택

창원대 사학과 석사수료생이고, 연구 주제는 가야사입니다. 가야 중 비화가야로 발전하는 삼한시대의 불사국이라는 국가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연구 주제가 지역사다 보니 위치가 특정되는데 비화가야와 불사국은 창녕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경남학, 경남 지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구술 작업과 전시 작업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김효영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석사수료생입니다. 학사 때도 국제관계학을 공부했고, 석사도 같은 전공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졸업논문을 쓰는 중인데, 동아시아 트랜스내셔널 인식에 대한 연구를 주제로 삼고 있어요. 제가 참여했었던 ‘walk9’ 한국 순례를 중심으로 주체들의 만남, 접속을 통해 형성된 ‘동아시아인’ 의식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창원에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이하 마창진시민모임)의 이경희 대표님도 계셔서 어렸을 때부터 관계를 맺을 수 있었고, 대학원에 들어온 후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문경희 교수님 덕분에 이번 프로젝트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장찬영

창원대 국제관계학과 석사수료생입니다. 지금은 민족적 기억, 집단 기억의 형성, 기억의 과정에서 생기는 망각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도 문경희 교수님 덕분에 일본군‘위안부’ 청년 포럼에 참여했고, 이후 시민단체와 같이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와서는 교수님께서 구술사 작업에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이번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장찬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Q. 〈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 전시회를 비롯하여, 경상도 지역의 일본군‘위안부’ 풀뿌리 운동사 연구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찬영

일본군‘위안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분들이 겪은 트라우마나 기억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러던 와중에 교수님께서 포럼 참석을 권유해주셨어요. 2018년 마창진시민모임에서 개최한 포럼(일본군 ‘위안부’ 주제의 청년·대학생 국제포럼: 여성인권과 평화의 씨앗 뿌리기)이었죠. 포럼에 참여하고 다른 나라(대만, 일본, 필리핀, 미국)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위안부’ 문제의 공유 방식과 관련 기억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알게 됐습니다. 그 후로는 수업을 통해 배우다가 대학원에 들어와 기억을 중심으로 공부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기억의 확산과 민족적 기억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기억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주류 역사가 아닌 개인이 갖고 있는 기억들,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교수님께서 ‘위안부’ 프로젝트를 진행하실 때 구술사 작업에 따라갈 기회를 주셔서 일반 시민들에겐 ‘위안부’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고, 또 ‘위안부’에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됐고, 그들에겐 어떤 기억이 형성되고 재현되는지 알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번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김효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김효영

석사 생활을 하면서 찬영 씨와 거의 늘 함께했기 때문에 비슷한 과정으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홈스쿨링을 해서 시간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러 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당시 써냈던 신청서를 보면 ‘저는 학교를 안 다녀서 시간이 많은데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습니다’라고 했더라고요. 생각해보면 활동에 참가할 때마다 뚜렷한 의식 없이, 단순히 좋은 활동이라 참여했던 거예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뵙는 거나 수요집회에 갔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고, 그런 활동을 했다는 것 자체에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다가 찬영 씨와 유사한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배우게 되면서 구술사 작업에 따라갈 기회가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제가 이 문제를 안일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많이 배우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민경택

학부 때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인터뷰를 기록하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경남의 노동자나 청년 인터뷰를 진행해오면서 이야기를 듣는 일에 익숙해졌고, 자연스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의 이야기도 듣게 됐어요. 피해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 경남 지역이다 보니 그분들의 인식과 고충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Q. 선생님들의 세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던 때는 아니지요? 

김효영

피해자의 증언보다는 ‘위안부’에 관한 영화나 소설이 많이 나오던 시기라 친구들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장찬영

소설이나 영화처럼 뉴스 보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피해자의 존재가 이야기되던 때였던 것 같은데, 자극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것이 많다 보니 충격을 받으며 이 문제를 알게 됐던 것 같아요. 

 

Q. 세 분은 고(故) 김문숙 이사장님이 부산에 설립하신 ‘민족과 여성 역사관’에 소장되어 있던 방대한 자료의 목록화 작업에 참여하셨습니다. 그 시작은 어떠했고 어떤 기준에서 진행됐는지 그 과정과 애로사항을 말씀해주시죠. 
 

장찬영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 문경희 교수님이 진행하시던 인터뷰를 따라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역사관의 존재를 알게 됐는데 이런 프로젝트로 이어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프로젝트의 시작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저희에게 주어진 시간은 3일에 불과했습니다. 그토록 방대한 양의 자료가 있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새벽 4시 반에 연구 책임자이신 창원대 사학과 신동규 교수님의 차를 타고 역사관이 있는 부산 수영구로 갔어요. 첫째 날엔 자료 파악을 하며 번호를 붙였고, 둘째 날엔 짐을 쌀 준비를 하고, 셋째 날엔 이삿짐을 싸서 창원으로 보냈어요. 모든 것이 3일 안에 이뤄졌습니다. 역사관 건물을 허물어야 해서 빨리 나가야 했거든요. 시간이 더 있었으면 어떤 자료가 있는지 더 꼼꼼하게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작업이 끝나면 저녁 10~11시가 됐고, 신동규 교수님이 저희를 데리러 오셔서 다시 창원으로 넘어갔어요. 리스트 작업도 모두 수기로 했는데, 자료에 번호를 붙이고, 그 자료가 무엇이고 어디에 있었는지 일일이 손으로 적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자료를 5톤 트럭 2대에 실어 창원대 박물관으로 갖고 왔어요. 그게 4월이었고, 이후에는 수장고에서의 작업이 시작됐죠. 

 

김효영, 장찬영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김효영

신동규 연구책임자님이 첫날 저희에게 “몸으로 굴러야 하는 일이니 각오해라”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자신 있게 “괜찮습니다. 저 힘셉니다!” 했는데 그렇게 답한 게 후회될 정도로 일이 많았어요. (웃음)
 

장찬영

이상할 정도로 뭐가 계속 나오더라고요. 문을 열면 온갖 박스와 서류와 종이 뭉치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래서 ‘이게 끝이 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민경택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민경택

이런 종류의 작업을 사학과에서는 많이 하긴 합니다. 자료가 방대하면 그만큼 좋은 자료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되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따라주지 않았죠. 이 서류가 역사관의 어느 곳에서 발견됐는지 그 배치 맥락까지 기록해두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습니다. 

 

Q. 김문숙 이사장님이 2021년에 돌아가신 후 2023년에 건물이 철거되면서 그 자료들이 어떤 형태로든 정리되어야 하는 운명이었고, 또 그것들이 창원으로 넘어오게 됐다는 점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장찬영

다들 열심히 해주셨어요. 힘들어도 짜증 내는 분들이 아무도 없었죠. 어떻게 해서든 이 일을 잘 끝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쉬는 시간을 가지면서도 “거기 얼마나 됐어요? 빨리 끝내고 그쪽으로 갈게요.” 이런 종류의 대화가 오갔어요. 그래서 ‘이분들은 정말 헌신적이구나, 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분들’은 누구인가요? 
 

장찬영

연구보조원들입니다. 그분들은 그날 처음 뵈어 서로를 소개하거나 깊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었거든요. 
 

김효영

계명대의 손선희(박사수료생), 성수진(석사생) 님과 경상대의 고명진(석사생) 님, 그리고 저희 3명까지 총 6명이 함께했습니다. 교수님들도 강의를 마치고 오셔서 세밀하게 검토해주셨고요. 그런데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체계적인 매뉴얼이 없었다는 거예요.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현장에서 매뉴얼을 만들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죠.
 

장찬영

매뉴얼이 부족하다 보니 ‘일단 다 가져오자’라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님께서 “버려도 창원에서 버리자”라고 말씀하셔서 작은 것 하나까지 다 가져왔어요. 심지어 벽에 붙어있던 그림까지 떼서 가져왔습니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 외부 간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Q. 그 자료들은 모두 어디에 저장해두었나요? 
 

김효영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있어요. 시간이 있었다면 상세하게 읽어보면서 중요한 자료를 더 많이 도출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큽니다. 

 

Q. 구술조사와 전시 작업을 병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장찬영

대구, 경남 지역에서 피해자분들을 도와드리고 ‘위안부’ 운동을 하셨던 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작업이었어요.
 

김효영

연구보조원 중에서 그 작업은 대부분 경택 씨가 하셨습니다. 

 

Q. 구술은 이 전시 작업과 별개였나요? 
 

장찬영

이 사업 하나에 전시, 아카이빙, 구술조사 3가지가 모두 결합돼 있었어요. 
 

민경택

현장에 나가 직접 구술 작업에 참여하진 않았고, 대체로 영상을 보며 녹취록을 푸는 일을 했습니다.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 전시관 내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Q. 구술채록은 자료를 새로 수집하는 작업이라면, 전시는 기존의 자료를 아카이빙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같은 주제 아래서 진행됐지만 두 개가 다른 결의 작업 방식인 만큼 차이점을 느끼신 게 있을까요? 
 

민경택

구술채록 작업은 정해진 시간 안에 진행되다 보니 일정을 잘 맞춰야 하고, 짧은 시간 안에 높은 퀄리티의 답변을 얻어내야 해서 매 순간 신경을 써야 합니다. 목록화 작업은 그 반대인 것 같고요. 이건 다른 얘기이지만, 이번에 구술채록 작업을 하며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구술 면담자들이 대체로 부채 의식을 갖고 계셨다는 것인데요, 이분들은 자신을 피해자들의 자식 혹은 조카와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죄송하다는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았어요. 반면 김문숙 선생님은 자신을 피해자들의 친구라 생각하고 ‘나는 너희들과 함께 간다’라는 마음으로 운동에 힘 쏟으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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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효영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석사 수료생. 지역, 정체성, 젠더, 네트워크 등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무한하게 사랑을 사유하고, 대화를 통해 형태를 갖춰가고 싶다. 

글쓴이 민경택

창원대학교 사학과 석사 수료생(가야사). 경상도 지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관련 구술채록(민간기록물 조사·수집 사업),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 전시, 일본군‘위안부’ 연구와 지역성 연구에 연구보조원으로 참여했다.

 

글쓴이 장찬영

창원대학교 국제관계학과 석사 수료생. 주로 기억, 재현, 망각의 정치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창원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 연구조교이자, ‘시각의 정치: 생명, 차이, 기억’ 연구팀, 그리고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민간기록물 조사 - 경상도 지역’의 연구보조원으로 일하며 공부하고 있다.

글쓴이 웹진 <결> 편집팀

Editorial Team of Webzine <Kye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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