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전 세계적인 성공 사례

한정화

  • 게시일2022.12.05
  • 최종수정일2022.12.05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2022.9.28) ⓒDong-Ha Choe ⓒKorea Verband

 

한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이하 코협)는 2020년 2월 베를린 미테구 ‘도시공간 예술 위원회’에 소녀상 설치를 신청하여 2020년 7월에 공식 허가를 받았다. 소녀상 설치의 주목적인 김학순 님의 용기를 기리기 위해 2020년 8월 14일에 제막을 하려고 했으나, 도로공사로 인해 6주 후인 2020년 9월 28일, 베를린 미테구 모아빗에서 공식적으로 제막식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제막 하루 뒤인 9월 29일,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현 후생노동상)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이번 결정은 정부의 입장과 지금까지의 조치와 맞지 않아 대단히 유감스러운 결정이며 (일본) 정부로서는 계속 (독일의) 여러 관계자에게 접근해 일본 정부 입장을 설명하고 동상(소녀상)의 신속한 철거를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 독일 외에도 세계 각국에 소녀상이 설치될 경우 “지금까지 일본의 움직임에 따라 실제로 (소녀상 설치가) 수습된 사례도 있다”며 “계속 국제사회로부터 정당한 평가와 이해를 얻을 수 있도록 향후에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10월 1일 산케이 신문은 일본의 모테기 외무상이 파리에서 독일 하이코 마스 외교부 장관을 만나게 되면, 베를린 소녀상 철거를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고위급 관리까지 동원하여 소녀상 철거를 공식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전에는 일본 대사가 현지에서 관계자들과 암암리에 만나 철거를 요청해왔었다. 

일본의 이러한 요구에 당황한 독일 외교부, 베를린시 정부는 미테구청장에게 압력을 가해 10월 7일 시급히 철거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공문에 담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코리아협의회는 미해결된 한일 갈등 문제에 독일을 끌어들여 한국의 편을 들도록 하는 난감한 상황을 일으켰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도 일본군과 같은 죄를 범했는데 일본만 일방적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 비문에 문제가 있고, 그 외에도 100개 국가 출신의 이주민들 사이에 갈등을 불러일으켜 평화로운 공존을 파괴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7일 안에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으면 2500유로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내용이 함께 담겼다. 

처음 철거 명령을 받았을 때는 부당함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2년간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 순식간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소녀상을 설치한 지 꼭 10일 만이었다. 도시 공간에 조형물을 세우려면 건물과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여, 코협은 2018년도에 2층 사무실에서 1층으로 이사를 하고, 일본군‘위안부’ 박물관 설립을 계획했다. 박물관 설립을 위한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2019년 1월 사진전과 예술 작품 전시회를 열어 정치가들을 초청했다. 미테구 도시공간 예술위 실무자가 전시장을 방문하고 소녀상 설치를 위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우리는 1년간 정성 들여 신청서를 준비했다. 더하여, 지역 주민들과 연대해 소녀상 설치에 대한 공식 허가를 받게 되었다. 코협과 같은 작은 단체에게는 1.5톤에 달하는 동상을 한국에서 독일로 가져오는 과정도 큰 부담이었기에 철거 명령은 정말 치명적이었다. 

철거 명령이 떨어진 순간 지인을 통해 행정 전문 변호사를 추천받아 철거 하루 전인 10월 13일 베를린 행정 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서를 아슬아슬하게 제출해 놓았다. 일단 재판에서 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소녀상이 철거되지 못한다고 했다. 동시에 언론에 이 사실을 알렸다. 수십 년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가담하여 한일 관계에 눈이 밝은 타츠 신문사의 스벤 한센 동아시아 편집장에게 늦은 밤 직접 전화를 걸어 다급하게 상황을 알렸다. 한센 편집장이 첫 번째로 한 말은, 독일은 지방자치가 강해 중앙에서 지시를 내려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몇 주간 수차례 통화하며 서로의 정보를 교환했다. 진보 일간지인 타츠에 소녀상 관련 기사가 첫 번째로 보도되었고, 덕분에 명확한 상황이 밝혀지게 되었다. 이는 구의회 의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보도에 이어 베를리너 차이퉁, 타게스 슈피겔 등 다수의 베를린 지역 신문사뿐만 아니라, 쥐트 도이췌 차이퉁과 같은 독일 전역 언론사 및 방송사, 차후 파이낸셜 타임스 및 더 네이션과 같은 영어권 신문에서까지 독일 미테구 사태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줄지어 보도되었다.

철거 명령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응 역시 막강했다. 베를린 미테 지역구의 녹색당, 사민당 그리고 좌파당에서 즉시 반발했다. 베를린 예술인 협회에서도 표현의 자유 침범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 외에 저명인사, 교수, 학자, 일반인들 모두 미테구청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한 한인 유학생이 소녀상 철거 반대 온라인 캠페인을 올리자 삽시간에 9000개 이상의 서명이 모였으며, 코협도 공개 편지 서명을 시작해 3700개의 성명을 모았다. 

소녀상 철거 반대 시위(2020.10.13) ⓒUli Kretschmer ⓒKorea Verband

 

10월 13일, 기자회견과 시위를 이틀 만에 준비했다. 한국, 독일, 일본 언론사가 몰려오고 낮 1시임에도 불구하고 300명 이상의 베를린 시민이 소녀상 앞에서 미테구청까지 가두 시위를 하였다. 집회 하루 전날 스테판 폰 다셀 미테구청장의 비서에게 성명서를 전달했다. 미테구청장은 시위 현장에 나타나 어차피 가처분 신청으로 소녀상 철거 명령이 보류되었으니,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일본 대사관과 코협의 관련자와 타협을 하겠다고 하여 철거 위기는 모면하게 되었다. 그리고 12월 초 미테구청장은 철거 명령을 철회했고, 코협도 가처분 신청을 취하하여 재판에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독일어권에서 유명한 단체 ‘극우를 반대하는 할머니(오마스 게겐 레히츠)’가 구의회에 압력을 가했다. 그 추운 겨울, 구의회 앞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씩 촛불 집회를 열었다. 한인 교민들과 한인 음악가들은 자발적으로 소녀상 앞에서 연주하며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녀상을 향한 절실한 마음이 담긴, 전 세계에서 전달된 이메일은 마치 큰 파도와 같이 베를린 모아빗으로 몰려와 정치가들의 마음을 동요시켰다. 

소녀상이 공공장소에 세워지는 만큼, 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미테 지역구 의원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녹색당, 사민당, 좌파당, 진보당이 합심하여 지난 2년간 5회 이상 소녀상 영구 존치안을 과반수로 통과시켰다. 사실 도시공간 예술위에서는 1년 허가를 낸 후 주변 반응을 보고 1년, 2년 계속 연장하니 별 걱정 말라고 했다. 일본 정부의 압력과 미테구청장의 부당한 철거 명령이 소녀상 영구 존치에 오히려 도움을 주게 된 것이다. 역사는 우연일까 아니면 이미 정해진 곳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지난 2년 동안 소녀상 영구 존치의 가장 큰 걸림돌은 미테구청장이었다. 그가 소녀상 건으로 일본 대사관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어 그쪽의 눈치를 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소녀상 영구 존치를 적극 반대했다. 그런데 다셀 구청장이 지난 9월 인사 비리로 갑자기 물러나게 됐다. 뒤이어 새롭게 선출된 여성 구청장인 레믈링어는 지난 11월 초 평화의 소녀상 존치 2년 연장을 발표했고, 이 기간 동안 소녀상이 공식 기념비가 되는 것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베를린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가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은폐하려는 야비함을 알렸고, 이어 영구 존치까지 이끌어냈다. 지난 30년간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차세대 교육이 저절로 이뤄지게 된 것이다. 지난 2년간, 초기에는 거의 매일, 최근에는 2주일에 한 번꼴로 독일 고등학생부터 학사, 석사, 박사 과정 학생, 기자, 학자, 여성단체, 인권단체들까지 우리에게 인터뷰를 요청해오고 있다.

2021년 베를린 카라메 청소년 단체 코리아협의회 일본군‘위안부‘박물관 방문 ⓒDong-Ha Choe ⓒKorea Verband

2022년 베를린 탈식민 페미니스트 단체들의 삼일절 여성독립운동 기림 ⓒMiji Ih ⓒKorea Verband

 

베를린 소녀상에 행해진 부당한 사실이 알려진 뒤, 올 1월에는 독일 카셀 대학 총학생회장에게서 소녀상을 세우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이에 김서경, 김운성 작가 부부가 소녀상을 기증해주었다. 더하여, 독일 시민과 TBS 라디오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힘으로 운송비까지 모금되어 영구 존치에 성공했다. 이 모든 것은 “다시는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해달라“고 전 세계를 다니며 증언하시던 할머님들의 뜻 덕분이기에 더욱 큰 만족감과 기쁨을 느낀다. 한국 시민들의 모금으로 일본군‘위안부’ 박물관을 설립하고 현재 밤낮으로 청소년과 시민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베를린에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고 지켜질 수 있었던 것은 하루아침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평화의 소녀상은 단순히 반일, 또는 민족주의적인 산물이 아니라, 식민 지배와 가부장제하에서 가장 하위 주체인 소녀들과 여성들의 목소리가 담긴 탈식민 페미니즘 운동의 일환인 것이다. 한국 시민사회의 불타는 정의감으로 베를린까지 소녀상이 오게 되었다. 이는 일본군‘위안부’ 운동이자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운동의 한 사례로서 베를린의 많은 여성단체에 힘이 되고 있다. 베를린에서 30년 넘게 운동을 펼쳐온 독일, 한국, 일본 여성 단체들의 꾸준한 연대의 성과이기도 하다.

소녀상 영구 존치 과정에 큰 힘이 된 것은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시작된 ‘Black Lives Matter(흑인 생명의 가치)’ 운동이다. 이 운동을 통해 독일 사회의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성이 이뤄졌다.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어, 베를린에서는 지난 3년간 반식민주의, 반인종차별, 반성차별 운동이 거세게 일었다. 이처럼 거대한 역사적 변화의 물결 덕분에 베를린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의식이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이제 평화의 소녀상은 독일 사회에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독일의 역사는 누구의 역사인가? 독일의 필요에 의해 독일로 오게 된 파독 간호사, 광부와 같은 ‘인력’의 1세, 2세, 3세들이 독일 영토에서 펼치는 활동은 독일의 역사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는가? 독일로 이주해온 해외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식민 지배, 분단, 독재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독일까지 오게 되었고, 이때 그들은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기억 또한 함께 가지고 왔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제 여성 인권의 상징으로, 베를린 미테구 모아빗에서 수많은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평화를 전파하게 되었다. 아픈 자에 공감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바로 평화이다. 베를린 주민들은 이제 평화의 소녀상을 향해 외친다. “평화의 소녀상은 우리의 소녀상!“

2021년 베를린 팔케 청소년 단체 ⓒDong-Ha Choe ⓒKorea Verband
글쓴이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 1978년 중학교 졸업 후 독일로 이주, 튀빙엔과 베를린에서 한국학과 일본학,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주 연구분야는 탈식민주의 젠더와 한국여성문학이다. 2008년 Korea Verband(코리아협의회)에 일본군‘위안부’행동(AG Trostfrauen)을 조직, 2017년 12월까지 매년 피해 여성들의 독일 방문프로그램을 주관했다. 2020년 평화의 소녀상 베를린 설치, 2022년 일본군‘위안부’박물관을 설립, 현재 청소년 교육 및 디아스포라 공동체들과의 연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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