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제작한 <黎明之眼(여명의 눈동자)>(呂小龍, 2014)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MBC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1991~1992)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일본군에 연행되어 ‘위안부’가 된 여성 기자의 삶을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이 많은 영화이지만, ‘위안부’ 피해생존자의 증언에 접근하는 방법에 주목해보자. 영화는 할머니가 된 ‘위안부’ 피해생존자가 역사관 전시를 둘러보다 쓰러지는 데서 시작한다.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고,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과거를 비춘다. 그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객은 그녀가 왜 전시관에서 충격을 받았는지 납득하게 된다. 이때 영화가 현재와 과거를 매개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그녀의 회고도 아니고, 역사관에 전시된 기록물도 아니다. 영화는 피해생존자의 ‘뇌’를 스캔함으로써 과거를 보여준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생존자는 헤어진 가족과 상봉하게 되는데, 가족들은 그녀가 회고록을 쓰는 걸 꺼려 한다. 그녀는 역사의 증인이 되고자 가족을 떠나지만, 정신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에서는 과거를 드러내는 두 가지의 방법이 제시된다. 하나가 뇌를 스캔하는 것이라면, 다른 하나는 피해생존자가 자신의 언어로 과거를 진술한 회고록이다. 그러나 영화가 끝날 때까지 회고록은 출간되지 못한다. 대신 영화는 플래시백 지점에서 뇌 스캔 데이터 영상과 과거의 장면을 직접 연결한다. 요컨대 관객들은 피해생존자의 증언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뇌를 ‘본’ 셈이다. 이러한 설정 탓에 영화 속 피해생존자는 다소 괴기스럽기까지 한 복잡한 기구를 머리에 쓰고 뇌 검사를 받는다. 그렇다면 영화는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피해자의 뇌를 열어 보여주려 했던 것일까. 의도를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실 영화에서도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계속해서 역사 왜곡의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 영화의 의도는 줄곧 공격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의 진술이 아니라, 피해자가 실제 경험한 ‘사실’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에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환상이 작동하고 있다. 더 문제는 ‘사실 입증’의 강박이 피해생존자가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차단해버린다는 점이다. ‘원본성’에 대한 강조는 당사자성을 존중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 테지만, 실제로는 피해자의 주체성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나아가 증언자와 청취자의 상호 소통과 대화의 여지도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증언을 상상하는 방식은 이것과 얼마나 거리가 있을까. 현재 일본군‘위안부’ 증언 문제는 곤경에 처해 있는 듯하다. 역사 왜곡과 증언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는 가운데, 고령인 증언자들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위기감까지 겹친 것이다. 진실을 규명하고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요원한데, ‘증언(자) 부재’의 시대는 임박하게 다가와 있다. 이는 피해생존자가 한 분이라도 더 계실 때 증언을 아카이빙 해야 한다는 다급함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피해생존자를 AI로 구현한 <영원한 증언>이라는 콘텐츠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일본의 역사왜곡의 노골적인 시도”가 계속되는 가운데 “생존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고령화”[1]가 콘텐츠 개발을 촉발했다는 데서 오늘날 증언이 당면한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이 연구가 기획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원한 증언>은 미리 추출된 질문지를 통해 시나리오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뒤 청취자가 증언자의 형상을 한 AI에게 질문하여 ‘대화형 증언(Interactive Testimony)’을 청취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콘텐츠 개발에서 특히 공들인 부분은 증언자의 ‘현존감(presence)’인 듯하다. 기획 의도에서 청취자가 지금 여기에서 피해생존자 당사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실감이 전달될 때, ‘사실 효과’를 배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강하게 묻어난다. 물론 당사자의 증언은 존중되어 마땅하지만, 앞서 살펴보았듯 원본성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증언을 편협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영원한 증언>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증언자의 현존감을 구현하겠다고 하지만, 이렇게 재현된 증언자에게서는 오직 ‘피해자’의 면모만이 부각되기 쉽다. 증언 연구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위안부’ 피해가 과거의 경험에 한정되지 않으며, 동시에 전 생애가 피해자성으로만 점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지털 증언에 관한 학술대회에서 한 토론자는 ‘위안부’ 피해생존자와의 ‘만남’이 피해사실에 대한 청취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2] 피해사실을 거듭 말하는 AI를 구현하겠다는 발상은 증언을 세련되게 ‘화석화’하는 것을 넘어, 피해자로 왜소하게 구현된 증언자를 증언자의 전체적 면모라고 착각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대화’라는 착시효과다. <영원한 증언>은 사전에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AI가 청취자와 대화를 하는 형태다. 따라서 “증언자의 데이터가 질문자의 질문 데이터와 매칭이 되지 않는, 이른바 비유효 질문들(Fallback-questions)이 발생”하는 경우가 문제가 되는데, 이때에는 “자연스럽게 이미 데이터베이스화해둔 일반적인 증언자의 발화내용으로 자동 매칭되는 방법을 구사”[3]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물론 AI 기술은 발전 중에 있는 것이므로, 기술 진보에 따라 새로운 방법이 도입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짚고 싶은 것은 ‘대화’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이다. 대화는 서로가 한 번씩 돌아가며 말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2000년 이후 학계는 증언이란 말하는 이와 듣는 이 간의 공동 작업이며, 생존자의 기억이란 그를 둘러싼 사회의 사고방식과 규범 속에서 다각도로 영향을 받는 와중에 생산되는 것[4]이라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곧, 증언이 증언자와 청취자 사이의 ‘대화’라고 할 때, 이때 대화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로써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디지털 매체로 구현하고자 하는 증언이 청취자를 대화참여자, 다시 말해 ‘증언참여자’로 이끄는 ‘대화’로 나아가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증언(자) 부재’의 시대에 대한 위기의식으로, 다른 한편 새로운 매체 기술에 힘입어 증언 아카이빙을 서두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증언자를 디지털 매체로 구현하여 영속하게 하려는 시도로 나타났다. 그런데 ‘영원한 증언’은 이렇게밖에 달성될 수 없는 것일까. 증언집 4권 『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에 참여한 조사자들은 증언자의 ‘침묵’까지 들으려고 노력하면서 “점차 ‘증인’이 되어갔다”고 한다. 침묵을 듣는다는 것은 “왜 그때 증인이 침묵했었을까에 대한 면접자의 ‘이해’가 요청되는 차원의 것”이고 “따라서 이 과정에서 이미 증인과 면접자의 상호 주관성이 만들어지고 표출”된다는 것이다. 증언이 조사자와 증언자의 공동 생산물이라면, 조사자가 “점차 ‘증인’이 되어”가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5] 이러한 사례를 참조하자면, ‘영원한 증언’은 증언자를 ‘보존’하는 방식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 그야말로 ‘오지 않은(未來)’ 증인을 초대함으로써도 가능할 것이다. 그동안 ‘위안부’ 증언 연구는 사실성의 잣대로 증언을 검증하려는 실증주의와 모든 진실은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이라는 상대주의적 진실관 양쪽 모두를 지양하면서, 법적 진실을 초과하는 증언의 진실을 탐구해 왔다. 새로운 매체를 통해 증언에 접근한다고 해서 이러한 고민의 결과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간의 연구 성과를 되돌려 다시 시작하기엔, 우리에겐 정말 시간이 없다.
각주
- ^ 김상용, 「AI기반 실감형 인터랙티브 콘텐츠, <영원한 증언>-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인터랙티브 콘텐츠 제작을 통해 본 ‘증언의 현재성(The present of testimony)’ 고찰」, 『디지털콘텐츠학회논문지』, 2021, 1816쪽. 이하 <영원한 증언> 콘텐츠에 관한 설명은 위의 논문을 참조한 것이다.
- ^ 이는 2022년 7월 29일 열렸던 <다차원의 증언을 만난다는 것> 학술워크숍의 토론자 후루하시 아야의 발언이다. 이외에도 학술워크숍에서는 중요한 논점이 제기되었기에 간략하게 밝혀 둔다. 임경화는 <영원한 증언>이 모델로 삼은 쇼아 재단의 ‘증언의 다차원성(Dimensions in Testimony)’ 프로젝트를 참조하면서, 증언 수집에 있어 ‘피해자’들 사이의 국경을 넘고 ‘피해자’와 ‘해방 주체’의 경계선을 넘으려는 다차원적 시도가 필요함을 지적하였고, 박소현은 증언을 전시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발표하면서 ‘위안부’ 할머니와의 대화가 무엇을 공론화하기 위한 것인지, 어떻게 ‘다른 목소리들’과 연대하며 증언을 ‘현재화’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더불어 역사의 책임을 밝히기 위해 희생자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할 뿐 아니라, 퇴역군인들의 증언 등을 통해 폭력 시스템을 밝힐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 장수희는 윤리적 목적을 내세우면서도 ‘위안부’ 문제를 외설적으로 소비했던 대중소설들을 제시하면서, 정의감만으로 증언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길 주문했다. 나아가 손쉽게 청취할 수 있는 증언이 ‘증언 서비스’로 가볍게 소비됨으로써 본래의 의도를 배반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적하였다. 학술워크숍에서 제출된 논점들은 앞으로 증언 아카이빙 방법론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 ^ 김상용, 앞의 글, 1819쪽.
- ^ 양현아, 「증언과 역사쓰기」, 「증언과 역사쓰기-한국인 “군 위안부”의 주체성 재현」, 『사회와역사』, 2001.
-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신대연구회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한울, 2001, 25쪽.
- 글쓴이 이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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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서사 연구>(2023)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군'위안부', 기지촌 여성, 탈북 여성 등 국가 경계의 여성 서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역사적 존재의 탈역사화, 그 ‘불공정함'에 대하여>(2022), <일본군'위안부' 운동 초기 증언의 교차적 듣기>(2022), <가부장제 민족주의의 분열증과 여성 생애사 쓰기의 가능성>(2021) 등의 비평 및 논문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