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증언의 과거와 미래(1): 증거로서의 증언과 행위로서의 증언

이지은

  • 게시일2022.09.20
  • 최종수정일2022.09.20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증언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김학순의 증언 이후 시민운동이 본격화되었으며, 학계는 사료 발굴 등 학술적 실천으로 응답하였다. 피해생존자의 증언은 대중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로서 사회적 호소력과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증언은 듣는 이의 의도나 목적에 따라 자의적으로 편집‧해석되기도 했으며,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생존자를 공격하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특히 증언의 수집과 연구는 시민운동진영과 학계가 긴밀하게 협조하여 진전시킨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역사부정론의 공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양쪽의 인식의 간극은 크게 벌어졌다. 요컨대, 증언은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대중이 가장 잘 아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잘 모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증언에 대한 학계의 고민의 역사를 살펴보는 일은 증언을 깊고 넓게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일본군‘위안부’ 운동 초기 가장 시급한 문제는 증언을 수집하고 채록하는 것이었다. 이는 증언자가 고령인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위안소 제도에 대한 사료와 연구 기반이 부족한 상황에 기인했다. 실제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가 1993년에 처음 발간한 증언집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의 해설은 “군위안부 문제의 주안점은 우선 진상을 밝혀내는 일”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가능하고 우선적인 과제는 피해자들의 경험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한다.[1] 이러한 기획 의도에 따라 1집에 수록된 증언은 징모 과정, 위안소 시스템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연대기 순으로 재구성되어 있으며, 문어체 형식으로 가필되어 있다. 더욱이 초기 운동은 법적 투쟁과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에 증언은 ‘증거’의 성격이 강하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위안소의 실체를 밝히는 학계의 연구가 축적되고, 1990년대에 이르러 여성구술사에 대한 인식이 진전되면서 증언 연구는 증언의 ‘증거’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구술 행위’ 그 자체에도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증언은 동일한 내용을 반복하는 독백이 아니다. 증언은 말하는 이가 듣는 이와의 관계 속에서 과거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재현하는 행위이며, 증언집은 조사자와 피해자의 상호 대화와 소통의 산물이다.[2] 한편, 증언의 구술성에 주목할 때, 증언자 특유의 말투뿐 아니라 표정, 손짓, 휴지(休止), 침묵 등 비언어적 요소 또한 증언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이를 문자 텍스트로 옮기기 위한 방법론 또한 중요한 증언 연구의 한 부분이 된다.[3] 2000년 이후 발간된 증언집은 증언자의 입말을 살리면서, 비언어적 요소의 의미를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호들을 도입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증언집 4권의 “무수히 열리되 닫히지 않는 따옴표들의 행진”[4]이라든가 증언자 구술의 장단이나 강약까지 표현하려 한 증언집 6권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의 ‘일러두기’가 이러한 고민의 결과이다.[5]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증언을 ‘행위’로 인식하게 되면서, 증언이 당사자에게 미치는 심리적‧인식적 변화에도 학술적 연구가 진행되었다.[6] 증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서 발화 장소의 성격에 따라, 혹은 청중의 국적이나 성별, 나이에 따라 증언 행위가 달라지는 것은 증언의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 증언자의 주체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의 발전은 증언의 진실성에 대한 공격에 의해 쉽게 가려지거나 왜곡되었다. 사실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대중조차도 증언이 달라지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증거로서의 증언’이 대중에게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까닭이기도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증언자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탓이다. 흔히들 증언자를 ‘살아있는 증거’라고 하면서도, ‘살아있는’이라는 의미를 삭제한 채 ‘증거’로서만 인식하려 드는 것이다. 증언자는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경험을 재구성하고 재해석하는 주체적 존재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증언 연구는 역사부정론자의 공격에 대응하면서, 또 증언 청취와 해석에 대한 한계를 극복하면서 부단히 갱신되었다. 예컨대 전형적인 피해자상에 부합되는 증언만이 청취되고 과잉 대표되었다는 비판은 1990년대 후반부터 제기되었다. 이러한 비판 중 일부는 식민지적 차이를 삭제하고 일본 정부를 면책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말았지만,[7] 한국 사회에서 ‘위안부’의 피해자성이 정조 규범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입각하여 강조된 측면이 있음은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증언을 통해 ‘할머니’라는 호명에 담을 수 없는 피해생존자의 다양한 주체성을 밝히거나, 피해가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을 읽어내는 연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8] 한편, 증언의 사실적 진실성은 증언의 불변성이나 일관성이 아니라, 역사학과의 상호보완을 통해서 입증되고 있다. 역사학계는 피해자의 증언을 실마리로 역사적 단서를 찾아내거나, 역사적 맥락과 실증 자료를 통해 증언의 공백을 보완하고 피해의 전체상을 재구성하는 연구를 축적해 왔다.[9] 이러한 연구에서 증언은 피해생존자 당사자의 경험에 대한 진술이기도 하지만,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증언으로 확장된다.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는 증언을 ‘사실 검증’이라는 편협한 잣대를 넘어 깊이 있게 청취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최근에는 증언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연구들이 제출되고 있다. 구술 증언 외에 ‘회고’, ‘수기’ 등의 양식으로 발표된 증언이나, 참전 군인의 회고록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것이다. 1991년 이전에 출판 상업주의에 의해 외설적으로 소비되었던 인터뷰 기사나, 새로 발굴된 피해생존자의 수기를 분석하여 당시 ‘위안부’ 증언이 재현되던 방식을 살핀 연구들을 예로 들 수 있다.[10] 참전 병사들의 전쟁회고록 속에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위안부’ 목격담을 선별하여, 자료적 가치를 밝히고 군인들의 ‘위안부’ 인식을 밝히는 연구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11]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30년 이상 지속되고, 증언이 축적됨에 따라 운동 초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증언에 대한 인식 변화를 살피거나, 증언 수집과 채록 과정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수행되고 있다.[12] 더불어 지금까지 ‘위안부’ 운동과 이에 관한 연구가 정대협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데 문제의식을 가지고, 각 지역의 자생적 운동에 관심을 돌리는 경향이 감지된다. 지역의 ‘위안부’ 운동 연구는 증언 자료를 더욱 풍부하게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각주

  1.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정신대연구소 편,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한울, 1993, 15쪽.
  2. ^ 2000년 여성국제법정 한국위원회 증언팀, 「이 증언집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기억으로 다시 쓰는 역사』, 풀빛, 2001, 35~36쪽 참조. (이하 서명과 페이지만 표기)
  3. ^ 이선형,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의 방법론적 고찰」,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2.
  4. ^ 증언집 4권은 “이 따옴표는 증언 내용이 편집자의 말과 단어로 가필되지 않았고 증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구성되었음을 알려”주는 것이자 “증언자가 말하고 있음을, 지금 현재 독자에게 말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독자로 하여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증언참여자가 되기를 촉구하는 기호”라고 밝히고 있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4』, 35쪽.)
  5. ^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 전쟁과여성인권센터 연구팀,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 여성과 인권, 2004. <http://contents.nahf.or.kr/iswjViewer/item.do>
  6. ^ 황은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의식 변화 과정에 관한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8; 심영희, 「침묵에서 증언으로: ‘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귀국 이후의 삶을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2000; 사카모토 치즈코, 「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증언’의 정치학」, 연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7. ^ 이에 대한 비판은 김부자, 「피해증언과 역사수정주의적 페미니즘」, 『한국구술사학회 학술대회』, 2019 참조.
  8. ^ 대표적으로 양현아, 「증언과 역사쓰기-한국인 “군 위안부”의 주체성 재현」, 『사회와역사』, 2001; 양현아, 「증언을 통해 본 한국인 ‘군위안부’ 들의 포스트식민 상흔(Trauma)」, 『한국여성학』, 2006.
  9. ^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다 듣지 못한 말들>(2019. 2.25~3.20)은 서울시와 정진성 연구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한 전시로,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역사적 맥락 위에서 재구성하고, 발굴한 기록물을 통해 증언의 여백을 보완하여 대중에게 전달하였다. 그외 피해자 증언에 기반한 역사학계의 성과로 강영심, 「종전 후 중국지역 ‘일본군 위안부’의 행적과 미귀환」, 『한국근현대사연구』, 2007; 박정애, 「만주 지역의 일본군 위안소 설치와 조선인 ‘위안부」, 『아시아여성연구』, 2016 등 참조.
  10. ^ 이지은, 「민족국가 바깥에서 등장한 조선인 ‘위안부’와 귀향의 거부/실패」, 『사이(SAI)』, 2020; 배지연, 「비극적 모빌리티 서사와 증언의 문제」, 『한국비평문학회』, 2022. 
  11. ^ 후루하시 아야, 『비판적으로 읽는 일본 군인 회고록 속 '위안부'』, 동북아역사재단, 2021.
  12. ^ 이지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 초기 증언의 교차적 듣기」, 『역사학연구소』, 2021.
글쓴이 이지은

서울대학교 국문과 박사 수료. 일본군‘위안부’, 기지촌 여성, 탈북 여성 등 국가 경계의 여성 서사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역사적 존재의 탈역사화, 그 ‘불공정함’에 대하여〉(2022), 〈일본군 ‘위안부’ 운동 초기 증언의 교차적 듣기〉(2021), 〈가부장제 민족주의의 분열증과 여성 생애사 쓰기의 가능성〉(2021) 등의 비평 및 논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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