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11일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이하 마창진시민모임)’은 2022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기림일 기념행사를 추모제와 청소년 문화제로 진행했다. 기림일 추모제에 지역 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8월 14일 경상남도에서 치르는 기념식이나 주말로 예정된 8.15통일행사와 일정이 겹치지 않는 날을 선택했다.
해마다 ‘위안부’ 기림일 행사는 창원 시민과 지역단체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해 왔다. 지난 7월 기획회의에는 윤소영 경남여성단체연합 대표님, 이병하 경남진보연합 상임대표님, 경남여성연대 실무자 등 여러 단체의 관계자들이 참석해주었다. 특히 5월에 김양주 할머니 장례를 치른 뒤 처음 맞는 기림일이라 어떤 의미를 담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회의를 시작했다. 마창진시민모임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예년보다 더 많은 지역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기획회의 이후에도 온라인과 SNS 공간에서 세부적인 논의를 이어갔다. 회의 결과 올해는 청소년 문화제와 추모제를 병행한 기림일을 만들어 보자고 결정하였다.
‘위안부’ 기림일을 청소년과 함께하는 행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설득이 필요했다. 평소 마창진시민모임의 이경희 대표님은 오늘날 ‘위안부’운동은 청소년 교육을 중심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계셨다. 기획회의 직전에 이에 대한 설명을 먼저 피력했다. 이미 이경희 대표님께서는 ‘위안부’운동과 청소년 교육이 왜 중요한지를 지난 6월 3~4일 <일본군‘위안부’역사교육 활성화를 위한 국제포럼>(이하 국제포럼)을 개최하여 보여준 바 있다. 국제포럼은 일본군‘위안부’ 역사 왜곡과 부정이 심각해짐에 따라 학교 안의 역사교육도 새로워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경남지역 교사와 미국 캘리포니아의 교사 및 ‘위안부’ 활동가들이 양국의 일본군‘위안부’ 교육의 수업사례를 교류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처럼 ‘위안부’운동을 청소년 교육으로 확대하고자 하는 바람이 올해의 기림일 행사에서도 계속되었으면 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문화제가 되려면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참여가 활발해야 하는데 이 또한 지역단체의 협조가 빛을 발했다. 경남지역역사교사모임에서‘청소년 문화제’ 참가자 모집 공문을 학교들로 발송하고 청소년 동아리를 대상으로 하는 홍보를 맡아 주었다. 그리고 각 시민단체는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총동원하여 기림일 청소년 문화제 참가자 모집 포스터를 공유해 주었다.최종적으로 진주여자고등학교의 밴드 동아리 2팀, 창녕 남지고등학교의 합창단, 창원지역 고등학교 연합팀으로 구성된 ‘유월청소년창작가요제’ 우수상 수상팀, 창원의 중학생 두 명이 만든 댄스팀, 거창연극고 학생의 1인극 공연 등의 신청서가 접수되었다. 그밖에 경희대학교 음대 학생의 기타 연주와 오스트리아 빈 음대 유학생의 바로크 리코더 연주가 초청공연으로 더해져 풍성한 청소년 문화제를 만들 수가 있었다.
8월 11일 기림일 추모제 날은 아침부터 하늘이 걱정스러웠다. 제발 행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비가 오지 않길 빌었다. 추모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야외 행사를 준비하면서 끊임없이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의자와 천막을 넉넉하게 준비 못 한 것이 두고두고 안타깝다.
당일 아침, ‘위안부’피해자 할머니의 영정을 모시기 위한 이젤을 받으려고 일찍부터 행사장에 나와 있는데 전화가 왔다. 참석하기로 했던 창원시장의 불참 통보였다. 이어 경상남도교육감도 올 수 없고 국장이 대신 참석한다고 했다. 추모제를 준비하면서 지자체 단체장이 참석해주면 행사가 더 빛날 것이라 생각했다. 잠시나마 그렇게 생각했던 점을 반성한다.
이젤을 받아 두고 다시 사무실에 들러 최종 시나리오를 챙겨서 행사가 열릴 오동동문화광장으로 갔다. 음향과 조명 팀이 부산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추모제가 열릴 광장 옆에는 ‘인권자주평화다짐비’가 있다. 오동동문화광장을 기림일 행사장으로 선택한 이유다. 다짐비 옆에 문화광장이 조성돼 있어 참으로 다행스럽다. 기림일 행사를 기해 시민들이 다짐비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1부 추모제 사회를 맡았고 2부 청소년 문화제는 경남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강만호 단장님이 맡아주셨다. 그래도 진행 부담 때문에 행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놓칠까 봐 두려웠다. 다행히 자원봉사 부대를 이끌고 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오민혜 선생님이 와주었다. 기림일 행사 준비를 위한 세부적인 논의는 지난 2020년에 결성된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경남지역 수요행동> 텔레그램 방에서 주로 논의했다. 오민혜 선생님은 ‘수요행동’ 텔레그램 방에 올린 행사 당일 현장 진행요원 자원봉사자 요청에 응해주었다. 또 6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조수현 사무국장, 그리고 마창진시민모임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임진희씨 등이 일찍부터 와서 무대 아래에서 벌어지는 온갖 잡무를 맡아 주어 한결 든든했다.
청소년 문화제 공연을 위한 리허설이 시작됐다. 강만호 단장님께서 참가자 한 팀, 한 팀의 요구를 점검하면서 공연에 필요한 준비를 해 주셨다. 밴드 공연을 신청한 진주여고 팀은 행사 몇 시간 전에 보면대 5개를 요청했고, 노래를 준비한 팀은 인원수만큼의 스탠딩 마이크를 요구했다. 기타 연주자는 팔걸이가 없는 의자를 주문했다. 행사장에는 관객용 플라스틱 팔걸이의자뿐인데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황하고 있으니 강만호 선생님께서 드럼 연주자의 의자를 빌리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음향 업체 사장님과 강만호 단장님이 청소년 출연자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심지어 미리 MR을 준비하지 않은 팀도 있어 근처 PC방으로 뛰어가 다운로드하는 상황도 속출했다.
다음 리허설에서는 공동대표단이 ‘위안부’피해자의 영정을 모시고 들어오는 동선을 연습했다. 추모제에서 진혼의식은 대부분 ‘진혼무’로 시작했는데 올해는 영정을 엄숙하게 모시는 순서로 시작해 보았다. 경남여성단체연합, (사)경남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창원진보연합, 민주노총경남지역본부, 민주노총서비스연맹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경남지부, (사)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우리민족끼리통일의문을여는통일촌, 경남겨레하나, 마산겨레하나, 6월항쟁정신계승경남사업회 등 창원지역 각 단체의 대표님들이 한 분씩 영정을 모시고 식장으로 입장하는 형태의 진혼의식을 준비했다. 단체 대표들은 워낙 바쁜 분들이어서 섭외부터 난항이었다. 어찌어찌하여 약속을 받고 추모제 1시간 전에 모여 동선을 맞추어 보기로 했다. 특히 영정 12위를 모시는 남녀 성비를 동등하게 하려고 신경 써서 조율하였다.
앞서 기획회의에서는 ‘위안부’ 운동과 수요시위를 향한 공격의 심각성을 알리고 여러 단체의 응원과 구호를 담은 현수막을 내걸어 기림일 분위기를 돋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마창진시민모임과 함께 각 단체의 주장과 구호 50개를 담은 조각보 형태의 대형 펼침막이 만들어졌다. 펼침막을 무대배경으로 걸었더니 의도했던 장엄한 기림일 분위기가 연출됐다.
좌충우돌했던 리허설을 뒤로 하고 추모제와 청소년 문화제 본 행사가 이어졌다. ‘청소년이 기억하고 만드는 평화’라는 주제로 열린 2022년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기림일 행사는 가장 먼저 피해자 영정을 모셨다. 공동협력단체 대표들이 광장 끝에서 대형 위패를 앞세우고 무대를 향해 둥글게 광장을 감싸면서 입장하여 이젤 위에 영정을 올려두었다. 다음 순서로 시민들이 차례로 분향을 한 뒤 주최 단체 대표와 지역 인사의 추모사가 있었다. 추모사는 생존피해자가 없는 시대를 가슴 아파하고 다시는 전쟁이 없는 평화를 향한 다짐이 주를 이루었다. 평화를 향한 다짐은 청소년이 꾸민 문화제를 통해 분출됐다. 밴드 공연, 일제 강점기를 기억하는 1인극, 리코더 연주, 합창, 창작곡 공연, 댄스 등을 선보인 문화제에서 청소년들의 일본군‘위안부’ 역사를 이어가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기림일 행사 현장에서는 비옷, 간식 구입 등 발품 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지역의 시민들이 내 일처럼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행사를 치를 때 날씨 등의 돌발 상황이 생기면 의견이 분분해져 주최 측의 혼을 쏙 빼놓는데, 이날은 궂은 날씨에도 지역 시민단체 일꾼들이 여기저기 다니며 도와줘 무사히 진행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창원 시민들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기억하는 뜻에서 기림일 행사에 참석하고 진행을 돕는 것으로 마음을 다해주었다. 일본군‘위안부’ 단체로서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기림일 행사를 지속하여 운영하는 이유이다. 청소년이 꾸민 기림일 공연은 함께 하신 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몇몇 분은 ‘추모제’도 이렇게 멋진 문화행사로 꾸릴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감동을 받았다고 말씀해주셨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의 눈부신 끼와 재능이 일본군‘위안부’ 기림의 다짐으로 변하는 시간이었다.
- 글쓴이 정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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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마창진시민모임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