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기림의 날 특집: 현재진행형 ‘위안부’ 역사와 공존을 향한 연대
1991년 8월 14일, 대한민국 생존자 최초로 김학순 님이 공개 증언하고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한 세대의 통념적 주기가 지난 지금, 일본군‘위안부’ 역사는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 침해를 상징하는 초국적 참조점이 된 동시에, 여전히 ‘현재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웹진 결은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11주년인 2022년을 맞아, 경계를 넘어 ‘위안부’ 역사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명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 미투(Me Too)와 위드유(With You)로 성폭력과 여성혐오에 맞선 젊은 여성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비판적 담론을 생산하고 후속세대를 교육하는 연구자들, 전쟁과 제노사이드, 이민자와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해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위안부’ 역사의 교훈과 함께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시죠.
1. 한일양국의 시민들과 함께 ‘위안부’문제에 관한 공동연구를!
2.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를 통해 본 증언을 기록하는 일
3. ‘지역’에서의 일본군‘위안부’ 운동: 경상도 지역 역사관과 ‘지역성’에 대하여
4. [캐롤 글럭-김은실 대담] 민족주의를 넘어서: 현재 진행형 일본군‘위안부’ 역사와 젠더 정치
5. [라다 이베코비치-백영경 대담] 젠더화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 시대의 여성 연대
지난 30여 년간 부산에서 일본군‘위안부’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김문숙 회장이 2021년 10월 별세했다. 고(故) 김문숙 회장은 1991년 ‘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부산정대협)의 회장을 맡으며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실상을 알리고 피해자의 인권 회복을 위해 매진한 운동가이자 활동가이다. 일본이 ‘위안부’ 책임을 일부 인정한 관부재판을 이끌었던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2004년에 사재 1억 원을 들여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개관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과 관부재판 과정, 이외에 그가 피해자들과 함께 진행한 운동 과정 등이 담긴 기록 1000여 점이 전시된 역사관은 후속 세대를 위한 여성인권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김문숙 회장의 부재 이후 그가 실천해온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계승과 역사관의 지속적인 운영 방안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특히 역사관에 소장된 기록물의 목록과 DB가 없다는 점에서 소장 기록물 목록화 작업의 시급성이 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1]
이에 김문숙 회장의 뜻을 계승해 2021년부터 역사관을 운영한 김주현 관장은 2022년 4월에 역사관 소장 기록물의 목록화 사업을 위해 한국여성인권진흥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민족과 여성 역사관의 소장자료를 재평가하고, 김문숙 회장이 수집한 자료를 여성인권과 평화를 위한 공공역사의 기록물로 추진”한다는 것이 사업의 주요 취지이다.[2] 이로 인해 오랜 기간 부산에서 민간차원에서 독자적으로 전개한 일본군‘위안부’ 운동과 개인이 수집한 자료가 정부 지원하에 공공역사의 기록물로 보존 및 활용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그뿐 아니라 부산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지원 운동을 주도한 김문숙의 삶과 생각, 또한 그를 통해 관찰된 피해생존자의 이야기도 공공 기록물로 공유될 예정이어서 향후 일본군‘위안부’ 운동 연구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상황은 지난 30여 년간 진행되어온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틀과 방향성은 물론이고 운동의 담론 지형과 방법론에 대한 변화를 요구받는 실정이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라는 뚜렷한 목표”에 운동의 역량이 집중되었고, 그로 인해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틀과 방향성이 불가피하게 축소된 측면이 있다.[3] 이는 가해자 일본에 법적 책임을 묻는 방향으로 운동의 틀이 강화되면서 피해자들을 침묵시킨 한국 사회의 여성 억압적 구조를 바꿔나가는 데 운동의 역량이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이어졌다.[4] 다른 한편,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현 정의기억연대)의 역할이 컸던 만큼 정대협의 경계 안팎을 오가며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이어진 시민운동이 주목받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5]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역동성을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복수의 문제의식과 실천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로 귀결된다.[6] 게다가 생존자 없는 ‘위안부 운동’ 시대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라는 점에서 식민지 시기 전시 성폭력에서 비롯된 여성의 고통에 대한 기억을 이어가고, 더 많은 자료 발굴과 연구를 통해 미래 세대에게 널리 알리는 작업의 방향성과 방법론에 대한 성찰과 고민도 요구되고 있다.
김문숙 회장의 별세로 인해 야기된 부산정대협과 역사관의 변화 노력은 최근 새로운 전환의 시점에 직면해 있는 국내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몇 가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첫 번째는 운동의 틀과 방향성, 방법론에 관한 것이다. 김문숙 회장이 이끈 부산정대협은 정대협과 이름은 유사하지만, “정체성이나 이념적, 조직적 이력이나 지향”에 있어서 정대협과 동질적이지 않은 단체였다.[7] 부산정대협 연구를 진행한 문소정(서울대 여성연구소 연구원)은 부산정대협의 정체성을 세 가지 특성으로 요약한다.
첫째, 부산의 지역적 차원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과제로 삼는다는 점, 둘째,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하여 정대협과 공동대처를 지향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정대협과 이념적·조직적으로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정대협은 1991년 정신대 신고 전화 설치, 1992년부터 약 10년간 관부재판 추진, 2004년 ‘민족과 여성 역사관’ 개관, 2016년 평화의 소녀상 건립 등 일본군‘위안부’ 관련 주요 사업을 진행해왔다. 이 사업들은 정대협이 제시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7가지 요구사항에 포함된 활동들이다. 즉, 정대협의 ‘위안부문제 공동대처’라는 명분에는 부합하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겹치지만 분리되어 차이성 내지 혼종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소정의 설명이다.[8] 부산정대협의 활동이 정대협의 활동과 유사하지만, 다르거나 혼종적이었다는 점은 국내 ‘위안부’ 운동의 동질성을 드러내면서도 중앙과 지방, 정대협과 지방 시민사회 조직 간의 균열과 차이를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유사하지만, 무엇이 또는 누가, 왜 부산정대협과 정대협 사이의 균열과 차이를 만들어냈는가? 또한 어떤 방식으로 그러한 균열과 차이가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전국 또는 지역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부산정대협과 김문숙 회장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다양한 문제의식과 실천 방법을 찾아내는 데 유용하리라 생각한다.
두 번째로, 김문숙 회장의 별세는 이미 성큼 다가와 있는 생존자 없는 일본군‘위안부’ 시대에 이어 초기 또는 제1세대 운동가 없는 ‘위안부’ 운동 시대 또한 다가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1990년 전후 시점부터 일본군‘위안부’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들에게도 고령화는 진행되고 있다. 제1세대 운동가들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구술증언을 채록하거나 일상에서 그들과 친밀한 소통을 해왔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과 삶의 궤적, 더불어 피해자의 내면과 가족·사회적 관계 등에 대해 특별한 이해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일본군‘위안부’운동을 주도했던 운동가이자 또한 피해자들을 지원했던 활동가라는 관찰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들의 삶을 관통한 피해 고통과 생애 경험을 대신 말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피해자들과 함께 경험한 사적 시간과 생활 공간의 재구성을 통해 피해자들의 개인적 고통의 사회적 의미를 파악하고, 그것이 지속되는 조건을 살펴보며 역사적으로 맥락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다.[9] 제1세대 운동가들은 “가부장적 차별 사회 속의 젠더 문제를 비롯해 계급, 민족,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냉전질서 등이 교차하는 현실”을 살아낸 주체들로서 포스트 식민시대에 여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간 피해자들의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다.[10] 따라서 피해자가 일생 동안 겪은 고통을 ‘역사’로 서술하는 작업에 초기 또는 제1세대 운동가들의 증언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김문숙 회장의 소장자료에는 본인이 직접 운영한 부산정대협과 여러 여성단체 관련 자료를 비롯해 피해자들의 삶과 관부재판 과정이 담긴 기록들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군‘위안부’ 운동 관점에서 ‘민족과 여성 역사관’의 전시자료를 살펴봤을 때, 관부재판 과정에서 일본 시민사회와 전문가들과의 연대 활동이 두드러진다. 실질적으로, 운동 초기 단계부터 김문숙 회장은 수차례 일본 방문과 일본 피해자 및 피해자 지원단체,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출판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그가 설립한 여성단체의 여성 성폭력 피해자 구제 및 보호 지원체계 구축 과정에 일본 여성단체의 긴밀한 협조가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부산에서 진행된 초기 일본군‘위안부’ 지원 운동과 관부재판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본 시민사회와의 연대 활동 및 그 이후의 이야기가 전시자료에 구체적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같은 맥락에서, ‘민족과 여성 역사관’의 전시자료를 지역의 관점에서 살펴본다면,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전시물이나 자료 또한 찾아보기 어렵다. 기존 전시자료에는 재판을 위해 시모노세키에 배편으로 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부산이 위치한다는 점이나 일본군‘위안부’들의 삶의 공간이자 운동의 공간적 배경으로 부산이 등장한다. 하지만 부산 거주 피해자들의 생활 공간이나 개인적인 소장품, 유품 등의 전시를 통해 지역민으로서 그들의 삶의 조건이나 현실을 보여주는 전시자료는 거의 없다. 또한 그들을 지원했던 활동가들과의 상호교류를 보여줌으로써 부산의 피해자들이 누구와 어떤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운동가로 변모했는지, 또는 운동에 참여하지 않을 때 부산 ‘아지매’이자 ‘할매’로서 어떤 일상을 살았는지 보여주는 자료가 부재하다. 앞서 기술했듯이, 지역민으로서 그들의 삶의 공간과 생활 공동체와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들은 일상사와 생활사적 차원에서 일본군‘위안부’의 삶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재 진행 중인 김문숙 회장의 수집자료 정리 과정에서 부산 출신 피해자들의 일상사와 생활사를 보여주는 유용한 자료가 발견되기를 희망해본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지역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의 공간과 생활 조건, 사회적 관계 등에 초점을 맞춘 자료나 연구 결과물이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을 포함한 경남지역에 일본군‘위안부’로 등록된 피해자 수가 가장 많다고는 하지만, 실제 지역에 초점을 맞춰서 일본군‘위안부’ 동원 체제나 동원 과정과 귀환, 귀환 후 생활에서 드러난 특성 등을 고찰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점도 지적된 바 있다.[11] 지역과 지역성에 초점을 맞춘 자료와 연구 부족 문제는 현재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을 추진 중인 경상남도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적으로, 김문숙 회장의 별세와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 소장자료 목록화 및 기획 전시 사업을 계기로 부산을 포함한 경상도의 일본군‘위안부’ 운동, 부산과 일본 시민사회 간의 연대 활동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재평가와 연구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이는 획일화되고 전형적인 이야기 뒤에 숨겨진 지역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숨겨진 역동성을 찾아내는 일이자, 일본군‘위안부’ 연구의 지평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각주
- ^ 남영주,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기관의 기억재현과 기억의 확장: 민족과 여성 역사관의 사례를 중심으로”, 『인문사회 21』, 2017, pp.129-148. p.139.
- ^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부산 ‘민족과 여성 역사관’ 소장자료, 여성인권을 위한 공공역사 기록물로 재탄생: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민족과 여성 역사관 소장자료 관리·보존을 위한 업무협약(MOU) 체결”, 보도자료, 2022.4.29.
- ^ 이지은, “일본군 ‘위안부’ 운동 초기 증언의 교차적 듣기: 『조선인 군대 위안부(朝鮮人軍隊慰安婦)』(1992)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2(1993, 1997)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제 42호, 2021, pp.61-96. p.65.
- ^ 이유미, “시론-위안부 문제와 정의연 운동의 쟁점”, 『사회진보연대』 172호, 2020, p.-126. p.65.
- ^ 이지은, 2021, p.65.
- ^ 앞 저자, p.65.
- ^ 문소정, “부산의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사이성에 관한 연구: 부산정대협을 중심으로”, 『항도부산』, 2021, 제 41호, pp.471~499. p.483.
- ^ 앞 저자, p.481.
- ^ 신동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연구의 새로운 방향 모색: 식민지 시대의 피해자에서 포스트 콜로니얼 시대 여성으로의 전환”, 2022, pp.5-9. p.7
- ^ 앞 저자, p.9.
- ^ 강정숙, “경상남도 일본군‘위안부’ 역사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 <경상남도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 추진방안 도민 소통 포럼> 자료집, 2021, pp.16-22. p.19.
연결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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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양국의 시민들과 함께 ‘위안부’문제에 관한 공동연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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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기림의 날 특집] 문제의 극복을 위하여 위안부 이슈 관련 역사 인식을 한일 시민들이 함께 다각적으로, 냉철하게 연구 검토하면서 공동의 인식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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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를 통해 본 증언을 기록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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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기림의 날 특집] 증언 기록은 여전히 도전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도전이 있어야 더 많은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글쓴이 문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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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 국제관계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