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를 통해 본 증언을 기록하는 일

강유가람

  • 게시일2022.08.19
  • 최종수정일2022.09.23

2022년 기림의 날 특집: 현재진행형 ‘위안부’ 역사와 공존을 향한 연대

1991년 8월 14일, 대한민국 생존자 최초로 김학순 님이 공개 증언하고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한 세대의 통념적 주기가 지난 지금, 일본군‘위안부’ 역사는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 침해를 상징하는 초국적 참조점이 된 동시에, 여전히 ‘현재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웹진 결은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 11주년인 2022년을 맞아, 경계를 넘어 ‘위안부’ 역사를 확장해 나가고 있는 다양한 행위자들을 조명합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해온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 미투(Me Too)와 위드유(With You)로 성폭력과 여성혐오에 맞선 젊은 여성들,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비판적 담론을 생산하고 후속세대를 교육하는 연구자들, 전쟁과 제노사이드, 이민자와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해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위안부’ 역사의 교훈과 함께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을 만나보시죠.   

 

 

1. 다큐멘터리 <애프터 미투>를 제작하기까지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는 JTBC 뉴스 인터뷰를 통해 안태근 전 법무부 국장의 성추행을 폭로했다. 이후 한국 사회는 거대한 미투 운동의 시간으로 돌입했다. 

다큐멘터리 <우리는 매일매일>(2019) 제작을 위해 한창 촬영하던 과정에서 만난 출연자들도 이 미투 운동의 흐름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 역시 제주도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직장 내 성폭력 1심 무죄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를 촬영할 때 함께 분노하는 마음이었다. 미투 운동을 의심하거나 피해자를 공격하는 사회 분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집회에도 참여해 같이 소리를 질렀다. 2심 재판을 방청하기 위해 아침 일찍 법원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 떨렸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 재판정에 모여들었던 여성들의 목소리와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여러 현장의 열기를 다큐멘터리를 통해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렇게 생겨났다. 

<애프터 미투>(2021)는 미투 운동 이후 한국 사회와 여성들의 일상이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다큐멘터리다. 세대가 다른 여성 감독들의 시선을 모으고 연대하는 실험을 하기 위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됐다.

우선 박혜미, 남순아 PD와 함께 기획팀을 구성했다. 기획팀은 ‘미투 운동’이라고 했을 때 바로 떠오르는 상징적인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안에서 도출된 사회적 과제들을 정리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의 목적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기 기획안은 언론에 주로 노출됐던 현장들과 이슈를 골자로 했다. 이후 박소현, 이솜이, 소람 감독이 연출로 합류하면서 기획안은 변경됐다. 

당시 한국 사회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등 성차별적 강간문화가 드러나면서 새로운 기술이 여성들을 더 착취하고 있는 구조를 목도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여성들이 어떤 시간들을 통과하고 있는지, 미투 운동에서 놓친 질문은 무엇인지가 우리 안에서 중요해졌다. 제작진으로 합류한 감독들도 각자가 접속하고 있는 현장, 혹은 접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현장이 존재했다. 이에 제작진은 치열한 논의 끝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현실과 미투 운동에서 ‘잊혀진 목소리’에 주목하기로 했다. 수정된 기획안에서는 미투 운동 과정에서 비교적 덜 주목받고, 혹은 주변화되었으며, 논의 선상에조차 서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목소리들을 전면화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는 <여고괴담>,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이후의 시간>, <그레이 섹스> 등 네 가지 에피소드로 완성됐다. 형식 자체로 목소리에 오롯이 집중하는 작품, 퍼포먼스와도 같은 증언에 집중하는 작품, 몸짓으로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그림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작품 등 다양한 방식으로 영화는 연출됐다. 각각의 이야기 속 인물과 공간은 구체적이고 미시적이면서도 복합적인 현장을 그대로 담게 되었다. 

 

2. <애프터 미투> 개별 작품의 문제의식


네 편의 작품은 다양한 형식으로 제작됐지만 ‘출연자의 증언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가 모든 작품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여고괴담>은 스쿨 미투를 다루고 있다. 학교 공간 내에서 사라지지 않는 괴담과도 같은 가해자들의 재현, 동시에 이 괴담을 부숴버리기 위해 움직인 목소리들이 전면화되어 있다. 이 목소리는 변화하지 않을 것 같은 암담한 흑백의 사진 속 학교 공간의 권위와 폭력성에 균열을 일으킨다.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어린 시절과 결혼 생활에서의 폭력 경험을 40대에 이르러서야 말할 수 있었던 인물인 ‘행복’을 다루고 있다. 행복은 구체적인 피해를 이야기하기보다는 폭력으로 인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했는지 성토한다. 그리고 피해로 인해 피폐해진 자신의 삶을 용서하기로 선포한다.

<이후의 시간>은 문화예술계 내 피해자이면서 연대자였던 출연자가 커뮤니티의 자정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왔는지 그려낸다. 공동체 내엔 피해 당사자와 가해자, 연대자만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증언을 듣고 함께 해결해야 할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점 역시 보여준다.

<그레이 섹스>는 동의와 비동의의 간극, 친밀한 관계 내 여성들의 의사소통과 협상 방식에 대한 도전적인 문제의식을 보인다. ‘틴더’(데이팅 앱)와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며 친밀함을 갈구하는 여성들이 처한 상황, 그리고 연애 관계에서 스스로에 대한 판단을 중지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 등 가부장적 사회의 고착화된 관계 안에서 여성은 자신의 감정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그레이 섹스>의 경우는 여전히 강고한 차별적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면서도 동시에 증언자를 보호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 내부에서 가장 많이 토론했던 에피소드다. 

이처럼 <애프터 미투>의 구체적인 내용은 미투 운동 시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사례들에서 조금 비껴나 있다. 제작진은 일반 관객이 이 이야기들과 미투 운동을  연결 지을 수 있도록 ‘맥락’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증언은 전형적일수록 파급력이 있고, 지지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반면에 전형적이지 않은 증언일수록 피해를 의심받으며, 왜곡된 시선과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이런 상황 때문에 전형적인 방식으로만 증언이 유통되고 기록된다면 다양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증언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자들이 종종 갖게 되는 문제의식도 여기서 발생한다. 출연자의 증언을 전형적이지 않게 재현함과 동시에 출연자의 피해를 더 적극적으로 담론화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제작진은 이러한 난관 앞에서 증언을 어떻게 맥락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고민들에 대한 답과 결론을 내렸다기보다는 그 고민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 속에 이 다큐멘터리를 위치시키는 도전을 하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여성들의 역사를 다시 되짚기로 한 것이다. 

여성 연대의 물결 2 ⓒ백정미

 

3. 증언을 들을 준비 


미투 운동은 2017년 미국 할리우드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시초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한국 사회에서는 생존자의 말하기가 오래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우리는 그 말하기의 시작을 어디로 잡을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 논의의 결과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님의 증언이다. 여성들은 이전부터 성폭력에 대항하여 자신의 피해를 증언해왔으며 그 길을 개척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한 ‘생존자말하기대회’도 그 연장선에 있다. 비록 널리 알려져 있진 않지만 2000여 명이 넘는 여성들이 생존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왔다. 2017년부터는 ‘#OO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다양한 문화 예술계 내 성폭력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피해자들이 존재했다. <애프터 미투>는 2018년의 폭발적이었던 미투 운동의 흐름 역시 한국 사회의 여성들이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던 토대 위에서 일어난 운동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화두를 던지기로 했다. 

사실 생존자들의 외침이 계속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사회가 듣지 않으려 했던 탓에 2018년 미투 운동의 폭발력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 같다. 미투 운동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누구나 자신의 피해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지만, 동시에 이 피해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피해가 위계화되고,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나는 증언은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사회의 왜곡된 인식 때문에, 피해자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거나 사회적인 틀 자체를 깨야 하는 이중 굴레에 놓여 있다.

언론이 주목했던 여러 미투 사건 중에서도 피해자가 소위 ‘피해자다움’에서 벗어난 사건은 ‘대중’에게 지지는커녕 공격을 받았다. 또한 ‘대중’은 가해자가 누구냐에 따라서도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전도유망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 가해자라고 하면 피해자의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입맛’에 맞는 피해에 주로 공감하며,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악마 같은 가해자만을 가해자로 인정한다. 사실 가해자의 전형도 존재한다. 가해자의 전형이 아닌 사람에 대해 말하지 않을수록, 가해자가 권력관계를 이용해 사람을 가려가면서 폭력을 저지른다는 사실은 감춰진다. 

증언을 듣고 해석할 수 있는 장이 한국 사회에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운동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익숙한 담론은 반일 감정을 자극하여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더 널리 퍼지게 했지만, 전형성의 외곽에 놓인 이야기들은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보드랍게>(박문칠, 2022)에서 조명한 김순악 님의 사례처럼 전 생애에 걸친 여성의 피해가 사회적으로 이해되려면 한국 사회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준비가 필요할까. 

 

4. 더 많은 증언이 펼쳐지기 위해 


<애프터 미투> 속 출연자들도 그렇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단일하지 않다. 삶의 배경, 일 경험의 차이가 존재한다. 단일하지 않은 삶 위에 폭력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우리는 대체로 무지하다. 이미 있었던 목소리들도 사회의 무지로 인해 가려지고 만다. 증언은 공론장이 존재할 때 그 정치력을 펼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위계와 폭력의 경계를 흐리고, 우리의 몸을 뒤흔들고, 생각을 깨는 목소리가 펼쳐질 장이 더 절실해진다. 

동시에 제작자는 증언을 기록하여 대중에게 공유할 때, 어떤 서사가 친숙하게 다가가는지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친숙함에 기대어 익숙한 방식으로 기록하면 자칫 피해자다움을 재생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증언 기록은 여전히 도전을 필요로 하는 일이며, 도전이 있어야 더 많은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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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유가람

영화감독. 주요 작품으로 <애프터 미투>(2021), <우리는 매일매일>(2019), <시국페미>(2017), <이태원>(2016), <진주머리방>(2015), <모래>(201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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