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 이베코비치-백영경 대담] 젠더화된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우리 시대의 여성 연대

라다 이베코비치(Rada Iveković) 백영경

  • 게시일2022.08.11
  • 최종수정일2022.09.23
이 인터뷰는 영문웹진 KYEOL에 게재된 “Women’s Solidarity in Our Troubled Times of Gendered Violence and War“를 국문으로 옮긴 것입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철학자 라다 이베코비치(Rada Iveković) 교수와 인류학자 백영경 교수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대담에서는 남성화된 전쟁과 여성화된 피해라는 기존 틀을 벗어난 토론이 이루어지리라 기대된다. 두 연구자들의 역사적 통찰과 연대를 향한 비전이 더해진다면, 전쟁의 젠더화와 특정 기억의 형성 과정 뒤에 있는 국가 통제, 민족주의, 가부장제의 삼위일체를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백영경, 라다 이베코비치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사회주의의 붕괴와 여성에 대한 역풍

 

백영경

역사적 맥락에서부터 시작해보려 합니다. 가장 잘 알고 계실 유고슬라비아의 분할과 해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데요.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사회주의가 해체되는 동안 일어났던 정치적, 사회적 변화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그러한 분할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전쟁의 젠더화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도요.
 

라다 이베코비치

1989년 이후에 공공연히든 아니든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경험했던 구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사회 재산과 공유 재산이 하룻밤 사이에 팔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야말로 대대적이고 급격하게 이루어진 이런 매각 사태를 주도한 세력은 지역의 조직폭력배, 정치인, 마피아들로, 이들은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새로이 자본주의를 이끌어갈 과두 지도 체제를 형성했습니다. 산업, 토지, 인력이 헐값에 이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이들은 외국인 투자자와 협력자들과 함께 착취한 자원을 팔아넘겨 부를 축적하는 데 혈안이 되었죠. 사회주의 몰락 직후에 구 사회주의 국가 주민들, 특히 구 소련 주민들은 극심한 빈곤과 굶주림, 기대 수명의 감소에 시달렸습니다. 약탈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주민들은 필요한 물건이나 시설을 확보할 수 없게 됩니다. 무법 상황이 펼쳐졌고, 유럽 내 탈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대규모로 갱스터리즘이 확산되었습니다. 인권은 설 자리를 잃었고, 여성 인권의 상황은 더 심각했죠. 1989년 직후 유고슬라비아에서처럼 전쟁이 발발하자 모두에게 최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특히 여성에게는 더 그러했습니다. 이 가운데 약탈과 법치주의의 전면적 파괴가 지속되었고, 이런 과정이 전쟁과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여성의 권리와 관련해서는 항상 합의, 협상, 동맹,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다양한 유형의 현 지배 체제, 남성 지배 체제 하에서 타협이 가능한 대상인 것이죠. 여성은 사회주의 시절에 보장받았던 인권을 오히려 탈사회주의 시대에 상실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명목상이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인권뿐 아니라 여성으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면, 이제 이 모든 것이 파기된 상황이었어요. 더는 과거처럼 권리 보장을 근거로 국가에 지원을 요청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일들은 이 시기에 재가부장제화(repatriarchalization) 흐름과 무관한 국가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백영경

분단과 통일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제 보편적 민주주의에 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보편주의(universalism) 혹은 보편적 민주주의가 현재 맥락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라다 이베코비치

제가 생각하는 보편주의는 인간 전체, 즉 우리 모두를 평등한 기반에서 포용하는 것입니다. 보편적이라는 말 자체가 전체를 의미하죠. 이 보편적인 전체는 수많은 특수성과 차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특수성들 가운데 지배적인 것이 보편주의가 되는 일이 정치적으로 자주 일어납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원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모든 특수성, 모든 차이, 모든 소수자, 모든 감수성이 가시성과 권리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보편적 민주주의의 추상적 얼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라면 나는 보편적 전체를 옹호한다고 말할 수 있어요. 보편성을 옹호한다고도 표현하겠습니다. 그동안 사회 과학과 좌파 운동의 내러티브에서는 보편성이 기각되어 왔죠. 하지만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보편주의자이기도 하므로 이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여성만을 위해 일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그러길 원하죠.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는 보편적 민주주의를 의미합니다. 물론, 이상적인 설명이 그렇고 실제로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가 가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항상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종속시키거나 해 왔던 예들을 통해 우리가 그 이상에 더 가까워지거나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죠. 여성의 경우는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지만, 종속되는 쪽입니다. 그러나 물론 우리가 원하는 건 그 이상입니다. 또한 보편적 민주주의는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라서 실제로 적용 시에 민주주의를 담보할 가능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기에 개념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우리는 의회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죠. 이상보다 현실은 항상 부족한 법입니다. 하지만 이상향과 이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더 추상적인 경향을 띠게 됩니다.
 

백영경

현대적 형태의 젠더 갈등에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또한 현재 상태에서 민족주의를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라다 이베코비치

민족주의가 항상 갈등의 원인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다른 이유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조차도 민족주의의 형태를 취하는데, 세계화에서의 전반적인 파편화(fragmentation) 현상 때문입니다. 세계화에는 두 층위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세계성(globality)의 층위, 즉 우리가 상호 연결된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파편화된 세계화라는 상황에서 폭력, 특히 여성에 대한 폭력이 더 현저화되고 가시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성은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여성들이 가부장주의 공동체들의 반발과 마주했죠. 많은 나라에서 여성 살해와 여성 대량 살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성의 생명에는 아무 가치가 없다는 듯이 말이죠. 이런 특징은 비교적 최근부터 생겨났지만, 예전에도 아예 없지는 않았죠. 그렇기는 해도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한편, 전쟁 중에 나타나는 또 다른 현상이 바로 대규모 강간입니다.

이 역시 예전부터 있어 온 일이죠. 한국의 '위안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나 '위안부'가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여성은 다른 어떤 이유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합니다. 이런 문제는 항상 존재해 왔지만, 최근에는 #MeToo 운동과 다른 페미니스트 운동, 학술 운동을 통해 더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되었죠. 이 모든 것이 미완의 이야기로, 세대를 거쳐 계속될 그런 일입니다. 요약하자면, 여성에 대한 반발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많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재건에 기본적으로 뒤따른 현상들이 재가부장제화, 군사화, 원시화, 그리고 폭력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고,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여성들은 '여성 파업(women's strike)'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이 개념은 노동 계급의 역사와 여성의 역사 모두에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폭력의 규모가 커지면 동시에 여성의 저항이 일어납니다. 한 현상이 다른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폭력이 더 심각한 양상을 띨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생각하고 저항할 것입니다. 이런 움직임은 여성뿐 아니라 여성화된 개인과 신체, 또는 여성과 동일시되는 사람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꼭 여성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유색인종, 장애인, 영향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 이민자, 외국인, 사회 계급이나 신분 계급의 하위층에 속하는 사람들로도 구성될 수 있죠. 모두가 미래를 위한 공동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여성만을 위해 싸울 수 없어요. 우리에게는 협력자가 필요합니다.

여성 연대의 물결 5 ⓒ백정미

 

여성 평화 운동과 2015년 구 유고슬라비아 여성 법정
 

백영경

2015년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 국가 여성 법정에 직접 참여했던 당신의 경험에 한국 청중들과 독자들이 많은 관심을 가질 듯합니다. 앞서 언급하신 폭력과 저항의 동시적 진행이 유고슬라비아 전쟁 기간에는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습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저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유고슬라비아 페미니스트 세대입니다. 당시 저는 젊은 나이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었고, 페미니스트 문학 연구를 위한 워킹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연구하고, 읽고, 쓰고, 출판하는 일을 했죠.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은 사회주의가 붕괴된 상황에서 경제적 이유로 발발했습니다. 연방 정부는 무너졌고, 사람들은 하룻밤 사이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도움을 청할 만한 최고 기관이 부재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지역 정체성(그리고 민족주의)에 몰입하는 결과가 빚어졌는데, 더는 연방 국가에 의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유고슬라비아는 연방 국가로 6개 공화국 중 5개 공화국의 국민들이 각기 다른 국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들에서도 지역 정체성 운동이 일어났고, 이 운동은 민족성 중심주의(ethnicism) 운동으로 발전합니다. 민족성은 보통의 경우 국적보다는 하위의 구분이지만, 원리 면에서는 국적과 동일한 구분입니다. 이 모든 이데올로기(정체성주의, 민족성 중심주의, 민족주의)는 여성 혐오와 닿아 있습니다. 이런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와 관련해서 볼 수 있는데요. 그들은 가부장제 질서를 재도입하려 하고, 그럴 때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은 여성의 권리를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죠.

곧 여성들은 평화 유지를 위해 그룹을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평화 운동으로서 시작된 움직임이었죠. 여성들은 새로운 국경을 넘나들며 그룹을 형성하고, 소통하고, 탈영병들과 협력 그룹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운동에는 희생자였던 여성들, 즉 '위안부'와 같은 대량 강간의 희생자들, 혹은 전쟁 남자들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다는 의미에서 '희생자'들이었던 여성들도 참여했습니다. 이 페미니스트 운동은 구 유고슬라비아 전역에서 다양한 여성 그룹과 협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운동은 기본적으로 평화 캠페인으로 시작했고, 종전 후 오랜 뒤인 2015년에 이르러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2015년은 우리가 '구 유고슬라비아 및 승계국을 위한 여성 국제 법정(Women’s International Court for the Former Yugoslavia and Successor Countries; 이하 '여성 법정')을 열었던 해였습니다. 

이는 전쟁 기간과 그 이후의 20년 동안 이 지역에서 페미니스트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러한 활동은 처음부터 여성의 사회적 재건을 위해 시작된 하나의 긴 과정으로서 중요성을 지녔죠. 그 의의는 여성은 물론 전반적인 사회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주체성의 재건에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전반적인 페미니스트 혁명을 의미했죠. 우리는 여성이 전시 및 전후의 희생자일 뿐만 아니라 평화 시에도 희생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성 법정을 이보다 더 앞당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양한 국적의 여성들 간에 연대를 구축하려면 이 모든 선행 작업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죠. 서로 다른 국적 하에서 남성들은 서로를 죽였지만, 여성들은 기꺼이 대화하기를 원했습니다.


구조적 불평등으로서의 여성 문제
 

백영경

한국의 경우 과거 가부장적인 국가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 표현들은 '위안부' 관련 논란에서 볼 수 있듯 전시 성폭력을 범죄로서 규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의 상황도 달라졌고, 이제는 여성의 고통을 수치와 불명예의 문제보다는 민권 침해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국가가 여성의 구원자이자 여성 인권의 궁극적인 보증자로 인식되는 경향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주지하고 계시듯, 여성 시민의 몸은 아직도 국가나 민족의 영토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와 같은 내러티브와 상상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조언이나 견해를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한국과 유고슬라비아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봅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여성들은 전쟁 동안 국가가 아니라 그들과 같은 국적 공동체, 민족 공동체에 의해 '국가화(nationalized)'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지역의 가부장주의 공동체들에 의해 국가화된 것입니다. 또한, 여성에 대한 폭력이 있었던 지역들의 가부장주의 공동체들은 서로 협력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여성 문제를 놓고 볼 때 어떤 의미에서는 협력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에 그들은 여성을 서로 사고 팔거나 인신매매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이들 공동체는 각각 가장 강력한 가부장제의 회복이라는 목표에서는 뜻을 같이 했습니다. 어떤 국가 당국도 한국이 일본과의 관계에서 혹은 '위안부' 문제의 제도화를 통해서 보여줬듯, 전시 강간을 타 국가와의 외교 관계나 대화의 대의나 무기로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문제 자체가 국가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문제는 탈국가화되어야 하죠. 그렇게 될 때 여성은 국가의 문제를 넘어 여성 문제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성 문제와 젠더 질서는 사회와 국가 모두의 구조를 반영합니다. 사회와 경제 체제, 정치의 측면에서 이 문제들은 구조적이며 또한 근본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우리는 국가의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는 쉽지 않은 일이고, 모든 여성들이 그렇게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치렀던 대가는 2015년 여성 법정 당시 언론의 철저한 무시였습니다. 하지만 여성들은 이미 알고 있죠. 집권자들은 끈질길 정도로 이런 문제들을 정치적인 문제로 다루기를 거절합니다. 우리는 정론(政論)이나 여론, 혹은 정치적 여론의 측면에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카이빙(기록 보관)의 측면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여성 법정에 참여한 여성들은 생존해 있었고, 우리는 그 여성들과 또 다른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자료가 유엔에 제출되었고, 유엔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잘 알고 계시듯, 1990년대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성폭력 및 강간과 관련한 두 주요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바로 결의안 1820호와 1888호입니다. 결의안과 법이 마련되었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 대한 사회적 해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육과 사회 사업이 필요하죠. 여성을 종속적인 위치에 두는 것은 국가만이 아닙니다. 사회이기도 합니다. 국가와 사회 모두 수직적이고 가부장적이며 서로에게 일조합니다. 여성은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갈 협력자를 사회 내에서 찾아야 합니다.

 

인정(認定)으로서의 정의

 

백영경

이러한 '위안부' 문제, 젠더화된 전시 폭력, 또 다른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정의의 문제로 고민하게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정의의 의미를 어떻게 정립할 수 있을지요? 이 문제들에 대해 정의를 실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또한 정의는 어떤 형태를 취할 수 있을지도 궁금합니다. 어떤 초국가적인 형태가 되어야 할까요, 혹은 보다 지역적인 형태를 취해야 할까요? 당신의 의견을 나누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정의에 관해서라면 당연히 법이 존재합니다. 국제 재판소에서는 국제적 정의가 실현되어야 하죠.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희생자들은 아직도 삶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보스니아에서는 상당수의 여성이 민족주의 전쟁 중에 남편과 아들을 잃었습니다. 죽은 남성들의 미망인과 어머니들은 그곳에 남았거나 다른 곳으로 흩어졌습니다. 더는 그곳에서 살 수 없었으니까요. 그들에게 정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정의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정의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돌려줄 수 없습니다. 하지만 NGO와 페미니스트 단체들이 유족과 함께 인정(認定)을 위한 작업을 해나갈 수 있죠. 여기서 인정은 희생자로서의 지위와 상실에 대한 인정, 정치적 주체로서의 인정을 말합니다. 이러한 인정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공개적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법정이나 재판소에서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학살을 자행한 장본인들에게서 인정의 여론을 얻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다양한 여성 단체 중 '우먼인블랙(Women in Black)'이라는 이름으로 베오그라드에서 활동 중인 단체가 있습니다. 동료들과 놀라운 업적을 이뤄 온 스타샤 자요비치(Staša Zajović)가 설립했죠. 이 단체는 전쟁 기간 내내 활동했고, 현재는 구 유고슬라비아 지역 전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인터뷰, 연구 자료, 거리 행동에서 빼놓지 않는 것은 세르비아의 전쟁 범죄를 공개적으로 규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리 행동에서 정기적인 행사는 단체 회원들이 검은 옷을 입고 베오그라드의 주요 광장에 서서 지역 민족주의자들을 고발하는 증언에 나서는 일입니다. 활동가들은 국가의 이름으로 국내의 다른 지역과 타 국가에서 자행되었던 일들을 증언합니다. 매우 용감한 행동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민족주의자들의 공격과 폄하에 자주 노출되어 왔고, 주류 언론을 통해 알려지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이야말로 정의의 필수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법정이 무엇을 하는지와는 무관하게, 이러한 활동을 통해 전범인 가해자들에게 그들이 응당 짊어져야 하지만 알고 싶어하지 않은 책임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영경

이런 유형의 폭력 문제들이 법정으로 가면, 초점이 지나치게 '보상'에, 즉 한국적 맥락에서는 '금전적 보상'에 맞춰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정의 여론 형성을 가장 중요한 첫 단계로 강조해주신 점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매우 중요하지만 완료되지 않은 단계죠. 아직은 그렇다고 보여요. 그것이 이 문제가 미해결로 남아 있는 이유이고, 여성 법정이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 있는 이유기도 합니다. 여성 단체들은 계속해서 동일한 사안에 대해 활동하면서, 다른 새로운 사안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 세대로 이 과업을 이어가는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세대 교체가 진행 중이고 이는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이민자 문제도 다루어야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국가들은 유럽에 정착하고자 하는 이민자들의 주요 경로인 '발칸 루트(Balkans Route)'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가는 나라마다 좌절을 경험합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다가, 결국 어떤 해결책도 없이 이들 나라에 발이 묶이게 됩니다. 이것이 지금 유럽 전역과 국경 지역에서 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끔찍한 상황입니다. 이민자 여성들이 겪는 문제도 있습니다. 자녀를 둔 많은 수의 여성들이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이주하는 과정에서 반복적인 강간, 인권 침해, 믿기 힘든 수준의 폭력과 같은 끔찍한 경험을 합니다. 그렇기에 이 여성들에 대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여성 단체들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를 돕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입니다. 전통적으로 이런 일은 돌봄 노동의 일부로 간주되죠. 우리는 전통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이 경우에는 절대 그럴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전통도 유용할 때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은 현재 이민자로서 예외에 가깝습니다. 다른 지역 출신의 이민자에 비해 우크라이나인은 유럽연합에서 상대적으로 환대받는 대상입니다. 우크라이나인에게는 유럽 전역을 이동하고, 유럽연합 내에 발을 들이고, 숙박 시설은 물론 일자리를 찾을 수도 있는 권리가 주어집니다. 그들은 또한 백인이기도 합니다. 다른 이민자들은 이와 같은 관심을 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대우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유럽 우월주의자들이 곧 우크라이나인에게 등을 돌린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우월주의자들은 곧 그들을 침입자로 보기 시작할 것입니다. 지금으로 봐서는 아직까지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 듯합니다. 유럽인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럽 전역의 여성 단체가 이들 이민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백영경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민족주의

 

백영경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어떤 동기로 움직이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세계를 대상으로 착취의 기회를 확대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강력한 욕구가 작용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무엇이 러시아를 지금과 같은 국수주의(ultra-nationalist) 전쟁 범죄 기계로 변질시키고 있는지, 그 동기에 대한 관점을 나누어 주셨으면 합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확실히 전쟁 기계라고 말할 수 있죠. 제 견해로는, 러시아의 경우 민족주의가 전 국민을 균질화하는 도구로서 이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세계화의 산물인 일반화된 민족주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푸틴을 비롯해 유사한 전쟁을 치렀던 유고슬라비아 출신 국가의 지도자들은 지지를 얻으려 민족주의를 옹호합니다.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우리는 이런 전략이 얼마나 빠르게 성공을 거두는지 목도했고, 충격을 받았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항상 TV를 통해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에는 탱크 한 대와 카메라 한 대만 있으면 전 국민을 선동하고 국가적 문제라는 프레임을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탱크 사진 한 장과 동영상 한 편, 그리고 지역 민족주의의 개념이 무엇이든간에, 이 모두에 한마디만 덧붙이면 충분했습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그들이 우리 국민에게, 여자들에게, 아이들에게 한 짓입니다." 이런 식이었죠. 유고슬라비아 전쟁 초기에 바로 이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푸틴은 손쉬운 전략인 민족주의를 통해 지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의 목표가 러시아 제국을 재건하고 소련이나 그 영토를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재건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푸틴이 과연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에서 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무기한으로 지속될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런 일련의 계획은 민족주의의 측면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목표는 직접적으로 국제적이거나 초국가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그 영향은 전 세계적일 것입니다. 한편, 푸틴 개인의 문제도 확실히 부분적으로는 이런 사태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고슬라비아에도 지나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혔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푸틴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면 해결책은 없습니다. 푸틴에게는 뛰어난 수완이 있고, 현재로서는 러시아 국민 다수의 지지도 있으니 아마 오랫동안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유럽연합이 공약을 내놓고는 있지만, 이들 국가들이 개입을 원치 않는 까닭에 우크라이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 세계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관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태에 개입할 것이고,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역시 개입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국민은 전쟁의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 다름없이, 여성이 치르는 대가는 더 큽니다.
 

백영경

무척 복잡한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저는 자주 가부장제를 독버섯에 비유하곤 하는데요, 하룻밤 사이에 생겨나 그 자리에 있나 하면 갑자기 커버리죠.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이런 비슷한 점을 지적해 주신 것 같습니다.
 

라다 이베코비치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만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형태의 민족주의는 다른 반대되는 형태의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키죠. 민족주의가 한 가지 형태만을 취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적어도 둘 이상이거나 그보다 더 늘어나야 만족하죠. 전 세계적으로 이 민족주의야말로 우리 시대의 전쟁 기계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성에게는 이를 가능케 할 에너지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여성은 민족주의적 편협함을 초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은 국경을 넘어 협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유고슬라비아 전쟁 기간에도, 이 전쟁에 개입된 국가의 여성들조차 국경을 오갈 수 있었습니다. 남성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죠. 지금 우크라이나인의 상황처럼, 남성은 전쟁에서 싸워야 하는 존재이기에 국경을 넘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은 공격적인 존재로 보이지 않죠. 이것이 여성이 부정적이고 불리한 상황에서 유일하게 누리는 이점입니다.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를 오가면서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를 형성하며, 함께 저항할 수 있습니다.
 

운동(activism)을 통한 학습: 세대 간 여성의 연대
 

백영경

이베코비치 교수님께서는 오늘 다양한 생각과 지성뿐 아니라 인내와 용기까지 아낌없이 나누어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시기에 이 위험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동료 여성 시민, 특히 젊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나 제안이 있으실까요?
 

라다 이베코비치

우선 백영경 교수님께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는 비슷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고, 그래서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젊은 여성들에게 내가 해줄 만한 이야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기꺼이 나누고 싶지만요. 그래도 꼽아 보자면, 내가 보기에 페미니즘이 한 가지 특별한 난제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운동을 이어나가는 일입니다. 어떤 페미니스트 단체가 특정한 일을 해온 경우, 자신들을 대신할 사람들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가 많습니다. 단체에 젊은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젊은 세대에서는 기꺼이 도전에 응하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이들이 드물다는 것입니다. 젊은 여성들은 다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할지 감이 잡히지 않네요. 이러한 어려움은 세대 교체, 아마도 세대 차이에서 연유하는 듯합니다. 또한 각 세대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의 차이에 기인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은 우리는 오늘날 젊은 여성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거나 상상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한국의 '4비(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 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입니다. 이런 접근은 매우 독창적이기도 하고, 결혼을 비롯하여 그들이 원치 않는 이 구체적인 네 가지가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세대가 상상할 수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놀랍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 세대에서 성취해야 하지만 성취할 수 없을 모든 일들에 대한 약속으로도 느껴집니다.

저는 인류 공통의 입장에서 나이 든 활동가와 젊은 활동가가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서로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 세대에게 배울 뿐 아니라, 기성 세대도 젊은 세대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합니다. 운동을 통한 학습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운동을 통해 정치에 대해 배웁니다. 이는 우리 시대에 나타난 새로운 특징입니다. 우리는 운동을 통해 개인적인 정치적 경험을 얻어 정치에 대해 학습합니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두드러진 새로운 특징으로,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안을 두고 함께 일할 협력자를 얻게 되면, 서로가 중시하는 사안과 관점을 경시하는 대신 존중하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 세대는 "아니요, 당신들은 여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라는 말을 듣곤 했습니다. 이것이 여성 운동과 액티비즘이 오늘날에도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고, 결코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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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라다 이베코비치(Rada Iveković)

구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프랑스 교육자, 철학자, 작가. 파리제8대학교(Vincennes à St. Denis) 철학과와 파리 국제철학대학(Collège International de philosophie)에서 교수를 지냈다. 최근 저서로는 『이주, 새로운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부유한 국가들의 봉쇄에 대한 인식론적 관점(Migration, New Nationalisms and Populism: An Epistemological Perspective on the Closure of Rich Countries)』(2022)이 있다.

글쓴이 백영경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여성의 건강 및 건강 관리, 역사적 기억 및 사회적 고통을 연구 주제로 삼아 왔다. 최근에는 기후 위기와 돌봄 및 커먼즈를 연결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백영경은 시민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 조화롭고 생태적인 삶, 역사적 기억의 문제가 건강한 삶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에 주목한다. 계간지 『창작과비평』의 편집위원이며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코로나19와 일상의 사회학)』, 『배틀그라운드(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다양한 분야 학자들의 인문학적 소통과 상상)』, 『프랑켄슈타인의 일상(생명공학시대의 건강과 의료)』의 공동 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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