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란 무엇인가 <1부> -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다

웹진 <결> 편집팀

  • 게시일2022.07.25
  • 최종수정일2022.07.25

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학술의 장이 마련될 때면 청년·미래 세션이 빠지지 않는다. 피해 생존자와 연결된 실질적 감각이 부재한 포스트 메모리(후-기억) 세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실 여성학, 법학, 외교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는 축적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공론화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웹진 <결>은 이들의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 일자: 2022년 6월 22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황진경, 이안, 장소정
-대담: 백재예(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정치학과 박사과정), 송혜림(연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전소현(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정희윤(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사학과 박사과정)

 

Q. 선생님들의 전공이 다양하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다루지 않는 분들도 계신데, 현재의 관심 분야는 무엇인지요. 또 어떠한 계기로 ‘위안부’ 문제를 처음 마주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정희윤

전공분야는 ‘유해를 통해 본 독일과 일본의 19~20세기 인종과학 네트워크와 탈식민 활동가 네트워크’입니다. 한국에선 비교적 편리하게 ‘과거청산 연구합니다’라고 말하죠. 국내에서 ‘과거청산’이라고 하면 ‘위안부’를 포함해 이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 세계적으로는 이것을 전시 성폭력의 문제이자 보편적인 인권과 상식의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 차이가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국내에서는 과거청산 활동판과 ‘위안부’ 문제 운동 네트워크 간의 친연성 때문에 국가폭력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어찌 보면 홀로코스트 같은 토템이 되어버린 ‘위안부’의 영역과 국가폭력을 끊임없이 증언하는 ‘위안부’ 사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고민하며 ‘위안부’ 문제를 마주하게 됐습니다. ‘위안부’가 토템이라 함은, 홀로코스트가 그렇듯 보편적인 인권의 바로미터가 되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질문하지 않는다는 뜻에서요. 미국에 가니 이런 양상이 더 뚜렷하게 나타났는데, 아시아태평양전쟁과 무관한 곳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램지어의 부정론에 대한 소식을 저보다 더 빨리 접하고 반대 성명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이때 ‘위안부’ 문제가 그 사회의 윤리적 토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기준이 된다기보다 전시 성폭력의 상징으로 활용되고 수호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미국에서 경험한 위안부 ‘문제’는 모두가 수호해야 하는 담론장이었다면, 한국의 위안부 ‘문제’는 모두를 시험에 들게 하는 담론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는 식민지 여성에 대한 폭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는 점에서요. 피해자와 연대해야 한다는 단순한 답을 넘어 이 사회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계속해서 경종을 울리고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 

정희윤 ©오늘의 나


제국의 위안부’ 및 ‘정의연 논쟁’을 경험하면서는 국가폭력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사회에서 미끄러지는 것 자체가 폭력이니까요. “‘위안부’와 일본군이 동지적 관계였다”는 일부의 주장에 반대하고, ‘위안부’ 피해자가 생존자로서 존엄을 되찾기 위해 행동하는 행위 주체성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용수 선생님이 평생 연대해온 활동단체를 비판하고 보수정당과 함께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송혜림

저는 제 연구에 대해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말씀드립니다. 하나는 기억이에요. 내가 경험하지 않은 타인의 기억을 나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서 증언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증언을 정동적으로 연구하고 있어요. 증언이 객관적이고 실증주의적인 언어로 인식되지만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할 때는 언어에 담기지 못하는 많은 부스러기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스러기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 혹은 더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정동에 녹아있다고 생각하고, 그 증언을 정동의 언어로 재개념화해 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송혜림 ©오늘의 나


증언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읽었던 게 ‘위안부’ 증언집이었어요. 1번부터 6번까지 차례대로 읽어나가면서 그 안에 담긴 양식의 변화, 그리고 증언을 청취·채록·편집했던 연구진과 활동가들의 고민들을 따라가며 연구에 빠져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증언자의 ‘발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이들이 하는 말, 혹은 미처 하지 못하는 말도 우리가 들을 수 있느냐라는 ‘청취 가능성’으로 옮겨갔죠. 현재까지 그러한 논의가 많이 발전돼왔지만 후세대 입장에선 살아계신 분의 증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게 됐어요. 따라서 물화된 형태로 아카이빙된 증언들을 어떻게 나의 기억처럼 실감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을 분유(分有) 가능성이라는 문제로 진전시켜보고 싶습니다. 
 

전소현

개인적인 이유로 ‘위안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제 고향이 부산 영도인데, 부산은 한국전쟁과 제주 4.3 사건 당시 많은 분들이 이주해온 도시이고, 부마항쟁을 겪기도 했죠. 또 영도에는 한진중공업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 투쟁이 일상적으로 일어났어요. 그래서 가족이나 이웃들을 통해 말해지지 않은 고통을 자연스럽게 감각하며 자랐습니다. 가족 안에서 세대를 이어 피해가 재생산되고, 피해와 가해가 중첩돼 세대를 넘어 전이되면서 피해자들이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어요. 

전소현 ©오늘의 나


사회학을 공부하면 이러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사회학과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대학원에 들어오기 전, 5.18 광주시민군이었던 여성분을 만났는데 그때 의아했던 것은 5.18에 대해 특정한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공식 서사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거예요. 그 서사에서 이야기되지 못한 것들을 당사자분께서 말씀해주셨는데 그것이 생경하게 남았습니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 안에 억압돼있던 감정들이 오롯이 느껴져 신기했어요. 이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갔을 때 또다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할머님들의 사진과 활동상, 소녀상을 보며 위로받았고 제 안의 상처들을 응시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왜 5.18과 ‘위안부’ 문제에서 위안을 받았을까 궁금했고, 페미니즘과 여성의 역사를 연결시켜 생각해보며 살아남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백재예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직접 대면하게 된 건 학부 3학년 때예요. 나눔의 집에서 운영한 ‘피스로드’(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주최. 아시아 청년들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관련 기관 및 유적지를 방문하여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토론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마지막 날 즈음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듣게 됐어요. 끝에 푸념처럼 “증언도 폭력이다”, “이제 너무 힘들다”고 하신 말이 지금까지도 제게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환경문제와 일본군‘위안부’ 문제 중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는데 그 말 덕분에 길을 정하게 됐죠. 

백재예 ©오늘의 나


석사과정 당시 교수님께서 진행한 일본군‘위안부’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연구 자료를 개발하고 번역하며 ‘위안부’ 제도를 역사로서 바라보게 됐어요. 그러면서 ‘왜 연합군은 일본군‘위안부’ 제도에 대해 알고 있었으면서도 도쿄재판이나 전후 재판에서 다루지 않았나’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것과 관련해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다 보니 일본군‘위안부’ 역사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떤 시각이나 방법론을 통해 볼 것이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위안부’ 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시 성폭력과 그에 대한 국제법을 공부하는 것으로 방향을 넓혔고, 이를 위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지금은 사회운동으로서의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그 목표를 위해 국제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동원하는가라는 논의로 나아가고 있고요. 

Q. “저는 ‘위안부’ 전공자는 아니지만”이라는 말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서도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과거사 청산이나 피해자의 증언이 채록되는 과정, 그에 수반되는 상징적 폭력성 등 복잡다단한 맥락이 존재하다 보니 사건과 이슈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중 대표적으로 박유하 교수의 『 제국의 위안부』 사건, ‘정의연 사태’ 등이 있었는데요. 이를 통과해오면서 페미니즘 리부트나 미투 운동 등 여러 여성 운동이 결합했죠. 이러한 이슈들이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 과정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그 과정에서 이슈들은 어떻게 결합되고 해체됐을지 궁금합니다. 

백재예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과거에 일어났던 제도 혹은 집합적인 경험이 아니라 현재에도 일어나는 전시 성폭력과 관련이 있고, 사회운동으로서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30년간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축적해온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위안부’ 문제가 가진 보편성과 특수성을 어떻게 다른 사회운동과 연계시킬 수 있을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지금 생겨나고 있는 많은 사회 운동들에 축적된 역량을 제공하고 여성 인권, 소수자 운동 등과 연결되는 운동 네트워크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외연의 확장을 통해 연계하는 것이라면, 내부적으로는 해체를 통해 지금까지 고착화되어온 운동 패러다임이 변화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것을 해체하며 우리가 이 운동을 왜 시작하게 됐는지, 처음의 핵심 가치가 무엇이었는지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소현

저에게도 페미니즘 리부트가 중요한 계기였어요. 2010년대 초반 대학 입학 후 소모임에서 공부하며 페미니즘이 굉장히 중요한 인식 틀이자 언어가 됐죠. 그리고 2010년대 중후반 페미니즘 리부트와 미투 정국을 보며 피해 생존자의 말을 우리가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계속 고민했습니다. 미투 운동 당시 생존자의 말을 부정하고 억압하는 상황들이 나중에는 ‘위안부’ 증언에 대한 부정과 겹쳐 보였거든요.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이유는, 여성의 말은 오락가락하고 신뢰할 수 없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미투나 ‘위안부’ 문제에 있어 계속되는 부정을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그래서 약자의 말하기와 선택이 훨씬 더 사려 깊게 이해되어야 하고, 말하기와 듣기가 관계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램지어 같은 부정론자들이 과거 사료를 절취해 할머니들의 증언은 오락가락한다거나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잖아요. 이처럼 부정론자들이 메시지를 발신하는 ‘주전장’(미국, 유럽 등 주류 사회)이 굉장히 남성중심적인 곳이기 때문에 제게 ‘위안부’ 문제는 페미니즘 문제와 연동되어 현재적인 문제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약자, 여성의 말하기를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송혜림

증언은 기본적으로 투쟁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정치적인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고, 증언의 부담을 지게 되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요. 증언자의 곁에는 수많은 연대자가 모이지만 증언의 책임은 늘 당사자에게만 부여되고, 그 과정에서 위계가 발생하게 되죠. 그로 인해 윤리적 문제가 불거져 나오거나 폭력성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 또한 ‘위안부’ 운동이 부딪히고 깨지며 경험해온 역사와 맞닿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이나 소수자 운동 안에서의 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시사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위안부’ 운동이 당사자성이라는 문제를 실감하며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생존자 수를 세며 경각심을 유발하는 전략도 당사자를 계속해서 호명하는 형태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회 인식의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당사자의 고유한 경험이나 감정을 인정하는 동시에 당사자에게만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고 각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연대의 균형점을 증언 운동이 잘 시사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좌담 전경. (왼쪽부터) 백재예, 전소현, 황진경, 이안, 이헌미, 장소정, 송혜림, 정희윤 ©오늘의 나


Q. 증언뿐만 아니라 여러 사료가 다시 해석되거나 발굴되는 경우가 있는데, 수집 및 해석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가요. 

정희윤

국가폭력의 증거로서 뼈를 연구하고 있는데 ‘정의연 사태’를 보면서 그 생각을 했어요. 유해가 ‘위안부’ 생존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말을 하고 있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유해가 하는 말들은 보통 그들이 놓인 자리, 관련 자료, 그리고 감식 결과 등으로 나타납니다. 그렇게 유해가 건넨 ‘말’들에는 당연히 해석 싸움이 붙습니다만, 이 유해가 증언하는 폭력 자체가 기각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반면 이용수 선생님의 경우, 당신이 겪은 고립과 ‘피해자다움’에 대한 압박을 계속 말해왔지만 기각된 부분이 있죠. 

국가폭력의 증거로서 뼈가 지닌 텅 빈 기표는 ‘국민’의 자리라 보충적인데, ‘위안부’의 자리는 ‘국민’이 아니라 여성, 성폭력 생존자의 자리로 호명되어 대립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위안부’ 지형이 곤경에 처해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 결과로, 증언을 볼 땐 정세 판단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정세에 따라 증언에 대한 해석이 매번 달라진다면, 연구자는 억압의 주체와 객체가 누구인지 정세를 판단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겠죠. 따라서 증언 자료를 볼 때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증언이 어느 지형과 위치에 놓이는가’입니다. 
 

백재예

그간 사료나 증언이 많이 발굴되고 축적된 것과 더불어 일본군‘위안부’ 활동가로서의 위치성이나 활동가로서 바라보는 운동 자체에 대한 시각도 기록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존자의 증언뿐만 아니라 활동가가 운동 속에서 경험한 증언도 중요한 사료이기 때문이죠. 

(왼쪽부터) 전소현, 황진경, 이안, 이헌미 전소현 ©오늘의 나

 

전소현

계속해서 축적되고 있는 사료나 증언을 어떻게 교차시켜 해석해야 할까 고민됩니다. 과거의 사료를 현재적으로 해석한다는 건 자기 입맛에 맞게 절취하는 게 아니라 당대의 맥락을 고려하여 올바른 해석에 다가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료의 유형도 다양한데, 일본군이나 연합군이 생성했던 공문서뿐만 아니라 운동 역사 속에서 기록해온 영상이나 증언도 많습니다. 최근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위안부’ 활동 영상들을 보게 됐어요. 그런데 영상은 정돈되지 않은 채 흘러가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의미화해야 할지, 또 프레임 밖에 남겨진 것들은 어떤 식으로 유추하고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송혜림

정희윤 선생님께서 뼈가 제일 시끄럽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당사자가 부재할 때의 연구자나 활동가들이 행하기 쉬운 착취의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주 4.3 사건 증언에 대한 석사 논문을 쓸 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할머니와는 한 마디도 나누지 못했어요. 그 상황에서 할머니가 남기신 증언의 자료는 저에게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료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주변적 맥락들을 조사하다 보니 제가 절대적이라고 믿었던 증언이 관계적인 정황 안에서 구성된 언어이고, 철저하게 선택과 배제에 의해 남겨진 기록이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그래서 연구자가 사료에 접근할 땐 내재적인 분석에만 치우쳐선 안 되고, 그것이 아카이빙 될 때의 맥락 또한 세밀하게 파헤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문제를 잘 보여준 게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라는 소설입니다. 『소년이 온다』(창비, 2014)에서는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당사자와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문제를 다뤘다면,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제주 4.3 사건의 피해자가 남긴 유품을 후세대가 어떻게 증언으로서 새롭게 의미화할 것인가를 보여줘요. 이 작품에선 딸 ‘인선’이 엄마 ‘양정심’의 고통을 언어화된 서사로 듣기보다 육체로 느끼고 실감합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는 엄마가 모아놓았던 4.3에 관한 기사, 기록, 사진들을 새롭게 교차하고, 사료의 공백을 메우려는 조사를 통해 기존 증언들을 맥락화하는 노력을 보여주지요. 그것이 바로 연구자가 소화해야 하는 기본적인 태도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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