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평평하지 않습니다 - 영화 <나는 부정한다> 다시보기

허윤

  • 게시일2021.11.22
  • 최종수정일2021.11.22


‘지구는 둥글다’, ‘엘비스는 죽었다’를 어떻게 증명할까? 영화 <나는 부정한다>(믹 잭슨, 2016)는 지구가 평평하다거나 엘비스는 살아있다는 것처럼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과 싸운 기록이다. 우리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을 만큼 당연한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 영화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와 역사학자 사이의 명예훼손 재판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윤리적인 방법을 보여준다. 1994년 미국의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레이첼 와이즈)는 히틀러 연구자인 데이빗 어빙(티모시 스폴)에게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한다. 립스타트가 자신의 책 <홀로코스트 부정하기>(Denying the Holocaust, Penguin Books, 1993)에서 데이빗 어빙을 역사 부정주의자라고 칭하며 그의 명예를 훼손했고, 이후로 여러 출판사에서 책의 출판을 거절당하는 등 생계를 곤란하게 했다는 이유다. 어빙이 사실 입증의 책임이 피고에게 있는 영국에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에, 립스타트는 이제 법정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부정주의자들의 말하기 


<나는 부정한다>에 등장하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의 주장은 익숙하다. 그는 생존자들의 기억이나 사료 등에서 작은 오류를 찾아, ‘이게 틀린 걸 보니 저 사람이 증언한 것은 다 틀렸다’는 식으로 몰아간다. 사소한 왜곡을 통해서 전체 그림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의 부정론자들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통해서 이미 만난 바 있다. 그들은 ‘정신대’라는 용어를 문제 삼고, “군표나 돈을 받았으니 성매매다. 국가는 책임이 없다”와 같은 주장을 한다.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다큐멘터리 <표적>(니시지마 신지, 2021)은 일본군‘위안부’의 생존을 일본에 최초로 보도한 전(前) 아사히 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의 법정 소송을 통해 부정론자들과의 재판을 기록한다. 일본의 ‘위안부’ 부정론자를 대표하는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는 우에무라의 기사가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한다. 사쿠라이는 우에무라의 기사에 실린 김학순 님의 증언을 거론하며 ‘정신대’는 노동에 동원된 여성들을 지칭하는 것이지 ‘위안부’가 아닌데, ‘정신대’라고 하고 있다면서 증언의 신빙성을 훼손시키려 한다. 심지어 일본군‘위안부’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이것은 엄청난 범죄이기 때문에 일본이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의 꼬투리 잡기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요구로 이어진다. 일본군‘위안부’나 유대인 학살을 지시했다는 문서를 제시하라는 요구다. <나는 부정한다>의 첫 장면도 여기서 출발한다. 


어빙은 대학에서 열리는 립스타트의 북토크에 찾아와, 히틀러가 홀로코스트의 학살을 명령했다는 증거를 가져오면 1000달러를 주겠다며 돈다발을 흔든다. 청중은 수군거리고 경비원은 그에게 나가라고 요구한다.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사실이 아니라는 방식의 문제 제기는 마치 홀로코스트 부정도 하나의 역사 해석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그가 스스로를 공식 역사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재야 학자로 포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식 역사는 주류의 시선만을 반영하여 새롭고 급진적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신과 같이 독학으로 공부한 비주류의 이야기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이는 엘리트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아카데미의 학자들도 모르는 것이 있다, 혹은 평범한 사람이 더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방식의 수사학은 꽤 성공을 거둔다. 지금도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 채널에서는 역사 부정론자들의 포스팅이 이어진다. 마치 새롭고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해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2016년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탈진실(post truth)’은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이때 포스트는 진실이 퇴색되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불편한 진실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진실에 도전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1] 홀로코스트나 일본군‘위안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을 위해서 ‘대안적 진실’을 선택한다. <나는 부정한다>에서 데이빗 어빙은 히틀러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하기 위해, 홀로코스트를 부정한다. 홀로코스트가 없었던 것이 된다면, 히틀러가 비난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역사를 긍정해야 한다는 ‘애국적’ 사고가 ‘위안부’와 전쟁범죄를 부정하는 데 이른다. 


생존자들의 말하기 


부분을 확대해서 사실을 호도하는 부정론자들의 방식은 생존자의 증언을 둘러싸고 첨예해진다. 홀로코스트와 일본군‘위안부’를 증명하기 위해, 가장 빠르고 분명한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 <아이 캔 스피크>(김현석, 2017)와 <허스토리>(민규동, 2018)는 일본군‘위안부’의 증언을 영화의 클라이맥스로 설정한다. <아이 캔 스피크>의 옥분(나문희)은 미국 의회에서 영어로 증언을 하며 일본 관료들에게 호통을 치고, <허스토리>의 서귀순(문숙)은 법정에서 자신이 평생 숨겨왔던 비밀을 꺼내놓는다. 그들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론장에 밝히는 증언 장면은 재판의 승패를 좌우하며, 피해생존자의 압도적인 현현을 재현한다. 그러나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재판정에 세우지 않는다. 생존자들이 직접 증언하겠다며 찾아왔음에도,  립스타트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그들의 증언을 여러 차례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 생존자들의 증언을 듣지 않겠다는 것일까? 


립스타트 재판의 변호사 줄리어스(앤드류 스캇)는 생존자들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고 그 때문에 재판장에서 어빙에게 공격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작은 실수에도 역사부정론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1945년 이후 이 증언으로 돈을 얼마나 벌었습니까?”라는 식의 공격이 법정에서 심문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는 줄리어스는,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청자의 존재가 증언의 선제 조건임을 보여준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 피해 당사자의 증언을 생존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배제할 수 있다. 이것이 청자의 윤리다.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사상사를 연구하는 도미야마 이치로(冨山一郎)는 증언을 듣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사전 배제(foreclosure)’되어 있는 이야기들은 자연스레 말해지지 않는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청자가 있어야만, 그 이야기들은 발화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는 폭력적 상황 안에 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의 말을 포함해 ‘우리’의 언어 영역 자체가 ‘사전 배제’를 추인하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위험성을 슬그머니 용인하면서 어떤 사람들의 삶을 계속해서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기 때문이다.[2]

생존자들을 재판정에 세우지 않겠다는 변호단의 결정은 ‘듣지 않을’ 청자에게 증언자들의 삶을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들을 증인으로 세우는 순간, 재판을 받는 것은 어빙이 아니라 생존자들이 된다. 지금 일본의 역사부정론자들이 일본군‘위안부’ 증언자들을 공격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운동의 전면에 소녀상과 나란히 선 ‘우리 할머니’들이 일본군‘위안부’의 존재를 대변했다. 그러나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얼마만큼 가서 닿았을까? 소녀상을 세우고, 김학순, 김복동 등의 이름을 꼽을 수 있지만, 생존자들의 증언을 ‘들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김숨의 소설 『한 명』(현대문학, 2016)은 일본군‘위안부’ 생존자가 한 명만 남은 상황을 가정하며 쓴 소설이다. 여기에는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들이 사라지면, 기억도 함께 사라질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피해를 증언할 수 있는 생존자가 사라진 이후,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부정주의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그러나 증언은 이미 충분하지 않을까? 오히려 너무 많은 증언이 고통의 기억을 계속 되살려왔던 것은 아닐까? 지금부터 물어야 하는 것은 그 이야기를 제대로, 충분히 듣고 있느냐가 되어야 한다. 


누구와 어떻게 싸울 것인가 


<나는 부정한다>의 초반부에서 립스타트는 줄곧 강력하게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과는 대화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립스타트에게 홀로코스트는 의견이 아니라 ‘사실’의 문제다. 그런데 재판을 거치며 립스타트는 보다 적극적으로 역사부정주의와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TED 강연에서 그는 홀로코스트 부정주의자들이 거짓말을 ‘의견’으로 만들기 위해 글을 쓰고, 학술지를 만들고, 책을 출판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사실과 거짓말을 섞어 대중을 호도하는 상황에 대항해서 지금 이 자리에서 싸워야 한다고 청중을 설득한다.[3] 이는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지겹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연결된다. 영화에서 변호단 신참의 애인은 이제 그만 슬퍼해도 되지 않냐고 이야기한다. 홀로코스트와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충분히 들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목소리가 있다. 일본군‘위안부’ 이야기는 그동안 충분히 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들은 것은 무엇일까? 제대로 듣기부터 시작해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오류로부터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우리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때다.

 

각주

  1. ^ 『포스트트루스-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두리반, 2019. 
  2. ^ 도미야마 이치로, 「증언 ‘이후’」, 『전쟁, 여성, 폭력: 일본군 ‘위안부’를 트랜스내셔널하게 기억하기』, CGSI EPUB, 2019, 54~55쪽. 
  3. ^ 데보라 립스타트, 홀로코스트 부정이라는 거짓말의 이면, TEDXSkoll, 2017(https://www.ted.com/talks/deborah_lipstadt_behind_the_lies_of_holocaust_denial?language=ko 2021.11.5. 검색완료)
글쓴이 허윤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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