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번역, 혹은 번역할 수 없음의 재현 – 영화 <침묵> 리뷰

황미요조

  • 게시일2021.10.18
  • 최종수정일2021.11.01

침묵의 번역, 혹은 번역할 수 없음의 재현[1]


<침묵>을 연출한 박수남 감독은 재일조선인 2세로, 1960년대 신문기자로 경력을 시작한 이후 글과 다큐멘터리 영화로 강제징용 피해자, 원폭 피해자 등 남한, 북한, 일본 역사의 틈새에서 누락되었던 목소리들을 오랜 기간 기록해 왔다. 박수남 감독의 저술활동과 영화는 식민주의, 배타적 민족주의, 군사주의, 전쟁, 차별, 빈곤 등에 의해 여러 ‘장소’에서 배제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험과 기억은 물론 존재마저 부정당하던 이들과 함께하며, 민족, 젠더, 지역 경계를 가로지른다. 대표적으로 1963년에 출판된 저서 『죄와 죽음과 사랑과 罪と死と愛と』는 재일조선인 인권문제에 일본 사회의 관심을 모아 내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교사형>(1968)에 영감을 주기도 했으며, 1986년 다큐멘터리 <또 하나의 히로시마 - 아리랑의 노래>[2]는 강제연행과 피폭, 전후보상 문제에서 목소리가 누락된 조선인 피폭자들의 삶을 담아내며, 당시 일본 반핵운동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 내에서는 재일조선인 사회뿐 아니라 일본 소수자 인권 운동과 연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중요한 인물로, 박수남 감독의 지지자, 후원자들은 그의 상영회나 강연 행사 등을 겨냥한 우익의 위협이 있을 때마다 막아내는 힘이 되고 있다. 상대적으로 한국 내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거나 ‘위안부’ 피해자 운동 내부에서 왜곡되어 알려져 있었지만[3], 다큐멘터리 <침묵>(2017) 이후 한국 다큐멘터리 제작자들과 ‘위안부’ 문제 연구자들 사이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21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는 박수남 감독의 영화작업과 운동을 기리는 국제포럼 <아카이브의 주소를 묻는다: 여성, 디아스포라, 필름메이킹>을 개최하였으며, 한국영상자료원은 최근 박수남 감독의 작품을 수집하고, 자료를 KMDB에 등록하였다. 1960년대부터 촬영해왔으나 현상을 하지 못해 묵고 있던 16mm 필름들이 한국영화진흥위원회의 일부 지원과 함께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침묵, 번역할 수 없는 것

<침묵> 스틸컷 ©시네마달


<침묵>은 1990년대 중반 한일 양국의 그 어떤 단체에도 속하지 않고 피해자 모임을 만든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에서의 투쟁을 다루며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역사를 다층화하는 영화이다. 2016년 약 90분 분량의 가편집본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 상영[4]되었으며, 이후 2017년 영화제 상영본과는 다른 약 117분 분량의 재편집본으로 일본에서 개봉되었다.[5] 영화는 1994년 당시 ‘위안부’ 운동을 대표하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나 유족회에서 독립하여 피해자만으로 결성되었던 ‘위안부 피해자회’의 일본 방문 당시 활동을 중심으로, 박수남 감독이 ‘위안부’ 문제에 관여하게 된 계기, 그리고 할머니들이 이른바 ‘국민기금’[6] 수령 이후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 운동으로부터 박수남 감독이 배제된 사연, 그 후 20년이 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박수남 감독과 생존자 간의 우정을 담고 있다. 일본 내 ‘위안부’ 피해 최초 증언자인 배봉기(오키나와 거주) 와의 만남과 배봉기 씨의 죽음을 사회 운동의 자산으로 삼으려고 했던 총련계[7]와 민단계[8]의 갈등, 피해자회 할머니들이 국민기금을 최종적으로 수령하는 것을 결정하기까지 국민기금 측과 격렬하게 논쟁하고 투쟁한 과정 역시 그려지는데, 모두 한국의 대표적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역사에서는 그다지 말해지지 않는 역사들이다. 

그러나 박수남 감독은 이 ‘말해지지 않은’ 것을 폭로하거나 무언가를 비판하거나 주장하기 위해 영화로 불러오지 않는다. 영화의 편집은 일본이든 한국이든 기존 운동을 회고하는 방식에 조응하거나 혹은 반대로 카운터 내러티브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심인물이나 사건을 따라가는 편집 방식, 혹은 어떤 중심 문제의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에 익숙한 관객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영화의 내적 논리를 따라가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침묵> 스틸컷 ©시네마달


영화 초반 박수남 감독은 자신이 재일조선인으로서 재일조선인 운동에 관여하던 중 운동의 모순에 직면한 후, 한일관계의 피해자이면서도 아직 조직화되지 않았던 운동들인 강제징용 피해자나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영화 내에서 자막과 자신의 예전 사진을 통해 말한다. 즉, 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들뿐 아니라, 그와 연을 맺고 시간을 거쳐 온 감독 ‘나’ 자신과 그 위치성이 중요한 영화이다. 그러나 그 위치성은 한국인이라는 종족적 연대나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에 근거한 보편 연대와 같은 기준으로 매끄럽게 구획되는 것이 아니며, 영화와 감독 자신도 스스로 확신하기 어려운 어떤 것이다. 일본 내, 한국 내 그리고 일본과 한국 사이 ‘위안부’ 피해자 운동의 역사서술의 균열과 그 안에서 ‘재일조선인’이라는 위치성과의 불-연속성 사이의 침묵과 삐걱거림이 이 영화 편집의 내적 논리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안민화[9]는 박수남 감독의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 등 초기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구술자 목소리 더빙 방식[10]이 더빙이라기보다 한일 간 교차하는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마이너리티들의 목소리에 대한 박수남 감독의 번역방식이라고 지적한다.[11] 박수남은 저술활동을 주로 하던 당시, 재일조선인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면서 침묵을 비롯해 비언어적인 것들, 그리고 말 자체를 할 수 없어 하는 모습을 활자로는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12] 박수남 감독의 초기 관심이 ‘번역하기’였다면 <침묵>에서의 박수남은 번역할 수 없는 것 혹은 번역할 수 없음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침묵>의 편집을 담당했던 문정현 감독은 2016년 이 영화가 재일조선인으로서 박수남 감독 자신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연대, 즉 소수자 간 연대에 대한 영화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박수남 감독은 “아니라요! 소수자는 또 다른 소수자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구조 속에 살 수밖에 없는 것이라요! 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한다.[13]


내러티브를 구획하고자 하는 힘과 주인 없는 시선 

<침묵> 스틸컷 ©시네마달


이 영화가 최초 공개되었던 2016년의 편집판에서는 감독의 (예전 함께 투쟁했던 이옥선 님 댁을 방문하는) 여정으로, 감독 자신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위안부’ 피해자 운동사 자체라기보다는 한일 양국 사이에서 여러 운동에 관여했던 감독 자신이 중요한 영화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볼 수 있는 최종 편집판의 시작과 끝에는 감독이 아니라 이옥선 님이 등장한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투쟁 영상도 (조금은 선정적인 방식으로 발언되고 편집된) 대중 행사에서의 증언 장면이 더 많이 추가되었다. 최초 편집본이 재일조선인 여성으로서, 재일조선인 운동을 비롯한 일본 내, 일본과 한국 (그리고 북한) 사이의 사회운동에서 좌충우돌하고 끊임없이 배제되어 온 박수남 감독의 영화라는 인장이 분명하다면, 최종 편집본은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있지만,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 ‘위안부’ 피해자 서사로 편집된 것이다.

이것은 최초 공개 편집본이 더 좋다거나 무엇이 더 옳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이 과정 자체가 소수자, 사회적 타자 인식의 한계범위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주변화된 대상을 담는 다큐멘터리들이 취할 수 있는 접근법들의 한계지점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14]
 
이 다큐멘터리에서 최초로 증언한 것은 아니지만 <침묵>에서 문옥주 님의 직접적인 목소리와 몸짓으로 듣는 양곤에서의 일본군 살해에 대한 증언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더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충격은 할머니가 격렬한 저항의 목소리와 몸짓으로 일본군의 살해 위협에 받아쳤다는 말이다. “그 칼은 천황폐하가 적을 죽이기 위해 주신 칼이지 그 칼로 같은 신민을 죽여도 되겠냐”.

천황에 대한 언급은 국민기금의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성적 서비스’라는 표현에 대해 항의할 때 이옥선 님에 의해 다시 한 번 반복된다. 이옥선 님은 벌떡 일어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황국신민서사를 암송하고 나서, 일본 백성들보다 더 치켜주고 더 해준다고 우리를 끌고 가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이들의 발언은 (식민주의의 내화든 혹은 제국주의의 강압으로든 그 어떤 민족주의를 기반한 문제 틀로도) 이해하기 곤란하며, 민족주의와 탈식민주의 사이에서 무수한 미결정의 공간을 환기시킨다.

최종 편집본의 첫 쇼트는 이옥선 님이 등장하기 전 아무의 시선도 아닌, 도대체 누구의 시점인지 모르는 풍경이다. 주인 없는 시선, 그 미확정된 주체의 시선이 첫 쇼트로 등장하는 것이다. 인식범위 밖의 시선의 쇼트가 영화를 여는 것은 무척이나 징후적이다. 

 

기사 게재일 : 2021.10.18.

 

각주

  1. ^ 이 글은 2020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포럼 “증언과 구술의 번역 - 군 위안부 운동의 역사를 논의하기”에서 발표했던 필자의 글 「번역의 위치와 그 경계들」과 일부 아이디어가 겹친다. 
  2. ^ 일본어 원제는 “もうひとつのヒロシマ - アリランのうた”.
  3. ^ 1996년 11월 5일에 방송되었던 MBC PD수첩 <열 여섯 살 분홍치마저고리>에서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접근해서 ‘민간기금’을 받도록 종용해 왔던 재일교포”, 문옥주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소동을 일으킨 사람으로 악의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큐멘터리 <침묵>(2017)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의 갈등, 정대협으로부터 정부에 요청된 박수남 감독 한국입국금지가 언급된다.
  4. ^ siwff.or.kr/kor/addon/00000002/history_film_view.asp?m_idx=102620&QueryYear=2016 (2021.10.08. 검색 완료)
  5. ^ 한국의 여성영화 플랫폼 퍼플레이(purplay.co.kr)에서 볼 수 있는 판본도 2017년 재편집본이며, 이 판본을 공식판본으로 하여 제작년도를 2017년으로 기록하는 박수남 감독 측을 따라 이 글에서도 작품의 연도는 2017년으로 표기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이 최종 편집본을 2020년 재상영하였다.   
  6. ^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기금
  7. ^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중에서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단체에 속한 사람
  8. ^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자치 단체인 거류민단(居留民團)에 관련된 계열
  9. ^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메이지가쿠인대에서 영상예술학, 코넬대에서 동아시아학, 비교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미네소타대에서 동아시아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아시아의 식민주의 및 냉전의 문화를 국가주의의 틀을 넘어설 수 있는 문화 담론과 실천 등으로 모색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 간의 비교연구를 해오고 있다. (출처: YES24 작가파일) 
  10. ^ 재일조선인 1세(강제징용자나 피폭 피해자)들의 조선어 혹은 조선어가 섞인 ‘브로큰 일본어’ 위에 원본 목소리를 없애지 않고 감독 스스로의 목소리로 일본어를 녹음하는 방식
  11. ^ Minhwa Ahn, “Archive and Minor Transnational Memory: Documentary of Zainichi Korean Women as Visualizing the Testimony, Space, Image”,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2021년 10월 1일. [아카이브의 주소를 묻는다: 여성, 디아스포라, 필름메이킹(Addressing Archives: Women, Diaspora and Filmmaking)] 
  12. ^ “CINE TALK: Sunam Park”, 국제포럼 <아카이브의 주소를 묻는다: 여성, 디아스포라, 필름메이킹>,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 2021년 9월 30일.  
  13. ^ 문정현, 「침묵」, 2016. https://www.kmdb.or.kr/story/12/1050 (2021.10.15. 검색 완료)
  14. ^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 연작과 관련하여 좋은 영화를 만들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사실은 영화를 보지 않았다는 것,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는 보지 않아도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종종 불만스럽게 언급한다. <낮은 목소리> 연작이 당시로서는 낯선 형태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그리고 감독에 따르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잘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젠더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기보다는 민족적인 문제, 즉 공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고 믿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위안부 할머니’ 혹은 ‘정신대 할머니’로 불리는 전시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여성들의 피해와 상처는 여성 문제가 아니라 민족의 수난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며, 그녀들의 기억은 공적인 영역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게 취사선택되거나 가공되어왔다. 졸저, 『영화와 운동 – 독립영화로 보는 한국사회』, 한국영상자료원, 2018, 111페이지.
글쓴이 황미요조

영화연구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강사,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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