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로부터 읽어낼 수 있는 것 -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 서평

공준환

  • 게시일2020.07.15
  • 최종수정일2022.11.28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행간을 읽어내고 엮은 책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큰 어려움 중 하나는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한 직후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문서의 상당수를 파기하였다. 일본군에게 불리한 문서들이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 극동국제군사재판에 활용되거나, 일본군의 전시 잔학행위가 세계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자료를 파기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를 동원하거나 관리하면서 작성된 문서들도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본군은 아시아·태평양의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여성을 위안소로 강제동원했고,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명부나 명단을 만들었다. 명부는 일본군이 만든 제도 속에서 여성들이 이름과 숫자로 적혀 통제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치이자, 일본군의 범죄행위를 분명하게 보여줄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명부 중 아주 일부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가 발간한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2019)은 현존하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를 분석한 연구를 모아서 정리한 책이다.  7명의 저자가 이 책의 집필에 참여했으며 책은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의 발굴 현황과 이것이 작성된 역사적 맥락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본론은 대만, 중국,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명부들을 자세하게 분석하고, 명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글을 덧붙이는 형태로 되어있다. 부록에는 책에서 다룬 중요 자료의 일부가 원문 형태로 제공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2010년대의 연구 성과이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명부나 명단들이 발견된 것은 이 문제가 알려진 1990년대부터이지만, 비교적 최근에야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연구 성과가 점점 축적되면서 명부에서 여러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런 연구성과들을 편집하여 연구자들뿐만 아니라 명부 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했다는 데에  이 책의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고, 거기에서 무엇을 읽어 낼 수 있을까? 강정숙 선생님의 글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名簿) 종류와 연구의 의미」도 이 문제를 다루지만, 여기서는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간략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명부는 작성한 주체와 목적을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군이 '위안부'를 동원하고 위안소를 운영하기 위해 생산한 명부들이다. 책의 첫머리에 실린 한혜인 선생님의 글 2편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림1.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19.

 


일본군'위안부' 명부의 네 가지 분류

일본군이 만든 '위안부' 관련 명부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여성들을 모집하여 위안소로 이동시킬 때에 필요한 명부, 위안소를 관리하기 위해 만든 명부, 군인‧군속의 인원을 파악하기 위한 명부, 전후 귀환 과정에서 만들어진 명부 등이다.

전쟁이 확대되면서 일본군은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태평양 여러 지역에 위안소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곳으로 식민지와 점령지의 여성들을 동원했다. 전시에 민간인 여성을 전장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일본군이나 일본 정부의 허가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형태의 문서들이 작성되었다. 도항(渡航) 허가서나 신분증명서, 승선명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명부들은 일본군'위안부'의 동원 실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지만, 대부분이 파기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예외적으로 타이완척식이 작성한 특요원('위안부') 명부가 남아있는데, 이는 여성들을 대만의 지룽(基隆) 항에서 중국 남부의 하이난으로 도항시킬 때 작성한 것이다. 최종길 선생님의 글이 이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다.

두 번째로 위안소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명부가 있다. 지역에 따라 위안소를 관리하는 주체가 달랐는데, 일본군이 이를 직접 관리하기도 했고, 현지의 행정기관이나 경찰이 관련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위안소 관리를 위해서는 위안소 내의 인원을 정리한 명부의 작성이 필수적이었고, 이는 정기적으로 작성, 보고되었다. 관련 문서들 대부분이 사라졌으나,  연합군이 전후에 작성한 「ATIS 조사보고서 120호, 일본군의 편의위락시설」에는 필리핀에서 연합군이 일본군으로부터 획득한 위안소 관리 문건의 예시와 서식들이 남아 있다. 작성된 명부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명부 작성을 위한 예시와 서식은 일본군'위안부'를 관리하기 위한 절차와 체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서식에 따르면 위안소 관리를 위해 '위안부'의 영업허가증, 업자가 작성하는 위안소 영업 허가 신청서 및 영업 보고서, 성병 검진 보고서, 교체 허가 신청서, 위안소의 종업원 명단 등이 작성되어야 했다. 위 명부들은 모두 일본군'위안부'의 실태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명부들이다. 특히 종업원 명단은 성명, 출생일시, 직업, 거주지, 본적 등 상세한 내용을 모두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작성된 명부가 남아있지는 않지만, 명부 작성을 위한 예시와 서식은 일본군'위안부'를 관리하기 위한 절차와 체계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림2. 「ATIS 조사보고서 120호」 16페이지에 실린 일본군의 편의위락시설를 정리한 표

 

세 번째로는 일본군이 군인‧군속의 인원을 파악하기 위해 만든 명부와, 현지의 조선인들이 스스로 조직을 만들어 조선인들의 인원을 관리한 명부가 있다. 전자로는 「유수(留守)명부」와 「복원명부」, 후자로는 「진화계림회명부」 가 있다. 이 명부들은 본래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명부 안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중요한 역사적 자료로 볼 수 있다. 「군속의 신상정보를 기록한 인사기록이다. 이 명부엔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이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popuptitle="유수명부" data-url="/taxonomy/term/420">유수명부」 에서는 전쟁 말기 일본군이 '위안부'를 간호부로 편입했던 정황이 확인되고, 「진화계림회명부」에서는 위안소 업주로 직업을 등록한 조선인들의 기록을 통해 중국 진화에 위안소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군속의 신상정보를 기록한 인사기록이다. 이 명부엔 강제 동원된 조선인들의 이름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popuptitle="유수명부" data-url="/taxonomy/term/420">유수명부」는 한혜인 선생님의 글에서, 「진화계림회명부」는 쑤즈량·천리페이 선생님의 글과 윤명숙 선생님의 글에서 각각 자세히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전후 귀환 과정에서 만들어진 명부들이 있다. 일본이 패전한 이후 각지에 남아있던 조선인들이 스스로 조직을 결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었거나, 연합군이 포로로 잡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귀환시키는 과정에서 만든 명부들이다. 이 명부들은 조선인의 강제동원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 주로 활용되지만, 그 안에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흔적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강정숙 선생님은 「팔렘방조선인회명부」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팔렘방의 위안소 설치와 '위안부' 피해자의 동원 상황을 분석하고 있다. 책에서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연합군은 전후 포로로 잡힌 조선인 들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일본군'위안부'를 발견하고 이들에 대한 보고서와 명단을 작성하기도 했다. 버마 미치나에서 연합군에게 붙잡힌 조선인'위안부'에 대한 보고서인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서 49호」와 중국 쿤밍의 포로수용소에 있었던 포로들을 조사하고 작성한 「쿤밍의 조선인과 일본인 전쟁포로」가 그것이다. 이 두 보고서에 첨부된 명단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름과 주소, 나이, 동원 시기가 남아 있다.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서 49호」에서 버마 마니차로 동원된 여성들 20명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지만 누구도 한국 정부에 피해자로 신고하지는 않았다. 

그림3. 「일본인 포로 심문보고서 49호」에 실린 명단

그림4. 「쿤밍의 조선인과 일본인 전쟁포로」에 실린 명단


 

명부를 통한 연구의 어려움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를 자세하게 분석하고 있는 이 책의 글들은 일본군'위안부' 연구의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명부를 분석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이다.  보통 명부가 제공하는 정보들이 매우 단편적이고 파편적이기 때문이다. 명부가 작성된 역사적 맥락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명부 속 이름만으로는 의미를 찾아내기가 힘들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는 아직 분석되지 않은 조선인의 승선명부들이 많이 남아있다. 이 승선명부에는 전쟁이 끝난 후 태평양의 여러 지역에서 귀환한 조선인들의 이름, 귀환일시, 직업, 주소 등이 남아있다. 대부분이 남성이지만 때로 여성의 이름도 발견된다. 이들이 '위안부'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  이를 설명해줄 또 다른 자료가 없다면 추가적인 연구와 분석을 진척시키기 어렵다. 피해자의 증언, 동원 지역에 관한 자세한 정보, 문서 기록이 교차하지 않는다면 명부 그 자체로는 연구를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명부에 기록된 내용들이 개인정보라는 점은 연구를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지금은 논문이나 연구 결과물에서 피해자의 이름이나 주소, 인적 사항을 공개하고 있지만,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시작되던 1990년대에는 이런 정보를 학계나 일반에 공개하기 쉽지 않았다. 피해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은 이의 정보까지도 자료 공개로 인해 노출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를 우려하여 자료를 제공하는 공공기관이 처음부터 이름이나 여타 정보를 가린 문서들을 공개하기도 했다. 자료 활용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명부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상세한 증언을 바탕으로 피해 지역의 명부에서 다른 피해자의 이름을 찾아낸 사례들이 몇몇 있다. 증언이 자료와 만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하지만 발굴된 명부의 수많은 이름 중에서 이렇게 피해자로 밝혀진 사례는 손에 꼽을 만큼 적고, 여전히 많은 이름들이 베일에 싸인 상태로 남아있다. 연구자 개인 혹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명부에 남아있는 이름과 주소를 바탕으로 더 많은 피해자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피해자를 찾아내는 것이, 피해자 본인이나 가족이 바라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점이 또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부는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연구를 지속할 가능성 역시 갖고 있다. 많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난 가운데, 가족의 기억과 증언을 통해 명부를 바탕으로 피해자와 피해사실을 더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는 귀환자의 승선명부를 바탕으로 피해자가 태평양의 트럭 제도로 동원되었음을 확인한 사례도 있다. 다만 이것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다.

 

덧칠된 이름들에서 역사 발견하기

그렇다면 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다른 자료와 달리 명부는 특정 지역으로 동원된 사람들의 수, 출신지, 연령과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정보는 두 가지 방향으로 활용될 수 있다. 첫 번째로 명부를 활용해 특정 지역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다. 중국 진화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팔렘방과 같이 명부가 발견된 지역에 관한 연구는 그곳에 얼마나 많은 '위안부'가 동원되었고, 얼마나 많은 위안소가 있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증언과의 비교검토, 현지 조사가 함께 이루어진다면 명부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지역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군'위안부' 제도 전체의 모습을 되짚어볼 수 있다. 일본군'위안부' 제도를 설명할 때 곤란한 부분 중 하나는 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일본군'위안부'가 존재했는지, 그 중 조선인의 비율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추정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문제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주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략적인 비율을 가늠하게 해주는 몇몇 자료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특정 지역의 연구는 좋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어떤 지역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동원되었는지, 그들의 동원 시기는 어떠했는지, 그곳에 얼마나 많은 일본군이 주둔했는지 확인할 수만 있다면 조금 더 실증적으로 규모를 추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군이 점령했던 모든 지역의 위안소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겠지만, 여러 지역의 사례를 종합한다면 더욱 정확한 추정이 가능할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명부 연구는 아직 가능성이 많이 남아 있는 분야이다.  발견되었지만 본격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명부도 많고, 새롭게 해외 자료보관소들에서 발견되는 명부들도 있다. 이 명부들에 관한 연구는  모두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실태를 밝혀내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연합군, 점령지의 조선인 조직들에 관한 연구와 함께 명부를 작성한 이들이 가졌던 시각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 본론에 수록된 서민교 선생님의 일본군에 대한 연구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안소를 설치한 주체인 일본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놓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 연구의 분야와 시야가 확장될 필요가 있다. 명부에 대한 연구는 일본제국의 식민지와 점령지에 대한 문제, 인종주의적 시각의 문제, 전시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 등 여러 주제와 결합할 수 있고 결합해야 한다. 앞으로도 활발한 연구 성과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 
목차 

1부. 은폐의 기술, 제도 속에 숨겨지는 이름
 
발견되는 이름, 이른바 '위안부' 명부 - 한혜인
일본군'위안부'제도의 운영과 기록되지 않는 이름 - 한혜인
타이완척식주식회사의 위안소 운영 실태와 가려진 명칭 - 최종길

2부. 숨겨진 '위안부' 이름 발견하기

중국 저장성 「진화계림회명부」 속 '위안부' - 쑤즈량・천리페이
인도네시아 「팔렘방조선인회명부」 속 '위안부' - 강정숙 

보론 
기록과 기억의 사이에서, '위안부' 관련 명부 연구 - 강정숙
중국 당안관 자료 현황과 자료 해제(「진화성구 근황표」와 「진화계림회명부」) - 윤명숙
중일전쟁기 일본군 상황과 일본군위안소 설치 - 서민교 

부록
 
자료 1. 인원 및 물자수송의 건
자료 2. 지나사변 이후 중남 중국에서 군에 대한 협력사항
자료 3. 타이완척식 관계 하이난도 도항자 인명표
자료 4. 하이난도 조사대용 및 군용자재 공급의 건
자료 5. 독립기념관 소장 수용인원명부
자료 6. 1946년 종전 당시 일본군 육군 주요 부대 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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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공준환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수료. 2016년부터 서울대 정진성연구팀에 참여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해외 자료 조사를 진행해 왔다. 자료집 『일본군 '위안부' 관계 미국 자료 1-3』,『일본군 '위안부' 관계 연합군 자료 1-2』와 저서『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2』의 발간에 공저로 참여하였다. 논문으로는 「연합군 자료를 통해 본 버마의 일본군‘위안부' 제도」가 있으며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snalekj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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