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할머니를 뵈러 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 탐방
  • 웹진 <결> 편집팀
  • 2026-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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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할머니를 뵈러 갈 수 있어 감사합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방문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는 2021년부터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과 「양성평등기본법 시행령」에 근거해 피해 생존자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주요 활동은 매주 전화로 안부를 여쭈며 짧게나마 말벗이 되어드리는 한편, 매달 직접 방문해 할머니의 건강과 생활 환경 등을 확인하고 필요한 지원을 연계하는 일이다. 햇살이 뜨거웠던 지난 8월 말, 담당자와 동행해 경북 포항시에 거주 중인 박필근 할머니*를 방문했다. 이날 박 할머니는 다행히 평소와 달리 컨디션이 좋았다.

* 박필근
16세 되던 해 경북 고향집에서 일제에 의해 공장으로 강제동원된 다음 일본군 ‘위안소’로 옮겨져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후 탈출에 성공하여 1945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나와 계시네. 그간 잘 지내셨어요?”
“엄마, 지난번에 오셨던 진흥원(한국여성인권진흥원) 분들이잖아요.”
“서울에서 완나(‘왔느냐’는 경상도 사투리)?”
“네, 지난번에 같은 박 씨라고 좋아해주셨는데, 기억 안나세요? 모르셔도 괜찮아요. 건강히 잘 계시나 뵈러 왔어요.”

2025년 8월 30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새벽 5시 15분 KTX 기차를 탄 덕분에 늦지 않게 포항의 박필근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전략사업팀의 담당자가 현관문 앞 의자에 앉아계신 박 할머니에게 달려가 손을 잡으며 살갑게 인사를 전한다. 연로해 기력이 떨어지고, 거동이 힘겨우면서도 아흔여덟의 박 할머니는 연신 ‘아이고 그 먼 데서… 고맙고 또 고맙다.’라며 반긴다. 오늘도 옆에는 대구에서 일주일에 한두 차례 어머니를 찾는 아들이 함께하고 있다. 

무릎을 굽혀 할머니의 시선에 맞추며 인사하는 담당자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알고 보니 지난 3월부터 할머니들을 찾아 뵙고 있는 담당자의 전직은 사회복지사였다. 시끌벅적 인사를 나눈 일행은 집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기록적인 폭염이 계속되는 나날, 그날도 아침부터 햇살이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사진 1]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전략사업팀 담당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박필근 할머니.

 

 


일주일에 한 번 전화 안부, 한 달에 한 번 방문해 모니터링

이 자리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지원사업 현장이다. 2021년부터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는 「일제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과 「양성평등기본법 시행령」에 근거해 피해 생존자들이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담당자가 주로 하는 일은 매주 유선전화로 안부를 묻거나 한달에 한번 이상 직접 방문하여 피해생존자의 건강과 일상생활을 확인하고, 어려움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평소 피해생자들을 돌보고 있는 가족이나 간병인, 요양보호사 등과 소통하여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는 일도 포함된다. 

2025년 8월 현재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여섯 분. 평균 연령 97세로, 피해생존자 대부분 초고령이시다. 1993년부터 2018년까지 정부에 피해자로 등록된 분은 모두 247명. 그중 4%만이 생존해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올해 들어 길원옥, 이옥선 할머니가 연이어 세상을 떠나셨기에 연로하신 할머니들의 상태를 살피는 일은 더욱 절실하다.

 

 

방문하는 날 유난히 컨디션이 좋았던 박 할머니 

직접 방문의 중요 임무에는 할머니들의 생활 환경을 살피는 것도 있다. 거동이 불편해 대개 주거 시설 안에서 활동이 이뤄지기에 꾸준한 관찰이 필요하고, 할머니 본인은 평소 익숙한 환경이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인 확인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위험하거나 안전한 거동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주거 환경 개선 지원으로 이어진다. 집 안 안전사고에 대비해 낙상 및 단차 방지용으로 탄력 있는 매트를 깔거나 욕실이나 화장실에 미끄럼 방지 매트와 목욕 의자를 제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주위의 도움 없이 이동이 어려운 할머니께는 요양보호사와 상의해 앉거나 눕기 편한 의료용 침대로 교체하기도 했다. 

오늘 방문에는 지난 봄에 박 할머니 댁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가 제대로 자리잡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옆으로 폭이 3m 남짓한 개울이 흐르고 있는 할머니 집은 개울바닥에서 1m 50cm 높이에 자리하고 있어 자칫 낙상 위험이 커 보였다. 이에 안전을 위해 철제 울타리를 설치해 드린 것이었다. 직접 잡아보기도 하며 살펴보니 주택과 개울 경계에 성인 가슴 높이 정도로 설치된 연두색 철제 울타리는 탄탄했다. 

“주거환경 개선은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신경을 써요. 그만큼 할머니의 안전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안전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어 심적으로 안정을 찾으시는 거예요.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 보살핌이 적절했는지 살필 수 있어 자주 만날수록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안전 울타리를 둘러본 담당자는 다시 할머니와 마주 앉았다. 

“할머니, 손 마디가 왜 이렇게 굽으셨어요.”
“그 전에 귀국할 때 배 타고 올 때는 어디인지도 몰랐다. 부산으로 와가 여(여기) 오는데 15일 걸렸다. 아이들 학교 보내고 먹고 살려고 산에 다니고, 밭일이다 뭐다 다 막했지 머. 그래 이래 되는지도 모르고… 막 (일을) 했지.”

마디 굵은 손은 잡으니 띄엄띄엄이긴 하지만 할머니의 대답이 이어졌다. 곧바로 아들 남 씨가 말을 받는다. 

“옛날 생각 나나 보네. 여기는 논밭은 아예 없는 산골짜기였거든요. 그러니까 괭이 들고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야생초, 약뿌리 캐가 저 안강에 가서도 팔고, 영천 장에 가서 한약방에도 팔았어요. 키로 수대로(킬로그램 단위로). 손이 부르트고 해도 돈벌이 되는 거는 다 했어요. 고생은 말도 못해요. 근데 울 엄마, 오늘 따라 컨디션이 유난히 좋으네. 감기 들고 컨디션이 안좋아 정신이 많이 흐려져요. 선생님들 오셔서 더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얼마 전에 포항여성회에서 중학생 7명과 왔었는데, 그때보다 기억이 또렷하시네요.”

전략사업팀에서 지난달 방문했을 때와 견줘도 확실히 발음이 정확하고, 말씀도 많다. 할머니의 건강한 모습을 확인한 담당자는 안도했다. 

 

[사진 2] 박필근 할머니가 사집첩을 보고 있다. 이날 할머니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오래 전 힘들었던 기억부터 고생한 이야기까지 하셨다.

 

 

 

극우 세력의 항의집회에 놀란 할머니의 평안을 위해

그래도 피해자 지원업무 중에는 일상생활 지원이 중요하다. 음식물을 꼭꼭 씹는 저작 기능은 괜찮은지, 용변은 제대로 보는지 등이 대표적인 확인 항목이다. 담당자는 확인 후 필요에 따라 죽 같은 연화식을 주문하고, 침대용 위생 패드나 성인용 기저귀, 소독제 등을 챙긴다. 이런 생필품은 즉시 지원이 중요하기에 제품과 수량을 확인한 다음 유통업체를 통해 곧바로 배송하는 경우도 잦다. 유통업체에서 취급하지 않는 특정 제품의 경우에는 방문에 맞춰 직접 구입하기도 한다. 이날도 요양보호사에게 미리 확인해 준비한 청소 세제와 간식 몇 가지를 전달했다.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12시가 훌쩍 지났다. 점심 식사를 위해 할머니와 ‘외식’에 나섰다. 메뉴는 고디탕, 우리가 아는 다슬기국이나 올갱이국이다. 할머니는 시원하면서도 구수한 고디탕을 아들이 놓아주는 오이무침과 맛나게 드셨다. 서울행 기차를 타려면 마무리를 해야 할 시간, 식당 앞에서 인사를 나누기로 했다. 

“할머니, 다음 달에 또 올게요. 그때까지 건강히 지내셔야 해요.”
“그래, 잘 가~.”

그때 미처 말하지 못했다며 아들 남 씨가 감사와 함께 얼마 전 당황스러웠던 일화를 꺼냈다.

“고초를 당한 어머니를 보살펴 주셔서 항상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에 ‘위안부법’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가 어머니 집 앞까지 찾아와 항의 집회를 했어요. 정의기억연대 등 시민단체에서 소식을 듣고 내려와 함께해 주셔서 불상사는 없었지만 어머니가 많이 놀랐어요. 한동안 밤새도록 잠을 못 주무셨어요. 일본의 사과도 못 받았는데, 앞으로 1년을 더 사실지, 2년을 더 사실지 모르는 상태에서 늘 불안합니다. 생존해 계신 피해 할머니가 몇 분 안 계시잖아요. 도움을 주지는 못할 망정 역사를 부정하는 세력만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관련 법률이 구현하고자 하는 목적인 할머니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역사부정 세력의 패악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담당자가 위로를 전했다.

“오늘도 할머니를 뵈러 올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가족 분들과 주위에서 할머니 걱정을 덜 수 있도록 더 자주 연락을 드리고 신경을 쓸게요. 그리고 다음에 또 뵈러 올게요.”
 

[사진 3] 다음에 또 만날 것을 약속하며 박필근 할머니와 인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