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남성 중심 사회야말로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근본 원인이다. 결국 이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일본 국회가 자력으로 입법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확신한다.
도츠카 에츠로(戶塚悅朗)
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은 국가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운동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입법 해결을 목표로 하는 시민운동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1996년 12월에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모임’이 결성되었다.
서로 다른 역사성 사이에서 공감의 길을 찾던 과정, 관부재판의 법정은 바로 그 현장이었다.
마치다 타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