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광옥 : 소송은 결과적으로 금전 배상이라는 판결로 수렴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데, 사실 승소 판결을 받은 저희 입장에서 오히려 국가면제보다 더 높은 벽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티모시 교수님께 추가적으로 드리고 싶은 질문은 그렇다면 과연 소송 대리인으로서, 변호사로서 혹은 법적 투쟁에 있어 우리 어떤 것을 더 할 수 있는지 하는 부분입니다. 교수님께서도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은데, 금전 배상 차원을 넘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다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 소송을 제기하는 것 외에 어떤 법적 노력이 있을까요?
🧶 티모시 웹스터 : 그동안의 소송들이 ‘위안부’에 대한 사실 기반을 제공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슈가 잊히지 않도록 역할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원고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정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2023년 11월 한국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일본 정부가 과연 따르게 될까요? 일단 이에 대해 우리가 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 정부가 과연 원고 측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정말 대리해줄 수 있는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어요. 이제 집행의 문제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문제는 집행 대상이 하나의 주권 국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판결에 대응하여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와 더 나은 해법을 찾도록, 2015년 박근혜 정부보다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압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류광옥 : 그런데 ‘위안부’ 소송은 일반적인 민사 소송과 달라 판결과 집행이라는 법적 절차를 그대로 따르는 것, 또 그것에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가 다 협조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분명한 사실은 한국에 진보 정권이 집권할 때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한 걸음씩 진전이 있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노무현 정권 때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위안부’ 문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 문재인 정권 때는 2015 한일 합의가 피해자의 존엄과 인권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해줬습니다. 저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판결문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승소 판결로 이어지는 하나의 배경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즉 통상적인 민사 소송처럼 집행이 이뤄지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점, 현 정부에서 전향적인 태도가 보이지 않는 점 모두 매우 아쉽지만 지금까지 이룬 진보를 지난 보수 정권이나 독재정권 때처럼 무시하거나 퇴보시키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보가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위안부’ 소송의 본질적인 결론이 집행이 아니라 외교적 해결에 있다는 사실이에요. 외교적 해결이 곧 소송의 집행에 해당하기에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 모두 담당해야만 하고, 그것이 반드시 어느 정도의 진보를 이룰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런 외교적 해결을 위해 우리 변호인단은 국가면제가 있든 없든 통상적으로 집행을 하는 것 같은 압박은 또 계속해야 되는, 그런 약간 모순적인 상황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티모시 웹스터 : 아시다시피 2018년 판결에도 불구하고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과 미쯔비시는 배상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실제 집행도 이뤄지지 않았어요. 그리고 5년 뒤 전 윤석열 대통령 재임기에 훌륭한 방안은 아니지만 한국의 법적 시스템에 따라 기금을 조성하는 해결책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볼 때 집행이라는 압박이 있었기에 나온 대책이었습니다. 이번 2023년 말 서울고등법원에서 일본 정부가 배상금을 내라고 판결했지만 역시 집행은 되지 않을 것 같고요. 다만 한국 정부가 적법성을 고려했을 때 집행에 대한 압박을 받을 것이고, 이것이 협상을 다시금 새롭게 시작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되지 않을까 합니다.
🧶 류광옥 : 잘 알고 계시겠지만 지난 정권이 강제동원 사건에 대한 판결 이후 제3자 변제라는 이상한 답을 내놓았던 이유는 강제 집행이 실제로 이뤄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강제 집행은 피고 측의 재산을 찾아 압류하고 경매 절차를 밟는 과정이에요. 승소했기에 그 절차가 구체적으로 이뤄졌고, 문제도 없었어요. 다만 일본의 전범 기업을 대상으로 집행 절차를 밟아 재산을 처분하는 상황 자체가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었기에 기금이라는 변칙적인 해결책이라도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주권면제 조항으로 인해 집행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걸 한국 정부도, 일본 정부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집행 절차가 양국 정부에 어떤 외교적 압박 수단이 되는 것도 쉽지 않은 현실이고요. 그래서 어떤 압박으로 외교적 해결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이 부분이 강제동원 소송과 차이이기도 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그럼에도 현 정부가 한국 사회가 그동안 이룬 민주화의 바탕 위에 탄생한 정권이기에 절대 후퇴는 없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 이 이사장님께서 소송의 의의를 말씀해주셔서 2016년 당시가 떠올라 기쁘기도 하고 동시에 좀 슬픈 마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금 현 시점에서 피해 생존자들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나, 혹은 2015 한일 합의의 성격이 바뀌었나 할 때 실질적인 변화가 없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이와 관련한 평가 혹은 우리가 해야 될 일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 이나영 : 그 사이 우리 소송 당사자 중 이용수 할머니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돌아가신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집행이 전부는 아니라는 관점에서 보면 변화가 컸다고 평가해요. 변화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 있을 텐데,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봅니다. 승소 판결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한국의 국제법 위반’을 운운하거나 ‘2015 한일 합의’로 이미 문제가 해결됐다고 하는 데서 다시 한번 그들의 무도함, 지속적인 역사 부정과 왜곡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역으로 어떻게 진실을 지킬 것인가를 다시금 다짐하는 계기가 되고 있어요. 운동적 차원에서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하는 거죠.
한국에서의 잇다른 ‘위안부’소송 승소판결 직후 정의기억연대는 다섯 번에 걸쳐 국내외 심포지엄을 개최했습니다.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이 판결이 가지는 중요한 의미가 환기되고, 다른 나라에서도 이 판결을 적용하는 사례까지 나왔어요. 그리고 유엔인권이사회 등 UN 기구 안에서도 이 판결의 의미가 공유됐습니다. ‘2015 한일 합의’가 ‘위안부’ 문제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재확인하는 보고서들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나왔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2023년 서울 고등법원 판결이 국제법의 진전이라는 평가도 내놓았지요. 지난 7월에는 7명의 UN 특별보고관들이 일본 정부의 법적 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는 서한을 각 피해국과 가해국 일본에게 보내고 답변까지 촉구했습니다. 저희는 그때그때 달라진 정보를 제공하고, 국제사회는 그걸 받아 다시 문제를 환기하는 선순환이 계속 일어나고 있었어요. 물론 한국 정부에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여러 채널을 통해 강제 집행을 촉구하고, 외교적 노력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요. 이러한 요구 과정 자체가 운동이고, 여전히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알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단기간에, 손쉽게 문제가 조정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조금 깊은 문제를 하나 더 말씀드리면 일본군‘위안부’ 문제 혹은 일제의 한반도 불법 강점이나 반인도적 범죄 행위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인 미국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일본과 한반도를 일종의 냉전의 방파제로 만들려고 했던 미국의 외교 전략 혹은 군사 전략이 1965년 한일 협정과 2015년 한일 합의의 배경이 됐고, 그것은 지금도 이어져온 측면이 있어요. 이런 국제 정치의 역학관계로 인해 일제강점기 인권 침해 사건 또한 한일 양국을 넘어서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역설적인 사실은 이런 시간을 거치며 여러 문제의 뿌리 깊은 배경이 냉전 체제,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문제라는 것이 드러났고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문제 해결이 지연되는 동안 이해와 연대의 폭이 넓어지고 깊어진 측면도 있는 거죠.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민주주의와 인권의 후퇴, 극우의 부상에 대해 한국, 나아가 일본의 시민사회까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있어요.
🧶 류광옥 : 논의가 한층 깊어지는 시점이지만 시간상 대화를 향후 장단기적으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부분, 각 당사자의 역할에 대한 논의로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 티모시 웹스터 : 미국과 관련된 말씀을 주셨는데, 사실 현 정부도 ‘재난’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긴 하네요. 그래서 안타깝지만 미국 정부에 대한 기대는 접어야 할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이슈를 어떻게 이어갈 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해야 합니다. 1990년대 일본의 지원회도 어떻게 하면 20~30대를 참여시킬 수 있는지를 정말 도전적인 과제로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젊은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젊은이들에게는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잖아요. 그만큼 과거사와 관련된 운동이나 활동에 참여하도록 북돋으려면 창의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될 거예요.
관련해 페이페이 초의 사례를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중국의 이슈를 연결해 AI봇을 만드는 연구자예요. 아이들의 아바타를 주인공으로 한 AI봇을 만들어 중국의 ‘위안부’ 이야기나 정부의 지원 활동을 전달하고 질문도 받는 식이죠. 이렇게 아이들의 일상에 들어와 있는 SNS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이슈를 공유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겠죠. 제 아들의 경우 하루에 4~5시간씩 휴대폰과 시간을 보내요.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다르지 않을 텐데, 예를 들어 판결을 담은 10초짜리 틱톡 영상을 만들어 정보를 제공하는 겁니다. 1930~1940년대 있었던 일을 어떻게 해야 젊은이들의 눈에 가시적으로 보일 지 방안을 고안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이나영 :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피해국에서 많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나셨어요. 저희는 곧 도래할 ‘포스트 피해 생존자 시대’를 준비해 오고 있습니다. ‘포스트피해자’가 아니라 ‘포스트 피해 생존자’라고 하는 이유는 ‘위안부’ 운동을 펼쳐오는 과정에서 ‘피해자성’이 계속 확장돼 왔기 때문이에요. 직접 피해자는 아니지만 피해자를 돕고 지원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경험과 경로로 ‘위안부’ 역사와 연결되고 이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여 온 수많은 시민이 한국에 존재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10대, 20대 여성들은 개인적인 성차별이나 성폭력의 경험을 통해 일종의 ‘당사자성’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생존자가 더 이상 안계시다고 해서 ‘포스트피해자’의 시대는 아닌 겁니다.
피해 할머니들이 돌아가신 후에도 우리 모두가 체현하고 있는 이런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 실제 ‘위안부’ 운동이 그동안 법적 소송을 멈추지 않고, 각 영역의 시민사회와 연대를 꾸준히 확장해오면서 가장 노력해온 부분입니다. 강제동원이나 민간인 학살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애쓰는 단체가 있고, 반전평화운동을 펼치는 곳이 있고, 차별금지법제정연대처럼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단체들이 있고, 여성폭력과 맞서는 단체들이 있어요. 모두 정의와 진실과 인권과 평화의 수호자라는 감각을 가지고 있는 이런 곳들과 저희는 계속 연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국제적인 인권평화운동과 횡적인 연대 활동도 마찬가지예요. 정의기억연대는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문제에 분노하며,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팔레스타인 힐링센터도 현지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팔레스타인 문제가 과거의 ‘위안부’ 문제와 완전히 별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 류광옥 : 법적 소송을 둘러싼 논의에서 미래 세대와의 연결, 현존하는 폭력에 대한 대항과 국제적 인권평화운동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위안부’ 운동과 법적 소송에 대해 더욱 깊이 다뤄야 할 주제가 많지만, 오늘은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발걸음에 앞으로도 함께 이어가기로 하며 좌담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