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타는 그저 보도하기 위해 취재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다가가 그 마음을 대변하려고 했다. 공감하려는 자세가 있었기에 당사자들이 마음을 열고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쓰즈키 스미에(都築寿美枝)
이 글은 송신도를 '위안부 110번 신고전화 실행위원회'와 연결시켜 준 가와타 후미코가 기억하는 송신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와타 후미코 (川田文子)
이 글은 『빨간 기와집 –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의 저자 가와타 후미코가 만난 배봉기와 오키나와의 '위안부'들에 관한 이야기다
배봉기 씨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배봉기 씨는 살아 숨 쉬고 계신다.
마츠나가 가츠토시(松永 勝利)
“언론에는 한국 사람 얘기만 나오던데, 국내에도 위안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실까 해서요.” 도쿄에 거주하는 당사자 다미(가명) 씨가 '위안부 110번'으로 제보를 해왔다.
공습이 시작되었을 때 다마코 씨는 하녀인 기누코, 어린 게이샤와 함께 메이세이루를 뛰쳐나왔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몰랐다. 다마코 씨는 망설임 끝에 일행과 떨어져 혼자서 산속으로 도망쳐 헤맸다. 섬을 쪼갤듯이 작렬하는 포탄 소리와 귓가를 스치는 총탄 소리에 덜덜 떨며 우왕좌왕했고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천연 수로 안에 있었다.
그동안 배봉기 씨를 만나러 오키나와에 갈 때마다 다마코 씨도 찾아갔었다. 다마코 씨에게는 왠지 모를 친근감을 느꼈다. 같은 일본인이라고 의식해서일까. 아니면 나보다35살 위였지만 다마코 씨의 타고난 성격이 사랑스러웠기 때문일까.
이 글은 『인도네시아의 ‘위안부’』(아카시 서점, 1997)를 쓴 가와타 후미코가 만난 인도네시아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 그 중에서도 위다닌시 씨와 드리스 씨의 이야기이다.
인도네시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마르디옘, 스하나 씨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