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럼비에서 가자까지, 폭력과 고립에 저항하는 평화의 항해 - 팔레스타인 구호 선단 오른 평화운동가 ‘해초’ 인터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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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진 <결> 편집팀
  • 2026-11-04
구럼비에서 가자까지, 폭력과 고립에 저항하는 평화의 항해  팔레스타인 구호 선단 오른 평화운동가 ‘해초’ 인터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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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에서 가자까지, 폭력과 고립에 저항하는 평화의 항해
팔레스타인 구호 선단 오른 평화운동가 ‘해초’ 인터뷰(1)

 

 

2025년 10월, 평화운동가 ‘해초’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마주하기 위해 지중해상 군사 봉쇄선을 뚫고 가자 지구 구호 선단에 올랐다. 공해상에서 1차 나포를 당한 뒤 사막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강제 추방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음에도 해초는 2026년 5월, 70여 척의 배들과 함께 다시 가자의 바다로 향했고, 또 다시 나포됐다. 2차 나포 과정은 훨씬 강도 높은 폭력과 불법의 연속이었다. 국제법을 무력화하며 공해상에 띄운 해상 감옥에 갇혀 안면 구타에 의한 고막 천공을 겪고, 동료들을 향한 조직적 성적 폭력과 가혹 행위를 목격했다. 이 과정에서 해초가 마주한 것은 폭력적인 점령과 혐오가 한 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가에 대한 뼈아픈 실체였다. 그러나 해초는 무력감에 갇히는 대신 부서진 요트의 파편이 해류를 타고 끝내 가자 해안에 닿는 연대의 질긴 생명력을 보고, 부당한 현실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낙관을 배웠다. 돌아와 새로운 연대의 돛을 올리고 있는 해초를 만나 폭력의 시대를 건너는 몸의 기억과 저항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지난 7월 23일 오후 3시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팔레스타인 구호 선단 오른 평화운동가 ‘해초’ 인터뷰(1)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땅, 팔레스타인으로 띄운 평화의 돛
팔레스타인 구호 선단 오른 평화운동가 ‘해초’ 인터뷰(2) “폭력의 시대 건너는 힘은 서로를 외면 않는 다정한 연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해초(본명 김아현)’의 주무대는 육지보다는 바다이다. 제주와 오키나와 바다에서 배를 타고 건너가는 평화운동을 이어오다 2025년과 2026년 가자 지구로 가는 항해에 참여해 국내외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평화운동에 눈을 뜬 것은 제주 강정마을을 찾으면서였다. 2011년 초등 대안학교 캠프에서 해군기지 반대 운동의 중심이었던 강정마을을 찾았다. 강정 앞바다 1km나 이어지는 구럼비 바위 위에서 사람들이 기도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너무나 평화로운 이 구럼비를 계속 기억하고 싶었던 그는 방학 때면 강정을 찾았다. 중고등학생 때는 한 달씩 머물렀고, 배를 타면서는 꽤 오래 살기도 했다. 대학생인 지금도 방학마다 내려간다. 이 강정에서 바다의 질긴 생명력을 가진 풀, 이에 더해 바다에서 멋지게 활동하는 풀이기를 바라는 기대까지 담긴 ‘해초’라는 이름도 얻었다.

고교 과정의 산청간디학교에 입학한 그해 봄, 세월호가 침몰했다. 오랫동안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이후 해초의 발걸음은 더욱 적극적으로 국가의 부재와 자본의 논리 때문에 소외와 폭력이 발생하는 수많은 현장으로 향했다. 송전탑 설치에 반대한 밀양, 사드 배치에 저항한 성주 소성리, 새만금 신공항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한 군산, 이외 철거촌과 홈리스 투쟁 현장… 그는 학교 밖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사진 2) 인터뷰를 하고 있는 해초 Ⓒpopcon

 

 

시위 현장이 ‘천국 같았던’ 이유

결 : 모두 갈등이 첨예하고 폭력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 곳들이었는데, 오히려 ‘천국 같았다’고 표현하셨더군요.

해초 : 더 궁금했던 건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었어요.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향하며 살겠다고 결심한 삶이 대단해 보였고, 무엇보다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사실 활동보다 그곳에 살고 싶어서 갔던 것 같아요. 저는 기독교인이 아니라서 ‘천국’이라는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가치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제게는 그렇게 느껴졌어요. 한국의 투쟁은 장기화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활동과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둘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기회이기도 했고요. 뭔가 저항하며 살아가는 삶에 관심이 있었어요.

결 :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드러나듯 독재를 겪은 세대에게 억압은 눈에 보였고, 그래서 저항도 분명했습니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억압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인데, 여전히 ‘저항’이 중요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해초 : 폭력의 강도와 별개로, 군부독재나 전쟁의 폭력이 바로 보이는 폭력이라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폭력에 둘러싸인 시대라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부당한 폭력이 일어나는 현장이 아니라도 우리의 주거는 불안하고, 노동은 불안정해요. 끊임없이 소비하지 않으면 연명할 수 없는 삶, 혐오와 차별이 일상적인 삶이에요. 갈수록 실감하는 기후위기는 미래 세대에 집중되는 폭력이고요. 팔레스타인에서 직접적인 폭력을 마주하고 돌아오니 오히려 서울에서의 삶에 얼마나 보이지 않는 폭력이 많은지 더 선명하게 느껴졌어요. 그럼에도 잘 보이지 않기에 폭력의 테두리 안에 있는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내지 못한 채 저마다 혼자 떠안아요. 그러다 고립되고요. 친구들에게 항상 그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풀어야 하고, 풀어낼 수 있는 문제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평화의 바다 위해 세일링 요트 배워

결 : 다소 늦게 대학에 진학하신 뒤 재학 중 세계평화대학의 ‘피스 보이저(Peace Voyager) 과정을 이수하셨어요. 세일링 요트 기술을 익혀 바다를 무대로 반전평화운동을 펼칠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라고 들었는데요. 자세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해초 : 산청간디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혁신파크 안에 있는 대안대학 성격의 지식순환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됐어요. 근데 오래가지 못했어요. 서울살이가 너무 척박하고 춥더라고요. 이후 덴마크에 가서 시민대학인 ‘폴케호이스콜레’에서 예술을 공부하는 등 6개월마다 거처를 옮겨 다니며 길을 찾았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인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좇아 1년 넘게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만 그리기도 했고요. 그런데 목표는 여전하지만 매일매일이 의미 있다고 느껴지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뒤늦게 입시를 택해 20대 중반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에 입학했습니다. 휴학했다가 지금은 복학해 다니고 있어요.

피스 보이저 과정은 대학 2학년 때인 2022년 처음 개설됐어요. 해군기지 준공 이후 운동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던 강정마을 사람들이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평화운동을 펼쳐온 강정마을을 자주 들락날락하며 카약 시위 경험도 있고, 튼튼해 보이기도 해서인지 제게 제안을 주셨어요. 약 6개월 동안 평화 사상, 기초 해양학 등의 이론과 함께 요트 조종 훈련, 원거리 항해 훈련 같은 실전 교육을 받았죠. 무엇보다 ‘요트를 타고 이 섬과 저 섬을 서로 연결하고 건너가자’는 취지에 끌렸어요.

결 : 피스 보이저 과정을 마치고 바로 2023년 ‘공존과 평화의 바다를 위한 항해(공평해)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어요. 무려 107일간 이어진 프로젝트였는데, 작은 요트 위에서 불편과 위험을 감수하며 찾아간 섬들에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해초 : 107일 내내 바다에 있었던 건 아니에요. 길게는 11일, 보통은 3~4일 항해하고 육지에 들러 재정비하고, 다시 떠나는 일정이었어요. 전문가가 아닌 저희끼리 고군분투하면서 배와 바다를 동시에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니 모험이긴 했죠. 근데 힘들었다는 기억은 크게 남아 있지 않아요. 도시에 살면서는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끼기가 어려웠거든요. 그 항해에서 살면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을 목격했어요. 돌고래와 거북이, 고래, 이름을 알 수 없는 물고기들. 그런 생명이 거기 있다는 걸 알고 목격하는 일도 평화운동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오키나와에서는 멸종위기종인 듀공을 봤는데, 제가 본 줄도 몰랐다가 나중에 현지 분들이 보여준 사진 덕분에 알게 됐어요. 멸종위기종을 목격하는 것이 군사기지 건설을 멈출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요.

저희가 들른 거의 모든 섬에 군사기지가 있었어요. 섬이 아름다우니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욕망과 기지를 유치해야 하는 관계가 맞물려 있는 악순환이 섬마다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현에 속하지만 본토가 대만보다 먼 요나구니섬처럼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곳에 가면 주민들이 정말 반가워하셨어요.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 그게 평화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고 느꼈어요. 온라인으로 다 연결돼 있다지만 작은 섬의 이야기는 밖에서 들을 수가 없잖아요. 하고 싶었던 건 그 이야기들을 듣고 수집하고, 제주에서 온 저희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잇는 일이었어요.

이듬해 8월에는 혼자 미국에 가기도 했어요. 핵무기 실험을 저지하기 위해 1958년 출항했던 역사상 최초의 환경·평화 직접행동 항의선인 ‘골든룰(Golden Rule)’호에 두 달간 탑승해 탈핵운동을 함께 했습니다. 2015년 복원된 이 배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의 여러 항구를 돌며 핵무기 철폐와 평화, 환경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사진 3) ‘공평해’ 항해 도중 한 장면이다. (사진 제공: 해초)

 

 

항해는 그 자체가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

결 : 2025년에는 ‘요나스 웨일’호의 선장이 돼 진도와 광주를 거쳐 임진각 앞까지 항해하셨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상처가 새겨진 장소들을 바다로 잇는 경험도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해초 : 선장이라고 큰 차이가 있었던 건 아닌데, 배에선 여러 위험이 있어 결정하고 책임지는 역할이 필요해 둔 직급이었어요. 이 항해도 주제는 달랐지만 결은 같았어요. 진도와 광주처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들르며 그곳의 이야기를 서로 잇고 싶었어요. 근데 망했던 적도 있었죠.(웃음) 서해는 양식장이 많은데다 물살이 세고 갯벌 바닥 수심이 얕아요. 요트에게는 굉장히 안 좋은 조건이죠. 결국 어장에 걸려 배가 상처를 입고 멈춰 다른 배로 갈아타야 했어요. 그 항해에서 제 몸이 ‘매개’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교통수단도 없는 작은 섬에 바다를 건너 도착하면, 제 몸이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매개가 된다고 느꼈어요. 선으로 경계를 긋는 땅과 달리 바다에서는 모든 게 연결돼 있었어요.

결 : 항해를 잘하는 일은 관찰하는 일에 가깝다고 하셨어요. 이 말은 바다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리는데, 해초님에게 ‘관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해초 : 많은 사람이 어떤 대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굉장히 단순하게 생각해요. 특히 바다처럼 상징적으로 쓰이거나 낭만화된 단어를 만나면 볼 수 있는 게 오히려 적어져요. 그래서 처음 배를 타는 분들은 대개 10분 만에 지루해 하고요. 드넓게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공간으로 느끼니까요. 그런데 자연은 디지털이 아니라 아날로그라서 계산할 수 없는 모양으로 시시각각 변해요. 항해할 때는 바다도, 바람도, 날씨도 읽어야 하고, 배도 조정해야 하고, 함께 탄 사람들도 배려해야 해요. 굉장히 바쁜 일이죠.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그래서 멀미를 해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흔들림만 감각하니까요. 저도 어릴 땐 멀미를 했는데, 볼 수 있는 것과 느낄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자연스럽게 사라졌어요. 멀미를 가라앉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지금 이 바다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거예요.

자주 하는 이야기라 좀 민망하지만, 한번은 배보다 훨씬 높은 3미터 파도를 만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렵다기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같은 대상을 봐도 내가 어떤 태도로 보느냐에 따라 느끼는 게 전혀 달라진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그 뒤로 무서운 것을 만나면 그렇게 보려고 해요. 두려움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니까요.

 

(사진 4) 2차 나포 후 항해에서 돌아온 직후 김동현, 이승준, 해초 항해자들이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시민들이 접은 종이 돛단배를 팔레스타인 국기를 따라 흐르게 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해초)

 

결 : “항해는 그 자체가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이라는 말씀도 인상 깊었습니다. 흔히 낭만의 이미지로 소비되는 항해가 저항이 되는 지점은 어디인가요?

해초 : 해안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난 바다는 공해예요. 어떤 국가나 기관에도 점유되지 않은 공간이죠. 그런 공간은 바다가 거의 유일해요. 그 자체에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느껴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무언가로부터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바다를 건넌다고도 생각하고요.

오래 항해하다 육지에 내리면 가장 어색한 게 모든 것이 정지해 있다는 감각이에요. 육지 멀미라고 하죠. 사실 육지의 풀이나 나무도 늘 흔들리고 있는데, 우리가 건물에 둘러싸여 있으니 세계가 멈춰 보이고, 한 뼘의 땅조차 누군가에게 소유된 땅으로 보이는 거예요. 바다는 그런 장소에 대한 감각을 넓혀줘요.

그리고 실제로 항해는 삼보일배처럼 여기서 저기까지 내 힘으로 건너가는 일에 가까워요. 다른 점은 바람의 방향에 맞춰야만 갈 수 있다는 거죠. 목적지가 저기 있어도 일직선으로 갈 수 없고, 바람에 따라 여러 방향으로 꺾어가며 도달해요.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건 모든 걸 예측하고, 돈을 지불하고, 속도와 시간을 계산하는 일이잖아요. 바다에서는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겪으며 가요. 저는 저항하는 방법 또한 시스템에 반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항해를 통해서 하고 싶어요.

 

 

팔레스타인 구호 선단 합류 계기는 ‘책임감’

결 : 많은 이들이 팔레스타인 상황을 멀고 복잡한 분쟁으로만 여깁니다. 해초님은 어떤 과정을 거쳐 그곳을 ‘나와 연결된 곳’으로 느끼게 되셨나요?

해초 : 두 갈래가 있었어요. 하나는 항해예요. 해외에는 항해를 투쟁의 방법으로 쓰는 단체가 많고, 가자 봉쇄를 뚫기 위한 항해는 2008년부터 거의 매년 이어져 왔어요. 지중해 연안에서는 꽤 대중적인 운동이에요. 저희가 항해를 시작한 이유도 고립된 섬들을 찾아가 서로를 잇고 싶어서였으니, 자연스럽게 이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땅인 팔레스타인 가자에 바다를 건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원래는 한국에서 출발해 가자까지 가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2023년 10월 이후 가자 봉쇄와 공격이 극심해지면서 항해 운동도 훨씬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작년에는 한 해에 다섯 번의 항해가 있었고, 그중 하나에 참가자로 지원했어요.

다른 하나는 영화예요. 제가 비서구, 제3세계의 영화 운동에 관심이 많아요. 1960~1970년대 팔레스타인은 영화로도 치열하게 싸웠고, 봉쇄를 당하던 남미나 아랍의 여러 나라와 영화로 연대했어요. 그런 영화들을 보면서 팔레스타인을 특별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올해로 식민 점령 78년째인데, 그렇게 오래 점령을 당하면 사람들의 삶부터 체제에 예속될 수밖에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늘 저항하고 있는 상태로 느껴졌어요. 영화 속에서 무자비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어린아이들이 스스로를 팔레스타인인이라고 소개하고 자기 역사와 문화에 긍지를 갖는 모습이 굉장히 놀라웠어요.

그리고 2023년, 2024년 뉴스를 보면서 너무나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보게 됐어요.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민 점령이 인종 말살의 성격을 띠면서 아이와 노인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어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은 종교 전쟁이 아니에요. 인종에 대한 혐오이자 집단학살이에요.

 

(사진 5) 1차 항해 때 TMTG 선단의 배들이 이탈리아 해안을 지나 가자로 향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해초)

 

결 : 관심과 연대를 넘어 직접 배에 오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결단입니다. 2025년 9월 구호 선단에 합류를 결심하고, 실행하기까지 과정을 들려 주세요.

해초 : 지금 세계에는 크게 세 개의 선단이 있어요. TMTG(A Thousand Madleens to Gaza. 가자로 가는 천 개의 매들린), GSF(lobal Sumud Flotilla. 글로벌 저항 함대), FFC(Freedom Flotilla Coalition. 자유함대연합)예요. 각 선단은 나라나 지역별로 지부가 있어서 지부 단위로 참가자를 연결하거나 배를 구입해 보내는데, 한국에는 지부가 없었어요. 그래서 일반 참가자로 신청했죠. 지중해에서는 대중적인 운동이라 경쟁률도 있습니다. 항해 기술이 있는 사람, 의료진, 기자,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먼저 선발되고, 그 밖에는 일반 시민들이 함께 타요. 사회적 성향이나 심리 상태를 보는 테스트도 거쳐요. 저는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더 많은 나라의 시민이 참여하는 게 중요하니까 선발됐다고 생각해요. 비용은 가는 비행기 표만 제가 냈고, 이후 숙식과 추방 비용은 선단에서 부담해줬습니다.

합류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는 책임감이에요. 한국은 미국의 군사적 요충지로 쓰이면서 베트남, 이라크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에서도 가해국의 역할을 해왔어요. 이스라엘에 무기를 팔고 있고요. 아픈 식민의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이 대중의 인식에서는 제가 만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낮은 것 같아요. 그래서 팔레스타인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고 여기는 것 같고요. 그게 부끄럽고 답답했어요. 한국 시민사회에서도 2023년 이전부터 팔레스타인 연대활동이 꾸준히 있었지만 대중에게 크게 가시화되지는 않았어요. 누군가는 그곳에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 : 누군가는 왜 목숨을 걸면서까지 남의 문제를 내 문제로 여기느냐고 묻습니다. 연대에 대한 생각도 궁금합니다.

해초 : 저한테는 오히려 그 질문이 잘 이해되지 않았어요.(웃음) 제 주변 분들은 제가 언젠가 가자에 가리라는 걸 다 알고 계셨고, 결의나 결심이라기보다 해오던 활동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투쟁 현장에서 만난, 존경하는 거의 모든 분들이 사실 그 현장의 당사자가 아니었어요. 자신의 삶과 전혀 상관 없어도 그곳이 소중하기에 찾아와 살면서 지키려 한 사람들이었죠. ‘당사자성’은 제가 늘 고민해온 문제예요. 지금은 팔레스타인의 해방이 여기 있는 우리의 해방이고,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우리의 문제라는 데 의심의 여지 없이 동의해요. 팔레스타인은 지난 식민지 시대의 잔재이면서 지금 신자유주의 시대의 인질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6) 해초는 평소에도 팔레스타인 전통 스카프인 쿠피에를 두르고 다니며 연대의 뜻을 표현하고 있다. Ⓒpopcon

 

 

부모님도 모르게 떠난 구호 항해… “가기 전이 가장 무서웠어요”

결 : 출국 전 유서를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준비의 시간 동안 무엇을 정리하고, 무엇을 분명히 남기고 싶으셨나요?

해초 : 출항 열흘쯤 전에 ‘언제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는 통보만 받았어요. 보안상 자세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어요. 먼저 가본 한국인도 없었고, 이스라엘은 항해자들을 장기 구금하겠다고 위협하던 때였어요. 그래서 가기 전이 가장 무서웠어요. 강정에 내려가 인사를 나누고, 집을 말끔히 정리하고, 가족에게는 편지를, 구호 선단 참여를 지원해준 강정마을 분들에게는 유서를 남겼어요. 종교는 없지만 어딘가를 떠날 때는 늘 기도하는 편이라, 그날도 짧게 기도하고 공항으로 갔어요. 부모님은 제가 해오던 항해를 이번엔 지중해에서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저도 일부러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고요.

유서에 쓴 구절 중 하나는 이런 거였어요. 만약 제게 큰일이 생긴다면 그건 슬픈 일이지만, 그 폭력의 결과는 저 개인에게서 비롯된 게 아니라 식민 점령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낳았다는 것이었어요. 앞으로 다가올 폭력과 두려움도 그렇게 이해하고 싶었어요.

결 : 짐 속에는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챙기셨고, 나포에 대비한 영상도 미리 남기셨습니다. 기록하는 사람이자 증언하는 사람으로서, 그 카메라 앞에서 무엇을 남기고 싶으셨나요.

해초 : 지중해는 침몰한 난민선과 수많은 난민의 희망이 함께 잠든, 가장 슬픈 바다 중 하나예요. 그 바다를 건너 가자에 닿는다면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우리가 닿는다면 정말 오랜만에 평범한 시민들이 가자에 가는 일이 되잖아요. 고립된 지 너무 오래됐으니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 자체가 가장 필요한 구호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기자의 눈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의 눈으로 그 장면을 담고 싶었어요. 결국 카메라는 다른 짐들과 함께 빼앗겼지만요.

나포를 대비한 영상은 제가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기는 저의 증언이었어요. 제 이름과 국적을 밝히고, 이 영상이 공개됐다면 우리가 바다에서 가로막혀 집단학살에 가담한 군대에 의해 끌려간 것이니, 한국 정부에 제 석방을 요구해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 7) 해초는 아픈 식민의 역사를 가진 한국이 이스라엘에 무기를 파는 등 팔레스타인에 가해국 역할을 하고 있어 부끄럽고 답답하다고 비판하며 누군가는 그곳에 직접 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pop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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