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려는 의지’로 역사에 연루되다 - 베트남전쟁과 대면하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서평

  • 문화
  • 조형근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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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려는 의지’로 역사에 연루되다
베트남전쟁과 대면하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서평

전쟁의 충격과 파장으로 혼란이 극심했던 2026년 상반기, 베트남전쟁과 차분하게 대면하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 을 편다. 평화학 연구자 정희진의 말을 빌리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남성들의 목소리이자,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이 책에 대해 ‘동네 사회학자’ 조형근은 이제 우리가 읽음으로써 연루될 차례라고 말한다. 엇갈리는 말들과 흔들리는 마음을 담은 진술을 읽으며 우리는 듣기의 방법과 윤리를 고민하게 된다.

 

 

2017년 6월 6일, 제62회 현충일 추념식 때의 일이다. 취임한 지 한 달쯤 지난 문재인 대통령이 추념사를 읽으며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의 부름에 주저없이 응답했습니다.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것이 애국입니다.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장애는 국가가 함께 책임져야 할 부채입니다. 이제 국가가 제대로 응답할 차례입니다.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하겠습니다.”

‘자유세계 수호’니 ‘국가유공자 예우’니 하며 의례적인 표현에 그쳤던 전임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다른 진정성 넘치는 추념사였다. 참전 군인들의 공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보상과 예우를 다짐했다. 드디어 ‘나라다운 나라’가 됐다며 지지자와 국민이 감격에 겨워했다. 참전 관련 단체들도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전쟁터가 되었던 베트남 쪽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베트남 정부는 외교부를 통해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를 전달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당시에 ‘본의 아니게 고통을 주어 미안하다’거나 ‘마음에 빚이 있다’는 식으로 우회적으로나마 사과 의사를 표현해온 한국이 노골적으로 참전을 미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인지 따졌다. 한국 정부와 주베트남 대사관은 단지 국가의 명을 받고 헌신한 자국 국민에 대한 예우 차원이었을 뿐, 전쟁을 미화하거나 양국 관계를 훼손하려는 의도는 전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해 11월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에서 열린 행사에 마음의 빚이 있다는 뜻을 담은 영상을 보냈다. 갈등은 그렇게 봉합됐다.

한국의 여론은 달랐다. 추념사에 환영의 뜻을 밝혔던 참전 단체들은 정부의 ‘로우키’, 자세를 낮춘 대응에 유감을 표했다. 온라인 기사에 달린 댓글과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 등에서는 베트남 정부의 항의에 대한 분노와 베트남에 대한 혐오, 경멸이 폭발했다.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았다. 참전 군인에 대한 경의는 국민국가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는 입장은 그나마 온건한 편이었다. 물론 그것이야말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이 하는 말과 똑같은 논리이지만. 부당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사실에 눈 감은 채로 말이다. 베트남 따위 키워줬더니 건방지다거나, 삼성전자 공장 뺄 때가 됐다는 등 옮기기 힘들 정도의 혐오 표현이 난무했다.

이 시끌벅적한 소란의 와중에 가장 조용한 이들은 평범한 참전 군인들이었다. 베트남의 도시와 정글에서 젊음의 한때를 보내고 이제는 노인이 된 이들에게는 마이크가 쥐어지지 않았다.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것인가? 어떤 일들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법한 방식으로 일어나곤 한다. 참전 군인의 정반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 때로 시위 현장에서 참전 군인과 부딪히곤 하던 이들, 베트남에서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며 싸워온 평화활동 단체의 활동가들이 이들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들의 들으려는 의지가 참전 군인들의 말하려는 의지와 만났다. 오늘 소개하려는 책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전쟁은 얼마나 깊고 오래 가는가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참전 군인 여섯 명이 말을 하고 활동가들이 기록한다(‘전쟁에 다녀온 할아버지’). 2장은 참전 군인 2세와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또 다른 연루자, 참전군인 2세와 유가족’). 3장에서는 참전 군인의 이야기를 기록한 다섯 명의 구술자가 소회를 밝힌다(‘분열과 모순 속에서 전쟁을 듣는 마음’). 그 앞뒤로 서문 격인 편집자주 ‘저항하며 듣고 말하는 교차로에서’와 에필로그인 ‘평화를 발굴하기 위한 전쟁 이야기’가 덧붙어 있다.

먼저 ‘남자들’은 왜 총탄이 오가는 전쟁터에 갔을까? 부대 단위 차출에 따른 참전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원이었다. 이들이 토로하는 참전 동기는 한결 같이 가난이었다. 입 하나라도 덜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난한 집안을 건사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이들을 전쟁터로 데려갔다. 국가만큼이나 가부장제가 부과한 가족주의적 책임감이 이들을 전쟁터로 이끌었다. 군 당국은 월급의 70%를 가족에게 송금하게 했고, 흑백TV처럼 비싸게 팔 수 있는 물품들을 ‘귀국박스’로 챙겨와 한몫 챙길 수 있게 했다. 박정희 정권이 대외적으로 선전하던 반공이나 자유세계 수호 같은 명분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사실 정권조차 그런 이데올로기는 믿지 않았다. “5개월만 아껴쓰고 송금하면 여러분 가정에는 살찐 황소가 한 마리 불어나게 된다”며 참전을 부추겼다.

이들은 전쟁 속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까? 한편에 피비린내 나는 기억들이 있다. 해병대 전투병 류진성의 경험은 참전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전형이다. 첨병이었던 그는 늘 최전선에 서다 큰 부상을 입었고,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현장을 목격한다. 말년 병장으로 참전한 안익순은 공병대 트럭운전수로 근무하며 포사격 후의 시신들을 수습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열여덟살 이른 나이에 자원 입대한 오경렬은 정글과 베트콩 마을에 여러 번 작전을 나갔다. 지휘부가 전과를 강요하니 사람 귀를 잘라 소금에 절여 가져오는 일도 있었다. 귀를 잘라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던 이의 웃음을 떠올리며 아직도 몸서리를 친다.

전쟁은 거대한 사건이고, 군대는 복잡한 조직이다. 모두가 전투를 경험한 건 아니다. 병참 장교로 근무한 유성원은 한국에서 온 위문품과 편지를 전달했고, 위문 온 연예인단을 인솔하기도 했다. 치위생 하사관으로 근무한 송금술은 치아 치료만 했을 뿐 작전 참여는 안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인근 마을에 대민 지원도 나갔다.

“솔직히 얘기하면 나는 괜찮았어요.”

전쟁의 경험은 이렇게 다면적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가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전쟁에는 수많은 기술자와 노동자도 연루됐다. 전장의 기억으로만 축소될 수 없다. 하나의 기억으로 다른 기억을 부인할 수 없다. 괜찮았다는 기억의 사실성을 부정하지 않은 채 전쟁의 참상을 인식해야 한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이들에게는 이후 수십 년의 삶이 있었다. 그 삶의 결들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줄기와 겹치지만, 전쟁의 흔적은 오래도록 남았다. 안익순은 운전병 경력을 살려 경부고속도로 건설 공사 등 고도성장과 산업화의 핵심 현장에서 평생 일했다. 치위생사로 오래 일한 송금술은 고엽제 피해자인데도 비전투병이었던 자신은 전쟁을 잘 모른다며 목소리를 낮춘다. 전투병의 기억만 특권화되는 분위기 탓일까, 끊임없이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주저한다.

독재와 민주화운동의 역사도 얽혀든다. 병참장교 출신인 유성원은 전역 후 교련 교사가 되어 광주에서 근무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날마다 도청 앞에 나가 학생들을 챙겼다. 종종 특권화되는 전투병의 기억은 참혹한 트라우마로 얼룩지곤 한다. 오경렬은 끔찍한 기억을 지우려다 보니 전우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전기 기술을 배워 일했는데 대학생이 된 동생이 유신 반대 운동을 하다 구속되면서 구속자 가족 모임에 참여했다. 1980년 5월 중순에 친구의 결혼식 참가차 광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터미널에서 대학생들에게 유인물을 받았다. 항쟁이 일어나자 서울 거리에 대자보를 써서 함께 붙였다. 합수부에 잡혀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사실이 부끄럽다.

“어두운 과거를 덮어놓고 있는 이런 상황들은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참전했던 군인들은 거의 다 그런 부채 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상이군경회 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류진성은 세월이 지나면서 전쟁의 잘못을 깨달았다. 국가의 명령에 복종한 “우리는 가해자이자 피해자”이고, 국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다. 50여개 단체와 1천여 명의 시민이 만든 2018년의 시민평화법정에서 하미마을과 퐁니마을의 학살을 비공개 증언했다. 이후 법정 공개 증언을 통해 한국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1, 2심 법원의 판결에 기여했다. 후대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다. 평생을 함께해온 상이군인 단체에서는 낙인이 찍혔다.

“나에 대해서는 걱정 말아요, 내가 할 일은 할 테니. 바람이 있다면 대법원 판결을 살아 생전에 보는 것이긴 해요.”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남성들의 목소리이자, 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엇갈리는 말들과 듣기의 윤리에 대하여

그리고 책은 듣는 사람들, 활동가들의 시선과 내면 속으로 옮겨간다. 저자 중 한 명인 이재춘은 참전 군인 2세다. 아버지는 고엽제후유증인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그 자신도 고엽제후유증을 앓고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려 애쓰던 과정에서 베트남전쟁과 연루됨을 깨닫는다.

“국가에 의해 동원되었던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들은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정신적, 육체적 고통 속에서 조용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여기에 국가는 개입하지 않는다. 죽게 내버려두는 통치성을 발휘할 뿐이다 ... 참전 군인들의 고통과 그 2세들의 존재는 은폐되어 있다. 그들의 존재는 ‘비-존재화’된다.”

아픈 몸을 경험하는 방식, 온전히 재현될 수 없는 몸의 기억과 고통 같은 것은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다. 안익순은 포사격으로 전사한 시신들을 수습하다가 코피를 쏟았다고 말한다.

“그 썩은 냄새를 맡으니까 코에서 코피가 나와버리더라고. 그렇게 독해. 사람 썩는 냄새가.”

녹취를 풀던 공저자 김엘림은 의문을 품는다. ‘정말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사람이 코피를 흘릴 수 있는 걸까.’ 고민하던 그는 냄새 때문에 코피가 났다는 기억의 ‘실체성’을 따지지 않기로 한다. 대신 그렇게 표현할 만큼 ‘강렬했던 몸의 기억’이 있다는 ‘사실성’을 받아들인다. 아무리 애써도 글로는 재현할 수 없는 ‘몸의 기억’이 있다.

어떤 의문은 이렇게 해소되지만, 어떤 의문들은 해소되지 않은 채 입 안에서 우물대다 삼켜진다. 참전 군인들의 말은 평화 활동가들의 귀 앞에서 종종 미끄러진다. 베트남 경험이 괜찮았다는 치위생 하사관의 기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나는 진짜 월남 다시 한번 가라면 또 갈 자신 있어 ... 지금은 우리나라가 잘사니까 월남에 간 거를 안 좋게도 말하지, 만약에 우리가 지금도 잘 못살았으면 사람들이 이렇게 이야기 안 했어” 같은 회고 앞에서는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가해의 사실을 증언하고 사죄하는 류진성의 증언조차 흔쾌하지 않다. 전쟁에 반대한다면서도 해병대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는 그의 말들은 곧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의 함정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보인다.

엇갈리는 말들과 흔들리는 마음을 담은 이 진술들 덕분에 책을 읽으며 우리는 듣기의 방법과 윤리를 고민하게 된다. 듣고 옮기고 해석한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순수한 회고와 이데올로기적 정당화를 누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그런 구별과 해석의 시도 없는 온전한 재현은 가능할까? 책은 저자들의 마음을 훑고 지나가는 의문들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그래서 입체적이고 더욱 읽을 가치가 있다.

베트남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글을 쓰고 활동해온 석미화는 에필로그에서 베트남전쟁이 ‘공산주의를 도모하려는 베트콩과의 싸움’이었고, 작전 중 한국군이 사상(死傷)당하면 살기 위해 죽일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하는 참전 군인과의 대화를 떠올린다. 참전자 단체나 보수단체가 주장할 법한 이 전형적인 정당화 논리에 귀 기울이게 만든 것은 노인의 눈물이었다. 그 눈물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친 삶이 매도당하고 있다는 억울함을 본다. 그가 노인에게 말한다.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주장은 한국군이 ‘일부러’ 죄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이 아니라고, 베트남전쟁에 군대를 보낸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말이다.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종종 눈시울을 붉힌다.

“참전 군인과의 만남은 처음에는 이상하고 불편하고 어색한 감정을 불러오지만 서로의 차이와 다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면 반드시 만나는 새로운 생각들이 있다.”

말하고 듣는다고 해서 평화로운 합의에 쉽게 도달하지 않는다. 목소리는 안개 속에서 들리고, 듣기는 종종 길을 잃는다. 하지만 말하고 듣지 않고서는 듣고 말하는 이의 자리에 대해서, 당사자성에 대해서, 우리의 연루됨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이 책에 대해서라면 나는 ‘들으려는 의지’를 되새기고 싶다. 들으려는 의지가 없다면, 그러니까 듣는 사람이 없다면 증언은 불가능하고, 연루된 주체로서 우리 공동의 책임이라는 인식도 불가능하다. 듣기로 결심한 이들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 글쓴이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파주 교하의 협동조합 책방 조합원이기도 하다. 불평등과 민주주의, 동네와 세상 사이의 관계, 제국과 식민지의 역사가 남긴 상처 등 여러 주제를 오가며 글을 쓰고 강연한다. 지은 책으로 『앎과 삶 사이에서』 ,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 『키워드로 읽는 불평등 사회』 , 『우리 안의 친일』 , 『나는 글을 쓸 때만 정의롭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