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송신도 할머니의 ‘지지 않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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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해룡
  • 2025-12-17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속 송신도 할머니 (사진 제공 : 안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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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나는 송신도 할머니의 ‘지지 않는 마음’
22년만에 국문 번역본 출간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리뷰


 

1993년 4월 5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재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송신도. 10년 동안 이어진 송신도 재판은 끝내 패소했다. 하지만 송신도는 ‘전쟁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 득이 될 게 없다’며, ‘재판은 졌어도 마음만은 지지 않았다’는 발언을 일본 정부에 되돌려주었다. 그의 당당한 투쟁은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 담겨 2007년 국내에서 반향을 일으켰다.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는 단행본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출간됐다. 이 단행본이 재판이 끝난 후 22년만에 한국어로 번역돼 나왔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영화를 제작한 안해룡 감독이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다시 송신도 할머니의 투쟁, 그리고 이 투쟁에 함께 한 일본 시민단체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큰 배를 탄 기분으로 잘 살테니 부디 여러분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다들 바쁘신 와중에 일을 하면서도 이렇게 와주신 것은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나도 이렇게 살아온 인간이니까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머리 속으로는 잘 압니다. 재판에 졌는데 이제 와서 이러쿵저러쿵 해도 소용없다는 것도 잘 알지만 어쨌든 여러분께 죽기 전에 제 억울함을 들어주십사 이렇게 떠듭니다만 전쟁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고 득이 될 게 없어요. (…) 나는 정말 재판은 졌어도 마음만은 지지 않았어요. 미야기현에 돌아가도 큰 배를 탄 기분으로 여러분들 얼굴 보면서 잘 지내나 하면서 죽기 전까지 어떻게든 잘 살테니까 여러분 부디 잘 부탁합니다.”

 

1993년 4월 5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재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송신도. 재판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난하게 이어졌고, 2003년 3월 28일 일본 최고재판소는 “상고를 기각한다”는 한 줄의 판결문으로 원고 송신도의 패소를 확정했다. 위의 인용문은 최고재판소의 판결 약 한 달 후인 5월 2일 열린 ‘용납할 수 없다!!! 최고재판소의 상고 기각 - 재판 보고와 이제부터의 과제’라는 제목의 집회에서 다소 굳은 표정이었지만 담담하게 송신도가 토로한 심경이었다.

울림이 컸던 송신도의 이 발언은 필자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의 마지막 장면이기도 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송신도 재판’을 지원했던 일본인과 자이니치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말을 마친 송신도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웃음은 바로 눈물로 바뀌었다. 뜨거운 지지의 박수로 화답한 참가자들은 송신도의 마지막 말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 싸워달라는 당부임을 모르지 않았다. 

싸움을 이어가려는 의지는 먼저 다큐멘터리 제작과 책 발간으로 모아졌다. 10년에 걸친 ‘송신도 재판’이 끝나자마자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 이 모임은 2017년 송신도 할머니의 별세 후 ‘송신도 할머니의 마음을 잇는 모임’으로 바뀌어 활동하고 있다.)’에서 그동안의 활동과 경험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는 한편 단행본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감사하게도 필자가 감독을 맡아 2007년 공개한 다큐 영화의 제목과 비슷한 시기 세상에 나온 단행본의 제목이 모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였던 것은 자연스러웠다. 고군분투하면서 당당하게 걸어온 송신도의 생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문장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 1]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책 표지 (사진 제공 : 안해룡)

 

 

 

재판 후 22년이 지나 한국어로 번역 출간

그리고 재판이 끝나고 22년이 지난 2025년 9월, 지원모임이 엮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보더북, 2025)가 한국어로 번역, 출판되었다. 재일 ‘위안부’ 송신도가 다시 한번 우리 곁으로 온 것이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기억·계승하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 ‘희망씨앗기금’ 사무국에서 일한 김민화가 애쓴 덕분이었다.

그동안 국내에서 일본군‘위안부’ 관련 증언집은 여럿 나왔고, 형식도 다양하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1~5)』처럼 피해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낸 증언집이 있고,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모리카와 마치코, 아름다운사람들, 2005)나 『가고 싶은 고향을 내발로 걸어 못가고』(안이정선, 아름다운사람들, 2007) 등과 같은 전기도 있다. 또 『한 명』(현대문학, 2016)부터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 2018),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현대문학, 2018), 『듣기 시간』(문학실험실, 2021)에 이어 최근의 『간단후쿠』(민음사, 2025)까지 꾸준히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재구성해온 김숨 작가의 ‘증언 소설’ 도 있다. 

이번에 번역돼 소개된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이들과 다른 결의 증언이자 기록이다. 재일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송신도의 삶을 담고 있지만 피해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물론 피해 당사자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송신도가 어떻게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까지 제기할 수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정리한 부분에 무게중심이 있다. 하지만 재판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가는 송신도의 곁을 지키며 보폭을 맞추고 한결같이 응원했던 지원모임의 구성원들이 들려주는 따뜻한 이야기 또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역사의 소중한 일부이자 일본 시민들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화가 생생한 현장성을 전달해 공감을 이끌었다면 단행본은 송신도의 활동과 재판 지원을 아우르며 재일 ‘위안부’ 운동의 맥락과 서사를 충실하게 담아 서로 보완하고 있다. 지원모임의 양징자 대표 또한 “영화와 함께 책을 읽는다면 영화의 배경에 있는 것들과 송신도 할머니의 마음을 보다 풍부하게 전달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는 담을 수 없었던, 우리들의 머리 속에만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을 전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피해의 구체성을 증거하는 뛰어난 기억력과 거침없는 증언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펼치면 이색적인 구성에 먼저 시선이 갈 것이다. 크게 보아 재판과 지원모임 활동 등으로 내용이 구분되어 있는데,  재판을 따라가는 부분에서는 일본 최고재판소에 제출한 송신도의 ‘최종 의견 진술서’와 ‘당사자 신문 조서’를 정리해 수록해 놓았다. ‘당사자 신문 조서’는 송신도의 온몸에 새겨져 있는 피해의 기록이었다. 중국으로 가게 된 과정, ‘위안부’가 된 경위, 일본군을 상대하던 때의 상태, 일본군이 자행한 폭력 등 투박하지만 거침없이, 그리고 세세한 묘사로 피해의 구체성을 증거하는 송신도가 얼마나 뛰어난 기억력을 소유한 자인지 가늠할 수 있다. 조서는 또 한 개인의 피해를 넘어 송신도가 떠올리는 지명 등을 통해 ‘위안부’가 어떠한 형태로 일본군의 성적 대상이자 폭력의 대상으로 이용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후 일본으로 가서 과거를 숨기며 살아야 했던 이야기도 날 것으로 ‘들을’ 수 있다. 다음은 송신도의 온몸이 기억하는 날 것의 기억 중 하나이다.

 

“도망 못 가. 이미 군인이 위에 올라서 있어서 볼일이 끝나지 않고는 안 일어나. 그게 끝나지 않으면 군인이 멈추지도 않아 이대로 죽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말을 해대면서 절대로 그만두지도 않고, 도망친다고 해도 다시 잡히고, 정말로 그때가 제일로 고통스러웠어요. 총알에 맞아 죽으면 어떡하나 하고.”

 

오자와 히로코, 와타나베 도모코, 김경득 등 소송 대리인 변호사가 묻고 송신도가 대답하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혹은 그 속에서 함께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다. 법적 문서인 조서라는 특징으로 인해 피해 사실이 훨씬 구체적이고 또렷하게 정리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사진 2]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속 송신도 할머니 (사진 제공 : 안해룡)

 

 

 

“지원모임 여자들이 지켜주니 행복해.”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송신도의 재판을 지원한 ‘지원모임’의 기록이기도 하다. 송신도는 1992년 10월 ‘종군위안부 110번’ 핫라인의 실행위원회와 도쿄에서 비공개 모임을 가진 후 재판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내용이 마이니치신문에 ‘재일 조선인 위안부가 제소’라는 제목으로 기사화되면서 재판이 기정사실화되자 1993년 1월 23일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결성됐다. 지원모임의 중심에서 활동한 양징자 대표가 기록한 ‘송신도 할머니와 지원모임 10년’에서 송신도는 ‘행복’을 말한다.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 지원모임 여자들이 지켜주니 행복해. 지금 와서 아무리 말해본들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지. (…) 일본인들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정치가들을 고쳐놓지 않으면 안 돼. 전쟁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내 입으로 말해도, 자네 입으로 말해도, 전쟁은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고,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위한 거니까.”

 

재판을 시작하기까지, 그리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와 투쟁한 10년은 묵묵히 옆을 지켜온 지원모임의 회원들 없이는 불가능했을 여정이었다. 본명으로 당당히 제소하는 일, 배상 청구액을 계산하는 일, 아시아여성기금에 대한 대응 등 재판 과정에서 돌출된 주요 고비와 결정 모두에 지원모임이 함께였다. 처음에는 대표도, 사무실도, 상근자도 없는 상태였는데 10년 동안 어떻게 그렇게 성실하게 지원 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을까. 양 대표는 송신도 할머니의 마음을 열고 사회와 관계를 맺은 10년이자 재판을 통해 서로가 전쟁의 참혹한 피해를 직시하고 반성하며 함께 치유의 과정을 걸어온 10년이라 회고했다.

 

“송신도 할머니의 의사를 존중하며 할머니를 운동에 이용하는 것을 나 자신에게도, 그리고 다른 누구에게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을 다지며 운동에 임해 왔다. 송신도 할머니의 경험은 할머니 자신만의 것이다. 그것은 함께 웃고 울며, 화내고, 서로 상처를 주고 서로를 격려해 온 우리들이라고 해도 결코 공유할 수 없는 압도적인 사실이다. 재판 투쟁을 해 온 10년 동안 꽁꽁 가둬둔 기억을 사람들 앞에 내보이며 닫혀 있던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 송신도 할머니.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사회와 관계를 맺어가는 할머니를 곁에서 함께 지켜봐 온 것, 이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이다.”

 

 

 

‘위안부’와 ‘복합 PTSD’

이와 함께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는 특별한 자료가 있다. ‘PTSD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이 자료는 지원모임 사무국 진술서와 변호인단의 준비서면 등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지원모임 회원들이 각자가 본 송신도의 모습과 재판에 대한 마음을 정리해 구두변론한 진술 자료에는 이들이 ‘위안부’ 피해를 얼마나 다층적이고 다면적으로 이해하려 애썼는지 잘 드러난다. 

그중에 가와타 후미코[1]와의 만남이 있다. 오키나와의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 배봉기를 만나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뒤 그 이야기를 다룬 『빨간 기와집』(평화를품은책, 2014)을 집필한 가와타가 미야기현에 살고 있던 송신도를 처음 만난 때는 1992년이었다. 1991년 김학순이 공개 증언에 이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은 일본 사회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본 시민그룹이 1992년 1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종군위안부 110번 신고전화’라는 핫라인을 설치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보를 모은 것도 그 여파였다. 가와타도 핫라인 전화를 받았는데, 나중에 조사 카드를 보던 중 송신도에 관한 정보를 확인했다. 그런데 카드에는 정보 제공자의 연락처가 없고, ‘찾아가 봐 주세요’라는 메모만 있었다. 이를 접한 가와타는 핫라인 실행위원회와 상의 없이 송신도의 주소지로 기재돼 있던 미야기현으로 향했다. 가와타와 비슷한 나이의 아이 둘을 중국에 두고 왔기 때문이었을까, 전쟁 때 이야기를 듣고 싶어 왔다는 인사를 송신도는 거부하지 않았다.

이후 가와타는 한 달에 며칠씩, 예닐곱 달을 미야기현을 찾아 송신도의 증언을 들었다. 송신도는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도망칠 수 없음을 알고, 위안소 생활에 억지로 자신을 적응시키게 된 이야기를 했지만 초기 위안소에서 군인에게 피해를 당했을 때의 일은 말하지 않았다. 가와타는 이런 모습에 대해 “그때 받은 충격, 통증, 슬픔이 생생히 기억나기 때문일 것”이라며 “가장 고통스러운 상처를 할머니 스스로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오셨을 것”이라 전했다. 그리고 송신도가 주위 사람들에게 보인 불신과 대인 기피, 정서 불안 증상에 대해 성적 학대, 강제 수용 등 커다란 충격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나타나는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설명했다. 

오자와 히로코 등 6명의 소송 대리인인 변호사들도 PTSD에 대해 상세하게 정리한 준비서면을 제출했다. 장기간 반복된 학대를 받았거나 포로 생활을 했던 사람에게 보이는 ‘복합 PTSD’의 특징적인 인격 변화가 ‘위안부’ 피해자의 사례에 해당한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중대 인권침해 피해자에 대한 원상 회복과 배상, 치유 등을 제안했다. 필자는 이러한 접근이 이후 ‘위안부’ 피해의 성격을 분석하고, 치유를 돕는 데 중요한 시각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사진 3]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중 재판 중인 송신도 할머니 (사진 제공 : 안해룡)

 

 

 

동일본대지진에서 가까스로 살아 ‘망향의 동산’에 안식하기까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한국어판 후기에는 2007년 일본어판 발간 후의 송신도의 삶도 담겨 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으로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가 송신도가 사는 마을을 덮쳤을 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야기, 도쿄로 이주한 뒤 지원모임 회원들과 교류하며 활동하던 이야기 등이다. 요양원에서 지내던 송신도는 2017년 12월 16일 9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2018년 2월 11일 그의 유골은 천안에 있는 ‘망향의 동산’에 묻혔다. 81년만에 안식이었다.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본 이라면 영상 이면의 이야기를 책『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의 입장에서는 가슴 한켠에 늘 영화 개봉 시점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가 한국어로 출판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에라도 출판이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다. 일본 사회에서 여성 차별, 계급 차별, 민족 차별에 맞서 당차게 살아온 재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송신도의 삶과 투쟁, 그리고 그와 함께 했던 지원모임을 다시금 기억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사진 4]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속 송신도 할머니 (사진 제공 : 안해룡)

 

[사진 5] '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속 지원 모임 활동가와 송신도 할머니 (사진 제공 : 안해룡)

 

 

 

 

각주

  1. ^편집자 주 : 가와타 후미코는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논픽션 작가로 활동했다. 오키나와에 거주하던 배봉기 할머니를 만나면서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배봉기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빨간 기와집: 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1987년/가와타 후미코 지음, 오근영 옮김, 꿈교출판사, 2014)는 그의 대표작이다. 오랜 기간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취재를 하는 동시에 ‘전후 보상 실현 시민 기금’ 공동대표, 아시아 각지의 위안소를 조사한 ‘일본의 전쟁 책임 자료 센터’ 공동대표, ‘재일 ‘위안부’재판을 지지하는 모임’ 사무국장 등을 역임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한 가와타는 2023년 4월 2일 세상을 떠났다. 『황군 위안소의 여성들』(치쿠마쇼보 치쿠마분코, 1993), 『전쟁과 성 - 근대 공창제도·위안부제도에 관하여』(아카시쇼텐, 1995), 『인도네시아의 ‘위안부’』(아카시쇼텐, 1997), 『’종군위안부’를 둘러싼 서른 가지 거짓과 진실』(공저, 오츠키쇼텐, 1997) 등의 저서를 남겼다.
  • 글쓴이 안해룡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사진작가, 전시기획자로 활동하며 텍스트와 사진, 영상을 넘나들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1995년부터 한국, 중국, 일본 등에 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을 사진과 영상에 담는 기록 작업을 했다. 2009년 일본에 거주하고 있던 ‘위안부’ 피해 생존자 송신도 할머니와 지원단체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10년 동안 진행한 재판과 투쟁을 다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제작해 개봉했고,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현장의 구조 작업을 담은 다큐 <다이빙벨>을 감독했다. 현재도 일본에 있는 재일 한국인의 역사, 조선인이 관련된 일본 현지 전쟁 유적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