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김학순의 증언은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오랜 침묵에서 끌어냈다. 피해 생존자들의 증언과 국내외 활동은 식민 지배와 강제 동원에 대한 비판을 넘어, 전시 성폭력을 여성 인권의 침해로 다시 정의하며 세계 여성인권 의식 성장에 기여해 왔다. 그러나 운동이 확산되고 대중적 지지를 얻는 동안, 그 이면에서는 ‘위안부’ 부정론과 피해자에 대한 인신공격 역시 눈에 띄게 고개를 들었다. 2019년 12월, 1,417차 수요집에서 집회 중단을 촉구하는 1인 시위가 등장한 것을 기점으로, 수요시위를 방해하는 맞불 집회가 점차 세를 불려갔다.
이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과 혐오 표현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일부 극우 인사들은 맞불시위를 하며 피해자들을 매춘 여성으로 지칭하며 명예를 훼손했고, 결국 2026년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다. 심지어 피해자의 증언 속 사소한 시점상의 불일치를 빌미로 위증 혐의로 고발하는 사례까지 있었는데, 정작 그 재판 과정에서는 피해자의 법적 지위 자체를 부정하하고 문제 삼는 전략이 동원되기도 했다.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모욕도 끊이지 않았다. 2024년에는 서울과 부산 등지의 소녀상에 ‘철거’라 적힌 마스크가 씌워지거나 검은 비닐봉지가 둘러졌고, 경남에서는 ‘흉물’, ‘위안부 사기 이제 그만’이라 적힌 팻말이 놓이기도 했다. 결국 소녀상을 만든 작가 김운성과 김서경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직접 고소에 나섰고, 충북 음성군은 조례를 통해 소녀상 훼손 행위에 벌금을 부과하는 경고판을 전국에서 최초로 설치했다.
이렇게 되풀이되는 모욕과 혐오 속에서 피해자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각계의 요구가 계속되었고, 그 결과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이하 「위안부 피해자법」) 개정안이 마련되었다.
「위안부 피해자법」 개정안이 발의된 것은 세계 일본군‘위안부’ 기림일을 하루 앞둔 2024년 8월 13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민주당, 진보당 국회의원 총 64명이 공동 발의에 나섰고,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개정안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2026년 2월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뒤 본회의 문턱도 넘어섰다. 명예훼손 금지 조항은 공포일인 2026년 3월 10일부터 먼저 시행되었고, 허위사실 유포 처벌 등 나머지 조항은 같은해 6월 11일부터 본격적인 ‘힘’을 가지게 됐다.
개정법의 핵심은 기존의 피해자 지원 중심 법률에 피해자의 명예 보호, 허위사실 유포 처벌, 추모 조형물 관리를 새롭게 포함시켰다는 데 있다. 먼저 개정 법률은 일본군‘위안부’ 피해 및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금지했다. 제16조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부인 또는 왜곡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는 등의 방법으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신설해 피해자를 비방할 목적의 부인·왜곡·허위사실 유포를 통한 명예훼손을 금지했다.
나아가 제17조 제1항은 신문·잡지·방송·출판물·정보통신망을 이용하거나, 전시물·공연물을 전시·게시·상영하거나, 강의·토론회·간담회·기자회견·집회·가두연설 등에서 연설·발언하거나 저작물·인쇄물을 이용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이는 기존 법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형사처벌 규정으로, 위안부 피해 및 피해 당사자에 대한 법률적 보호 기능을 비로소 갖추게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제10조를 개정해 평화의 소녀상 등 추모 조형물에 대한 성평등가족부장관의 실태조사 실시 의무를 신설한 점도 눈에 띈다. 그리고 제17조 제2항에서는 학문·연구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처벌 예외 규정을 명시하여 표현의 자유라는 또 다른 가치를 함께 지키려 한 노력도 주목할 만하다.
이렇듯 이번 개정 법률은 살아 있는 피해자의 명예를 보호하고, 피해의 역사적 사실에 관한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하는 구조를 갖추었다. 또 그 피해를 기억하기 위해 설치된 소녀상 등 추모 조형물의 설치·관리 현황을 국가가 파악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했다. 요컨대 피해자 개인의 존엄과 역사적 사실, 추모 공간을 함께 보호하는 방향으로 기존 피해자 지원법의 성격을 확장한 개정이라 평가할 수 있다.[1]
개정 「위안부 피해자법」이 처음으로 실제 재판에서 언급된 것은 2026년 8월 9일,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의 김병헌 대표에 대한 재판에서였다. 그가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해당 집회의 홍보물에 “‘위안부’(매춘부)”, “매춘 진로 지도 하나”, “‘위안부’는 고수익 직업인” 등의 문구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표현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것을 인식했거나 최소한 인식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결과적으로 그러한 인권침해의 결과를 초래한 표현”이며, “민주주의의 장에서 허용되는 한계를 넘어선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위안부 피해자법」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재판부가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대한 부정과 왜곡은 국가가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제10조 후문 등에 따른 기본권보호의무의 이행인 「위안부 피해자법」의 입법 목적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못받았기 때문이다.
「위안부 피해자법」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비방과 명예훼손이 법적으로 금지된 것은, 일본군‘위안부’ 운동이 애초부터 법적 권리 획득과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피해자 김학순의 증언을 통해 본격적으로 의제화되었고, 1990년대 이후 유엔 인권기구에서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침해의 문제로 개념화되면서 국제사회의 인권·전쟁범죄 논의와 법적 책임 문제로 확대되었다. 1996년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유엔 특별보고관은 일본군‘위안부’를 군대 성노예제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배상을 권고했다. 이어 1998년 게이 맥두걸 특별보고관도 이를 전쟁범죄이자 인도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책임자 처벌과 배상을 요구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국제법정 개최와 2007년 미국 연방의회의 일본군‘위안부’ 사죄 결의안(H.Res.121) 채택으로 이어졌다. 피해자들의 법적 구제 노력은 일본과 한국 법원에서의 소송으로 확대되어 2021년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요컨대 일본군‘위안부’ 운동은 피해자 증언 → 사회적 공론화 → 국제인권법상의 전시 성노예·성폭력 문제로의 개념화 → 일본의 국가 책임과 법적 배상 요구 → 국내외 법원의 사법적 판단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과 국가 책임을 둘러싼 법적 문제로 발전해 왔다.[2]
다만 이런 역사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자법」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 그 자체로 귀결점이 될 수는 없다.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형사처벌 조항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배재고 야구부 사태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은유적인 방식으로 조롱하거나, 학술 토론회라는 외피를 쓰고 우회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법적 규제만으로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위안부’ 부정론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은 물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캠페인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활용해 대응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끝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위안부’ 피해자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것은 피해자를 모욕과 혐오로부터 보호하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증언함으로써 전시 성폭력 문제를 세계적 의제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주체였다는 사실을 다시금 인정하고 되새기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적 보호를 넘어, 피해자들이 던진 전시 성폭력과 여성 인권, 국가 책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