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문제를 다룬 학술의 장이 마련될 때면 청년·미래 세션이 빠지지 않는다. 피해 생존자와 연결된 실질적 감각이 부재한 포스트 메모리(후-기억) 세대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기실 여성학, 법학, 외교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성과는 축적되고 있다. 일본군‘위안부’문제 공론화 이후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지금, 이곳에서 젊은 연구자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웹진 <결>은 이들의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어떻게 의미화되고 있는지 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 일자: 2022년 6월 22일
-사회: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이헌미, 황진경, 이안, 장소정
-대담: 백재예(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정치학과 박사과정), 송혜림(연세대 비교문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전소현(성공회대 국제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정희윤(University of Massachusetts-Amherst 사학과 박사과정)
Q. 정희윤 선생님의 논문 <21세기 식민주의 유골 반환의 딜레마>는 다양한 맥락이 있지만, 유골이 본국으로 반환되어야 한다는 사고 자체가 국가주의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논문 제목에서도 ‘딜레마’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식민주의 폭력 희생자의 유골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작업 이후 ‘딜레마’ 해체에 더 다가간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희윤
2014~2015년경 홋카이도에서 서울로, 베를린에서 나미비아 빈트후크로 봉환된 식민주의 폭력 희생자들의 유해가 소위 ‘본국’으로 반환되는 과정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반환의 과정은 탈식민적인 활동이었고 윤리를 행하기 위한 노력이었을 텐데, 딜레마로 여겨지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제국의 인종주의, 노동문제, 인종차별 문제보다는 남한이나 나미비아 같은 국가적 상징이 더 강력하게 읽혔기 때문입니다. ‘위안부’가 “성노예다, 아니다”라는 언어에 갇혀 그 이름을 잃어버린 것이나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들이 “빨갱이다, 아니다”라는 이분법에 갇혀버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식민주의 유해 반환은 “본국인이다, 아니다”라는 미로 속에 갇혀 이름들을 잃어버리는 기분이 들어서 이러한 현상을 딜레마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이름들을 어떻게 되찾아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정세 판단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어떤 유해는 반환되는 게 옳고, 또 어떤 유해는 그대로 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럼 이와 같은 딜레마를 해체하기 위해 국가를 해체해야 할까요? 그것은 말이 안 되지요. 결국 일상에 잔존하는 폭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언어를 찾아야 하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기념과 애도 작업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외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결국 딜레마를 해체하기보다는 그대로 둬야 하고, 불화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불화의 과정이 애도의 가능성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Q. 송혜림 선생님의 <감정의 재의미화와 기억의 해방:4.3 피해자 증언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감정기억’이라는 개념을 끌어왔다는 점에서 증언과 기억을 대하는 자세에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증언/기억에 감정을 개입시키는 것이 새로운 가능성이자 해방이라고 보셨는데, 이를 통해 증언/기억은 현재로 불려오게 됩니다. 분유(分有) 가능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송혜림
증언의 어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사건의 제삼자가 사건을 투명하게 진술하는 언어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진술이죠. 그렇기에 후자는 객관적이고 실증적일 수 없는 고통의 언어예요. 현재의 증언 담론은 전자에 치우쳐 성립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후자의 언어를 더 잘 듣기 위해서는 명료한 언어나 표현에 다 담기지 못해 잉여의 의미들이 잔존하는 정동의 언어로 들어야 해요. 이는 증언자에게서 언어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증언의 그러한 한계를 적극적으로 의미화할 청자의 책임을 요청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점에서는 기억 분유와 연결될 텐데, 증언을 매개할 때 독자 혹은 관객을 정동적으로 연루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증언을 들을 때마다 인지적 이해보다는 감정적인 동요가 먼저 일어나는데요, 증언의 순간에 함께 있던 연구자나 활동가의 서사를 통해서도 그들이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증언을 듣고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었겠구나,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듣고 기억하여 전달하는 것이겠구나’라는 책임을 나눠 갖는 것 자체가 기억 분유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위치는 학술적인 영역에 있지만 저는 기억 분유를 절대 학술적인 전형성 안에서만 반복되는 방식이 아닌, 더 많은 이들이 증언을 만날 수 있도록 확장된 영역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Q. 백재예 선생님은 <체계적으로 관리된 성폭력, 일본군‘위안부’제도>라는 논문에서 “연합군의 자료를 통해 인식을 살펴보는 것은 일본군‘위안부’ 제도가 가진 분쟁하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서의 보편적 측면의 인식을 확장하는 것이다. 이에 연합군 자료가 축적되어 연합군의 인식을 포착하고, 그것이 어떻게 전후 전범재판에 반영되었는지를 규명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박사과정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계신 만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어떤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이 현시점에도 이어지고 있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기틀을 국제사회가 앞으로 어떻게 마련해갈 수 있을까요.
백재예
그 두 가지 질문이 논문 주제를 설정하고 계속되었던 고민입니다. 기존에 주어져 있는 법 제도에 미뤄봤을 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 만약 가능하다면 어떤 법을 적용할 수 있는가’와 같은 법학 연구가 현재는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국제법이 어떻게 변화되어야 할 것인가를 다양한 학제에서 연구하고 제시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이유로 법을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는 법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면 일본군‘위안부’ 제도와 운동은 전시 성폭력에 대한 정의 실현이라는 보편적 질문에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봐요.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적용될 수 있고요. 침략국이 전시 성폭력을 반성하지 않고 군인들을 처벌할 의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피해 생존자들이 어떻게 법을 동원하고 자신들의 피해를 구제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남을 텐데, 30년간 축적된 ‘위안부’ 운동의 경험과 노하우를 비롯해 우리 사회가 맞닥뜨렸던 한계가 그 문제에 실존적 함의를 던져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성폭력 재발 방지에 있어서 가장 크게 느꼈던 문제점은, 국제법이나 법 자체가 형사법 체제하에 있기 때문에 가해자 처벌에 집중돼있다는 것이에요. 반면에 생존자가 자신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민사법적 접근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책임이나 권한은 국제형사재판소의 검사나 판사에게 있는 것이죠. 따라서 국제법 자체도 형사법적 정의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주체로서 자신의 피해 구제와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국제법의 유효성을 살펴볼 때도 가해자 처벌 여부에만 치중하거나 국가별 법안 입법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국제법이 생존자들의 요구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살펴보는 등 지표가 확장돼야 합니다. 그 지점에서 일본군‘위안부’ 운동의 경험이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Q. 전소현 선생님의 <장애인의 시설화되는 삶을 교차적으로 읽기>를 읽고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돌봄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보상 및 지원에 대한 논의는 많았지만, 그 과정에서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돌봄은 주요 의제가 되지 못하고 연구 또한 미비해 아쉬운데요. 앞으로 연구자들은 ‘위안부’ 피해자 관련 시설 안팎의 돌봄을 어떻게 기록하고 해석할 수 있을까요.
전소현
“돌봄은 일방적인 과정이 아니고, 돌봄을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의 위치는 고정돼있지 않다”는 말이 있지요. 그런데 저에게 돌봄은 굉장히 일방적인 억압의 경험으로 기억되고 있었어요. 소논문 발표 후 한 토론자분께서 해주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돌봄을 억압의 과정으로만 생각하게 되면, 돌봄의 상호적인 과정이나 사람들의 행위자성을 개념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었죠.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돌보고 있다는 생각에는 개인의 능력, 역량, 독립성, 자율성에 대한 기존의 주류적 관점이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주류적인 방식으로 생각했을 때 돌봄을 제도화한다는 것도 관료적이거나 일방적인 방식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국가의 돌봄 정책이나 보상이 어떤 정책적 개입이나 비개입을 통해 이뤄지고, 사각지대가 활동가들에게 어떠한 노동으로 전가되는지 함께 짚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나눔의 집 활동가분들이 수행했던 돌봄 노동에 대한 재조명도 필요하다고 봐요. 돌봄을 억압적인 방식으로만 생각하면 그분들이 오랜 시간 피해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고 함께한 이유에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피해자의 문제를 조력자들이 자신의 문제로 주체화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함께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당사자와 조력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해나갔는지 그 과정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는 그런 관점에서 기록이나 연구가 진행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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