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단 800자의 기자합의문이 해결을 담을 수 있는가
2부. 합의 이후, 양국 정상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가
3부. 12.28 합의는 헌법소원청구 대상이 아니다?
‘12. 28. 한일합의’ 이후,
그녀들의 법정
영화 <허스토리>(민규동, 2018)가 보여주듯이, '위안부' 생존자들은 일본 정부와 한국 정부를 상대로 다양한 소송을 전개해 왔습니다. 12.28 한일합의 이후에 진행되었거나 진행 중인 소송만 해도 5건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당사자가 된 소송으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한 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대한민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두 건, 그리고 소송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이 관련된 소송으로 두 건의 정보공개청구소송이 있습니다.
1991년 12월 6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동경지방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한 이래 피해자 할머니들은 여러 건의 소송을 일본법원에 제기해 왔지만, 번번이 좌절을 겪어야 했습니다. 일본법원은 피해자 할머니들의 피해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모든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고 판단하였죠. 피해자 할머니들이 지금 한국의 법정에 서게 되기까지 겪은 일들을 먼저 이야기하고 싶지만, 이 글에서는 2015년 12월 28일 이른바 ‘12.28 한일합의’가 이루어진 이후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과거의 법정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도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제기한 소송의 변호인단 중 한 사람으로, 법정에서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대리하여 원고의 자리에 서는 사람입니다. 더 많은 분이 피해자 할머니들의 주장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지요. 따라서 이 글은 피해자 할머니 입장에서의 부당함과 소송을 제기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법정에서의 절차와 정치한 법리 등 좀 더 상세한 법률적 정보를 알고 싶은 분들에게는 부족한 글이 될 겁니다. 또, 법정에서 사용하는 용어와 학계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다르다는 점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 800자의 ‘위안부 합의’ 기자회견문,
이것으로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
해결을 담을 수 있는가
피해자 할머니들이 12.28 한일합의 이후 가장 먼저 제기한 소송은 정보공개청구소송입니다. 한일합의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2016년 1월 18일 대통령비서실에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2016년 2월 1일에는 외교부에도 정보공개청구를 했습니다. 대통령비서실과 외교부는 정보공개청구에 대하여 각각 1월 27과 2월 15일에 모두 비공개 결정을 내렸고, 이 비공개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했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정보를, 왜 공개해 달라고 요구했을까요? 한일합의는 양국 외교장관이 국내외 기자를 불러 모아 기자회견을 하는 형식으로 발표되었는데요, 양국 외교장관이 번갈아 발표한 합의 내용은 통역까지 포함하여 약 15분 분량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문이 그대로 ‘위안부 합의’라는 타이틀로 공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자회견문은 약 350자, 일본의 것은 약 450자 정도로 합하면 약 800자 정도였는데요. 그 800자가 30년 가까이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들이 싸워 온 이 문제에 대한 ‘위안부 합의’라는 것이었죠. 그것 말고는 어떠한 합의문이나 문서도 발표되지 않았고, 실제로 발표문 이상의 그 어떤 내용도 문서로 추가 작성되지 않았습니다.
기자회견문은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여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업을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 회견으로 지금까지의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되었고 따라서 우리 정부는 앞으로 일본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이 합의가 최종적 그리고 불가역적이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기자회견문만으로 부족했던,
명확히 밝혀야 하는 내용을 묻다
저희 법률가들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도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인지, ‘법적 책임’의 기본요소인 ‘위안부 피해 사실’을 인정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지금까지 피해자 할머니들이 요구한 것은 일본에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 즉 ‘법적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식민통치 체제를 이용하여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성노예 생활 강요라는 불법행위를 하였으므로 그 불법행위로 인한 할머니들의 피해를 배상하라는 것입니다. 이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첫 단추가 바로 일본이 ‘식민통치 체제를 이용하여 피해자들에게 성노예 생활을 강요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하고요.
하지만 기자회견문만으로는 일본이 ‘사실 인정’을 하였는지를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 일본이 인정해 왔던 사실보다도 오히려 후퇴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위안부’ 합의라고 하는 저 기자회견문의 내용을 분명히 밝혀야만 했습니다.
외교부 회의록 공개 요청,
합의 과정에서 ‘강제연행’을
어떻게 다루었나
시간순으로는 대통령비서실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것이 먼저이지만, 외교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이야기를 먼저 하겠습니다. 외교부에 공개를 요구한 정보는 어떤 과정에서 합의문에 ‘강제연행’이 아니라 ‘군의 관여’라는 내용이 포함되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 정부는 ‘군의 관여’하에 위안소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였을 뿐, 위안소로 ‘위안부’를 강제적으로 끌어오고, 끌려온 ‘위안부’를 상대로 말로 표현하기조차 두려운 성노예 생활을 강요하였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강제모집과 성노예 강요 등의 책임을 모두 민간에 떠넘기거나 아예 그건 모두 거짓말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해자 할머니들은 일본에게 ‘군의 관여’로 위안소가 설치되었다는 것뿐만 아니라 강제적으로 위안소로 끌려갔고 거기서 성노예 생활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2015년 12월 28일 한일 외교부 장관이 합의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강제연행’ 표현 및 그 사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를 요구했습니다. 양국이 ‘군의 관여’라는 용어를 선택하고 그 의미에 관해 협의한 문서와 강제연행 사실을 인정했는지 여부를 협의한 문서 등을 공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법원은 국가 간의 합의나 조약의 내용이 불분명할 경우 회의록 등을 통해서 그 내용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고 한 적이 이미 있었거든요.
그러나 외교부는 비공개 협의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일 간의 협의 내용은 ‘외교문서’이므로 공개대상정보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는 ‘외교 관계에 관한 사항으로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를 비공개 정보로 정하고 있으니 그 규정을 비공개 사유로 든 것이죠. 외교문서가 공개되면 그로 인해 일본과의 신뢰 관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고 국제관행에도 어긋난다고도 주장하였습니다. 외교부는 특히 외교에 관한 사항은 고도로 전문적인 영역이어서 다른 정보보다도 더 많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한편으로는 협의 과정에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그 의사를 반영했으며 할머니들이 고령인 점을 고려하여 시급하게 해결하기 위해 애를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3심에서는, 외교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가
함부로 침해되지 않기를
이 정보공개청구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1심에서는 외교문서라 해도 일률적으로 모두 비공개정보라고 할 수는 없고 외교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공개로 인해 국익을 현저히 해할 것인지도 알 수 없다고 판단해서 공개하라고 했지만, 항소심에서는 외교부의 주장대로 이 정보는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고 판단하여 비공개를 정당하다고 하였습니다.
외교부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소송은 현재 대법원에 있습니다. 항소심은 ‘공개가 되면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지만, 현저히 해하여진다는 ‘국가의 중대한 이익’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고 하는 것인지는 전혀 밝히지 않았죠. 대법원이 위안부 합의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를 공개한다고 해서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외교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들의 법적 권리를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되니까요.
한일합의 이후 일본에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군의 관여라는 것은 위안소의 설치에 관한 것뿐, ‘강제연행은 없었다’, ‘강제연행했다는 것은 완전히 날조된 이야기이다’라고 연이어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 사안은 ‘성노예 문제가 아니라 위안부 피해자 문제일 뿐’이라며 성노예라는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런 서글픈 상황 속에서 ‘위안부’ 관련 소송들이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낼지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한 정보공개소송과 헌법소원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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