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소송 2부 - 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조민지

  • 게시일2019.11.05
  • 최종수정일2020.07.06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소송 

1부. 하나의 논문으로 시작된 대일배상청구소송
2부. 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중국 내 일본 침략전쟁 피해자들의 대일손해배상소송 움직임이 가속화되자, 1995년 3월 중국 외교부부장 첸치천(钱其琛)은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중국이 포기한 것은 국가의 배상청구권이며, 민간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라고 배상 문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위안부' 피해자의 배상 문제가 제기된 후 중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정도에 그치는 등 '위안부' 문제에 대해 비교적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중국이 일본과의 국교 정상화 당시 국가 배상 청구권 및 외교 보호권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전후 미국의 주도하에서 국제사회가 대만을 중국 전체를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면서 중국은 국가 통일을 이루지 못했고, 외교정책에서도 많은 제약을 받아왔다. 중국은 국제사회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게 함으로써 중국대표성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국교 정상화를 통해 일본에 대만과의 단교를 요구하고,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하고자 했다. 

이처럼 국교정상화 당시 중국대표성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의 배상청구권을 스스로 포기했던 중국은 정부차원에서 배상 문제를 일본에게 다시 제기하기 어려웠다. 또한 경제, 안보 등 일본과의 우 협력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가 국가 관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우려해야 했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있어 적극적으로 대응한 사례도 있다. 첫 번째는 2005년 3월 18일 산시 '위안부' 피해자의 제2차 대일 손해배상청구 소송 판결 내용에 관해서였다. 당시 2심 재판에서 도쿄고등법원은 처음으로 청구권 포기 논리를 원용하여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했는데, 1952년 일화평화조약 체결로 중국인의 개인청구권이 소멸되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2005년 3월 25일 중국 정부는 일본 재판부의 결정에 강력하게 불만을 표명했다. 중국 외교부는 "일화평화조약은 불법적이고 유효성 없는 조약으로, 이는 1972년 중일 공동성명 서명과 동시에 폐기되는 것으로 양국 간 합의를 마쳤다. 그런데 일본재판부가 일화평화조약을 근거로 '위안부'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한 것은 중일 공동성명을 위반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일본 지도자 및 사법당국이 중일 공동성명에 따라 대만문제에서 일본측이 약속했던 사항을 제대로 이행해 달라고 요구한다. 더불어 '위안부' 문제에 있어 일본이 성실한 태도로 적절한 조처하길 바란다"[1]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두 번째 또한 제2차 대일 손해배상청구 소송 최종 재판 내용 때문이었는데, 2007년 4월 27일 일본 최고법원은 중일 공동성명으로 중국인의 개인 청구권은 이미 소멸되었다며 피해자의 상고를 기각했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은 중일 관계의 회복과 양국 인민들의 우호 관계를 위하여 중일 공동성명에서 국가의 배상청구권을 포기했다. 중일 공동성명에 대한 일본 최고법원의 해석은 잘못되었다"며 강하게 대응했다.

이처럼 비록 중국 정부는 일본 정부 및 사법기관이 중국의 핵심 국가이익인 대만 문제, 즉 '하나의 중국' 원칙과 관련된 부분을 침해할 경우,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전폭적인 외교적 지원이나 해결 방안 모색 등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는 '위안부' 피해자의 법적 배상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 내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  

국내 학자와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위안부' 문제의 참상이 중국에 알려졌으나, 문제 해결을 위한 길은 순탄치 않았다. 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무관심했고, 일본 정부 또한 피해자들의 요구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통정은 배상 문제를 담당해줄 변호사를 찾아다녔지만, 변호 비용으로 10만 위안(약 한화 1700만 원)을 요구받는 등 적합한 인물을 구하기 힘들었다.[2] 중국의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일본의 오노데라 토시타카 변호사가 중국 '위안부' 피해자의 소송대리인을 맡으면서, 배상 문제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수 있었다.

1995년 중국 '위안부' 피해자의 대일 손해배상청구소송이 제기된 이후로, 중국의 민간단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 및 법적 책임 이행을 끌어내기 위해 힘썼다.  2001년 5월 30일, 산시성 '위안부' 피해자의 제1차 대일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 재판에서 일본재판부가 '위안부' 제도의 운영 및 강제동원 사실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중화 전국변호사협회, 중화 전국부녀연합회, 중국 인권발전기금회는 강력히 반발하며 6월 19일 도쿄지방법원에 항의 성명을 보냈다. 또한, 피해 사실 입증을 위해 일본재판부에 피해자 할머니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검사를 요청하였고, 제1차, 3차 소송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정신감정이 이뤄졌다. 정신감정 결과를 통해 피해 사실을 입증할 수 있었고, 일본재판부로부터 공소 사실 인정이라는 판결을 끌어냈다. 

또한 중화 전국변호사협회와 중국법률지원기금회(中国法律援助基金会)는 '위안부' 피해자를 찾고, 위안소 유적 및 관련 당안들을 발굴하기 위하여 중국 '위안부' 피해사실조사위원회(中国原"慰安妇"受害事实调查委员会)를 조직하였다. 2006년 9월부터 2009년까지 중국 산시성, 운남성, 하이난성, 랴오닝성, 길림성 등 중국 각지를 돌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한 전면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를 통해 새로운 피해자 19명 및 친족 2명을 발견했고, 위안소 유적 및 위안소 운영 관련 당안들을 발굴해냈다.

중국 유일의 '위안부' 연구소인 상하이사범대학교 중국'위안부' 문제연구소는 2007년 연구소 내에 자료관을 열고,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 지원을 통해 대중들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알리고 있다. 또한, 2018년 10월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애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22(二十二)"의 감독 궈커(郭柯)와 함께 상하이사범대학 교육 발전기금회 내에 위안부 연구 및 지원이라는 이름의 특별조성금을 만들고 피해자 생활 지원 및 '위안부' 사업 연구 발전에 힘쓰고 있다. 

 

이와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소송이 모두 패소하자, 중국'위안부'문제연구소의 쑤즈량 교수는 2017년 12월 18일 91세의 '위안부' 피해자 천리엔촌(陈连村), 화동정법대학교 국제학과 교수 지엔치앙(建强), 베이징시방원변호사사무소(北京市方元律师事务所律)의 캉지엔 변호사 및 지원자와 함께 중국 외교부에게 외교보호권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천리엔촌을 포함한 5명의 '위안부' 피해자 및 12명의 친족들이 중국정부가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여, 일본정부에게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및 법적배상을 요구해달라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외교부에 전달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및 민간단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는 현재까지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고 있지 않다.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대일 손해배상청구 소송 전개과정을 살펴본 결과, 소송이 제기된 이후 일본정부를 향해 사죄 및 피해 배상을 강력히 요구해온 민간단체 및 피해자와는 달리, 중국정부는 배상 문제에 있어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음을 알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최대 피해국으로서, 일본정부에게 전쟁배상을 강력하게 요구할 수 있는 우위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문제가 국가 간 분쟁으로 쟁점화되었을 때,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 과정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을 철저히 하지 않았던 과거 정부의 과오가 드러나는 것이 우려되어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 또한 '위안부' 문제가 한일 양국 간 외교현안으로 발전하고, 문제에 대한 시민사회의 관심이 증가하면서 청구권문제 및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았던 과거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와 같이 스스로를 인민을 위한 나라로 칭하는 공산당 정권이 국익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 인민들의 인권을 침해한 사실이 국내에 알려진다면, 정부의 정당성 및 신뢰성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이를 우려하여 또 다시 '위안부' 피해자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피해자 및 민간단체는 정부에 외교보호권을 요청하는 등 '위안부' 문제에 해결에 있어 정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과오를 반성하고 외교적 또는 국내적 측면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중국정부가 피해자 및 민간단체와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위안부' 문제 해결방안을 도출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각주

  1. ^ 外交部发言人刘建超就日本法院判决"慰安妇"诉讼案中国原告败诉答记者问, (2005/03/25), https://www.fmprc.gov.cn/web/wjdt_674879/fyrbt_674889/t188947.shtml
  2. ^  《环球》杂志:对日本索赔 几十年来一路是荆棘(2004/12/31), http://news.sohu.com/20041231/n223744137.shtml
글쓴이 조민지

중국 푸단대학교 석사 졸업(2019년 석사학위 취득). 석사 과정 당시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시작하여 학위 논문으로 한중일 3국의 ‘위안부’ 문제를 비교연구한 <한중일 ‘위안부’ 문제 연구: 한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대일손해배상청구소송 사례를 중심으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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