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최고사령부의 기밀문서 - 태국에도 일본군'위안소'는 존재했다

팟폰 푸통(Patporn Phoothong)

  • 게시일2019.09.17
  • 최종수정일2019.10.22

태국에도 일본군'위안소'는 존재했다

대다수의 태국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일본과 연합국 간의 전쟁이었으며 태국과는 관계가 없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이 때문에 태국에서의 일본군'위안부' 동원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다. 그러나 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과 동맹을 맺고 전쟁 수행을 지원한 국가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태국의 전역에 위안소를 설립하고 아시아의 많은 여성을 ‘위안부’로 동원하였다. 본 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태국이 수행한 역할과 일본과의 관계를 살펴보고, 최근 관련 문서와 증언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일본군'위안부'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태국과 일본

제2차 세계대전 초기 태국은 전쟁에 대해서 중립을 선언했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전쟁에서 추축국이 연합국에 승리하자, 일본의 영향력이 인도차이나반도에서 더 확대될 것이라 확신한 태국 정부는 점차 일본 쪽으로 입장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41년 12월 21일, 태국은 일본과 ‘침략 및 방어에 관한 우호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으로 태국과 일본은 주권과 독립문제에 관해 상호존중하고 나아가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상호지원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또한, 다른 국가들과 전쟁할 경우 태국과 일본 양국은 단독으로 정전 혹은 평화 협정에 서명하지 않을 것에 동의했다. 이로써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일본과 긴밀한 동맹을 맺은 나라가 된 것이다. 

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일본과 동맹을 맺었지만, 그것은 모든 태국인이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지하의 반일 저항단체였던 자유태국운동(Free Thai Movement) 등은 연합국에 협조하기도 하였으며, 다수의 태국인은 일본이 전쟁에 패할 기미가 보이자 태국이 추축국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1944년, 정세가 결정적으로 일본에 불리하게 기울자, 일본과 동맹을 맺었던 태국의 군부독재는 권좌에서 물러나게 된다. 새로 수립된 민간정권은 태국이 일본의 자발적인 협력국이 아니었음을 공표하고, 전범국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태국 국민들이 일본과의 동맹과 '위안부'동원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것에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


태국 최고사령부의 기밀문서

태국은 일본과 '위대한 동맹'[1] 관계를 맺었지만, 태국 최고사령부는 일본군과 관련된 기밀문서를 작성했다. 태국의 정부 기구에서 주최한 모든 접대 모임과 연회에서 일본인들이 외국인들과 나눈 대화와 동태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때문에, 태국 최고사령부의 문서들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에 주둔했던 일본군에 관한 정보가 많이 남아 있다.

이 문서들은 현재 태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다. 이 문서는 다음과 같이 일곱 개 시리즈로 나뉜다. (1) 태국 최고 총 사령부의 업무, (2) 동맹국 조정부(The Department of Ally Coordination), (3) 평화운영부 (The Peace Administration Department), (4) 태국 육군 참모총장, (5) 국방부 참모총장, (6) 국방부 법률 고문, (7) 기타. 태국 최고사령부의 기밀문서는 총 472개 상자 분량이며 247,309장에 달한다.

이 최고사령부의 문서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그 전후(前後)의 태국군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태국에서의 일본군'위안부' 동원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문서에는 회의록, 명령서, 태국 관리와 일본군 관계자 간의 대화 기록 등이 포함되어 있다. 또, 다양한 영역에서 일본군의 움직임 및 행태에 관한 보고서, 태국 여성들에 가해진 폭력 사건을 기록한 문서, 그리고 태국 여성 위안부, 아시아 여성 위안부, 태국에 있는 위안소 등과 관련한 신빙성 있는 정보들이 담겨있다. 2.6.5/97번 문서를 보면 일본군이 시 프라야에 위치한 주택을 군 위안소로 사용하고자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주택은 일본군의 감독하에 태국인에 의해 운영된 위안소였다. (1945년 11월 15일)

태국 최고 사령부 기밀문서에는 이 밖에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발생한 사건 기록이 있다. 이 사건들은 주로 종전 후 송환을 기다리고 있던 수용소의 식민지 조선 및 대만 출신 군인과 민간인에 관한 것이다. 문서에는 이들의 이름뿐 아니라 태국에 연합군이 주둔하는 기간 중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기록도 있다. 3.6/58번 문서에 따르면, 전후인 1946년 3월 9일에 태국 주둔 영국군 사령관이 아유타야 수용소에 수용된 조선인 전쟁포로의 수를 확인하고자 부대를 보냈다. 이때 영국군은 조선인들을 남녀로 구분하여 이름을 기록하고자 했다. 3.7/33번 문서에 등장하는 아유타야 수용소의 민간인 명단에는 식민지 조선 및 대만 출신의 남자, 여자, 아동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1946년 4월 22~27일).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지만, 아직 이 문서들은 일본군'위안부' 관련 연구에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위안소의 증거가 되는 건물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은 태국 전역 및 이웃 국가에 수개월 혹은 수년에 걸쳐 주둔했다. 이에 따라 방콕, 송클라, 칸차나부리, 라차 부리, 푸켓, 나콩 시 탐마랏, 라농, 춘뽄, 매흥손, 치앙마이 등 여러 지역에 위안소가 설립되었다. 도시 지역에서부터 태국-버마 국경의 최전선에 이르기까지 실로 광범한 지역에 위안소가 있었다.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에는 이와 관련하여 일본군이 실제로 머무르거나 주둔했던 지역들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다.  군 부대의 수와 주둔 기간, 그리고 일본 군의 이동 및 활동과 관련된 정보들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위안소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 역시 수록되어 있다. 1.13/60번 문서는 칸차나부리 주에 있는 세 곳의 군 위안소를 포함한 일본 군 시설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2.8/137번 문서에서는 위안소 한 곳이  대학 시설 내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 1.13/69번 문서는 랏차부리, 반퐁, 그리고 푸켓의 군 위안소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전후 오랫동안 방치되긴 했지만, 이들 문서에 기록된 주소들을 찾아가 보면 위안소로 사용되었던 건물들이 칸차나부리나 푸켓 등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증언들

물리적 증거가 되는 건물들과 함께 당시 전쟁을 직접 경험한 사람들이 훌륭한 증인으로 남아 있다. 일본군이 수년간 주둔했던 지역의 75세 이상 주민들은 여전히 당시를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일본군이 머물렀던 장소, 일본군의 행태, 위안소로 사용되었던 건물 등을 기억해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일본군과 함께 이동했던 아시아 여성들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증언 대부분이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의 기록들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푸켓에 사는 한 남성은 예전에 살던 탈랑 사거리의 3층집이 위안소로 사용된 바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어릴 때 그 집에서 살았는데 2, 3층이 작은 방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방마다 침대와 작은 탁자가 놓여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의 기억은 푸켓 지역의 군 위안소를 다루고 있는 1.13/69번 문서의 내용과 일치한다.

 

더욱 깊이 있게 조사되어야 할 문제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와 증언들은 앞으로 더 깊이 있게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그로써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태국과 일본군의 관계를 이해하고, 전쟁 중에 이루어진 태국에서의 일본군'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동원 실태를 더욱 폭넓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1. 일본군'위안소' <Tru Ri Ya> - 방콕, 파톰 완 지구 
Military brothel “Tru Ri Ya”, Wirelesss Road, Pathum Wan District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 2.6.5/23과 2.6.5/97에서는 “Tru Ri Ya”라고 불리우던 일본군’위안소’가 현재 스위스 대사관 자리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 Phaya Thai Road House. No. 730 - 방콕, 파톰 완 지구 
House No. 730, Phaya Thai Road, a Military Brothel located inside the Chulalongkorn University campus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 2.8/137과 2.6.5/97에서는 일본군’위안소’였던 house No. 703이 현재 방콕의 출라롱콘 대학교 캠퍼스 내에 자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3. Trocadero 호텔 - 방콕, 방 락 지구
Trocadero, Surawong Road, Bang Rak District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 2.7/234와 지역 주민들은 일본군이 이용했던 Trocadero 호텔이 방 락 거리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호텔 1층에 있었던 나이트클럽에는 아시아 여성들이 고용되었다고 한다.

 

4. 일본군 위안소 -  칸차나부리 주, 무앙 칸차나부리 
n.45 Pak Phraek Road, Ban Nuea, Muang Kachanaburi, Kachanaburi

태국 최고사령부 문서 1.13/60에 따르면 이 집은 일본군’위안소’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전쟁 이후 이 집은 재건축되었는데, 현재의 주인과 친척들은 이 집이 예전에 군 사무소와 숙박시설로 이용되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5. 일본군 주둔지 - 라농 주, 크라 부리
Jampanes Military Unit, Kra Isthmuss, Kra Buri, Ranong

라농 주의 지역 주민들은 라농 주 크라 부리에 위치했던 일본군 주둔지에 아시아 여성들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태국 최고사령부문서 1.12/261과 2.5.2/9 문서에서도 철도를 깔기 위한 일본군이 이 위치에 주둔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6. 일본해군클럽 - 푸켓, 무앙 푸켓, 크라비 로드
A Japanese Navy Club. Krabi Road, Muang Phuket, Phuket

태국 최고사령부문서 2.5/7에는 무앙 푸켓 크라비 로드에 있는 three-story 호텔이 일본해군클럽으로 이용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현재 소유자와 그의 가족은 약 1949년 즈음 이 건물의 2층과 3층이 침대가 있는 작은 방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이 지역 주민들로부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Hall'이라 불리우는 일본군'위안소'로 이용되었다고 들었다고 증언했다. 

 

사진제공 : 팟폰 푸통(Patporn Phoothong)
사진과 지도 자료는 2017년 서울시와 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의 지원을 받아 제작된 보고서를 토대로 재정리하였습니다. 

 

 

각주

  1. ^ 편집자 주 : 당시 군부정권의 독재자였던 피분송크람은 “영국은 태국의 영토를 탈취해간 나라인 반면, 일본은 영토를 되찾아주는 나라이므로 태국의 진정한 ‘위대한 친구’”라고 말한 바 있다.
글쓴이 팟폰 푸통(Patporn Phoothong)

팟폰 푸통은 한국 성공회대에서 공부하며 2009년, 「태국 사회의 불관용 발견하기: 태국 위안부 사례연구 Discovering the intolerance of Thai society : case study of Thai "Comfort Women"」를 작성했다. 2011년,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사업팀 연구원으로 참여했으며, The Initiative of Museum and Library for Peace, Peace Information Centre and Asian Muslim Action Network의 연구원이자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도 활동했다. 과거의 정치적 폭력, 집단기억 및 구전역사에 대한 다양한 연구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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