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X박노자 온라인 대담 - 탈분단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위안부’ 문제 DAY 3

정영환메이지학원대 교수 박노자오슬로국립대학 교수

  • 게시일2019.03.20
  • 최종수정일2019.09.10

정영환X박노자 온라인 대담
탈분단적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위안부’ 문제 DAY 3

 

온라인 대담의 마지막 날입니다. 편집팀의 부족한 진행에도 불구하고 두 분께서 매우 훌륭하게 답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답을 하는 날입니다. 어제 정영환 선생님께서는 ‘탈분단적 시각’이라는 본래 주제에서 더욱 확장하여 박노자 선생님께 질문을 해주셨는데요. 이와같이 오늘은 ‘위안부’ 문제에 관련해서 서로에게 폭넓은 질문을 드리고, 이에 대한 답변을 듣고자 합니다.

 

Q. 박노자가 정영환에게 묻다

정영환 선생님, 저로서 한 가지 큰 고민이 되는 부분을 공유하면서 같이 생각해보실 것을 제안드립니다. 일본군 성노예 제도 문제와 한국이라는 국가가 70여년간 범해온 각종 국가적 성범죄, 성폭력들을 우리가 어떻게 같이 묶어서 분석해볼 수 있을지, 그리고 일본군과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가적 성범죄의 관련성에 대해 운동사회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위안부'라는 명칭을 한국 '국군'이 한국전쟁때도 계속 사용해왔습니다. 그 때 주로 미군과 '국군'을 상대로 해온 '위안소'들은 수십개 있었고, 그 여성 피해자들 중에서는 예컨대 한국군에 의해 납치, 감금당한 북조선 측 여성 활동가 등도 있었지만, 피해자 구성은 상당히 다양했습니다. 기존의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상당수를 이루는 걸로 이해합니다. 그 뒤로는 기지촌 성매매에 대해 한국 국가는 일종의 거대한 '포주' 노릇을 해왔고 그 성매매를 국가적으로 관리해왔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위안부' 성노예 제도에 대한 일본군과 일본국가의 책임을 상대화해서는 안되고 물타서는 안되지만, 성폭력, 성매매 문제에 있어서의 한국이라는 국가의 범죄성을 일본 국가/군대 범죄성과 같이 연동시켜서 분석할 수 있는 틀도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 부분에 대한 고견을 여쭈어보려 합니다. 예컨대 식민지 시대 일제에 부역해온 조선인 엘리트, 그리고 식민지적 통치기구 등을 상당부분을 그대로 살리고 계승한 '대한민국'을 일제의 사실상의 하나의 후계 국가체로 파악한다면, 성폭력/성매매 문제에 있어서의 그 범죄성과 일제의 범죄성 사이의 연관관계도 논리적으로 더더욱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운동론적 측면에서 본다면 '대한민국'의 이와 같은 역사적 성격 등을 감안해서 '위안부' 성노예 피해자 정의 구현 운동은 되도록이면 좀 초국가적인, 그야말로 세계시민적인 기조로 나아가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라는 부분은 제 생각인데 어떻게 보시는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A. 정영환이 박노자의 질문에 답하다

오늘 제기해주신 질문에 답장을 드립니다. 저도 한국과 일본 국가의 범죄성을 연동시켜서 분석할 틀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일본군 성노예제도와 한국의 국가적 성범죄를 묶어서 분석할 구체적인 방법에 관해서는 저도 많이 고민을 합니다. 일본의 수정주의자들은 일본군의 가해책임을 희석시키기 위해서 한국군의 만행, 특히 베트남 전쟁시의 민간인 학살이나 성폭력의 사실을 자주 거론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절대로 언급하지 않는 것은 당시 일본 정부도 북폭을 비롯한 미군의 베트남 정책을 적극적으로, 누구보다도 빨리 지지하여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1967년에 이루어진 베트남에서의 전쟁범죄에 관한 국제법정, 소위 러셀법정은 미국의 베트남 침략의 죄와 관련하여 일본정부의 공범성을 인정하여 유죄를 선고했던 것입니다. 수정주의자는 가해책임의 상살을 위한 ‘비교’에 만 집중하고 베트남 전쟁시의 미일한의 ‘관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시하는데 저는 이 ‘관계’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관계라고 할 때 저는 시간적인/통시적인 관계와 공간적인/동시대적인 관계의 두 측면을 통합적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조선전쟁시 한국군'위안소'는 일본군, 만주국군 장교의 계보가 국군으로 계승이 되었던 사실을 제외해서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즉 일본군/한국군의 인적 연속성으로 인해 일본군국주의의 제도화 성폭력이 반공주의와 결합하여 재현되었던 것이지요. 이런 측면이 파시즘과 반공주의에 유래되는 것인지, 혹은 근대의 군대에 공통된 일반적 특징인지를 검토하는 것—사회주의국가의 사례도 보면서—이 다음 단계의 문제일 것 같습니다만 저로서는 역사연구자로서 이런 폭력의 사실들을 발굴하는 것과 동시에 다양한 형태로 폭력을 고발하여 왔던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 배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절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러셀법정이나 Q1에서 거론한 2000년 여성국제전범법정의 경험은 더욱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본 온라인 대담은 팀과 커뮤니티를 위한 민주주의 플랫폼' 빠띠'에서 에서 이루어졌다. (https://parti.xyz/parties)

 

Q. 정영환이 박노자에게 묻다

관련해서 박노자 선생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 주제는 일본군'위안부'문제를 포함한 일본의 과거사청산과 현재 천황의 역할에 관한 문제입니다. 지난 2월10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일본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천황이 사과해야 한다는 취지를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습니다. 일본 언론은 일제히 보도를 해서 반발을 하였는데 이 문제는 좀더 다각적으로 검토를 해야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선대 천황이었던 히로히토에는 분명히 전쟁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천황이란 지위를 계승한 현 천황은 이와 관련한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문희상 의장의 발언 중의 ‘전쟁범죄 주범 아들’인 현재 천황이 사과해야한다는 부분에는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우려하는 것은 혹시 천황 방한이 실현되면—퇴위 후에 갈 수도 있는데— 이것은 하나의 정치적인 ‘화해’의 쇼로 연출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지금 현재 일본에서 천황이 맡은 이데올로기적 기능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천황은 자연재해등으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여 전쟁의 ‘희생자’를 ‘위로’합니다. 이런 행동을 천황은 책임의 주체로서가 아니라 책임이나 권리/의무 관계를 넘어선 그야말로 초연한 위치에서 수행하면서 사회적 모순을 은폐하며 ‘국민 통합’의 환상을 연출합니다. 현재 천황은 아마 의식적으로 이런 기능을 맡아왔고 어느 정도는 ‘성공’하였다고 봅니다.

일본 NHK의 여론조사 결과 79%의 일본국민이 헤이세이(平成)시대의 이미지를 ‘전쟁이 없고 평화로웠던 시대’라고 본다고 대답을 했답니다. 실은 1989년이후의 헤이세이 시대는 헌법제9조가 금지한 해외파병을 일본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기지국가’로 부터 ‘파병국가’로 전환을 했던 새로운 전쟁의 시대였는데 말입니다.

천황은 2001년의 9.11사건직후에 주일미국대사에 조의를 전하고나 2004년에는 당시 체이니 미대통령에게 자위대가 이라 사람들의 행복에 공헌할 것을 원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하며 미국주도하의 일련의 ‘파병국가’로서의 일본의 군사행동을 지지 장식하여 왔습니다.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들도 이런 천황의 기능을 비판을 하지않고 오히려 천황을 아베총리와 대항하는 ‘평화의 상징’으로 간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황의 이데올러기적 ‘통합’기능은 패전후의 그 어느 때보다도 깊어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천황의 방한은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식민지지배의 최고 책임자였던 천황을 면제할 결과를 낳는 것이 아닌가고 저는 우려합니다. 박노자 선생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A. 박노자가 정영환의 질문에 답하다

정영환 선생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시사점들을 던지는 질문입니다. 일단 히로히토가 전범이라는 점은 분명히 역사적 사실임에 틀림없습니다. 히로히토의 유명한 평전을 쓴  Herbert P. Bix 선생과 같은 원로 연구자들의 일치된 의견이기도 하고, 전쟁 직후에 미군 쪽에서도 다수가 사실상 생각했던 부분입니다. 천황에 대한 전잼 책임 면탈은 어디까지나 오로지 정치적 판단 (일본 보수 세력과의 새로운 유착의 시초)에 불과했으며 법률적인 판단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쟁 주범의 아들'은 틀린 이야기가 아니고 그저 팩트에 불과합니다.

네, 정영환 선생님의 우려를, 저도 공유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천황의 보수적 '국민 통합' 기능은 여전히 강하고, 거기에다가 한국에서 정치적 '한일 화해 쇼'를 연출하려 하는 정객들이 여전히 적지 않게 있다는 겁니다. 일본과 약간 다르지만, 한국의 지배층은 외교 문제에 대해 상당한 분열상을 보입니다. 지금 집권 중인 자유주의자들은 남북 화해, 협력에 집중하면서 과거 오바마 정권이 강조했던 '미-일-한 삼각 동맹 관계"에는 다소 소극적입니다. 동맹이라면 한-미 동맹 정도만 생각하고 '삼각' 동맹까지는 그렇게까지 원하지 않는 듯합니다. '삼각' 동맹이 남북화해 사업에 핵심적 역할을 할 중국에 그다지 반갑지 않기도 하고, 또 자유주의자들에게 투표하는 사람들의 상당수에게 그 이미지가 전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대표하는 자유주의자들은 한국 정계의 한 분파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는 자한당 등이 대표하는 극우적 경향의 여러 계파들이 여전히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특히 군대나 특수국가기관 (첩보기관 등)에서 상당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도 극우들의 의중을 전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컨대 극우파가 절대 반대하는 이석기 전 의원의 사면 등을, 자유주의 정권은 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극우파 같은 경우에는 미-일-한 삼각 동맹의 지지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극우파가 다시 집권하거나, 레임덕에 빠진 자유주의 정권이 극우파의 눈치를 심하게 보게 되면 '천황 반한' 쇼와 거기에 따르는 '화해' 쇼를 얼마든지 연출해볼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은 쇼는 무엇보다 피해자들의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것입니다. 아직도 배상도 제대로 된 국가적 레벨의 사과도 재발 방지 보장도 받지 못한 피해자들에게는 '화해' 쇼는 그제 서경식 선생님의 표현대로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불과합니다. 이러 가능성을 한국 사회 운동 진영이 염두에 두고, 미리 그 반대에 대한 확연한 의사를 정계와 사회에 정확히 전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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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정영환

메이지가쿠인대학 교양교육센터 교수. 역사학 특히 조선근현대사 및 재일조선인사 전공. 저서에 『朝鮮独立への隘路:在日朝鮮人の解放五年史』(法政大学出版局、2013年)、『忘却のための「和解」:『帝国の慰安婦』と日本の責任』(世織書房、2016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임경화역, 푸른역사, 2016년)등이 있다. 

chong@gen.meijigakuin.ac.jp
글쓴이 박노자

박노자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오슬로대학교 인문학부 동방언어 및 문화연구 학과 교수, 한국학 및 동아시아학 전공. 현재로서 한국 민족주의 역사, 사회주의 운동 역사, 근현대 불교사, 사학사 등 연구 집중. 근작으로 <주식회사 대한민국>, <전환의 시대> 등 다수의 저서가 있으며, 금년에  발표된 논문으로  "Sin Ŏnjun (1904–1938) and Lu Xun’s Image in Korea: Colonial Korea’s Nationalist Transnationalism", "The Rise and Fall of the New Right Movement and the Historical Wars in 2000s South Korea" 등이 있다.

vladimir.tikhonov@ikos.uio.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