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K의 프로그램 개찬(改竄)사건에 관하여 (하)

나가이 사토루(長井 暁)2000년 여성법정 당시 NHK 'ETV2001' 데스크

  • 게시일2020.12.03
  • 최종수정일2021.08.24

 

 

노지마 국회 담당 국장의 변경 지시


아베 관방부장관과의 면담이 있고 난 뒤 시사회에 참여한 노지마 국장이 "절대 안 돼! 말도 안 되는 내용이야!"라고 발언한 것이었다. 그 후 요시오카 부장과 마쓰오, 이토, 노지마 국장이 협의에 들어갔다. 나가타 CP는 국장실 앞에 마련된 소파에서 대기하고 나는 후반 작업을 하러 돌아갔다.

협의 중 노지마 국장이 몇 명의 정치인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의 주장에 관해 설명한 내용을 요시오카 부장의 대본에 '아베, 아라이, 후루야'라고 흘려 적혀 있던 메모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 요시오카 부장이 "도저히 못 해 먹겠으니 그렇게 말할 거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성을 내고 말았다. 요시오카 부장이 '못 해 먹겠다!'며 성을 해버리니 노지마 담당 국장이 변경 내용을 직접 나가타 CP에게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점은 NHK도 발뺌할 수 없는 사실로 이는 추후 '방송 윤리 및 프로그램 향상 기구(Broadcasting Ethics & Program Improvement Organization, 이하 BPO)'에서도 심한 비판을 받게 된다. 국회 담당 국장이 방송 프로그램의 내용을 '이런 식으로 바꾸라'며 직접 현장의 프로듀서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시 내용은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 및 일본군의 책임에 대해선 애매하게 처리하라', '하타 이쿠히코 교수의 인터뷰 분량을 늘려라', '법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더 늘려라', '판결 부분은 코멘트 처리하라' 등이었다. 이때 노지마 국장은 나가타 CP에게 '위안부' 피해자들을 소개하는 내레이션에 대해 "비즈니스 때문에 '위안부'를 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없겠어?"라고 질문했다. 나가타 CP가 '그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항변하자 노지마 국장은 "어차피 망가뜨릴 거라면 확실하게 망가뜨려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러한 변경 지시에 따라 <다시 묻는 전시 성폭력> 편은 최초 기획의도와 달리 무참하게 변질되고 말았다. 

지금에 와서 회상해 보면, 이 개편 지시를 우리는 단호하게 거절했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들은 기진맥진한 극한의 상황 속에서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기본적으로 방송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프로그램을 방송에 내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다. '말도 안 되게 변질된 프로그램으로 바뀌고 말겠지만 2000년 여성법정이, 그리고 '위안부' 피해자들과 가해 병사들의 증언이 방송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자위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방송 당일, 3분 커트를 지시


방송 당일인 1월 30일, 아침부터 내레이션과 더빙 작업 등이 있었다. 더빙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갈 무렵, 요시오카 부장이 마쓰오 방송 총 국장의 전화 호출을 받았다. '또 뭔 일이 생기는 건 아닌지' 불안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던 와중에 요시오카 부장이 전화로 나가타 CP에게 "지금부터 하는 말을 메모해라. 지금부터 말하는 부분을 커트해라."라고 지령을 내렸다. 그 내용은 중국의 완아이화 씨의 증언, 동티모르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그리고 가해 병사(전 일본군 병사) 증언 등 3분을 커트하라는 지시였다. 우리가 전날의 부당한 편집 변경 지시를 받아들였던 이유는 여전히 프로그램 속에 '위안부' 피해자들과 가해 병사들의 증언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방송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작업을 진행해 왔는데 이 귀중한 증언들마저 없애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 지시에 나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맹렬하게 반대했다. 이때 나는 나가타 CP에게 두가지를 주장했다. 첫째, ''위안부' 피해자들과 가해 병사들의 증언을 커트한다면 프로그램 본연의 취지를 잃게 된다', 둘째, '그런 일을 한다면 NHK가 심각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분명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니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나는 나가타 CP에게 "마쓰오 방송 총 국장님에게 지시를 거둬 달라고 말씀해주세요, 그런 내용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요."라고 부탁했다. 나가타 CP는 "맞아, 뭔가 한참 잘못되어 가고 있어."라고 대답하며 방송 총 국장실로 향했다. 나는 동시에 일본방송노동조합의 방송 계열 위원장을 맡고 있던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이러한 상황이니 조합에서도 방송 총 국장에게 생각을 바꾸어 달라고 힘 좀 써줘!"라고 부탁했다. 그 후 스튜디오로 돌아온 요시오카 부장에게 "이런 짓을 하면 세상을 향해 '프로그램이 조작되었다'고 공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잖아요. 큰 문제가 될 거예요, 절대로 안 됩니다."고 말했다. 요시오카 부장은 "나도 알아, 하지만 마쓰오에게 그렇게 말해봤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더이상 너희들과 논의할 사항이 아니야'라며 대화하기를 거부했어."라고 답했다. 그 후 나가타 CP도 돌아와 "마쓰오 국장님과 얘기해 봤는데 안 될 것 같아."라고 대답했다. 나중에 나가타 CP에게서 그 때 방송 총 국장실에서 있었던 일화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국장실에는 마쓰오, 이토, 노지마 국장이 있었다. 나가타 CP는 "어째서 가장 중요한 '위안부' 증언과 가해 병사의 증언을 이제 와서 커트하라는 겁니까, 제발 부탁이니 재고해 주십시오. 이대로 진행하면 NHK가 큰일을 당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니 마쓰오 국장은 "그렇게는 안 돼. 내가 프로그램과 뉴스 책임자야. 내가 책임지면 되잖아.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은 방송에 내보낼 수 없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고 한다. 나가타 CP가 그래도 물고 늘어지자 노지마 국장이 "네가 정말 열심히 하고 성실한 것은 잘 알았어. 하지만 이미 모두 결정된 사항이야."라며 조용히, 그리고 더 이상의 대꾸는 받지 않겠다는 듯한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고 한다.

 


편집권과 내부적 자유


마쓰오 방송 총 국장이 프로그램 내용의 변경 지시를 업무 명령으로 내릴 수 있었던 근거는 '편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NHK는 '편집권은 회장에게 있지만, 그 편집권을 방송 총 국장과 나누어 가진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 권한은 또다시 프로그램 제작 국장과 보도 국장, 각 부의 부장과 현장의 총괄 프로듀서가 나누어 가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질적으로 미군의 점령 하에 있던 당시 일본신문협회가 '편집권은 경영자에게 있다'고 선언한 이래 일본에서는 그 견해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경영과 편집의 분리'나 '경영에 의한 영향은 당연히 있지만, 구체적인 편집권은 현장에 있다'는 사고방식이 주류이다. 

NHK는 방송 총 국장을 방송 책임자로 두지만, 실제 여러 프로그램의 최종 결정권은 현장의 총괄 프로듀서가 가지고 있다. 총괄 프로듀서가 OK 사인을 하면 방송으로 내보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내가 편집권을 가지고 있으니 나의 업무 지시에 따르라"는 방송 총 국장의 발언은 현장에서 보기에 얼토당토 않은 소리였지만, '경영자와 방송 총 국장이 편집권을 나누어 가진다'는 NHK의 입장 때문에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렸다. 노동조합으로부터도 '정보가 없어서 아직 사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바로 움직일 수 없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는 이때 내부적 자유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자신의 양심을 따르지 않는, 양심에 반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행태를 수용해야 하는가'라는 본질적 문제에 부딪힌 것이다. 

이때 나에게는 데스크로서 '작업을 거부하여 방송에 내보내지 않는다'라는 선택지가 있었다. 우리가 작업을 거부한다면 미완성인 프로그램은 방송에 내보낼 수 없으므로 방송에 펑크가 난다.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는 4회로 편성된 시리즈 프로그램인데, 만약 내가 2회차 편집 작업을 거부한다면 예정된 방송 시각에 전혀 관련없는 방송이 재방송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 분명히 나는 방송 현장에서 쫓겨나 어딘가로 좌천될 것이 분명했다. 대본 등에 문제가 없는지 미리 검토하는 고사실이나 자료실, 방송문화 연구소 등 NHK에는 좌천 후보지가 매우 많다. 실제로 나는 나중에 연구소로 좌천을 당하게 된다. 다만 문제는 내가 좌천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최종 단계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함께한 3명의 디렉터에게도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나아가 프로그램에 관여한 모든 스태프에게도 영향이 갈 수 있었고, 이러한 점들을 결정에 고려해야만 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사건의 이면에 정치인들의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는 그때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상부의 3분 커트 지시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프로그램을 방송의 예비 테이프를 제작하는 ECS 작업으로 3분간의 영상을 커트했다. 사실 더빙 작업과 음향 처리가 끝난 프로그램을 커트하면 음성은 더이상 손을 댈 수 없다. 영상은 커트로 인해 잘려 나가니 알 수 없지만, 소리는 도중에 자를 경우 정리 작업을 하지 않으면 그 다음으로 연결되는 부분과의 음이 맞지 않아 어색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송 퀄리티를 생각할 때 완성된 프로그램의 영상을 커트하는 것은 맞지 않지만, 결국 43분 분량으로 완성된 <다시 묻는 전시 성폭력> 편을 억지로 40분 분량으로 편집하여 방송했다. 통상 44분인 프로그램을 그날만 40분으로 방송하는 것은 방송사고이며, 이는 '이 프로그램은 조작되었습니다'라고 외부에 공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결과, 프로그램 제작에 협력해 주었던 2000년 여성법정의 주최 단체 중 하나인 바우넷 재팬이 NHK와 NEP, DJ에 소송을 제기하게 되었다.
 

2015년 1월 14일 아침뉴스에서 NHK는 아베 관방부장관과의 면담에 의한 프로그램 내용 변경은 없었다라고 보도했다.

 


내부 고발의 경위


게다가 스튜디오에 출연한 여성 연구자가 '방송과 인권 등 권리에 관한 위원회(Broadcast and Human Rights/Other Related Rights Committee, 이하 BRC)'에 "중요 코멘트 부분이 전부 삭제된 데다가 맥락 없이 편집되어 연구자로서의 신뢰성을 훼손당했다"며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BRC는 '(NHK는) 민원인의 인격권에 대해 배려를 하지 않아 방송 윤리를 위반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결정을 내렸다.

2004년 3월에는 도쿄 지방 법원에서 바우넷 재팬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 DJ에게만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NHK 관계자(요시오카 부장, 나가타 CP 외)는 모두 침묵하였고, 정치인에 의한 압력 문제는 재판의 쟁점이 되지 않았다. 원고인 바우넷 재팬도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해 추궁할 수 없던 가운데 1심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나는 방송 현장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서는 상세하게 알고 있었지만, 노지마 국장과 마쓰오 국장이 시사회 직전에 어떤 정치인과 면담을 하고 어떠한 대화를 나눴는지에 관해 당시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어째서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조사해 언젠가는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가 책임을 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교에서 중국 근현대사, 중일관계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역사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역사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이렇게 끔찍한 상황에 직면했는데도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 직후 이러한 속마음을 숨기고 NHK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사실은 점점 명확해졌지만, 그 사실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는 여전히 손에 넣지 못했다. 또한 내가 참여했었던 NHK 스페셜 대형 프로젝트(《사대 문명 (四大文明) 》, 《일본인 머나먼 여행(日本人はるかな旅)》, 《문명의 길(文明の道)》 등)의 업무를 매듭짓고 싶다는 마음도 있어 좀처럼 사실을 세상에 알릴 수 없었다. 그리고 재판은 10년 정도 이어질 거라고 들었기 때문에 재판의 최종 단계에서 내가 경험한 사실과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을 증언하면 될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2004년 말, 도쿄 고등 법원 재판에서 곧 결심 공판이 열린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대법원은 문서로만 심의를 하므로 내가 증언하기 어렵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공익 제보자 보호법이라는 법률이 통과되어 NHK에도 준법감시 추진실에 내부 제보 창구가 마련되었다.  나는 사건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하고 2004년 12월 NHK 내부 제보 창구에 이 문제를 고발했다. 나의 내부 고발 사실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자 도쿄 고등 법원의 결심이 연기됐고 나를 비롯한 나가타, 노지마, 마쓰오, 이토가 도쿄 고등법원에서 증언하게 되었다.

 

2001년 1월 19일 NHK 저녁 뉴스 (1)

2001년 1월 19일 NHK 저녁 뉴스 (2)

 


조직 방어에 분주한 NHK


내가 내부 고발한 사실이 미디어에서 크게 다뤄지자, NHK는 조직 방어를 위해 아베 관방부장관과 나카가와 의원 등의 정치인들을 지키려고 했다. NHK는 이를 위해 뉴스를 이용했다. NHK 뉴스는 오랜 전통과 경험을 거쳐 어떠한 사실도 객관적으로 보도한다는 방침을 확립해 왔다. 예를 들어 NHK에 관한 뉴스라 하더라도 "~한 내용을 NHK가 발표했습니다."라든지, "NHK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하는 것이 NHK 뉴스의 화법이다. 2005년 1월 19일 NHK는 내가 내부 고발한 내용에 대해 준법감시 추진실이 조사했다며 '조사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내용을 보도한 그날 밤의 NHK 뉴스는 평소의 화법과 달랐다. 내가 주장한 구체적인 내용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고 "NHK의 준법감시 추진실이 조사한 결과 그러한 사실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담당 데스크의 주장은 허위 주장입니다."라고 보도됐다. 객관적 보도라는 방침을 위해 'NHK가 이렇게 발표했습니다.'라는 화법을 써야 하는데도, '담당 데스크의 주장은 허위였다'고 보도한 것이다. 어떤 미디어 연구자는 이 보도에 대해 'NHK 뉴스가 사망한 날'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NHK 임원들은 조직 방어를 위해 아베 관방부장관과 나카가와 의원을 지켜야 한다고 판단했고 보도국에 이러한 뉴스를 발신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 그런 뉴스가 나오고 말았는지 제대로 검증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 당시 NHK 뉴스는 "NHK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사실이 아닌 것을 NHK의 일개 CP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것이 되는군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마쓰오 국장이 "그러한 사실이 아닌 내용을 발설한 저널리스트는 내가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한 내용까지 내보냈다. NHK의 CP라는 말단 관리직에 지나지 않는 내게 NHK가 뉴스를 사용하여 공격하고 명예를 훼손한 것이다. 그때 내가 BPO에 '말도 안 되는 뉴스가 방송되어 나의 인격권이 침해당했다'는 민원을 제기했더라면 재판과는 별개의 싸움이 펼쳐질 수 있었을 것이다.



방송 문화 연구소로 인사이동


내부 고발 후에도 나는 한동안 방송 현장에서 계속 일을 했다. 하지만 이듬해 관리직 정기 인사이동에서 방송 문화 연구소로 이동이 결정되었다. 에비사와씨가 사임한 후 회장이 된 하시모토라는 기술직 출신의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나의 인사이동에 대해 "나가이는 중국 전문가이니 중국 미디어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연구소로 이동시켰습니다. 적재적소의 인사이동입니다."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때 방송 문화 연구소에는 외신부 기자 출신의 중국 미디어 전문가가 이미 있었다. 나는 보복성 인사이동을 받아들일 각오가 되어 있었다. 내게 있어 연구소는 좋아하는 조사와 연구를 할 수 있는 괜찮은 좌천지였고, 이곳에서 2년 정도를 보냈다. 하지만 국차장급 위치에 있으면서 도쿄 고등 법원에서 진실을 말한 나가타 씨에 대한 보복성 인사이동은 가혹했다. NHK에서 국차장급이라 하면 국장이나 이사로 승진할 가능성이 있으며 퇴직 후에는 NHK 관련 회사의 임원 자리가 보장되는 주요 간부로, '조직 방어를 첫 번째 행동 지침으로 삼아야 하며 재판에서 절대로 조직에 불리한 사실을 증언해서는 안 된다'라는 불문율이 있다. 하지만, 나가타 씨는 도쿄 고등 법원에서 진실을 증언했다. NHK 임원진이 보기에 '국차장급이나 되는 사람이 법원에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나가타 씨는 NHK 자료실로 좌천되었다. NHK에는 좌천 후보지가 여러 곳 있다. 자료실에서 성실하게 근무하고 계시는 직원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이겠지만, 위성편집장을 맡고 있던 나가타 씨에게 자료실은 혹독한 곳이었다. 하지만 나가타 씨와 나는 "예견했던 결말이니 서로 힘내자"라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연구소로 이동한 후 교양 프로그램부 선배가 연구소의 새로운 소장으로 취임하고, 직전까지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편성 관계자가 차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차장은 솔직한 성격의 인물로 "나가이 씨, 미안하지만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는 문제 일으키지 말고 가만히 있어줘."라는 말을 했다. NHK 임원진은 동료 간의 정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나를 제어하려고 했고 이는 나에게 매우 슬픈 일이었으나 나 역시 각오한 일이었기에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내부 고발이 나 나름의 책임을 지는 방법이었지만, 프로그램 조작을 허용한 결과 2000년 여성법정에서 증언한 '위안부' 피해자들과 주최한 NPO 분들에게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이것은 되돌릴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는 사실이다.



도쿄 고등 법원의 결정과 BPO의 결정


2007년 1월, 도쿄 고등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국회의원의 발언을) 필요 이상으로 무겁게 받아들였고, 그 의도를 헤아려 가능한 한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프로그램으로 만들기 위해 시사회에 참여하였으며 그 결과 원하는 형태로 만들고자 본 건의 프로그램에 대해 직접 지시하고 수정을 반복해 편집 수정이 이루어진 점이 인정된다."며 NHK 등에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미나미 도시후미 재판장은 NHK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하게 비판했다. "NHK는 헌법을 통해 존중받고 보장된 편집의 권한을 남용 또는 일탈하여 변경을 꾀하였으며 자주성, 독립성을 내용으로 하는 편집권을 스스로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하지만 2008년 6월의 대법원 판결에서는 사실관계 내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다루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방송하는지는) 방송 사업자의 자립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 '(취재 협력자의) 기대와 신뢰는 원칙적으로 법적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NHK의 편집의 자유가 우위에 있다고 인정했다. 대법원은 그 시대의 권력에 빌붙는 판결만 내리는 경향이 있으며 당시에는 재판원 제도 도입을 앞두고 NHK에 여러 가지로 협력을 받아야 하는 사정이 있었다. 따라서 애초에 대법원은 NHK에 유리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측했었다.

재판이 끝나고 이 사건에 대해 BPO가 심의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9년 4월, BPO의 방송 윤리 검증 위원회가 결정을 내렸다.

"프로그램 방송 전에 있었던 NHK의 프로그램 제작 부문의 간부 관리직과 정부 고위 관직 및 여당의 유력 정치인 간의 면담과 이를 전후로 한 편집 수정 지시 및 국회 담당 국장이 제작 현장 책임자에게 편집 수정을 지시한 점과 같은 일련의 행동은 공영방송인 NHK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자주성 및 자립성을 위협하고 NHK에 기대와 신뢰를 보내는 시청자들에게 중대한 의심을 품게 만드는 행위였다고 판정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다음 BPO는 NHK에 ① 방송 및 제작 부문과 국회 대책 부문의 분리, ② 내부적 자유에 대한 논의 ③ 시청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BPO의 요구 중 가장 중요한 점은 'NHK가 프로그램 조작 사건을 스스로 검증하여 시청자에게 공표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NHK는 지금까지도 이 요구에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NHK 프로그램 개찬 사건과 그 이후 NHK의 대응은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NHK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와 기대를 배신하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글쓴이 나가이 사토루(長井 暁)

1981 년 도쿄가쿠케이대학(東京学芸大学) 교육학부에서 중국 근현대사를 전공했다. 재학 중 베이징 대학에서 2년간 유학했다. 1987년에 NHK에 입사. 디렉터로서 "NHK 스페셜 「한국 전쟁 - 냉전의 비극 38 선(朝鮮戦争〜冷戦の悲劇38度線)", "장쉐량이 지금 말한다 - 중일 전쟁으로의 길(張学良がいま語る〜日中戦争への道)", "어전 회의 - 태평양 전쟁 개전은 이렇게 결정되었다(御前会議〜太平洋戦争開戦はこうして決められた)", "주은래의 선택 - 중일국교 정상화는 이렇게 실현했다(周恩来の選択〜日中国交正常化はこうして実現した) ", "마오 쩌둥과 그 시대 - 전편 후편(毛沢東とその時代〜前編・後編)"등 주로 동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다. 데스크로서 NHK 스페셜의 대형 시리즈 "가도를 간다 (街道をゆく)", "4대문명(四大文明)", "일본인 머나먼 여행(日本人はるかな旅)", "문명의 길(文明の道)" 등의 제작에 관여했다.

2001년 당시는 ETV2001의 데스크로서, "시리즈, <전쟁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의 제작 현장 작업을 관장. NHK프로그램 개찬 사건과 관련하여 2005년 내부 고발을 했을 당시는 방송 총국과 방송 80 주년 사무국 책임 프로듀서였지만, 내부 고발 후 NHK 방송 문화 연구소에 옮겨 주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9년 NHK에서 퇴직하고, 현재는 도쿄대학 대학원 등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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