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소녀상을 만나다

김세진

  • 게시일2020.06.09
  • 최종수정일2022.11.28

평화의 소녀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과거사 문제를 의제화하는 사회예술로의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소녀상이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소통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한편에서는 소녀상으로 인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연약한 소녀의 모습으로만 각인되고 소녀와 할머니 사이의 시간이 사라지며, 피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는 까닭은 평화의 소녀상이 ‘위안부’ 문제를 표상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함께 소환된다. 소녀상은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웹진 <결>은 소녀상을 직접 관찰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소녀상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누구보다 많은 소녀상을 자세히 관찰한 김세진 작가와의 인터뷰, 그리고 2016년 ‘효녀연합’으로 활동했던 어효은 작가가 하나의 소녀상을 2주간 관찰하고 느낀 바를 적은 에세이를 준비했다. 두 개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소녀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각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소녀상과 함께 
함께 만난 사람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작가 김세진입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75개의 평화의 소녀상(이하 소녀상)을 그림으로 기록했습니다. 2018년엔 책으로 엮어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보리, 2018)를 출판했어요. 

Q. 처음 소녀상을 그리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러 다니기 전에 ‘소녀상 농성 대학생 공동행동’에서 소녀상 지킴이를 했어요. 어느 날 어떤 분이 저에게 ‘전국의 소녀상이 몇 개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사실 생각해본 적도 없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도 물어보니 저와 크게 다르지 않더라고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죠. 그래서 다른 지역에는 어느 곳에 어떤 소녀상이 있는지 조사해봤어요. 그런데 소녀상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더라고요. 그림뿐 아니라, 사진으로도 제대로 기록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저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전국을 다니며 소녀상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딱 그 정도의 생각이었어요. 소녀상의 의미를 알리자는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단지 어디에 어떤 소녀상이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죠.  

Q. 전국의 소녀상을 그리러 다니면서 겪었던 일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청주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스케치는 겨우 끝났고 채색만 하면 되는데 갑자기 비가 많이 내리는 거예요. 근처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죠. 카페 안에서 그림을 마저 그리고 있는데, 카페 사장님이 제 그림에 관심을 보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하는 작업에 관해 설명해 드렸죠.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저더러 오늘 잠은 어디에서 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지금 저렇게 비가 많이 오니까 찜질방을 가야겠죠?” 말하니까 그러면 자신이 카페 열쇠를 줄 테니 여기서 자고 가라는 거예요. 여기서 씻고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만큼 그리다가 자고 가라고요. 실제로 제게 가게 열쇠를 맡기고 퇴근하셨어요. 그게 엄청나게 감동이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가게 열쇠를 맡긴다는 게 대단한 거잖아요. 남해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갔는데, 그곳 사장님도 저더러 뭘 그리냐고 물어보시더니, 또 어디서 자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아마 노숙을 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니, 열쇠를 줄 테니 가게 소파에서 자라는 거예요. (웃음) 

Q. 작가님의 작업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니까 환대를 해주셨던 거겠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아주 많은 분을 만나셨을 것 같아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났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분들하고 계속 연락이 닿고 있어요. 자기 지역에서 함께 전시회를 열자고 문의도 들어오고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이 또 있어요. 저는 막연하게 전국 각 곳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간에 네트워크가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없더라고요. 네트워크가 없으니 소녀상 건립에 대한 노하우 역시 공유되고 있지 않은 거예요. 어느 지역을 가도 비슷한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고 있었죠. 본의 아니게 제가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된 곳도 있어요. 각 지역의 추진위끼리 연결을 해주기도 하고, 소녀상을 건립할 때 주의해야 할 점 등을 알려드리기도 했어요.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작업을 하면서 느낀 보람 중에 하나죠. 

Q.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각지의 소녀상을 그림으로 기록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이런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저도 솔직히 모르겠어요. 가끔 스스로 물어봐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지금까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는지를요. 글쎄요. 일단은 시작했고, 사람들이 의미가 있다고 말을 해주니까 계속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소녀상을 그림으로써 소녀상은 먼 곳이 아닌 우리 주변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소녀상은 어디에나 있거든요. 우리 동네에도 있고, 옆 동네에도 있어요. 수요시위는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소녀상은 가까운 곳에 언제나 늘 있어요. 누군가 제 작업을 보고 ‘어, 우리 동네에도 소녀상이 있었네?’ 하는 반응을 보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그걸 알리는 게 목표였으니까요.

충북 청주시 청소년 광장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김세진

 

 

75개의 유일무이한 
소녀상들을 마주하다
 

Q. 소녀상 이미지에 관한 비판 중에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이미지를 소녀로 고정한다는 비판이 있어요. 

여기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소녀상은 김서경, 김운성 작가님이 만든 소녀상이겠죠. 우리가 소녀상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모습의 소녀상은 두 작가님이 만든 작품이니까요. 저는 소녀상의 이미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달라요. 김서경, 김운성 작가의 소녀상은 현대미술로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요. 두 작가님은 소녀라는 이미지를 통해 일본군‘위안부’ 피해 사실을 알림과 동시에 피해자들을 기리고 싶었던 거예요. 실제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대다수가 피해 당시 어린 소녀였던 것도 사실이고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는 연약한 소녀가 아니고, 인권운동가라는 의견이 있는 걸 알아요. 하지만 모든 ‘위안부’ 피해자가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한 것은 아니고요, 그중 몇 분이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한 것 역시 피해 이후의 일이죠.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대 형성과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소녀상은 현대미술 작품 중 하나고요.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소녀상을 보면 무섭대요. 소녀상이 마치 계속 자기를 보고 있는 것 같대요. 소녀상을 볼 때 내면에 있는 자신의 시각이 비추어져서 그런 거겠죠. 그런데 우리는 소녀상을 보면서 두려움이 아니라 슬픔을 느끼죠. 재밌는 건 소녀상의 표정은 언제나 무표정이라는 거예요. 무표정한 표정에 감정을 씌우는 건 소녀상을 보는 우리 자신이죠. 이게 현대미술의 역할이고요.  

Q. 소녀의 이미지가 계속 복제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요. 김세진 작가님은 직접 다양한 곳의 소녀상을 보셨잖아요. 실제로는 어떤가요? 

김서경, 김운성 작가의 소녀상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김학순 할머니를 모델로 한 소녀상도 있어요. 말하자면 소녀상이 아니라 할머니상이죠. 또 소녀가 아닌 젊고 강인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소녀상도 있어요. 많은 작가님이 김서경, 김운성 작가님의 소녀상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어요. 

물론, 가장 많은 것은 두 작가의 소녀상이죠. 지역에서 소녀상 건립을 추진할 때 여러 작품이 후보로 올라오는데요, 대다수의 지역에서 김서경, 김운성 작가님의 작품이 투표를 통해 선정되곤 해요. 아무래도 가장 대중적인 이미지니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소녀상의 이미지는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이에요. 오죽하면 지역 작가님이 만든 소녀상을 제치고 예의상 후보로 올려놓은 김서경, 김운성 작가님의 소녀상이 선정되는 일도 있었겠어요. 심지어 두 작가님의 소녀상이 진짜 소녀상이고, 나머지는 가짜 소녀상이라는 말을 하는 분도 계세요. 두 작가님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인식을 하고 계세요. 소녀상의 이미지가 본인들의 작품으로 고착되는 것을 경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본인들 외에 다른 작가가 만든 소녀상 중에도 좋은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도 하시고요. 

Q. 혹시 김서경, 김운성 작가님의 소녀상 외에 인상 깊게 보았던 소녀상이 있나요? 

부천 소녀상 같은 경우에는 뒷모습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요. 얼굴이 어떻게 생겼나 하고 돌아가서 앞모습을 보면 얼굴이 있는 자리에 동판 거울이 내 얼굴을 비추고 있어요. 제가 본 동상의 뒷모습은 다름 아닌 나의 뒷모습이었던 거예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굉장히 멋진 작품이죠. 그리고 이화여대 입구 대현문화공원에 있는 소녀상은 파란색 나비 날개를 가지고 있어요. 전국의 대학생들이 참여한 이 소녀상의 파란 나비 날개는 환생·희망·자유·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대요. 중구 프란체스코 회관 앞에는 전국 고등학생들이 십시일반 모금해서 만든 소녀상이 있어요. 고등학생들이 참여해서 그런지 왠지 학생의 느낌이 있어요. 부산 소녀상의 경우에는 굉장히 당당한 표정을 띠고 있고요. 화정 소녀상은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어요. 각 지역의 소녀상마다 다양한 이미지들이 있어요. 상주는 곶감이 유명하잖아요? 상주 평화의 소녀상 뒤에는 조그맣게 곶감이 조각되어 있어요. 깨알 같죠. 소녀상이 왜 이리 한결같냐고 비판하기 전에 다양한 모습의 소녀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경기도 부천시 안중근공원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김세진

 

 

소녀상은 문제 해결을 바라는
시민의 염원이다 


Q. 처음에는 기록의 필요성을 느끼셔서 시작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작업을 계속 진행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소녀상의 의미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정말 슬펐어요. 이전에 다른 할머니들이 돌아가셨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정도였는데, 김복동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날 또 다른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고요. 하루에 두 분이 돌아가신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그날 느꼈던 감정이 이전과는 달랐어요.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확 느껴지더라고요. 그런데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기미는 전혀 안 보여요. 이제 우리는 피해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신 다음을 준비해야 해요.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해결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을 향한 움직임이 우리 다음 세대에도 또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녀상이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언젠가는 늙고, 우리 아래 세대도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고 또 할머니의 나이가 되는 날이 올 거예요. 하지만 현재 우리와 함께 있는 소녀상은 누군가 철거하고 부수지 않는 한 미래에도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예요. 소녀상을 매개로 진실과 정의를 향한 의지가 계속 이어질 수 있어요. 물론 정의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존재했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현재의 진실은 아직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고, 미래의 진실은 우리가 이 문제를 여전히 잊지 않을 것이라는 걸 소녀상이 알려주는 거거든요. 그렇다고 소녀상을 과하게 신성시하거나 너무 많은 의미 부여를 하는 것은 경계해야겠죠. 본질은 어디까지나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이니까요. 

Q. 관리 문제에 있어 소녀상을 현충 시설로 지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요. 

개인적으로 현충 시설까지는 아니지만, 공공조형물 지정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니까요. 하나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데에는 매우 많은 시민의 염원과 노력이 필요해요. 소녀상이 있다는 것은 시민들의 염원이 있다는 거고, 지자체는 시민들의 염원을 이어받아 소녀상을 지속해서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거죠. 

그러나 건립과 관리의 책임을 모두 지자체에 떠넘겨 버리면 소녀상이 무분별하게 난립할 수 있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어요. 소녀상은 여러 시민이 함께 참여해서 민주적인 절차로 추진될 때 비로소 의미가 발생하는 거잖아요. 시민 참여 없이 지자체 혼자 덩그러니 세워버리거나, 지역 정치인들의 훈장이 돼버리면 본래의 의미가 훼손되는 거죠. 시민들의 염원이 반영되지 않은 소녀상은 결국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겠죠. 이런 문제들을 막기 위해 소녀상 건립은 반드시 시민의 주도로 이루어지게 하고, 관리 감독은 지자체가 하되, 관리 운영을 잘 할 수 있는 시민단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위치한 평화의 소녀상 ©김세진

 

 

별거 아닌 사람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일들 


Q.  최근에는 소녀상을 만든 작가님들을 인터뷰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네. 전국의 소녀상 건립을 추진한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어요. 실제로 제작을 했던 작가님들을 만나 소녀상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에요. 현재는 실험하는 정도이지만, 조만간 본격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공공예술에 참여한 예술가는 쉽게 잊히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천안에 있는 국립 망향의 동산에 매우 큰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가 있는데요, 거기에 여성가족부 장관 이름은 크게 있지만, 작가 이름은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했지만, 그동안 주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터뷰를 통해 알리고 영상으로 기록하고 싶어요. 

Q.  다른 방식으로 소녀상을 기록하는 일을 하시는 거네요. 소녀상을 그리는 작업도 앞으로 계속하실 계획이세요? 

해야죠. 소녀상은 지금도 계속 건립되고 있으니까요. 점점 할 일이 늘어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출판사 쪽에서 4~50개 정도의 소녀상을 더 그려서 개정판을 만들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그리고 준비 중인 전시도 있고요. 

Q. 혹시 김세진 작가님처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예술 작업을 하려고 하거나 혹은 활동을 하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저는 대단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을 하고, 애니메이션을 보고, 내일 어떤 커피를 마시면 좋을지 고민하는 평범한 사람이에요. 저는 그냥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고, 눈앞에 소녀상이 있었기에 소녀상을 그린 것뿐이에요.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보다는 그냥 눈앞에 있는 간단한 것부터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대단한 사람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아요. 저희같이 별거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는 거죠. 별거 아닌 사람들이 땅바닥에 뿌려져 있는 조각을 주워서 퍼즐을 맞추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은 분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부터 시작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Credit
 
인터뷰 : 금혜지
글/편집 : 현승인 
그림 : 김세진

일시 : 2020년 5월 23일 토요일 
장소 : 서울시 은평구 불광역 청춘 스터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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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효은 2020.06.09

글쓴이 김세진

전라북도 전주에서 태어나 문민정부 시절에 철부지 소년으로 자라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에서 십 대를 보내고 ‘이명박근혜’로 이십 대를 보낸, 삼십 대 만화가 지망생이다. 2012년 상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 학부에 편입했다. 2013년 호주로 2년 동안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2016년 1월 소녀상 지킴이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와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사회참여를 시작했다. 2017년 5월 15일부터 104일 동안 전국의 소녀상을 찾아다니며 밤에는 노숙을 하고 낮에는 그림을 그려 모두 75점의 소녀상을 그렸다. 지금은 75점 그림을 가지고 전국을 다니며 전시회를 열어 사람들에게 일본군 성 노예제 문제를 알리고 있다.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깊은 울림을 받을 수 있다면 계속 행동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열혈 활동가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게임을 좋아하고 놀기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이다.

winksj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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