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방 -속리산(이옥선) 할머니 편-

김대월나눔의집 학예실장

  • 게시일2020.10.07
  • 최종수정일2020.10.13
나눔의 집 할머니의 방  

1. 할머니의 방 1부 - 이옥선 할머니 편
2. 할머니의 방 2부 - 속리산 이옥선 할머니 편 


이옥선 할머니와 속리산 할머니

<나눔의 집>에는 이름과 나이가 같은 두 명의 이옥선 할머니가 있다. 외부에서는 '부산 출신 이옥선 할머니'와 '대구 출신 이옥선 할머니'로 불리지만 <나눔의 집>에서는 '이옥선 할머니'(부산)와 '속리산 할머니'(대구)로 불린다. 속리산이 보은에 있는 까닭에 가끔 직원들이 보은 할머니라고 부를 때가 있는데 할머니는 바로 "왜 내가 보은 할머니야! 속리산 할머니지!"라며 역정을 내신다. 대구가 고향이신 할머니가 이처럼 속리산에 애착을 보이시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할머니는 16살에 만주로 끌려가 18살에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일본 패전 직후 일본군이 피해자들을 방치한 채 부대를 떠나자 갈 곳이 없던 할머니는 위안소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때 근처에 살던 중국 할머니들이 위안소로 찾아와 "여기 있으면 큰일 난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라면서 당시 위안소에 있던 이옥선 할머니와 다른 피해자들을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할머니는 거기에서 4일 정도를 머물렀는데 "그때 그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줘서 참 잘 먹었어."  "그 할마시(할머니)들 아니었으면 난 죽었어."라며 그때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신다.

그렇게 이름 모를 중국 할머니 집에서 4일간 머무르고 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조선 사람들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조선 큰 애기(처녀)들 나오라"면서 소리를 지르고 다녔다고 한다. 이 소리를 들은 할머니는 밖으로 나가 그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들의 도움으로 만주를 떠나 신의주로 올 수 있었다. 신의주에 도착한 할머니는 거기에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 내가 할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귀환 이후에 당연히 기뻐하는 가족들 또는 일가친척의 이야기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귀환 이후에 관한 할머니의 이야기는 굉장히 의외였다

대구에 도착한 할머니는 고향에 돌아왔다는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매일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할머니가 고향에 돌아온 후, 매일 밤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 할머니의 아버지에게 "네 딸은 살아 돌아왔는데 우리 딸은 왜 안 오느냐?", "이 집은 조상 묘를 잘 써서 딸이 살아 돌아왔는데 우리 딸은 죽었는지 돌아오지 않는다." 등등의 탄식을 쏟아 냈다고 한다. 마을의 또래 여성들이 모두 끌려갔는데 살아 돌아온 건 할머니뿐이니 동네 사람들의 탄식도 이해는 가지만, 결국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할머니는 부모님 몰래 홀로 고향을 떠났다.

그렇게 무작정 집을 나온 할머니는 영동·옥천을 지나 속리산에 도착하였는데 거기에서 만난 한 스님의 도움으로 법주사 근처에 거처를 얻어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릴 적 국악을 배워 장구와 소리를 아주 잘하시는데, 그것을 알게 된 스님이 속리산에 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소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였다고 한다. 그 제안을 받아들인 할머니는 그때부터 속리산을 찾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소리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셨다. 이렇게 고향을 떠나 속리산에 정착하신 할머니는 그 뒤로 70여 년을 속리산과 함께하였다. 이러한 할머니의 삶을 생각하면, 속리산에 대한 할머니의 애착은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속리산 이옥선의 방


평생 속리산에서 사실 줄 알았던 할머니는 2018년 가을, 무릎 수술 이후에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나눔의 집>에 오시게 되었다. 그전에도 <나눔의 집>과 왕래가 있었지만 이렇게 거주를 목적으로 오신 것은 처음이었다. 할머니가 오시기 얼마 전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던 故하점연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운영진은 나에게 그 방을 정리해 할머니께 드리라고 했다. 나는 그때 그 방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입사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았던 내 말에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결국 故하점연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방은 속리산 할머니의 방이 되었다. 이 방은 <나눔의 집> 거실을 지나 복도 오른쪽 첫 번째에 있는데, 크기와 구조는 맞은편 이옥선 할머니의 방과 같다. 속리산 할머니는 갑자기 입주하게 된 데다 후원금으로 할머니들의 개인물품을 구매하지 않는 <나눔의 집>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세간살이라고 할 것이 거의 없다. 방에는 돌침대와 2단 서랍장, TV, 냉장고가 전부인데, 이마저도 모두 故하점연 할머니가 쓰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국민들이 보내온 응원의 메시지와 그림, 편지, 꽃 등이 늘어나면서 할머니의 방도 점차 생기를 찾기 시작했다.

 

속리산 이옥선의 냉장고


할머니의 방은 문을 기준으로 가장 먼 쪽에 창문이 있고 그 아래 돌침대가 놓여있다. 그리고 그 침대 오른편(다리방향)에는 2단 서랍장이 있고, 그 위에 TV가 있다. 또 그 서랍장 맞은편으로 오래된 행거가, 행거 위쪽에는 냉장고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냉장고는 할머니의 방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할머니는 누구보다 건강에 관심이 많고 누가 좋다고 하는 건 꼭 드셔야 하는 성미이다. 그리고 음식을 저장하는 습관이 있어 냉장고는 항상 갖가지 음식들로 가득 차 있다. 가끔 냉장고 안의 음식이 썩거나 곰팡이가 필 때가 있는데 할머니는 그런 음식들도 잘 버리지 못하게 해 할머니의 냉장고 안은 항상 다채로운 풍경을 간직한 채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번은 간병인 선생님이 할머니 몰래 냉장고를 정리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일 이후 할머니는 만나는 직원마다 붙잡고 멀쩡한 것들을 버렸다며 1주일 넘게 하소연하시기도 했다. 또 할머니는 항상 박카스를 대량으로 구매해 냉장고에 꽉 채워두시고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꺼내주신다. 직원들은 가끔 목이 마르거나 피곤할 때 할머니에게 찾아가 박카스를 한 병씩 얻어 마시곤 한다. 박카스가 떨어지면 퇴촌면까지 나가 몇 박스씩 사와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지만, 내가 제일 많이 먹었기 때문에 딱히 불만은 없었다

 

<나눔의 집> 공식 사랑방


속리산 할머니의 방에는 이옥선 할머니 방처럼 추억이 깃든 물건도 사진도 없지만, 그래도 이 방은 <나눔의 집>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오가는 방이다. 비단 박카스 때문만은 아니다. 속리산 할머니는 유머가 있거나 남을 재미있게 하는 특기를 가지신 분은 아니지만 의도치 않은 말과 행동으로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재주가 관상 봐주기와 직원들 짝지어주기다. 먼저 할머니는 보는 사람마다 남녀노소 지위 여하에 상관없이 관상을 봐주시는데, 요청하지 않았더라도 누구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장관이든 국회의원이든 학생이든 얼굴을 한번 훑어보시고는 "귀가 큰 게 오래 살겠다." "코가 오똑한 것이 돈을 많이 벌겠다." 등등의 덕담을 아낌없이 해주신다. 가끔 관상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말씀하실 때도 있는데 아직 겉으로 기분 나빠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또 항상 결혼하지 않은 직원들을 서로 짝을 지어주려고 하시는데 서로 애인이 있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일단 할머니 눈에 들면 <나눔의 집> 안에서는 커플이 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렇게 진짜 커플이 탄생한 예도 있다.

속리산 할머니의 방에는 볼만한 세간살이도, 이옥선 할머니의 방처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임을 나타내거나 인권운동가로서의 활동을 보여주는 그 어떠한 물건도 없지만 나는 <나눔의 집>의 방 중에 이 방을 가장 좋아한다. 이 방에는 피해자가 아닌 이옥선으로 살았던 속리산 할머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2월 갑자기 할머니의 몸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할머니는 자신의 방을 떠나 집중치료실에서 생활하시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할머니의 방은 주인 없는 빈방이 되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방은 저마다 다른 사연과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 방들은 모두 속리산 할머니의 방처럼 정해진 과정을 기다리고 있다. 어떤 할머니든 <나눔의 집>에 오게 되면 방이 생기고, 그 방은 할머니의 역사와 추억으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하지만 그 방의 생명은 할머니의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만 이어진다. 할머니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 할머니가 병원이나 집중치료실에 가게 되거나 혹 별세라도 하시게 되면 아무리 많은 추억과 그와 관련된 물품들이 있다 하더라도 그 방은 아무도 찾지 않는 적막한 방이 된다. 항상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속리산 할머니의 방도 결국 할머니가 방을 비우게 되면서 지금은 업무 이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방이 되었다. 이전에는 새로운 할머니로 인해 기존 방이 정리되고 새 주인이 생겨 다시 활기를 찾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 <나눔의 집>에 새로 들어올 할머니는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이 방들을 어떻게 보존하고 기록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항상 주장하지만, 할머니들은 피해자이기 이전에 사람이다. 예전에 끔찍한 피해를 입었다고 해서, 또 그것을 남들이 알고 있다고 해서 평생을 피해자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넘어 그 이면에 있는 할머니들의 일상과 삶에 관해 관심을 가질 날이 올 것이다. 이에 나는 평범하지 않은 아픔을 가진 평범한 할머니들의 방을 그대로 남기고 싶다. 그리고 이 방과 방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개성과 의미를 통해 피해 이후 할머니들의 삶에 대해 조명해 보고 싶다.




Credit

일러스트 : 백정미


 

* 2020년 8월 11일, 속리산 이옥선의 방이 복원되었다. (아래 사진 참조)
* 2020년 8월 20일, 복원된 방에서 속리산 이옥선 할머니의 지시에 따라 나눔의 집 직원들이 겉절이를 만들고 있다. (아래 사진 참조) 

  • 2020년 8월 11일 복원된 속리산 이옥선의 방1.
  • 2020년 8월 11일 복원된 속리산 이옥선의 방2
  • 2020년 8월 11일 복원된 속리산 이옥선의 방3
  • 2020년 8월 20일 속리산 이옥선 방에서 겉절이를 한다(1
  • 2020년 8월 20일 속리산 이옥선 방에서 겉절이를 한다(2)
  • 2020년 8월 11일 복원된 속리산 이옥선의 방1.
  • 2020년 8월 11일 복원된 속리산 이옥선의 방2
  • 2020년 8월 11일 복원된 속리산 이옥선의 방3
  • 2020년 8월 20일 속리산 이옥선 방에서 겉절이를 한다(1
  • 2020년 8월 20일 속리산 이옥선 방에서 겉절이를 한다(2)

연결되는 글

  • 할머니의 방 -이옥선 할머니 편-
    할머니의 방 -이옥선 할머니 편-

    <나눔의 집>에 기거하시는 할머니들은 어떤 일상을 살고 계실까. 웹진 <결>은  '방'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나눔의 집>에 사는 이들의 평범한 일상을 살펴보는 연재를 기획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이옥선 할머니다. 

    김대월 2020.07.22

글쓴이 김대월

<나눔의집> 학예실장. 현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할머니의 내일 展>의 총괄 기획을 맡았으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가운데 틈틈이 본인의 경험을 살려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관한 특강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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