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 관련 명부(名簿) 종류와 연구의 의미

강정숙

  • 게시일2020.05.18
  • 최종수정일2020.07.10

명부에 수록된 이들은 누구인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역사적 과제로 국내에서 논의된 시점은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세미나 '여성과 관광문화'(1988년)부터입니다.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조직되었고(1990년), 1991년 8월 14일엔 김학순의 증언 등이 이어지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활동의 장이 한국에서 아시아로, 아시아에서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로 확대되었습니다. 이후 3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연구주제도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양한 연구주제 중 일본군 '위안부' 관련 명부에 대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작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에서 여러 명의 연구자가 명부 이야기를 다룬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2019)을 출판했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더 많이 알고 싶다면 위의 책을 참고해 주십시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첫 번째는 명부(名簿)와 명단(名單)이란 용어입니다. 이 두 용어는 함께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명단은 '어떤 일에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표'이고, 명부는 '어떤 일에 관련된 사람의 이름, 주소, 직업 따위를 적어 놓은 장부'를 뜻합니다. 명단이 다소 개별적이고 단순한 이름표라면 명부는 이보다 더 체계적이고 묵직한 느낌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위안부' 관련 명부라는 표현입니다. 이 글에서는 '위안부' 관련 명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건 작성자들이 '위안부' 명부라는 표현을 일괄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연구자들이 발굴한 명부 중에서 '위안부' 명부라고 명명할 수 있는 문건은 제한적입니다. 현재 발굴된 명부 중에 '위안부'만을 대상으로 작성된 문건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부가 작성된 과정을 면밀하게 검토하지 않고 명부에 기록된 모든 여성을 '위안부'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의 패전후 조선으로 귀환할 당시에 상하이와 같은 대도시에서 만들어진 명부에는 귀환자 전원의 명단이 수록되었기에, 치밀한 검토과정 없이 이를 '위안부' 관련 명부라고 한다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글에서는 한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정보가 포함되어 있고, 작성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명부를 '위안부' 관련 명부로 보고 소개합니다. 

'위안부' 관련 명부들은 일련의 의도와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 의도와 필요가 각기 달랐기에 명부의 명칭은 작성 주체에 따라 제각각입니다. 아래 표는 이 글에서 소개할 명부를 작성 주체와 장소, 그리고 시기를 중심으로 구분해 정리한 것입니다. 시기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전쟁 중에 작성된 명부와 일본 패전 뒤에 작성된 명부의 목적과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고 : 연도를 기록한 명부(명단)를 제외하고는 일본의 패전 전후에 만들어진 명단. 전쟁 중 지역별 전세 차이가 있어 버마, 필리핀 등지 명부는 공식적인 일본 항복 이전에 만들어짐.

1. 주더란 편(朱德蘭 編), 『대만 ‘위안부’ 조사와 연구 자료집(臺灣慰安婦調査と硏究資料集)』, 타이페이 중앙 연구원 종산 인문사회과학연구원(臺北中央硏究院中山人文社會科學硏究所),1999. 56쪽(수록자료는 타이완성문헌위원회에 소장된 타이완척식주식회사자료군에서 발굴한 자료).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소 편,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최종길 논문, 284쪽).
2.『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쑤즈량·천리페이, 윤명숙 논문)과 박정애 논문(「중국 저장성(折江省) 진화(金華)의 위안소와 조선인 '위안부'」, 『페미니즘연구』, 2017.4.
3. 민족문제연구소 사본 소장. 중국 상하이 명부에서는 피해자 한 명만 확인되었다
4. 위와 동일
5. 오키나와현립 도서관 소장자료. 강정숙,「일제 말기 오키나와 다이토(大東)제도의 조선인 군 위안부들」, 『한국민족운동사연구』40, 한국민족운동사학회, 2004.
6.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소장자료. RG 313 Entry 1352 Box 1967
7. 일로일로 환자요양소, [성병 검사 성적의 건 통보], 여성을위한아시아평화국민기금 편(女性のためのアジア平和國民基金 編), '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관계자료집성(關係資料集成) 3권, 69쪽
8. 연합군작성 포로명부(NARA 소장자료, 한국 국가기록원 복사본 소장.)
9. 타이의 연합군 및 타이군에 의해 작성된 수용소 명부(타이국립기록원 소장)
10. 버마 미치나 인도 레도 수용소. 정진성편, 『일본군'위안부'관계미국자료』3, 127쪽
11.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강제동원명부해제집 1』 231, 242-3. 원자료는 NARA 소장자료, 국사편찬위원회에 복사본 소장
12. 유수명부와 복원명부 :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인도네시아 동원 여성명부에 관한 진상조사』, 2009, 31쪽, 40쪽
13. 남방조선출신자명부 : 위 책, 44쪽

 

명부가 보여주는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성격

산야(三亞)방면행 특요원 명부<그림 1>[1]는 1939년 5월 일본 정부 국책회사인 타이완척식주식회사(이하 타이완척식)가 생산한 보고서[2] 자료 중의 일부입니다. 특요원은 바로 '위안부'를 지칭합니다. 특요원 명부를 통해 이 지역의 일본군 '위안부'가 대부분 대만인, 일본인, 조선인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명부와 함께 나온 자료에선 도항자(渡航者, 배나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이동하는 자-편집자) 명부, 인명표라는 명칭도 쓰고 있습니다. 특요원 명부가 포함되어 있는 희귀한 도항자 명부인 셈이지요. 특요원 명부와 함께 발굴된 자료는 특히 중요한데 일본 해군과 총독부, 타이완척식, 타이완척식의 자회사인 후다이(福大)공사 등이 군 위안소 건축과 '위안부' 동원에 관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관련 자료들을 살펴보면 일본 해군은 총독부를 거쳐 타이완척식에 중국 하이난도(海南島)의 해군 위안소 건축과 군 '위안부' 동원을 요청합니다. 타이완척식은 자회사인 후다이공사를 통해 위안소 건축 완료 후 해군으로부터 대금을 받기로 하고 '위안부'로 삼을 여성들을 동원했습니다. 게다가 이 자료 더미 속에는 당시 동원된 여성 수십 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일본의 우파 학자인 하타 이쿠히코(秦郁彦)도 위안소 경영을 위한 비용은 일본군이 임의로 사용할 수 있었던 '임시군사비'에서 나왔다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3]

오키나와 다이토 제도(大東諸島) 4중대 진중일지 <그림 2>에 수록된 조선인 여성의 수는 적지만, 이 명단이 기록된 진중일지에는 다이토 제도에 배치된 '위안부'들의 이름, 다이토 제도로 오기까지의 이동 경로, 그리고 '위안부'들이 전쟁 중에 처한 상황 등이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진중일지는 패전이 임박하자 관련 기록물 소각을 명한 일본군 상부의 지시사항까지 적힌 상태로 우리에게 남겨졌습니다. 당시 기록물 소각 명령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낀 4중대 중대장의 결단 덕분이죠. 일본군이 이와 같은 기록물을 폐기하지 않았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진중일지와 유사한 명부들을 발굴해 '위안부' 피해 실태를 비롯한 더 많은 사실을 밝힐 수 있었을 것입니다.

 

 

 

왜 일본군은
'위안부' 명부를 작성하였을까

위에서 언급한 도항자 명부, 진중일지 외에도 여성들이 위안소 소재지에 도착한 이후 그 지역 일본군이 작성하거나 위안소 업자가 작성해 일본군에게 제출한 '위안부' 명부들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군정감부가 낸 「군정 규정집」 제3호[4](1943.11.11.)에는 '지방장관은 위안시설 및 여관영업자 명부와 가업부(稼業婦, '위안부'를 지칭-필자) 명부를 비치하고 이동이 있을 때마다 정리할 것', '가업부는 취업과 폐업 시에도 관할 지방장관에게 보고하고 허락을 받도록'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군은 왜 '위안부' 명부의 작성과 관리를 중시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군 기밀 보안 등의 이유로 전쟁터에서 일본군 관련 시설에 있는 이들의 신분을 확인한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일본군이 여성들을 전쟁터에 동원한 목적은 군인의 성병 예방과 성욕 해결 등이었으므로 '위안부'로 동원한 여성들을 상대로 성병 검사를 하고 관리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필리핀의 파나이섬 성병 검사 결과를 보고한 성병 검사 성적(검미성적)에 관한 건 통보(1942.6) <그림 3>라는 공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파나이섬의 환자요양소나 군정 의료기관에서는 지역 내 위안소 여성 수십 명을 대상으로 일정 기간마다 성병 유무를 진단하여 그 결과를 한 명 한 명 정리해 상부 기관에 보고했습니다. 성병 검사 상태 보고가 목적이므로 이름, (나이), 병 상태 정도만 적은 간단한 것이지만 그 지역 관할 군 혹은 군정에서는 이를 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공문은 파나이섬에서만 작성된 것은 아니지만 <그림3>은 발굴된 자료 중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타깝게도 일본 측이 원본의 이름 부분을 검게 지워 지금으로서는 조선인 여부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명부의 발굴을 통해 이 지역 외에도 각지에서 성병 검사와 관련한 명부들이 생성되었을 것이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명부 분석을 통해
영웅으로 둔갑한 위안소 업자를 밝혀내다

중국에서 발굴된 저장성의 진화계림회 명부는 일본군에게 점령된 중국 진화 지역에 거주한 조선인회가 만든 명부입니다. 이 명부는 1945년 1월에 진화현의 한 관리가 쟝이밍(將一嗚) 지사에게 제출한 것으로, 조선인 '위안부'들의 정보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일본 패전 이전의 기록이어서 당시 저장성 지역 상황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화계림회 명부와 관련하여 제가 언급하고 싶은 지점은 '위안부'보다 위안소 업자들의 직종 변경이나 장소이동이 상당히 잦다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중국에서 귀환하는 조선인 남성들의 경력을 다룬 명부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조선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했던 일제의 인력이용 방식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주목할 것은 당시 위안소 업자였던 남성이 미담의 주인공으로 소개된 사례입니다. 중국 상하이 한국부녀공제회 회장이었던 공돈은 '위안부' 들을 구제한 영웅으로 신문에 등장합니다(「일본에 의해 끌려간 조선여성들이 상해 동포들에게 구제」, 『서울신문』, 1946.5.12.). 하지만 그는 1942년에는 위안소를 경영한 업자였음이 명부(1942, 『재지반도인인명록』[5])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앞으로의 명부 연구가
만들어낼 가능성

 필리핀·축제도(Chuuk Islands, 통칭 트럭섬)·일본 오키나와·버마·타이의 연합군이 작성한 명부 중 필리핀 포로수용소 명부<그림4>는 비교적 자세한 개인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개인 신상만이 아니라 수용소 간 이동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료입니다. 이에 비해 남태평양의 미크로네시아 축제도 명부, 일본 오키나와 명부는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을 뿐입니다. 버마, 타이 명부에는 이름만 있을 뿐 주소도 없고, 이름도 창씨개명 이후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단편적인 명부를 도대체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 가지 구명줄이 있습니다. 바로 이미 발간된 피해자들의 증언집입니다. 한국정신대연구회(소),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 지역단체 등에서 만든 증언집만 10권 이상입니다. 북측에서 만든 증언집도 있습니다. 이러한 증언집의 내용에 기초하여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과거 점에 불과하던 명부 속 피해자들의 존재가 선과 면으로 연결되어 입체적 존재로 여러분 앞에 나타날 것입니다.

 역사 현실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강화해야 단순하지 않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다면성을 이해하고 해결 방향도 제대로 제시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초기에는 명부를 주로 한국인 생존자를 찾고, 당시 일본군의 책임을 묻는 용도에 국한해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전보다 자료 상황이 나아졌습니다. 명부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할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 국내외에 발굴되어 있기 때문이죠.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을 토대로 ▲명부를 작성한 일본군, ▲연합군, ▲명부 작성에 관여한 현지인의 다양한 역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민족별 대응 방식의 차이, ▲위안소 내 힘의 관계, ▲젠더 문제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명부 연구에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이 많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책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2019)에서 좀더 자세하게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다음 글에서는 인도네시아에 있던 조선인 여성들의 정보가 기록된 유수(留守)명부와 복원명부에 대해 다룰 예정이니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Credit

편집 : 현승인, 변지은
교정/교열 : 금혜지
감수 : 윤명숙, 김소라 
일러스트 : 백정미 

각주

  1. ^ 타이완에서 하이난도(海南島)으로 건너간 여성명단 중 일부.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78쪽(최종길, 도항자 인명표)
  2. ^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덧칠된 기록에서 찾은 이름들』, 2019, 75~76쪽. 타이완척식의 사업과장이 총독부 임시 남지조사국 이사장에게 보낸 1939년 5월 9일자 보고서는 “해군무관실이 귀국(타이완총독부-인용자)을 통해 조회한 건에 관하여 별지대로 수배를 마치”고 “2. 특요원(싼야 방면행) ㈎ 10인 1조(5월 23일 金令丸로 출항 예정) ㈏15인 1조(현재 수배 중)”를 하이난도로 도항시킬 예정이라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인용한 타이완척식의 자료에는 '위안부' 관련 명부가 4개 존재한다.
  3. ^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위안부와 전쟁터의 성(慰安婦と戰場の性)」, 도쿄(東京):신쵸샤(新潮社),1999, 104쪽. 
  4. ^ 마라이군정감(馬來軍政監部), 군정규정집(軍政規定集) 3호: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女性のためのアジア平和國民基金), 『 정부조사(政府調査)「종군위안부(從軍慰安婦)」 관계자료집성(關係資料集成)3』, 龍溪書舍, 1997, 25쪽. 
  5. ^ 백천수남(白川秀男) 편, 『재지반도인명록(在支半島人名錄)』, 백천야행(白川洋行), 1941, 1942. ​황선익, 「해방 후 중국 上海지역 일본군 ‘위안부’의 집단수용과 귀환」, 『한국독립운동사연구』54, 2016.5,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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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정숙

일제하 안동지역 농민운동사로 학문세계에 입문한 이후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여성사를 연구하여 『한국여성사(근대편)』(공저, 풀빛, 1992)를 썼다. 1992년 한국정신대연구회(소)에 가입한 이후 일본군‘위안부’문제 조사와 연구에 집중하였고 <일본군‘위안부’제의 식민성 연구>로 박사학위(2010년)를 . 『일본군‘위안부’, 알고 있나요?』(2015,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등 여러 논문과 책을 냈다. 지금은 여태까지의 연구성과를 모아 출판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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