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미투’가 없다?
작년 미투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일본학을 배우는 학생들한테 몇 번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에서는 왜 미투 운동이 안 나와요? 언론에 잘 나오지 않는데요?” 이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래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에서 미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미디어와 사회적 공감이라는 점에서 한국과의 온도 차는 부정할 수 없었다. 왜 그들은 비가시화되는가. 그 배경에는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가.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伊藤詩織)는 2015년 당시 TBS 방송국 워싱턴 지국장이던 야마구치 노리유키(山口敬之)를 준강간 용의로 고발하였고 2016년 불기소처분을 내린 검찰에 이의신청을 했다. 2017년 5월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야마구치에 의한 강간 피해를 세상에 알렸고, 그 후 책을 간행하여 성폭력 피해뿐만 아니라 일본 경찰의 2차 가해와 사법제도의 문제점 등을 고발했다.
이토의 고발은 일본 미투 운동의 선구적 사례로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지만, 한편에서는 세련된 외모에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전형적인 ‘피해자성’을 벗어난다는 이유로 일본 사회에서 비난과 협박의 대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는 일본을 떠나게 되었다. 영국에서 살기 시작한 이토는 BBC의 특집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등 해외에서 인지도를 높였고,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에 대처하는 선진국의 법 제도나 지원체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이토가 야마구치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 대해 야마구치가 반소(反訴)하는 등 그의 투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토의 뒤를 이어 모델 카오리(KaoRi)가 사진가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의 ‘사적인 사진(私写真)’이라는 작업이 모델 여성에 대한 성 착취를 통해 이뤄져 왔음을 고발했다. 어느 여성 기자는 재무성 사무관 후쿠다 준이치(福田淳一)의 저열한 성희롱을 밝혀 그의 사임을 이끌었다. 인권 저널리스트 히로카와 류이치(広河隆一)의 권력을 남용한 상습적 성폭력과 정신적 폭력은 8명이 넘는 제자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밝혀졌다. 2018년 8월에는 도쿄 의과대학이 “결혼, 출산 등으로 장시간 근무가 어려운 여성들은 의사로서의 가동력이 저하된다”라는 이유로 여학생들의 입시 합격률을 조작해왔던 사실이 밝혀졌다. 너무나 시대착오적인 여성차별에 경악하고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때 매스미디어와 의료 관계자들의 냉담한 반응은 오히려 이것이 빙산에 일각이라는 현실을 널리 세상에 알렸다.
일본에서 미투 고발이 없었던 것도 아니며 그 차별과 폭력의 강도가 약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지지와 공감이 확산되지 못한 요인은 무엇일까. 이와 같은 현실을 단지 일본 미투운동의 실패나 불가능으로 보기 전에, 탈냉전 신자유주의 시대 페미니즘의 맥락과 그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일본의 미투 운동을 둘러싼 상대적으로 냉담한 반응은 포스트 냉전기 페미니즘을 비롯한 인권운동의 제도화와 그들의 인정 투쟁에 대한 광범위한 백래시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기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부정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젠더 백래시와
역사수정주의의 결합
일본 페미니즘 운동의 발전은 일반적으로 1970년대 우먼리브 운동의 시작, 1980년대 여성학의 창설, 1990년대 젠더 연구의 성립 등으로 특징된다. 제도적으로는 1985년 여성차별철폐조약 비준을 계기로 국적법 개정(1984)과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하 균등법) 제정(1985)이 실현되었고, 1990년대는 베이징세계여성회의(1995)에서 제시된 행동강령이 남녀공동참획사회기본법 제정(1999)으로 결실을 보았다.
물론 이와 같은 정리는 너무나 일면적이다. 페미니스트들이 1985년을 ‘여성빈곤 원년’ 혹은 ‘여성분단 원년’이라 부른 것처럼 균등법 제정은 한편에서 고용 규제 완화를 촉진하는 노동자파견법, 그리고 여성의 낮은 임금을 장려하는 새로운 연금제도의 도입과 함께 여성들의 비정규직화를 가속화했다. 즉, 당시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자유주의 개혁과정에서 여성들이 간편한 노동력으로 재편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부추긴 새로운 보수 세력은 이제 여성들에게 "가정으로 돌아가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사회진출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동시에 담당할 수 있는 '유연한(flexible)' 노동력이 되기를 요청한 것이다.
'남녀공동참획'이라는 아젠다 아래 정부와 지방행정 내부에도 여성들이 진입하기 시작했다. 각 지자체에서 남녀공동참획 센터와 젠더 관련 조례가 만들어졌고, 학술‧교육 분야에서도 젠더론 강의나 시민 강좌, 젠더 관련 출판물 등이 활발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전국각지의 여성단체가 발간하는 간행물이나 교육용 소책자에는 '젠더프리'라는 말이 종종 등장하였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젠더프리'를 "프리섹스를 장려하는 과격한 성교육"으로 호도하고 공격하는 백래시의 물결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했다. 백래시의 대표적 논자인 심리학자 하야시 미치요시(林道義)는 1990년대 후반부터 부성과 모성, 주부의 복권을 제창하기 시작했고, 기본법이 제정된 1999년 이후 페미니즘을 "정권의 중심을 차지하여 가족을 파괴하는 해악"으로 보고 반격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이때 '젠더프리' 담론과 함께 백래시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바로 일본군‘위안부’ 문제였다. 1990년대 후반은 일본에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나 고바야시 요시노리(小林よしのり)의 만화 『전쟁론』 등 역사수정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이며, 그 주된 논객들이 젠더 백래시에도 가담하고 있었다. 예컨대 역사를 "과학이 아닌" "민족의 로망"이라 부른 새역모 회장 니시오 칸지(西尾幹二) 및 핵심멤버인 다카하시 시로(高橋史郎), 야기 히데츠쿠(八木秀次) 등은 일본군‘위안부’의 교과서 기술을 부정하는 한편에서 젠더 백래시의 주역으로도 활약했다. 그들은 '모성의 복권'을 내걸고 여성들의 자율적 영역을 부정하며 ‘위안부’를 매춘부로 불러 피해자들과 성 노동자들을 동시에 모욕하는 담론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해왔다. 90년대 후반 이후 젠더 백래시와 역사수정주의는 세력을 키웠고, 그들 동력의 핵심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있었다.
‘위안부’ 부정을
동력으로 삼은 두 보수 세력
90년대 역사수정주의 담론은 2000년대에 들어 차원이 다른 두 보수 세력의 발전을 가져왔다.
하나는 보수 정치인들과의 연합을 통해 형성된 광범위한 극우세력이다. 그들은 '일본회의'와 '신토정치연맹' 등 일본 최대급의 극우 정치‧종교단체를 기반으로 삼았고 『산케이신문(産経新聞)』, 『세이론(正論)』, 『쇼쿤(諸君!)』, 『SAPIO』 등의 보수언론을 주요 무대로 활약했다. 이들에게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젠더프리 교육'은 애국심과 전통적 질서를 파괴한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되었다. 2005년 5월에는 당시 내각 관방장관이던 아베신조(安倍晋三)를 좌장으로 내세운 '과격한 성교육‧젠더프리교육 실태조사 프로젝트팀'을 발족했던 것처럼 젠더 백래시는 시민사회 내 반페미니즘 운동이라는 한 파트를 벗어나, 자민당 극우정치인들 스스로가 견인하는 대보수연합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 광범위한 넷우익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급성장한 넷우익의 존재는 '혐한류' '재일 특권' 등의 담론을 거쳐 '행동하는 보수'를 자임하는 '재특회(재일 코리안의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의 헤이트 스피치로까지 발전했다. 이들은 기존 리버럴 세력과 재일조선인, 페미니스트 등을 '반일'이라는 잣대로 공격함으로써 일본 시민사회의 대항 담론을 빈곤한 정치적 상상력 속에 가둬놓았다. 2002년 '2채널'에 생긴 '페미나치를 감시하는 게시판'은 2016년에 '페미‧반일책동을 감시하는 게시판'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오늘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현재 광범위한 '혐오 비즈니스'로 확대되었다. 시리아 난민을 조롱하는 일러스트를 그린 만화가 하스미 도시코(はすみとしこ)는 그 후 재일조선인, 페미니스트, 오키나와 등 대상을 바꿔가면서 그가 '위장 약자'로 부르는 사람들을 공격해왔다. 미투 이후 그가 "증거는 없어도 내 몸이 기억한다"는 문구와 함께 이토 시오리와 '위안부' 피해자의 일러스트를 나란히 배치해 조롱한 것은 이 흐름의 핵심을 보여준다.[1]
이처럼 1990년대 반페미・역사수정주의자들은 대연합을 형성하여 한국보다 비교적 빠른 시기에 백래시의 물결을 만들었고 그 중심에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있었다. 즉 새역모가 일본인의 긍지와 애국심을 훼손하는 '자학적' 역사 교과서를 비난할 때도, 또 재특회가 거리에서 혐한시위를 벌일 때도 그 중심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과 비난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역사수정주의의 대중화가 가져온 현재 상황은 역사적 전문성보다는 만화가, 유튜버, 연예인과 같은 비전문가들의 실감을 바탕으로 한 반지성주의 현상으로 이는 일본 사회 소수자나 피해자에 대한 전체적인 백래시 과정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남자들이 만든 ‘위안부’ 문제에
여성들이 나선다"?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움직임은 ‘위안부’ 부정론과 반페미니즘 활동을 여성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2001년 9월에는 '일본회의' 계열의 '일본여성모임'이 결성되어 젠더 백래시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었다. "위안부 문제를 끝장내기 위해" 2011년에 설립한 나데시코 액션(なでしこアクション)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 정부 의견과 다른 결의안을 낸 지방의회에 대한 항의, 해외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항의 등 국내외 반일활동 저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다. 단체대표 야마모토 유미코(山本優美子)는 원래 재특회에 운영진으로 참여하다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나데시코 액션을 결성했다.
그는 자민당 극우정치인 스기타 미오(杉田水脈)와 함께 유엔에서 ‘위안부’가 역사 왜곡임을 주장하였고, "남자들이 만든 ‘위안부’ 문제에 여성들이 나선다"는 문구와 함께 『여성이니까 해결할 수 있는 위안부 문제』라는 공저도 출간했다. 소위 '아베 칠드런'으로 정치권에 들어간 스기타는 페미니즘만이 아니라 LGBT, 난민, 재일조선인 등 모든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 자극적인 혐오 발언을 통해 넷우익들의 인기를 얻은 정치인인데, 특히 유엔에서의 로비활동과 세계 각지에서의 소녀상 건립반대 운동 등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역사전'에 앞장서고 있다. 남녀평등을 '반도덕적'이라고 말하는 스기타가 미투를 '현대의 마녀사냥'으로 불러 공격한 것은 안티페미니즘의 극단적 사례를 보여준다. 그들의 민낯은 영화 〈주전장〉(미키 데자키, 2019)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이토에게 고발당한 야마구치 또한 아베의 인물 평전을 낼 정도로 현 정권과의 유착관계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토는 저서 『Black Box』에서 성폭행 후 야마구치의 태도, 약물 혼입의 가능성, 야마구치를 기소하는 과정에서 겪은 경찰과 검찰의 2차 가해, 그리고 예정된 체포의 갑작스러운 취소 등 악몽같은 경험을 자세하게 적었다. 이토는 수사과정에서 "고소하면 저널리스트로서의 인생은 끝난다"는 협박을 들었고 결과적으로 야마구치의 체포는 돌연 취소되었다.
여기서 사건 직전에 야마구치가 썼던 기사가 "한국군에 베트남인 위안부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기사 내용의 사실 여부를 둘러싸고 보수언론 내부에서도 날조와 가로채기 의혹이 제기되어 TBS 내부에서 징계처분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결과적으로 TBS가 철회한 기사를 독자적으로 보수잡지 『주간분슌(週刊文春)』에 발표한 것을 이유로 워싱턴 지국장에서 해임되었다. 기사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아베 정권 측근과의 소통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을 전제로 할 때 역시 일본 미투 운동에는 개개인의 앞을 가로막는 커다란 벽이 존재한다. 그것은 90년대부터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백래시와 무관하지 않다.
2부에서는 이에 대항하는 움직임들을 드러낼 것이다.
각주
- ^ 하스미토시코의 트위터 계정, https://twitter.com/hasumi29430098/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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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미투 운동과 ‘위안부’ 문제 2부 - 역사의 교차, 문화의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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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성공회대 교수)
- 글쓴이 조경희(趙慶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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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일본학 전공. 연구분야는 식민지 사회사, 재일조선인, 이동과 소수자 등이다. 주요공저에 『주권의 야만: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2017), 『<나>를 증명하기: 아시아에서 국적, 여권, 등록』(2017), 『전후의 탄생 : 일본, 그리고 조선이라는 경계』(2013), 『귀환 혹은 순환: 아주 특별하고 불평등한 동포들』(2013) 등이 있다.